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왜 연극영화과인가?' 마지막 챕터. 에필로그에 수록한 글입니다.



얼마 전 밥 딜런의 내한공연을 봤다. 


이제 진짜 마지막 방문이 될지도 모를 노장의 공연에서 당혹감을 느꼈다. 

우선 공연 내내 스무 곡이 넘는 곡을 꽉 채워 공연했다는 것이고, 그 사이 별 멘트나 친절한 안내 없이 그냥 정 말 쉴 새 없이 곡들을 몰아쳤다는 것, 

두 번째 당혹감은 그 스무 곡을 전부 새롭게 편곡해서 거의 원곡을 구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는 점이었다(아마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러했으리라)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고의 위대한 뮤지션과 같은 문구를 보고 올림픽체육관 체조 경기장을 찾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마지막으론 두 곡의 앙코르가 끝나고 마지막 인사조차 없이 우두커니 무대에 서 있다가 문득 퇴장해버린. 그 쓸쓸한 뒷모습 때문에 당혹스러웠다. 


밥 딜런의 콘서트 이후 수많은 기사와 인터넷 댓글에 노장의 마지막 행 동이 한국팬을 무시한 거라는 분노어린 표현이 쏟아졌다. 

일본 공연을 앞 두고 억지로 들른 한국 콘서트라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 팬을 무시했다고.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그날. 

노장이 무대 위에서 별다른 인사를 하지않아야 할 이유. 

그리고 우두커니 무대 위에 서 있는 것 속에 있는 밥 딜런의 어떤 영혼의 속삭임이랄까? 교감이랄까? 그런 것을 느꼈다. 


노장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시대의 아이콘. 저항의 아이콘. 이런 수식어 들을 싫어했을 것이다.

그런 껍데기들로 자신을 규정 짓고, 그런 유명세 때문에 먼 한국땅에 꽉 들어찬 보통 관객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대변하는 음악(다른 그 어떤 명성이나 미사여구가 아닌). 그의 음악 그 자체를 들려주고 싶었 을 것이다. 

물론 밥 딜런의 진짜 생각은 밥 딜런 본인밖에 모를 것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최소한 관객들에 대한 배려 없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절실함으로 보였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나 아직 뮤지 션이야. 나는 아직 무대 위에서 평가받을 거야. 나는 아직 박수받기엔 너무 이르다. 

그는 어쩌면 절실히 이렇게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친구들아. 내 인생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어. 밥 딜런의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내 전성기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네. 그러니 박수하지 말게.’ 


박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영원히 무대 위에 서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 명성에 기대고 과거에 기댄 ‘유명인사’로 평가받고 싶지 않은 노장의 절실함. 

우두커니 조금은 쓸쓸하게 조금은 지치고 조금은 엉성하게. 무대 위에 서 있는 밥 딜런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바르셀로나의 짓다 만 사그라 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본 가우디의 생전 모습. 또 가우디의 동상의 이미지 와 놀랍게도 유사했다. 

그것은 혼자만의 착시였을까? 




이 보잘것없는 책을 내면서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모른다. 이 보잘것 없는 원고들을 세상에 내놓아야 할지를. 

이 책에 있는 수많은 선언과 비약들. 그리고 함부로 단정 짓는 표현들이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부끄럽다. 

러나 밥 딜런의 공연에서 뜻밖의 용기를 얻었다. 

나에게도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이 글이 만족스럽지 않기에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으로 생각할 용기를 얻었다. 

이 책의 많은 허점과 미숙함을 세상에 내놓기 너무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 미숙함을 가지고 세상과 소통해보고자 엉성한 발걸음이나마 내딛어본다.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기에. 자신의 연약 함에 머물지 않고 용기 내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다. 


이 책을 내기까지 고마운 이름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 소중한 분들의 이 름을 지면을 통해 나열하진 않으려 한다. 이 기회에 따뜻하게 인쇄된 책 한 권 손에 들고 직접 얼굴을 맞대고 감사인사 드리려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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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고마우신 분들의 추천사입니다!




연극영화 분야의 냉혹하고 치열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때로는 거칠게 몰아세우기도 하지만 예술교육의 길을 견고히 걸어온 저자이기에 그만의 시선으로 예술을 꿈꾸는 학생들을 세우려고 애쓰는 모습 또한 따뜻하다. 연극영화 분야에 도전하려는 많은 학생에게 진실한 격려가 될 책으로 적극 추천한다. 나 또한 젊은 날 삶과 예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기에 공감하게 되는 글들이 많다. 예술가의 꿈을 꾸는 지망생들에게 큰 도전과 격려가 되리라 생각한다.

- 김태원 (음악인, 부활 리더)




배우로서 제법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음을 느낀다. 어쩌면 이 길은 끝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때마다 다시 한 번씩 펼쳐 읽어보아야겠다. 입시생뿐만 아니라 연기 지망생들 모두에게 큰 자극이 될 것이다.

- 박소담 (배우, 한예종 연기과 졸업, 2016년 제27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왜 ‘연극영화’의 길을 걸으려 하는가에 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연극영화’를 꿈꾸는 입시생들은 물론 더 큰 세상을 꿈꾸는 예술가 지망생들 모두에게 던지는 자극과 응원의 메시지가 가득 담겨 있다.
- 임정환 (영화감독, 한예종 영화과 졸업, 「국경의 왕」 「라오스」 등 연출, 2014 대전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



스토리텔링과 예술에 대한 근본적 원리, 수많은 실전 경험에서 찾은 소중한 핵심, 입시를 너머 길게 보는 데 필요한 격언들이 큰 힘이 되었다.
- 임철 (영화감독, 한예종 영화과 졸업, 「폭력의 틈」 2015 전주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



읽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구마구 줄 긋고 주변에 추천해주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 임희철 (배우, 2018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야키니쿠 드래곤」 주연배우)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빨리 완성되어야 한다는,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성과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결과들에서 여유로울 때 나다움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걸을 예술길의 연료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멀리 보자.
- 안승균 (배우, 영화 「나의 아저씨」 연극 「에쿠우스」 「렛미인」 출연)



가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을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그런 척하고 싶다. 그런데 철저히 나에게 묻고 내 안에서 꺼내라고 당부한다. 이 책에서 자기자신과 마주하고 수용하고 온전히 화해를 하라는 조언이 가장 고맙다.
- 무진성 (배우, 드라마 「열애」 「제왕의 딸, 수백향」 「밤을 걷는 선비」 출연)



입시생 시절 연극영화 입시에 성공하고 싶어 가제본을 읽어보았는데 어떻게 예술을 인생으로 살 것인지 긴 호흡까지 들이쉬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과 입시에 도움이 되고 격려가 될 것이다.
- 현예림 (동국대 연기예술학과 18학번(동국대, 성균관대, 서울예대 연기과 동시 합격))



이것이 내 길이라 믿고 가고 있어도 가끔은 이래도 되는지 확인받고 싶었다. 다들 같은 마음인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어떻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길을 가야겠다.

백승연 (세종대, 국민대 연기과 동시 합격, 세종연기대회 2018년도 입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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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을 보니 2017년 10월...

이 블로그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글쓰는 일을 멈춘건 아니고

그동안 쓴글을 정리하고 거의 완전 새로 쓰면서 책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1년의 노력끝에 드디어 저의 첫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정말 부끄럽지않게 최선을 다해서 기존 블로그원고를 완전히 새롭게 썼구요. 최선을 다하고도 더 최선을 다하려고 밤새 글을 다듬었습니다.


이 책을 내면서 특히 부활의 김태원 선생님과 박소담 배우 및 많은 분들이 기꺼이 추천사를 써주셔서 너무 감동이었구요. 정말 수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 책한권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끄적이는 사람이 대충 블로그 글 긁어모아 낸 책이란 편견을 뛰어넘기위해

첫문장부터 기존 글을 버리고 새롭게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갔습니다.


주변에서 물어봅니다. 첫 책을 냈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정말 정직하게 기쁘거나 설레이는 마음은 전혀없고 더 잘 쓰지못해서 세상에 내놓는 아쉬움과 걱정. 마치 아이를 처음 학교에 등교시키는 엄마의 마음으로

적잖은 부담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책이 완성되었으니 블로그에 연재를 다시 시작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내야 될 책이 많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끄적이는 글들로, 이미 다음 책은 시작되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의 글이지만 

격려와 응원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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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감독 연출 '경계' 스틸컷>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너희들이 자격을 말한다면, 그것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자격이 충분하다'이다.

많은 학생들이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내가 성적이 높지않아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자신이 부족하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입학할 자격
또는 성공할 자격


내 생각은 다르다.

입학할 자격에 대해 생각해보자.

예술을 전공할 자격이 되는 사람이 누구인가?

성적이 높으면 자격이 되나?

