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메타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1.03 사랑의 층 (2)
  2. 2014.02.12 사랑의 용기 (12)
  3. 2014.01.17 나는 당신을 봅니다

 

 

 

'사랑의 층'

 

 

 

층이라는 말이있다.

 

한자어인데

 

나쁜 말이 아니다.

 

 

 

한국말로는 어감이 나쁘지않은데

영어로 바꾸면 뉘앙스가 이상해진다.

class 정도가 적당한 단어인거 같은데

국내에서 통용되는 class란 말이 가지는 의미와

우리말 '층'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floor, level, story 그리고 class를 합친 단어가

우리말 '층'이다.

 

그리고 이 '층'이란 단어는

사랑의 속성을 파악하는데

가장 유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지금 네가 20대초거나, 고등학생이라면

좀 충격적이게 들리겠지만

지금 네가 만나고 있는 연인과

네가 결혼할 확률은

매우 적다.

물론 첫사랑과 멋지게 결혼하는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은

네가 지금 만나고있는 그 사람이 너의 사람은 아니다.

 

 

그러므로

십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십대의 사랑도

이별은

만남에 앞선 전제조건이 된다.

만나면서 이별을 생각하고 만나라는게 아니다.

그렇게

계산하고 이리저리 재면서 만나라는 말이 아니라

언제든, 이 사람이 나를 떠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사람이란

생각 정도는 하고 만나는게 좋겠다는 말이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이성의 마음을 얻기위해

 

네 곁에 있는 사람을

네 사람으로 만들기위해

 

노력하지 마라.

 

 

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노력을 기울여야 할때는

 

오히려 '님아 그 강을 건니지마오' 정도의

노인이 되었을 때

아닐까 한다.

 

늙을수록

노력하는 사랑

멋지지 않을까?

 

내 사람이 되면 될수록

더 노력하는 만남이란

참 근사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반대가 되어선 안된다.

 

'층' 때문이다.

 

 

이 글을 보는 너는 아마 십대후반이거나 이십대 초가 대다수일 거다.

 

이성에게 관심이 많고

이성의 마음을 얻기위한 팁을 얻고싶을거다.

그래서 연애코치나, 연애계발서란 것까지 나오고있는데

나는 회의적이다.

그런데 의존하는 것 자체가

이미 지고있는거란 생각이 든다.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건

타인이 아니라

너다.

 

네가 좋으면

그 사람도 따른다.

 

 

사랑에선 기독교적 이타적 사랑이

사실은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이타적이면

실패하는게

사랑이란

게임이다.

 

 

그러나 친구야.

한편으론 이타적이도 된다.

 

그것도 '층' 때문이다.

 

이 기묘한 양면성에 대해

좀 더 설명할까 한다.

 

 

 

 

 

 

class

 

 

사랑에서 중요한건

그 사람이 아니라

'너'다.

 

너의 층 class이 달라지면

사랑의 판도가 바뀐다.

 

너무 간단히 말해

이몽룡이 과거급제를 하고 나타나면 class가 달라진거다.

 

네가 남자라면

지금 네가 좋아하는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너무 노력하지 마라. 그녀의 마음을 얻기위해서.

미안하지만

헛수고다.

 

(네가 여자라면 더더욱 노력하지 마라!!!)

 

 

너의 노력으로 쟁취하는 사랑은 한계가 있다.

 

사랑은 노력하는게 아니다.

 

끄는 거다.

 

오히려

너 자신의 가치 class를 높이는데 집중하는것이

결과적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결정적 이유가 될 거다.

 

이 class를 너무 '사회적 성공'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사회적 성공만이 class라고 보면

실제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연애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 중 잘못된 결혼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너무 많지않나?

 

오히려 이때 말하는 class는 너의 색깔, 너의 가치관의 정립

너의 삶의 방향성, 정체성, 개성, 능력, 매력이 갖춰지는

그런 의미에서의 수준이라고 보는게 좋겠다.

 

즉. 너의 문제란 거다. 연애는.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class를 높이는게

연애에서 이기는 방법이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흔히 수많은 글에서 봐왔던 이야기이다.