그럼 반대로 이야기하면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은 성적이 높아야하는가?
언어 영어 내신 성적이 높은 사람이
좋은 예술가가 된다는 근거가 있는가?
그게 올바른 인과관계인가?
옳을수도, 아닐수도 있다.
아마 별상관없을 확률이 높다.
아니,
오히려 관습화된 질서에 너무 쉽게 따르는게 천재적 발상과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커보인다.

예술이야말로 잡다한 세계에 대한 관심이고
쓸데없는 것에대한 호기심이고
그런 개성은 언어 영어 내신을 통해 관리되는게 아니다.

게다가 여러분은 학생이 되고자 하는거지
예술가로 완성되어져서 평가받는게 아니지않나?

배우기위한 학생이되고자 하는건데
그 자격에 대한 평가가 사실은 올바르게 이뤄진다고 보기 힘들다.

잘 모르니까 배우고싶은거고.

연극이나 영화야말로 성적이나 내신과는 큰 상관이 없는 예술분야이고
그렇다고해서 5분정도의 면접으로
어떤 학생이 뛰어난 잠재성을 갖고있는지 평가한다는건 여전히 어불성설이다.

작년에 한예종 연기과에 6000명가까이 지원했고
올해 단국대 영화과 수시 지원자도 1000명이 넘었다.

문제는 여기에있다.

이건 숫자의 오류이지,
네가 자격이 안되서 힘든게 아니다는걸
특히 강조하고싶다.

꼭 기억하라.

대한민국의 예술교육시스템이 잘못된거고,
너무 지나치게 높은 경쟁률. 즉 숫자의 문제이지

너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률이 높은건 그냥 경쟁률이 높은거다.

대학별 연극영화과 모집정원이 한정되어있는 반면,
지원자들이 터무니없이 많아져서 생긴 문제일뿐.

저 입시에서 원하지않은 결과를 얻었다고해서
네가 실력이 부족한것도.
네가 자격이 안되는것도.
특히나 네가 잠재력이 부족한것도 아님을 명심하라.

반대로 말하면
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고해서
그 학생이
예술가로서 대단한 잠재력을 갖추고있다거나
성공의 탄탄대로가 예정된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저 경쟁률을 뚫은 사람들을 나만큼 많이 알고있는사람도 없을꺼다
단언컨데,
저걸 뚫고 합격해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게된다.
예술가로 성장하는것과
대한민국 예술대학에서의 교육은
큰 차이가 발생되어있기 때문이다.

기준이 잘못된 경쟁에서의 결과는
너무 신뢰할게 못된다.

너의 잠재력을
저 방만한 5분입시로 평가한다는
그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옳지않다.

심사하는 교수들조차 신뢰하지않을거다.
그저 교육부로부터 허가받은 인원에비해
너무 많은학생이 지원해서
할수없이 본인들도 고역인
입시시스템을 억지로 진행하고있는것일뿐.


그렇다면 어떻게해야하나?

우선
너는 절대로 잘못된  기준에 너의 정체성을 함부로 내맡기지마라
특히 너의 소중한 꿈을
그런 기준아래서 평가하거나 속단하거나
포기해버리는 건 말도안된다.

다음으론
또다른 전략적 방안을 찾아봐라
서울예대의 경우엔 전문대졸이상 정원외특별전형이면 거의 다 합격할수있는데
이런 학점을받는 일은 너무쉽다

편입의경우도 있고 전과도있고
일반대학에서 잘 공부한후 대학원에서 준비하는것도 가능하다.

언어영어에 강점이있으면 한예종 다양한 과들로 범위를 넓혀봐도좋다.
연기에서 영화로
연기에서 연출로 연극학으로
영화에서 방송영상이나 영상이론으로 등등


유학의 길도 열려있다.
유학을통해 입학하는건 상대적으로 쉽다
해외에서의 특별한경험과 언어에대한 확실한 준비를해서 귀국한후, 예술가로 활동하는것도 좋다.

꼭 대학이 필요한가? 에 대해 스스로 물어보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도
당연히 멋지다
예술가가 배워서 된다는게 말이안되니까.


예술교육이 문제가많다.
특히 연극영화과의 경우는
지원자가 많은데비해
교육방식이 너무 획일적이다.
학생들이 그 학교에 왜 지원했냐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기 힘든게 현실이다.
특색없고 획일적이라
그냥 집가깝고 엄마가 원하는 대학이라 지원했다고
말하기가 힘든것이다.

한예종의 경우 교육철학과 시스템은 확실하나,
너무 지나친 엘리트주의로 가는게문제다.
너무 소수를뽑고
너무 순혈주의로  간다.

개성넘치는 예술대학들이 수십개 존재해야한다.

어떤 예술대학은 스타니슬랍스키식연기 어떤곳은 한국적바탕을 둔 연기론
어떤학교는 조명이나 의상 분장등에 특화
어떤학교는 영화편집에 집중하고
어떤학교는 커리큘럼이 오직 인문학  고전공부가 전부다. 예술학교인데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의 현실아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게 너무 확실하기에
절망스럽다.

한마디로 요약할수 있겠다.

네 잘못아니다.
네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네가 자격이 없는것도 아니다.

기준이 잘못됐다.

규칙이 잘못된 시합의 결과에 쉽게 순응할 필요없다.

아예 기준을 바꿔버릴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도 좋을것이다.

네가 입증하면. 증명하면.
그게
정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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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져,
가는,
아름 다운
my   dream
my   song...

헤드윅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Midnight Radio이다.

헤드윅하면 에너지넘치는 무대, 락콘서트를 연상시키는 폭팔력, 호모섹슈얼이라는 다소 금기시되는 소재.
보통 이런 이미지들을 떠올리게된다.

.

그러나 헤드윅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이 작품은
무언가
다른점이 있다.

이 느낌이 뭘까 거슬러올라가다 보니 17년전 어느 여름날이 떠오른다.

나는 대학 1학년때
이름없는 락동아리. 락밴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런 작은 스쿨밴드에 가입한적이있다.

민망하게도 어깨까지 머리를기르고
블루블랙으로 염색을했다.
찰랑찰랑 머릿결이 찰지다며
근데 얼굴은 기타자와라며 놀림받았다.

나는 히데를 생각하고있는데 기타자와라니
어린 마음에 상처받기도했지.

헤드윅의 무대는 옳다.
작품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무대다.

운동장 구령대? 단상같은거 아래 창고가 바로 우리 밴드의 연습실이었다   
그 연습실의 문앞엔 담배꽁초와 가래침말라비틀어진것과 조잡한 그래피티와 담배꽁초가 수북한 캔과 짬뽕그릇따위가 쌓여있었고

그 문 너머로 들려오는
악기들의 진동... 

음은 고음보다 저음이 훨씬 멀리나간다고 하는데,
시끄러운것보다
더한
울림 진동
물결처럼
태양처럼
광선처럼 (Radio)

내 마음을 진동시키곤했다.

그 문에는 검은색스티로폼계란판모양 부직포가 붙어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뿌옇게 밀려오는
드라이아이스같은 담배연기
조그만 창문사이 햇살
그리고 부유하는 먼지들

거칠고 불친절한 선배들
날카롭고 섹시한 여자멤버들

드럼,앰프,기타,베이스,키보드,굵은전선들, 얇은전선들,악보,악기케이스들...

그 속엔 무엇이 있었나?
그 운동장 아래 연습실엔 무엇이

거기 있었던건
어쩌면 악기가 아니었다

거기 있었던건 악기도 아니고
열정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고
성취도 아니고

거기 있었던건 사라

가는
꿈...
아름다운, 꿈과 노래
그리고 방황하는
청춘들이 있었다.

그렇다.
그 연습실에 있던건
방황이었고
젊음이었고
반항이었고
흔들리는
속으로 파고드는
좌절과
사랑이었다. 

밴드에서의
사랑은 의례히 은밀한, 또는 공개적인 SEX로 표현되는데
공허하고
비어있고
흔들려서
매혹적으로 ㅡ
마치 난파선끼리 서로 묶여있듯
그렇게 인생의 파도에따라, 이리저리 부딪히고
상처나고
깨지며
흔들리는
그런 사랑.

작은 밴드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껴온것들을 통해
뮤지컬 헤드윅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헤드윅을 열정, 꿈과같은 단어로 표현하는걸 이해하기 힘들다
헤드윅은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자아에 대한 위대한 플롯이다.

그것은 성취된 꿈에대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좌절된 꿈에대한 작품이며
강한 내면을가진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단
스스로의 모순속에서 붕괴되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자아찾기에대한 이야기다.

마치 연습실 창문. 연기와 진동사이 부유하는 먼지들사이로 찾아드는
한줄기 빛 Midnight Radio 처럼 말이다. 

 



 

 

헤드윅은 단어 SEX에서 성교적 의미를 빼고 남은 단어의 뜻과 같은작품이다.
젠더. 그리고 사랑, 매혹,
아담과 이브
정체성...

내가 본 버전의 헤드윅공연의 무대는 폐차장같은 무대. 그리고 그 밑에 밑바닥에서 기생하는듯 조잡한 느낌의 밴드공연장이었는데
그 느낌이 훨씬 좋았다.

그 폐차장에서
난파선, 고장난 차들위에서라면
드디어
결합을 말하기에 충분한 장소가되니까!
그 무대라면
쓰러졌다 일어서서 마시는 공기는
어제와 다름을 말하기에
적절한 무대가되니까.

나는 바이바이베스파 라는 만화를
좋아하는데.
무엇이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꼭 무엇이 되어야만 되는것일까?

그렇지않다.
우리는 무엇이 된다고해서 무엇이 되는게 아니다.
어른이 되었다고해서 어른이 되는게 아니고
아버지가 되었다고해서 아버지가 되는게 아닌것처럼

우리가 성장한다는건, 그래서
무엇이 되는게 아니고
무엇을 만나느냐의 문제이다.


이츠학의 존재가 그래서 중요하다. 원래 헤드윅공연초기엔 이츠학과 헤드윅이 하나였다고한다. 그러다가 여성코러스 (주연배우의 노래실력을보완할수있는) 가 필요해서
헤드윅에서 분리된 캐릭터가 이츠학인데,
이게 절묘하다.

 



 

 

남성인데 여성인 헤드윅과

여성인데 남성의 이츠학의 결합.

자기파괴적이며 과시적이고 감정적인 헤드윅에 비해
과묵하고 헌신적이며 이타적인 이츠학의 캐릭터는
여성코러스의 추가로인한 음악적즐거움뿐만아니라
서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 모두에겐 '토미 노시스'가있다.

그토록 갈망하지만, 우리에게 날카로운 상처를 주는 현실의 높은 벽...우리를 좌절하게하는 그 어떤 꿈이라도 모두 '토미 노시스'이다.

이루어지지못한 꿈. 이뤄지지못한 사랑...

 

토미는 헤드윅이 그토록인정받기를원하는 갈망의대상이지만,
그는 비단 한 인물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토록 인정받고싶었던
가족
사회
성공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인정


다양한 의미로 확대가능한 인물이다.

한마디로, 희미해져 가는
꿈과 노래....
우리가 갈망하는 그 무엇이라도
'토미 노시스'로 표현될수 있다.
그래서 토미는
서사속에는 등장하지만,
극중 내내 실체를 드러내지는 않고
심지어
헤드윅 그 자신이 곧 토미 노미스를 연기하기도 하는것이다.

헤드윅이 좋은 작품이라는 증거는
심오하기 때문이고
분열적 Schizoid Character 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저마다의 헤드윅이 존재할수 있기 때문이다.

헤드윅이 자동차본네트속에 머리를넣고 평안을 얻은것처럼
저마다의 꿈의사람, 첫사랑, 그리고 멀어져가는 꿈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고 내밀한것이 아닐까?





드디어!
극의 절정에 이르러
이 아름다운 곡. Midnight Radio가 흘러나오며

헤드윅은 꿈을.
상실한다.
사라져가는 꿈은,
절망의 상징이 아니다.

아름다운성장과
더 아름다운만남에 대한 서사로 이어지기에
더이상 절망에 머무르지 않는다.

헤드윅은 이츠학을 만나서,
드디어 하나가 된다.

그토록 원했던 '토미'를 놓을때
(그것이 사람이든.상처든.인정이든.내면이든)
헤드윅은 이츠학을 볼수있다.
남장여자의 분장을 지우고
무대위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장의
이츠학!

 

 



나는 인생이 성취가 이끄는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인생은 성취가 이끄는게 아니라
만남이 이끄는거더라.

헤드윅이 이츠학을 만나고, 자아를 찾고 마침내 한걸음 성장하는것처럼
우리 모두에겐 그 누군가와의 만남이 절실하다.

그래서 헤드윅의 백그라운드영상 한 사람에서 분열된 반쪽들이,
서로를 찾아 헤메는 영상이 의미심장하다.

인생은 혼자서 살아가는게 아니며
우리의 삶을 이끄는건 만남이다.
나의 부모님
나의 환경
나의 정체성
나의 자아

나의 믿음
나의 사랑 과의 만남.

 

아이와의 만남이 부모라는 세계로 이끌어주고
배우자와의 만남이 부부라는 세계로 이끌어주는것처럼

우리는 그 우연한 만남속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찾을수있다.

그 만남을 인정할 수 있는 것.

원하든 원치않았든 우리가 만나온 모든 삶의 언저리. 그 모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품에안을 용기.

그 용기가 헤드윅이 말하는 성장이며

헤드윅이 무대너머 밝은 태양속으로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나를 가장 사랑할만한 가치. 그것은 멀리있는게 아니고 나 자신에게 있으며.

나를 가장사랑하는 이 또한 저멀리 있는게 아닌 묵묵히 곁에있는 그(그녀)였으며 = 이츠학

내가 힘써지켜가야할 모든 것들이 이 작고 초라한 공간속에 존재하며
만나지는 모든것들속에
우연한, 때로는 원치않았던 슬픈기억조차도
내가 성장시켜가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깨달음.

마지막으로 헤드윅 그 자체라고 할만한
John Cameron Mitchell 의 Midnight Radio와

귀여운 조정석의 초창기버전도 함께 올린다.

모두에겐 저마다의 헤드윅이 있다.



 

John Cameron Mitchell 의 Midnight Radio (브로드웨이 2015)

 



 

풋풋한 조정석의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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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학원이 한예종 영화과 특전입시 8명을 뽑는데 6명이 합격했다.
작년엔 한예종 영화과가 총 10명 합격했고.
이것은 팩트다.
너무 좋은결과가 지속되어서 오히려 둔감해진 느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더 좋은 선생님, 더 좋은 수업, 더 효율적인 시스템... 준비된학생들이 기꺼이 선택할수 있는학원의 철학과 높은수준을 유지하기위해
,한순간도 마음편하게 쉬지못하고 지금껏 달려왔다.

그런데 참 행복하다.
함께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훌륭한 시설과 시스템들을 보면
스스로 놀랄때가 많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사랑하는 선생님들, 학섕들과 함께하고있는 나는
행복하다. 행복해서 이 일을 한다.

계속 고쳐나가고 성장해나가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는것.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성장한 오늘이 되는것.
그게 내 삶의 목표이다.

.

면접에 대한 칼럼을 쓰려다가 서두가 길었다.

면접을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축약가능하다.

다른모든건 비본질적인거다.

다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충분히 단기간에 빌드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항상
이 두 질문에서
걸리는 걸 경험한다.

그래서 면접을 준비하고자 한다면
이 두 질문을 깊이있게 생각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이 두가지 질문에 면접의 방향과 해답과 깊이가 있으니까.



첫번째 질문 -

'왜'

첫번째 질문은

라는 질문이다.

나는 왜 영화를 하려하는가?
나는 왜 연기를 하려하는가?
나는 왜 영화감독이 되려하는가?

이, '왜' 라는 질문은 좀 더 확장되어진다.

나는 왜 영화과를 대학을진학해야하는가?

왜 이 대학이어야 하는가?

나는 이 영화와 감독을 왜 좋아하는가?

나는 왜 남들이 다 가는 안정적인 길을 벗어나
예술이라는 모험의 길로 진입했는가?

왜?

정말 자신있게 말할수있다.
이 블로그를 봐라.
처음쓴글. 과외를시작하기도전에 쓴글부터
지금글까지
이게 증거고 역사고 기록이다.

무수히 많은 합격의 신화를 이끌어오면서

머리가 아니라 땀과 몸으로 깨달은
해답이다.

'왜' 라는 질문은
너를 성장시킬꺼다.
너를 남들과 차별화된 존재로 가꿔줄꺼다.
너의 대답이 다른 친구들과 질적으로 다른대답이 되도록 만들어줄꺼다.

그만큼 중요한 질문이다.

스스로 질문해보라.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정도라도 갖춰져있는지?

아니면 전혀 준비가안되어있는지?

누군가가 기계적으로 만들어준 답을
그야말로 입시학원식으로 대답하는 학생들은
중하위권대학 입학 수준밖에 안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대학들은,
너의 그 입시적이고 기계적인 답변이
마음에 들어서 뽑아준게 아니라.

그런대답을 앵무새처럼 말하는 네 수준이.

끽소리 안하고 4년동안
등록금 잘내고 안그만두고 다닐 학생처럼
보이기에 뽑아주는 것일뿐이다.


진짜 좋은 학생을 뽑고싶은 교수라면
반드시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학생을 뽑지

4년동안 교수 딱까리나 할 YES맨을 뽑지않을거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라

자신만의 답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올바른 면접의 방향이라 믿는다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학생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왜'라고 질문할줄 아는 학생.

그런 학생이
실력있는 학생이고
잠재력이 있는 학생이다.