 

그렇지않나?

 

 

그러나 '층'이라는 단어가 사랑에 절묘한 이유는

 

또 다른 의미 때문이다.

 

 

 

 

 

 

level, story 즉,  사랑의 결

 

 

 

 

십대후반, 혹은 이십대를 살고있는

너의 사랑은

이별을 전제로 깔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서두에 했다.

 

친구야.

 

그러나

진실되게 사랑하길 바란다.

 

왜냐면

'층'때문이다.

 

층이라는 단어 속에는

단계, 혹은 과정, 혹은 삶의 결 ...

 

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이라는 단어

 

참 멋지지 않나?

 

사랑의 결

 

 

그래.

 

사랑을 승리로 이끄는 건 class 이기도 하지만

 

'결'이기도 하다.

 

 

이건 마치

 

좌뇌와 우뇌의 공존과 같다.

 

사랑의 이성적 속성과 감성적 속성이라고 봐도 좋다.

 

 

나는 가장 멋진 사랑은

이성과 감성이 공존하는 사랑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네가 지금 만나고있는 사람을

뜨겁게 사랑해라.

 

너의 과정을 단단히 채우는

 

네 삶의 정체성과

 

결을

 

단단히

 

채워가는

 

사랑 역시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이기 때문이다.

 

 

네 곁에 있는 그 사람을

혹시 떠나보내게 된다 하더라도

 

네 삶의 결을 단단히 채울 수 있었다면

 

너는 그만큼 성장할 수 있을거다.

 

더 많이 사랑해서 후회하는건 없다.

 

그 사람을 뜨겁게 사랑했다면

 

그걸로 충분한거다.

 

수많은 실수와

미성숙한

미생적 상황이 있어도

 

그것은 청춘이라는 이름앞,

삶의 '결' 앞에 서게 되면

 

그 많은 실수들조차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테가 된다.

 

귀한 목재일수록

나이테가 선명하고

그 나이테의 간격이

 

굵다.

 

 

떠나는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이타적인 사랑이 아니다.

 

아름다운 의미로

이기적인 사랑이다.

 

사랑의 주도권을

끝내 놓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이별의 가능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건

사랑의 결 때문이다.

 

사랑의 결과론이 아닌

과정론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을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면

 

지금의 아픔도

아쉬움도

때로는 상처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거다.

 

 

 

결론은 하나다.

 

사랑의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것.

 

 

 

 

이성적으로는

 

사랑의 class.

 

 

당신의 가치와 정체성과 본질을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그 사람이 널 떠났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라.

 

네가 훨씬 달라진 모습으로 변화될때

 

그 사람이 널 아쉬워 하게 될거다.

 

 

그러니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위해 애쓰지 말라.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너의 모든 것을 내어주지 말아라.

 

이건 연애의 이성적 측면이다.

 

class.

 

 

 

그러나

 

한편으론

 

떠날 걸 이해하면서도

 

낭비인 걸 알면서도

 

실수인 걸 알면서도

 

상처인 걸 알면서도

 

사랑에 너를

 

던져라.

 

 

그 순간에 충실한 너의 사랑이

 

너라는 본질을 더욱

 

두껍게 채워주고

 

너를 성장시키고

 

너의 결을 더욱 귀하게 가꿔줄 것이기 때문이다.

 

 

결.

 

 

 

class와 결 은

 

상반된다.

 

그래서 사랑은 미묘하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우리 삶으로 채워가는 story-telling이다.

 

 

하지만 원칙은 있다.

 

주인공은 너여야만 한다는 것.

 

주인공에서 내려오는 순간

사랑의 무대에서 네가 내려오는 순간

사랑은 막을 내린다.

 

 

해피엔딩으로 가는 과정이라면

 

시련이 깊은 건

 

더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가는 지름길 아닌가?

 

스토리이론 속에 삶의 비결이 숨어있다.

 

 

잔잔한 드라마를 찍을 것이냐

 

가슴 찢어지는 비극을 찍을 것이냐

 

애로영화를 찍을 것이냐

 

액션영화를 찍을 것이냐

 

그것은

 

장르의 문제 아니겠는가?