마지막으로

이 '왜'라는 질문을 더 응용해본다면,

세상을 향해서도 응용/확장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확장성이
바로 논술의 토대가된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말로하면

= 면접이 되고

나 자신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글로 쓰면

= 자소서가 되고

세상에 대한 '왜'라는 질문으로 확장하면

=  논술이 된다.



그런데 더 어려운 관문이있다.

그건 바로 두번째 질문이다.

바로 '어떻게'  에 대한 질문.


어떻게.


이것은 스타일의 문제이다.

개성의 문제이기도하다.


어떻게 영화를 찍을꺼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플랜이 아니다.

스타일이다.

스타일. 개성. 자신만의 것!

그 분야에 대한 질문이 바로

'어떻게' 에 대한 질문인거다.


너는 어떤 영화를 찍고싶나?

너는 입학후에 어떻게 네 예술세계를 키워갈껀가?

너는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다가서고자 하는 큰 사명은 무엇인가?

다시한번 강조한다.

어떻게에 대한 질문은
플랜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플랜이 무슨 가치가있는가?

네가 입학후에 어떻게 하겠다고하면
그렇게 할수있을까?
입학도 안해본 입시생이
입학 후의 플랜을 말한다는게
좀 이상하지 않나?

그러므로

어떻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스타일이 전제되어 있어야한다.

힙합가수들은 그걸  '스웨그'라 한다.

나는 이런 삶을 살았고
이걸 좋아해
그래서 난 이걸 표현하고싶어.

그러니 잔소리 하지말아줘.
네가 내 인생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잖아?

나는 나만의 방식이 있고
내 맘대로 표현할꺼야.



이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스타일을 갖춘학생.
자기 개성을 갖춘 학생.
자기 색깔을 갖춘 학생
자기 생각을 가진 학생
어떻게  라는 질문에
대답할 '스타일'을 갖춘 학생.

그 학생이 필요하다. 교수들은. 대한민국은.


자소서도 '어떻게'  에  대한 답.

면접도 '어떻게'  에 대한 답

실기시험도 '어떻게'  에 대한

답이다.


자기색깔, 자기목소리, 자기이야기, 자기생각, 자기만의 것들.....

스스로 질문해보라

나는 '어떻게' 에 대한 답을 할수있는가?
나는 내 색깔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그걸 표현할 수 있는가?


면접, 자소서는 그래서 두 단어로 축약 가능하다.

왜.

그리고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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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과 입시에서 크리에이티브가 뭘까? 어떤걸 창의적이라고 하는걸까?


입시에서 학생들은 창의적인걸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크리에이티브해야 하는 것을, 자신의 색깔을 과장하는 것으로 생각. 뭔가 대단히 파격적인 소재, 파격적인 상황, 파격적인 행동을 크리에이티브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입시에서의 크리에이티브는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다.


입시는 일정한 조건. 어떤 기준 아래서의 창의성을 평가하는, '룰'이 있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not creative but perspective 라고 정리할수있다.


창의성은 관점과 기준에따라 맞춰지는 것이며
이것은 문제이해와 문제적용에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문제이해가 우선이고  ---->


그 다음이 다른 입시생들과 차별을 줄수있는 포인트를 찾아내는것  ---->


그리고 그 전략을 그럴듯한 이야기로 완성짓는 것.

이런 순서가 입시에서의 창의적 순서이다.




그렇다면 이런 순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하는가?


누가 한 이야기인지 기억은 잘 나지않지만
어떤 예술가가 이런말을 한적이 있다.



"사소한건 사소한게 아니다.
우리는, 그 사소한것 때문에 슬퍼지기도, 행복해지기도 하기 때문에"



사소한건 사소한게 아니다.

작은건 작은게 아니다.

나는 입시에서의 창의성이란,

첫번째는 perspective의 문제고

두번째는 detail의 문제라고 확신한다.

디테일이 전부다.
디테일이 창의성이다.
디테일이 곧 미장센이다.




작년 2017년도 영화과 11월입시 2차문제를 떠올려보자.

A.B.C 세 사람이 어떤 곳으로 함께갔다가

C만 남겨지게되고 나머지는 돌아온다.

일년뒤. C가 A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을 쓰라는게 문제이다.

여기서 창의적으로 접근하는건

무언가 대단한 창조적인 소재나 비약적상황을 연출하는게 아니다.

'왜? 라는 질문하기'
--->  '서사의 빈공간 디테일 채우기'
---> 그럴듯한 이야기로 완성짓기
의 순서가 옳은 순서이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충실히 하다보면, 내가 써야할 창의적인 글이 나온다.

서사는 쓰는게 아니라,  때론 발견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A는 누구일까? B는 누구일까? C는 누구일까?

직업이 뭘까? 어떤옷을입고있을까? 그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그들  각자 일년전 모습이나 상황은 어떠했을까?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이 부족한가? 무엇이 결핍되었기에, 그들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그들은 왜 함께 떠났을까? 왜 함께 떠나야했을까?

처음 함께 떠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진짜 목적은 뭘까?

즉. 함께 떠난 목적이 text라면,

그들이 떠날때 가졌던 진짜 목적. sub-text는 뭘까?

그리고 이 sub-text는 더 축소적이고, 더 가깝고 더 중요하고 더 근원적일수록 좋다.

가장 근원적이라면 역시

함께 떠나게된 드러난 목적이 중요한게 아니고.

보다 근본적인 이유.

즉. A와 B와 C의 관계속에 그 근본적인 이유가있을것이다.

서로의 관계가 중요하고 서로 얽혀있는 이야기가 중요하다.

질문을 꾸준히 하다보면

방향이 잡힌다.

글쓰기입시. 서사의 창작은 이렇게,
끊임없는 문제조건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중요한 거다.

또 하나 더 생각해보자.

앞서 말한걸 캐릭터의 디테일. 그리고 캐릭터 사이의 사건에 대한 디테일이라고 정리하자면,

또 하나 중요한 디테일이 있다.

공간에 대한 인지이다.

공간은 힘이 있다.

공간은 서사를 갖고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 D구역 천엽도매점,  청량리588 내의 낡은 약국,  유영철이 어제까지 살던 자취방......

공간은 곧 역사고, 인물들의 자취고, 흔적이고, 서사이다.

그러므로 작년 한예종 영화과기출에서 또하나 중요한게 공간적 디테일이다.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환경의 지배를 받기때문에,

여러분이 만드는 서사의 인물들도
환경의 지배아래 놓이게되는 것이다.
그 공간은 무엇인가?
나는 궁금하다. 여러분이 창작한 그 환경과 공간이!

그렇다면 내 말은 어느정도 증명되었다고 본다.

작년 영화과기출을봐도

창의적인건 대단한 무언가를 비약적으로 만들어내는게 아니다.

끈질기게 질문하고 꼬리에 꼬리를물고 서사의 빈틈. 그 디테일을 채워나가는 '빈틈찾기'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말을 한마디 용어로 정리가능하다.

그게 바로 미장센이다.

인물의 디테일, 공간의 디테일, 서사의 디테일, 관계의 디테일
모두 미장센이란 용어 하나로 수렴된다.


작은게 작은게 아니다.
사소한게 사소한게 아니며
별것 아닌게 별것 아닌게 아니다.

너의 작은 경험, 작은 관찰, 작은 고민, 작은 질문...

그 모든게 합격의 비밀을 간직하고있는 디테일이다.

그러므로

평범한게, 절대로 평범한게 아니다.

평범한 글을 쓰는걸 두려워하지마라
평범한 글이,
디테일이 갖춰지고
너만의 경험이 채워지고
정직한 질문들이 채워지면

그게 바로 특별한 글이 되는거다.

평범한 것이 특별해지는 마법.

그게 바로 이야기라는 세계가 가진 가장 치명적 매력중의 하나이니까.


ps. 이야기를 쓸때, 사건을 만드려고하면 늦다.

디테일이 없는 단편적인 캐릭터 A,B,C를 서사적으로 전진시키려고하니까, 비약적 사건이 들어올수밖에 없는거다.

핵심은, 이미 A,B,C가 이미 사건을 내포하고있는거다.

즉. 이미 갈등과 서사가 갖춰진 인물들이 모여야하는거다.

이미 만나는것만으로도 갈등과 사건을 갖춘 인물들이라면.

그들의 충돌은 자연스러운 서서적 전개를 가져올것이다.

8년공소시효전 살인사건을 담당한 형사와,
(그는 살인범과의 추격전에서 얼굴에 고의적상해를입은적이있다. 복수에불타는인물이다)

그 살인사건의 살인범이라 주장하는 어떤 번지르한 외모의 사람.

살인에 대한 추억을 책으로 내서 출판하고 방송출연한다

담당형사가 TV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그리고 극의 후반부에 내가 진짜 살인범이라고 등장하는 제 3의 인물

바로 정병길감독 연출. <내가살인범이다>의 인물관계다. 아주 좋은 예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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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용기

 

'내 평범한 삶을 사랑하고, 품어주고, 이해하고, 특별함을 보는 용기'

 

 

 

지난 600여개의 포스트를 결론내는 글에 가까운 글을 쓴다.

 

결국

 

나는 그동안의 포스팅에서 진짜용기에 대해 말해왔다.

 

 

흔히들 용기는 맞써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떤 대상을 향한 용기로 생각하기도 쉽다.

 

또는 어떤 철학이나 어떤 경영학적인 도전이나, 또는 관습이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용기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모든 용기들은 결국 대상 특정적으로 나타나는게 아니다.

 

 

대상 특정적인 용기라면, 결국 대상이 바뀌거나, 상황이 바뀌면 바뀌어버릴 용기이기에

 

진짜 용기있는 사람들은 대상을 따라가지 않는다.

 

 

일제시대 그 모진 고문을 받은 유관순의사.

 

그의 숭고한 용기는

 

절대로 일제시대라는 시대적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발현된게 아니다.

 

유관순이라는 개인의 신념. 조국과 독립과 뿌리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강한 신념이 없었다면

 

그는 용기있게 맞써지 못했을 것이다.

 

내면의 용기가 외적인 저항으로 나타난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닐 것이다.

 

 

 

윤동주에 대해 그린 이준익 감독의 <동주>를 나는 인상깊게봤다.

 

동주는 자기자신에 대한 용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것이 불타오르는 저항이나, 모진 고문을 이겨내는 강한 결과로 나타나진 못했지만

 

고뇌하고, 절망하고, 꿈꾸고,

 

결국. 부끄러워 할 수 있는

 

그것 또한

 

용기이다.

 

 

 

용기에는 큰 용기. 작은 용기의 구분이 없다.

 

그것은 비교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스스로가 답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는 얼마나 용기있는가?

 

 

 

그러므로 용기는

 

지극히 내재적인 개념이다.

 

 

나를 향한 용기가

 

진짜 용기이며

 

 

가장 시급히 가져야 될 용기 또한

 

나를 향한 용기이다.

 

 

 

그것은 촛불과도 같다.

 

올 대선을 상징하는 단어가 촛불인 것도 일맥상통하다.

 

 

촛불은

 

나를 향해 타오르는 것이다.

 

 

촛불은

 

나를 태워서야

 

주변을 비출 수 있는 것이다.

 

 

용기도 마찬가지다.

 

주변을 비추기위한 용기는 있을수가 없다.

 

 

나를 태우는 것

 

그래서 결국 타오르는 불꽃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대한 혁명으로 타오르는 불길이 되는 것.

 

 

 

.

 

 

남을 이해하기 보다

 

나를 이해하는게 힘들다.

 

 

타인을 품어주는 것보다

 

나를 품어주는게 더 힘들다.

 

 

자기에겐 관대하지만 남에겐 냉정한 사람을 볼때

 

자기를 품어주는게 더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을 자세히보면 그건 자신을 품어주는게 아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건 자신을

 

회피하는 거다.

 

 

자기 스스로를 직시하지않고

 

회피할때

 

인간은

 

냉정해진다.

 

 

남의 작은 실수에도 분노하게된다.

 

 

그러므로

 

자신을 품어주는게 남을 품어주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증명된다.

 

 

 

진짜용기는

 

나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디서오고 어디로가는지.

 

 

입시쟁이니까 또 입시와 연결시켜서 생각해보면.

 

 

나는 자소서를 지도해줄때

 

1번 성장배경과 자기소개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부분을 잘 모른다.

 

1번이 도대체 어떤 질문을 물어보고있는 항목인지 조차 모르는 것 같다.

 

 

입시를 다년간 지도한 내 경험으로 볼때

 

1번이 제일 중요하다.

 

 

1번은 단순히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항목이 아니다.

 

 

모든 예술과

 

모든 용기의 첫걸음인

 

 

나에 대한 이해.

 

나의 근원

 

나의 형성과정에 대해 소개하는

 

제일 중요한 필수항목이다.

 

 

 

나는 경상도 출신이며 부모님 모두 대구분이시다.

 

아버지는 두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 TK의 성지. 대구공고출신이시다.

 

보수의 성지가 내 뿌리인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뿌리를 항상 거부하며 살아왔다.

 

대학진학때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대구를 벗어나고 싶었고

 

대구사람들을 벗어나고 싶었고

 

부모님을 벗어나고 싶었다.

 

 

무리하게 사업한다고 포항제철을 퇴사하고 낭만적으로 사업했다가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줬던 아버지를 부인해왔고

 

결국 이혼하신 부모님들을 부정해왔다.

 

부모님들의 선택을 언제나 정죄했으며

 

나는 그 두분과는 전혀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언제나 세뇌해왔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절대로 그들처럼 살지 않겠다!

 

 

 

 

 

그러나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부모님과 점점 똑같아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게 시퍼렇게 살아있음을 볼때.

 

 

내가 그렇게 혐오하는 어머니의 어떤 기질이

 

내 가장 뚜렷한 기질로 나타나는 걸 볼때

 

 

소름이 돋는다.

 

 

 

고백컨데, 나는 나를 받아들이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내 환경, 내 뿌리, 내 가족, 내 외모, 내 기질, 내 연약함....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순서가 이게 옳은거 같다.

 

 

 

나를 먼저 이해하고

 

그 다음엔 받아들이고

 

 

그러니까 자소서를 쓸때

 

 

내가 누군지를 먼저 기록해보자.

 

내 환경, 내 성장배경, 내 유년시절, 부모님의 행동, 부모님의 영향...

 

이 모두를 기록해보자.

 

 

 

그리고 그 다음엔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은 얼마가 걸릴지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사람마다 다르지않을까?

 

나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35년정도는 걸린것 같다. 35세가 넘어서야 조금씩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너는 제발 빨리 받아들이기를.

 

 

.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면

 

그 다음엔 품어주고 사랑해줘야 한다.

 

 

받아들이는 게   0 로의 회귀라면,

 

품어주고 사랑해주는건

 

가꿔가는 거다.

 

 

나의 내면을 살찌우는거다.

 

 

나를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방법론적인 조언을 경험에 비추어해보자면.

 

 

일단 나는 아이를 낳아본적이 없어서 이건 말할수가 없겠다.

 

주변 증언에 의하면. 자식을 낳는게 나를 이해하고 나를 품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는 것 같다.

 

한 생명을 낳고 키우다보면

 

왜그렇게 부모님들이 생각난다고 하는지?

 

신기하게도 딱 맞아떨어진다.

 

 

자기 자식을 키우면

 

자기 뿌리가 보이게 되고

 

자기 뿌리가 보이게 되니까

 

부모님이 생각나게 된다는거다.

 

 

참 신기하다.

 

성숙의 첫걸음이

 

뿌리찾기라는 것.

 

 

그래서 나는 고레에타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사랑하고 사랑한다.

 

결국

 

주인공의 아이를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결국 자기의 아버지를 통해

 

아버지 - 주인공 - 아이

 

를 통해

 

점점 채워져가는

 

그래서

 

아버지라는 거룩한 이름에 다가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히로카즈의 영화속엔 그래도 담겨있다.

 

아름다운 영화이지 않은가?

 

 

 

나를 품어주고 사랑하기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예술작품들이 나를 살린다는 거다.

 

 

예술작품들이 나를 살려줬기에

 

그 많은 예술작품들 속에서

 

결국 나를 찾아왔고, 나를 발견해왔기에

 

나는 예술을 선택했고 예술가의 길을 꿈꿔온 것 같다.

 

 

공연을 볼때 극장안의 공기. 그 침묵.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세계...

 

그 세계들의 경험이, 나를 성장시켜줬다.

 

 

영화들... 많은 영화들 속에서 나를 보고, 나를 인식하고, 나를 품어줄 근거를 찾아왔던 것 같다.

 

희곡속에서. 체홉의 작품속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속에서, 안토니오 부에로 바에흐의 타오르는 어둠속에서, 어느 계단 이야기 속에서...

 

그런 인식을 했다.

 

마셔 노먼의 잘자요 엄마를 읽으며.  그런 절대적인 고독에 대해 생각했고,

 

인생의 엇나감에 대해

 

텅비고

 

약하고

 

지루한

 

인생의 단편들에 대해 생각했으며.

 

이창동의 시를 보며 용기에 대해 생각했다.

 

 

예술을 가장 가치있게 소비할 수 있는 방법중 하나가

 

나의 내면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공연이, 영화과, 그 많은 책들이 나를 채워주었으므로

 

강력하게 권면한다.

 

 

삶은 삶으로 채워나가는 거다.

 

삶에 대해 다루는 예술이야말로

 

삶을 채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거다.

 

 

또 하나의 방법론은

 

여행이다.

 

여행은 그 도시, 그 삶, 그 사람들에 대한 총체적 만남이다.

 

그래서 그 도시에선 그 도시의 삶이 있고

 

그것은 고스란히 내 삶을 살찌워온거 같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 그 야경아래서 글을 쓰고.