 

 

 

네 사랑이 가슴아프다면, 그 가슴아픔이 나는 참 멋지단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랑의 가치가

네 삶을 적셔주기에

넌 그 사랑을 포기 못하는거 아니겠는가?

 

그럼 해라.

 

 

네 사랑이

잔잔하고 일상적이라면

 

그것도 참 근사한 사랑이다.

 

평범한 것이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이니까...

 

 

육체와 욕정으로 채워진 사랑?

그것도 좋다.

세계적인 트랜드다.

 

 

장르의 문제

 

아니겠는가?

 

 

 

결론은 하나다.

 

네가 중요하다는 것.

 

 

사랑의 층은

 

바로

 

네 인생의 층이다.

 

 

네가 채워가는

 

무대위의 삶.

 

한 편의 연극.

 

그렇다면

 

주인공으로

 

당당히

 

삶을 받아들이라.

 

 

조연으로 전락하지 말라.

 

상처앞에서도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015.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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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하고도 꺽인 서른이 되고나니

연애가 부질없다.

 

 

나도 뜨거운 연애를 했었고 적극적이고 활동적이고 열정적이었다.

뭐, 지하철 앞에서 우연히 만날걸 기대하고 그녀 집 지하철역에서 약속없이 몇시간이고 기다려보고

이런 미친 짓 나라고 안해봤을 것 같나?

편지 써서 공원에서 읽어주고 그런 작고 소소한 낭만. (보통 이런 미장센엔 1)가로등불빛, 2) 흔들리는 그네에 여자가 앉아있을 것. 그리고 그네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어야 함  3) 이 공원은 그녀의 집에서 그렇게 멀지않은 작은 공원임.  이 3요소가 필수로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

또라이 같은 연애

안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가면서

이젠 제법 앞가림 할 나이가 되고

사회에서 점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그에 반비례해서 연애에 대한 감정이 식어가기 시작한다.

 

 

이성에 대한 갈증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결국, 연애란 부질없는 행위임을

추억의 층이 깊으면 깊을수록

남는 것은 더 깊은 상처뿐이며

연애 중에 주고받는 그 수많은 사랑의 고백들이

모두 손바닥으로 움켜진 모래먼지처럼

기억의 터널속으로 빨려들어갈 거란 걸, (그것도 반드시. 반드시 말이다. 너도 예외없이. 너 스무살이냐? 연애하냐? 그럼 틀림없어야~~ 나중에 이 글 다시보고 내말 맞나 틀리나 확인해봐. 사랑한다는건 이미 헤어짐이 속해있는거야. 사랑안에 헤어짐이 들어있는거니까)

경험으로 알기 때문인지,

연애의 모든 과정들이

익숙한 낯섬으로 느껴진다.

 

 

마치 어린시절 뒹굴던 - 추억이 서린 옛 동네가

오랜만에 찾으면 새롭고 반갑고 정겹지만

이젠 그 집에서 살기엔

내가 너무 커졌고

그 골목은 너무 작고

그곳에서 쌓았던 추억들은

이제 흘러간 과거가 되어 버린

기묘하게 낯선

반갑지만 불편한, 그리고 결국엔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그런 감정.

 

 

익숙하고도 낯선 감정을 느껴본 적 있는가?

서른 중반이 넘어서면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건 너무나 전형적인 과정이 있다.

연애의 과정들

서로 눈치보고

서로 밀땅하고

서로 감정을 키워가는

서로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마음을 숨기려하는

그 교묘한 이중성

그 과정들

 

 

다 안다.

익숙한 과정이니까.

그런데

낯설다.

싫다.

막막하다.

두렵다.

 

 

마치 옛 기억 속 첫사랑이 머물던 동네처럼

다시 찾아가보면

생각보다 초라한 모습에 실망해

돌아서는 전철역 안에서

괜시리 생각만 복잡해지는

그런게 30대 중반의 연애인가 보다.