 

파리 루브르와 퐁비듀센터를 왔다갔다 하며 관람했던 기억...

 

아침에는 그리스석상을보고, 저녁에는 제프 쿤스의 작품들을 넘나들었던 기억...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1달을 살아본 경험, 몽골이 거대한 모래언덕에서 지내본 경험....

 

 

 

마지막으로

 

함께함을 말해보고 싶다.

 

연애, 우정, 사업상의 만남, 선생과 학생들의 만남.

 

그 어떤 형태의 만남이라도

 

사람들과의 만남은

 

내 내면을 채워준다.

 

 

 

결국 진짜용기는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품어주고 사랑하는 용기이다.

 

그리고

 

진짜용기를 가질때

 

진정한 창의성이 나온다.

 

 

우리 모두에겐 특별함이 있다고 나는 굳건하게 믿는다.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우리 모두에게있으며

 

우리모두는 특별함이 잠재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별함은 특별한 능력을 훈련함으로서 키워지는게 아니라, 

 

보편적 삶의 조건속에서

 

얼마나

 

용기있게

 

나자신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찾아내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보편적인게 가장 특별한 것 아니겠는가?

 

가장 특별하고 가장 감동적인게 가장 보편적이란 건

 

숀튼 와일더의 <우리읍내>를 보면 잘 드러난다.

 

죽은 에밀리가

 

살아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때

 

그 단 하루의 날은

 

가장 보통의 하루

 

였다.

 

가장 보통의 것들을

 

가장 절실히 그리워했다.

 

따뜻한 목욕탕, 따뜻한 커피, 엄마가 해준 밥, 작은 신발, 작은 그네, 동생과 함께 쓴 편지... 해바라기...

 

 

그래서 에밀리는 이렇게 말한다. 극중에서.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인생이여'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특별한 것이다.

 

 

살아숨쉬는게 기적이다.

 

우주 끝. 블랙홀의 끝까지 가서도

 

결국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숭고하고, 가장 중요한 기억인

 

가족과의 순간으로 돌아오는

 

인터스텔라의 통찰은 그래서 유효하다.

 

 

 

내 것들.

 

지극히 평범한 내 삶.

 

어쩌면 보잘 것 없는 내 삶. (가난했고, 이혼했고, 방황했고, 찌질했던 나의 삶)

 

그리고 너무나 평범한 내 삶의 조건들.

 

내 약점들

 

내 단점들.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워 욕이라도 하고싶은 그런 내 실수들.

 

내 보잘것없는 외모.

 

앞으로도 뭐 그다지 혁명적으로 바뀔것 같지는 않은 내 인생.

 

 

그 자체.

 

 

나는 그 삶을 사랑하려고 했고

 

품으려고 이해하려고 했을 뿐인데

 

이상하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뒤로

 

주변에서 사람들이 나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해주고

 

통찰력있고

 

창의적인 존재로 인식해주기 시작했다.

 

 

 

창의성의 근본은 나에 대한 용기이다.

 

진짜용기는

 

나를 받아주는거다.

 

 

보편적 나를 용납하고 사랑할때

 

보편적나는

 

가장 특별한 내가 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특별한게

 

우리

 

인생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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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잘못 깝쳤다간 몸을 반으로 접어주실 것 같이 생긴 아재는 다니엘 코미어라고 하는데

 

현재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고, 존 존스에게 1패 한 것외엔 MMA무대에서 단 한번도 진적이 없는 무서운 아재이다.

 

저 형님에 대해 글을 쓰려는건 아니고

 

저 아재의 인터뷰를 통해 느낀 점을 나누고 싶어서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위 사진에 코미어 형님한테 일진한테 당하는 학생처럼? 괴롭힘 당하고 있는 아재는 앤서니 존슨이라고 하는데, 앤서니 존슨 형님역시 한방 걸리면 KO시켜버리는 UFC에서도 제일 무서운 아재로 쏜꼽히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맹수를 맹수가 갖고 놀고있는 장면이라고 보면 된다. 밑에 깔린 아재도 엄청 무서운 아재라는 것 ! 근데 그 아재를 가지고 노는, 더 무서운 아재가 다니엘 코미어란 선수라고 보면 되겠다.

 

 

다니엘 코미어가 최근에 강력한 도전자인 앤서니 존슨을 유린하고, 그 뒤의 인터뷰를 읽어본 적있는데

 

그의 말이 매우 공감이 되었다.

 

격투 경기가 벌어지는 공간은 UFC에선 옥타곤이라고 한다.

 

철망으로 되어있고, 선수가 들어가면 문을 닫아버린다.

 

마치 격투감옥같다.

 

죽어서 나오든 살아서 나오든 둘 중 하나일 것 처럼 생긴 저 공간.

 

 

일전에 김동현 선수 인터뷰에서도 저 공간의 무서움을 이야기한게 기억난다.

 

철망이 닫히고, 상대선수와 1:1로 옥타곤 공간에서 갇혀있게되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든다고 한다.

 

극강의 싸움꾼들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하는 공간이 바로 옥타곤인 것이다.

 

 

 

그런데 코미어 선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더군.

 

 

자기는 옥타곤에 들어서서 문이 닫히면

 

가슴이 뛴다고 한다. 흥분되고 기분이 좋아지고 집중이 된다고 한다.

 

더 정확하게 인터뷰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나에게 옥타곤은 모든 것을 증명 할 수 있는 곳이다. 두 명의 파이터가 들어가 최고의 파이터를 가리는 곳이니까. 옥타곤에서 첫 경기를 치를 때 빨리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묻이 닫힌뒤엔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피할 방법은 없다.

 

옥타곤은 완벽한 증명의 장소다. 나와 상대 중 누가 성공해서 나오는지가 결정된다"

 

(고준일 저널리스트. UFC한국 4월 11일기사에서 발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것이다!

 

저게 이기는 자의 말이다.

 

정말이다!

 

 

입시가 어떤 느낌이어야 될까?

 

이런 느낌이 좋다고 생각한다.

 

 

"증명해보고 싶다!"

 

한번 내 실력을 증명해보고 싶다.

 

어서 빨리 나를 증명해보고 싶다. 내가 어느정도 수준인지 객관적으로 검증받고 싶다. 어서 빨리.

 

 

자신감을 가져라.  라는 조언은 이미 늦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해서 가질 수 있는게 아니다.

 

이미 본인이 알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증명되어 온 데이타를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감은 정신력이 아니다.

 

자신감은

 

경험에서 나오는 당연한 결과산출이다.

 

 

 

예술분야는 특히 그렇다고 본다.

 

 

자신감을 가져야되고, 동기부여 해줘야되고, 화이팅! 이러면서 어깨두드려줘야되고....x같은 R=VD 나 말해주고?

 

 

그런건 멋없다. 솔직히 그런 격려가 필요하다면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는 거라고 본다.

 

내가 예술을 지도하는 선생이라면

 

나는 그런 어설픈 격려는 안하고 싶다.

 

 

대신

 

승리할 수 밖에 없는 근거들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너는 이러이러한 근거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수 밖에 없다.

 

 

 

자. 나가서 증명하고 와라!

 

 

 

입시앞에서 벌벌 떨지말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 객관적이고 치밀하게.

 

어디어디에 붙겠다는 말을 함부러 하지도 않겠다.

 

대신 과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하겠다.

 

 

반드시 증명하겠다.

 

 

입시는 나를 증명하는 기회이다!

 

 

면접장은 나를 증명하는 장소이다.

 

 

면접장은 나를 성공으로 이끌수도 실패로 이끌수도 있는 공간이다.

 

중간은 없다.

 

 

 

나는 입시에서 특히 면접결과가 좋았는데

 

면접을 보는 입시에선 떨어진 경험이 별로 없다.

 

돌아보면

 

나는 면접을 할때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저 사람한테 어떻게 보여질까?

 

내가 어떤 말을 해야 잘 말하는걸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드디어 나를 증명할 기회가 왔다.

 

 

 

저 사람은 유명한교수. 나는 학생. 당신이 교수고 유명한 예술가지만

 

나는 어리고 아직 증명할 기회가 없었을 뿐. 나도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니 한번 서로 이야기해보자.

 

면접관과 나는 동일선상에 있다.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생각을 주고받자.

 

 

 

이상하게 나는 면접이 잘 맞다. 나 스스로도 그렇고

 

학생들을 가르칠때고 대부분 면접 결과가 월등히 좋다.

 

 

그래서 면접에서 성공하는 학생들의 어떤 패턴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면접에서 성공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하고싶은 바로 그 말을 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그 말을 한다.

 

 

면접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끌고간다.

 

 

자기 목소리가 확실하다.

 

 

그것은 상대방을 잘 맞춰주는 것과는 다르다.

 

 

자기자신과의 정리가 끝난 상황이라고 할까?

 

어떤 말을 하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말에 대한 자기자신과의 관계가

 

정리된 느낌이라고 하면 전달이 되려나?

 

 

말을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해

 

본인이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하는가? 라는 느낌이면 어떨까?

 

 

 

 

결국

 

면접장에서 자기 말을 하기위해선

 

화이팅! 이러면서 격려받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스피치학원에서 말잘하는 화술을 배워서 되는것도 당연히 아니다.

 

 

가장 필요한 건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한 자기 스스로의 믿음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믿음은

 

어떤 R=VD? 따위의 자기기만적, 미신적인 최면이 아니다.

 

 

 

그것은

 

증명되어 온 경험에서 오는 수학적인 확신이다.

 

 

 

작은 증명이 쌓여온 사람이 큰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다.

 

 

위 다니엘 코미어가 빨리 옥타곤 문이 닫히기를 기다린 이유가 뭘까?

 

어서 빨리 증명하고 싶은 이유가 뭘까?

 

 

 

위 사진에서 아재 얼굴을 봐라. 저게 싸우는 표정이냐? 즐기는 표정이냐?

저렇게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그동안 무수히 이겨왔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계속 이기니까 계속 싸우고 싶은 것.

 

 

 

작은 증명이 그래서 중요하다.

 

 

성공한 사람이 승부욕이 남다른 이유가 있다.

 

정말 작은 성공조차도 놓치고 싶지 않은거다.

 

작은 성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면접은 교수 비위를 맞추는게 아니라.

 

면접은

 

나 스스로에 대해 그동안 쌓여온 확신을

 

당당하게 증명하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매일의 싸움이 중요한 것이다.

 

 

극작과 입시를 준비한다고 해보자.

 

 

결국.

 

 

시험장은 증명하는 자리일뿐이다.

 

 

진짜 싸움은

 

혼자 글써온 그동안의 고독한 시간들이

 

진짜 싸움이었을거다.

 

 

거기서

 

작지만 꾸준히

 

'고독한 승리'를 쌓아온 학생들이

 

결국 큰 판을 따는 것이다.

 

 

의외로

 

고독한 승리를 쌓아온 학생들은

 

예를들어 실기시험을 예로든다면.

 

시험을 보고와서

 

그렇게 잘했다는 표현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즐기면서 썼지만

 

아직 흡족하지 않다. 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더 많은걸 보여주고 더 증명할 것들이 남아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완벽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

 

 

죽음이 느껴지는 저 무서운 격투감옥의 문이

 

어서 빨리 닫혔으면 하는 마음.

 

어서 빨리 증명하고 싶은 마음.

 

 

그게 진짜 승리자의 태도이다.

 

 

그 태도는

 

기도나

 

미신적은 자기최면에서 오는게 아니다.

 

 

작은 성취가 쌓였을때 오는것이다.

 

 

면접을 예로든다면

 

결국 '자기 말'을 가진 학생이 합격한다.

 

'자기 말'은 자기 스스로 증명한 말들이, '자기 말'이다.

 

 

즉 면접을 잘 보기위해선

 

자기스스로를 증명하는 시간들이

 

무수히 많이 적립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입시를 준비해보자.

 

 

네가 연기과를 지원하다고 생각해보자.

 

 

작은 배역을 맡았거나

 

몇 안되는 대사를 받았다고 해보자.

 

너는 반드시 거기서 증명해야 한다!

 

그 작은 배역 하나가 작은 배역이 아니다.

 

거대한 성공으로 향하는 작은 성공의 기회인 것이다.

 

바로 거기서 성공해야, 그 다음 성공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성공은 성공의 맛이 있고

 

성공의 중독성이 있다.

 

 

작은 배역에서, 몇 안되는 대사에서 너를 증명하는데 성공한다면

 

그 다음엔 더 큰 배역에서 증명할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극작도 마찬가지.

 

나는 극작과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글을 지도할때

 

2000자, 3000자짜리 글을 함부로 쓰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2000자를 생각하고 무의미하게 2000자를 채워서 가지고 오는 학생들을 심하게 혼낸다.

 

 

단 한줄을 쓰더라도

 

그 한줄을 통해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학생은

 

2000자, 3000자는 쉽게 쓰게 된다.

 

 

3000자로 늘이는 건 순식간이다.

 

 

무조건 한문장이 중요하다.

 

한문장 한문장을

 

증명하려고 하는 학생이

 

반드시

 

3000자짜리 극작과 입시에서도 성공하는 학생이다.

 

 

절대로 한문장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한문장부터 증명하려고 노력하라.

 

그게 두문장, 세문장 이어지며, 계속해서 글쓰는 맛을 맛보기 시작하면

 

입시는 생각보다 쉽게 통과됨을 경험할 거다.

 

 

 

 

 

입시를 두려워하지 마라.

 

입시는 증명의 기회이다.

 

가슴 설레는 증명의 시간. 성공이냐 실패냐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중간은 없다.

 

 

증명은 한번에 하는게 아니다.

 

작고 사소한 증명들이 쌓였을때

 

거대한 성취는 뒤따른다.

 

 

 

고독한 증명의 시간.

 

지금도 남몰래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는 바로 당신의 그 외로운 시간들이

 

너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너를 구원할 자는

 

바로 너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니다. 옥타곤과 같다. 너자신이 아니면, 도망갈 곳이 없다. 너 자신과 직면하지 않는다면. 성공이냐 실패냐. 중간은없다. 너는 혼자다. 네가 성공할 모든 비결. 너는 이미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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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비극은 인간행동의 모방이라고.

 

 

이 문장 하나로 스토리텔링의 원칙을 파헤쳐보자.

 

 

 

 

 

1. 인간

 

 

로버트 맥키와 텔레스 형을 연결시킬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맥키는 시학에서 특히 이 부분을 강조한다.

 

 

결국 모든 스토리는 인간. 특히 한 인간으로 수렴한다는 것.

 

 

 

 

 

결국 모든 사건도, 모든 스펙타클도, 모든 소재도, 모든 아이디어도.

 

 

한 인간의 삶으로 수렴되지 못한다면

 

낭비일뿐이다.

 

 

타이타닉이 재난영화인가?

 

만약 타이타닉속에 디카프리오와 케이트윈슬릿이라는 인간이 없고,

 

타이타닉의 스펙타클만 있었다고 해보자.

 

그 얼마나 의미없는 이야기였겠는가?

 

 

 

그래서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대사는

 

 

 

 

"전 그걸 몰랐네요.

 

타이타닉 호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요...."

 

 

이 대사 아니던가?

 

 

 

 

참 환상적인 대사다.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호 침몰이라는 소재와 스펙타클을

 

디카프리오와 윈슬릿이라는 두 남녀를 통해

 

말할 줄 알았기에

 

그는 시상식에서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고 떠들어댈만한 권위를 얻은 것이다.

 

 

 

 

학생들 글을 지도하다보면

 

자극적 소재

 

아이디어나 이야기를 꾸미는데 집중하는 학생은 많은 반면.

 

 

그 이야기 속에서

 

인간을 보여주는 학생은 드물다.

 

 

그래서 감히 제안한다.

 

 

영화과든 극작과든 글쓰기는 간단하다.

 

입시 글쓰기는 말이다.

 

 

 

인간이 네 글속에서 보이느냐?

 

안보이느냐?

 

 

네 글을 읽어봤을때 그 글 속에 살아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너는 합격할 것이다.

 

 

그렇지못하다면

 

너는 글에서 가장 중요한 걸 빠뜨리고 있는거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절대 가벼운 말이 아니다.

 

인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영화과 지망생들이 얼마나 많은줄 아는가?

 

이건 입시 비결이기도 한 것이다.

 

 

 

 

 

 

2. 행동

 

 

 

두번째 텔레스 형이 한 말은

 

행동이다.

 

 

행동.

 

 

자 증거자료 하나 나간다.

 

 

 

 

이건 극작과 2004년도 기출문제인데

 

한예종 교수들의 입시 글 평가기준에 대해 직접 설명한 유일한 자료이다.

 

 

따라해보자.

 

 

"교수가 그렇다면, 그렇다"

 

 

그렇다. 교수가 그렇다면 그런거다.

 

 

위 글은 내가 쓴게 아니다.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1)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위는 시퀀스-시퀀스-시퀀스 이다. 줄거리가 아니다.

 

위에보면 '이야기가 시간의 진행을 따라 쭈욱 흐르는 이른바 '시퀀스'는' 이라고해서

 

 

시퀀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것을 직접 설명하고 있다.

 

 

2)

 

그렇다면 그 시퀀스를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위 극작과교수가 너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뭐로?

 

'어떤 인물들의 주요한 행동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라고.

 

 

명쾌하다. 한예종 교수 존경한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구성하는 걸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가장 클래식한 기준. 텔레스 형님의 시학에 기준하면 된다.

 

 

결국 똑같은 말인 것이다.

 

 

행동이 모이면 뭐가 된다고? 사건이 된다.

 

사건이 모이면 뭐가 된다? 시퀀스가 되는거다.

 

 

 

행동 ---->  사건 -----> 시퀀스 ----> 이야기

 

 

 

인 거다.

 

 

 

복잡하지 않지?

 

 

그러니까 이야기를 쓴다는건, 기-승-전-결을 쓰는게 아니라고. 이 바보야.

 

저런거 가르치면 재래식 수업이니까 그만 배워라. 그런 늙다리한테는.

 

 

요즘 글에 기승전결이 어디있냐?

 

인간의 삶이 기승전결로 표현되냐?

 

 

끊임없는 일상의 반복이 우리네 삶이지?

 

그 일상을 파고드는 변화가 있고 (사건), 그 변화는 우리 삶을 흔들고, 우리는 다시 평행상태를 회복하고자 싸워나가는 것.

 

 

이런 구성은 있지. 로버트 맥키가 말한 것 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기승전결따위는 잊어버리고

 

그냥

 

씬-씬-씬-씬 이면 1500자~2000자 단편 하나 뚝딱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노하우를 무료로 공개하는거니 새겨듣도록.

 

 

 

 

그렇다면 그 씬을 구성하는 단위가 뭐라고?

 

 

행동이라고 했지?

 

 

 

행동에 대해 위 한예종 교수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조금 더 부연설명하고 있는데 같이한번 보자.

 

 

'인물들의 성격이 잘 드러나야 한다. 어떤 행동을 하게 될 때, 혹은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그들의 내면심리, 의도, 동기들이 드러나도록 하라'

 

 

 

 

그래. 내 말이 저 말이라고 !!

 

 

말로 설명하는게 아니다.

 

예를들어

 

 

그는 그 곳에서 서슬퍼런 공포감을 느꼈다.

 

 

 

이런건 쓰레기야.

 

 

단어야 말로 스토리의 적이야. 기억해. 단어는 스토리의 적이야.

 

아주 김정은하고 홍준표같은 사이라고 보면 된다.

 

 

 

 

단어로 퉁 쳐버리니까

 

장면이 죽어.

 

행동이 사라져.

 

 

 

 

서슬퍼런 공포감이 뭔데?

 

난 도저히 모르겠다.

 

 

 

나홍진을 추격자를 보자.

 

 

여자가 납치됐다가 깨어났어.

 

 

깨보니 이상한 화장실이야.

 

 

 

 

 

 

위 그림봐라. 저게 진짜 행동을 통한 심리.의도,동기를 한번에 보여주는 장면이야.

 

 

 

저것봐라.

 

 

 

여자가 저 분위기의 욕실에서 깨어났어.

 

분위기 이상해.

 

 

 

탈출해야겠다. 결심하고

 

창문을 열어

 

 

근데 어떻게 되어있어?

 

 

공구리 쳐져있잖아.

 

 

창문뒤에.

 

 

 

어떻게 된거야?

 

 

x된거지 뭐긴 뭐야. 아주 x된거지.

 

 

 

저게 서슬퍼런 공포야.

 

 

너는 제발 부탁하는데

 

영화과든 극작과든 스토리쓰는 과를 쓸꺼면

 

제발 좀 단어로 퉁치지마라.

 

 

그거 아주 게으른 짓이야.

 

 

부사 형용사 쓰면 형이 아주 뭐라 그럴꺼니까 절대 쓰지마 라고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말했어.

 

 

작가지망생이 부사 형용사 쓰면 자기한테 이르라고. 가서 죽여버린다고.

 

스티븐 킹 형이 그러더라.

 

 

 

그말 이 그말이야.

 

 

서슬퍼런 공포를 느꼈다 따위의 단어로 퉁치려 하지마.

 

 

대신 행동을 만들어줘.

 

상황과 공간과 인물이

 

행동을 하게 만들어줘.

 

 

그래서 우리에게

 

 

그 공포를 맛보게 해줘.

 

 

그 공포를 보여달란 말이야.

 

 

제말 말로 퉁치려 하지 말고!!!!

 

 

 

그래서 저 존경하는 한예종 교수님도 이렇게 여러분에게 빌고 계시다.

 

 

진짜 절실한 교수님의 호소가 들리지 않아?

 

 

 

' 제발 말로 설명하려 들지말고 딱 보이게끔 글을 써라!!!!!!'

 

'DON'T TALK, BUT SHOW IT!!!!"

 

 

교수가 절실하게 부탁하는거 보이지?

 

 

그러니까 제발 좀

 

 

말로 설명하지 마라고.

 

 

 

 

그녀는 그 젊은청년에게서 불타는 성욕을 느꼈다.

 

중년의 성욕은 주체할길 없이 활활타오르는 부나비같다.

 

 

 

 

제발 위와 같이 쓰지마라고!!

 

 

그냥 보여줘.

 

 

그런 중년을.

 

 

바로 아래와 같은 살아있는 아줌마의 행동을!!!

 

 

 

 

 

 

"허벅지 단단하네????"

 

 

떡뽁이집 아줌마가 권상우 허벅지를 만지는 행동.

 

 

그리고 저런 옷을 입고

 

저렇게 권상우한테 다가오는 행동.

 

 

저런게 중년의 성욕을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며

 

 

교수가 말한 내면심리, 의도가 행동을 통해 보이게 쓰는 거다.

 

 

대사는 바로 저런 정확한 행동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 반드시!!

 

 

요즘 특히 한예종 영화과가 대사를 통해 보여주는것에 꽂혀있는데

 

 

 

 

대사는 기억해라.

 

 

미장센의 바탕이 없는 대사는 죽은대사라는 걸.

 

 

위의 인물과 행동이 있고나서야.

 

 

명대사가 나오는거다.

 

 

"현수 하고싶은대로 해도 돼"

 

 

명대사이다.

 

 

 

아래처럼 대사쓰면 형이가서 벌한다. 진짜다.

 

 

 

 

"응 아줌마 성욕이 불타오르네. 아줌마가 욕정을 금할길이 없네. 현수를 탐해도 되겠어? 아줌마의 끓어오르는 욕정에 네가 기름을 부엇어. 오늘. 한번 이 아줌마의 불타는 청춘, 사막에 핀 꽃, 된장처럼 구수한 몸냄새에 우리 서로를 맡겨볼까? 자 이제 아줌마가 가. 너의 단단한 육체를 이제부터 탐할께. 으허허헝"

 

 

이렇게 쓰면 형이가서 벌한다. 

 

 

 

 

 

 

 

3. 모방

 

 

 

모방은 뭐냐?

 

 

이것에 대해서도 위 한예종 교수가 설명하고 있다.

 

 

'자연스럽고, 필연적이고, 개연적으로, 그럼직하게'

 

 

이건 말이야.

 

 

논리의 문제야. 삶을 모방한다는건, 삶에 대한 이해에서 오는건데

 

 

그건 매우 논리적인거야.

 

 

즉.

 

네가 글을 개연성있게 쓰고싶지?

 

그럼 극작법을 배우는게 아니야. 그렇게 가르치는 재래식 선생있으면 고발해라.

 

 

글을 쓰는 논리, 글의 개연성, 스토리의 짜임새를 만들기위해선

 

너는

 

글을 첨삭받고, 글을 배워서 되는게 아니야.

 

삶을 무던히 관찰하고, 연구하고, 미메시스해야지.

 

 

 

그게 텔레스형이 말하는 모방의 의미야.

 

 

기억하라.

 

 

삶을 이해하면, 이야기의 짜임새는 저절로 완성된다는 것을.

 

 

네가 아오지탄광을 10년 경험했다해보자.

 

 

네가 나중에 아오지탄광에 대한 스토리를 쓰면

 

저절로 이야기의 짜임새가 아다리가 맞게될꺼야.

 

 

이야기는 글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이니까.

 

 

그 세계엔 아오지탄광에서 본것, 들은 것, 맡은 냄새, 머문 공간이 있는 하나의 세계니까.

 

 

그 세계의 논리가 일관된다면

 

그게 이야기구성이 완벽한거야.

 

 

 

 

아오지탄광을 쓰기위해서 아오지탄광을 꼭 경험해야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이야기의 논리는

 

경험과 관찰.

 

즉.

 

삶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야.

 

 

그러니

 

글을 잘 구성하고 싶고, 논리를 잡고싶다면

 

삶을 무던히도 관찰하고 경험하고

 

끊임없이 보고, 연구하고, 관찰해야 해.

 

 

지하철에서 논현역에서, 학교에서, 교무실에서, 소년원에서

 

술집에서, 함바집에서,

 

비디오방에서, 노래방에서

 

공원에서

 

클럽에서

 

너의 집에서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엄마의 수영장에서

 

아빠의 자동차안에서

 

 

인생 그 자체가 스토리.

 

많은 인생 속에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살아있음을

 

나는 믿는다.

 

 

그러니

 

글을 잘쓰려면, 삶을 맛보자.

 

끊임없이 관찰과 경험의 폭을 넓혀나가자.

 

 

그게 모방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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