 

 

서른 넘은 여자들은

그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서른 넘은 남자들이

왜 그리도 적극적이지 않은가에 대해

서른 넘어 자신의 매력이 떨어져서인가보다 라고 단정짓지만

장담컨데 아니다.

여자의 문제 아니다.

남자의 문제다.

남자의 마인드가 변하는게 더 크다.

 

 

사회에서 어느정도 자리잡아가고

연애의 경험 어느 정도 있으며

이미 알꺼 아는

그런 나이

그런 나이의 남자들이

급속도로 연애 자체를 낯설어하기 때문에

30대는 남성이건 여성이건

연애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갈망한다.

 

 

만나보니

헤어져보니

제일 중요한게

사랑도 아니고

열정도 아니고

밀땅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더라.

 

 

사랑에서 제일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용기'더라.

 

 

난 이제

더 좋은 이성을 만나려는 노력을 멈출 것이다.

더 나은 조건, 더 나은 외모, 더 나은 성격을 찾아 헤매고

서로 감정을 숨기고 감추면서 서로를 떠보는

그 유치하고 시시한

연애놀이

이제 그만 할거다.

 

 

사랑이란 뭘까? 수많은 비유가 있겠지만

세계적인 심리상담가 로렌스 크랩은

사랑을

절벽위에서 끈 하나 허리에 묶고

그 절벽 아래로 뛰어드는

행위에 비유했어.

 

 

한 주체가 다른 주체를 사랑한다는건

절벽에서 활강하는 것만큼이나

두렵고 새롭고 그러나 짜릿하고

그리고 불안정한 모험인거야.

 

 

그러나

그 모험을 시작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건

내 몸에 묶인 밧줄이 있기 때문.

 

 

그 밧줄이 바로

신뢰의 밧줄이야.

 

즉. 로렌스 크랩 박사에 의하면, 사랑이란 신뢰라는 밧줄하나 묶고

서로를 향해 미지의 절벽아래로 뛰어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하고도

무모한

도전인거지.

 

 

그런데 이 신뢰는

서로를 향한 신뢰가 아니야.

 

꽤 놀랍지?

 

서로를 향한 신뢰가 아니라는것이?

 

근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어.

 

서로를 신뢰한다는 것 만큼

어리석은게 또 있을까?

 

너는 너 자신을 돌아봐.

넌 신뢰할만한 사람이야?

 

인간이 과연 그 어떤 인간에게라도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주체가 또다른 주체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건

너무나 허무한 일이다.

너무 쉽게 무너지는 약속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나약하고

생각보다 이기적이고

생각보다 계산적이거든.

 

 

그럼 도대체 무엇을 신뢰해야 하나?

 

우선 로랜스 크랩 박사는

 

절대자에 대한 신뢰를 언급하고 있어. 물론 로랜스 크랩, 래리 크랩 부부는 미국인이라 아무래도 종교적인 베이스를 깔고 사유를 하니까 이 부분은 이 정도로 언급하고.

 

결국 네가 신뢰해야 할 대상은

 

바로.

 

그 사랑을 선택한 우리 자신이야.

 

나의 주체를 내가 믿는거야.

 

사랑은 결국 내가 하는거야.

 

나와 또다른 한사람이 하지만

 

생각해봐.

 

사랑하면 닮아가잖아?

 

둘이 하나가 되어가는거잖아?

 

그래서

 

서로를 향한 신뢰는 본질이 아니야.

 

본질은

 

나의 주체를 신뢰하는 나와

 

나의 주체를 신뢰하는 또다른 나.

 

그 주체와 주체의 만남인거지.

 

 

서로를 신뢰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네가 선택한 그 사랑에 대한

 

너의 신뢰와

 

그 사람이 선택한 그 사랑에 대한

 

그 사람의 신뢰.

 

이 두 사람의 신뢰가

 

서로 만나

 

하나의 신뢰가 되어가는 과정이

 

사랑의 과정인거야.

 

 

 

 

 

그래서 칼릴 지브란은 이런 그의 유명한 책 <예언자>에 이런 시를 남겼어.

 

 

 

  <결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리하여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그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사랑이 그대 두 영혼의 해변가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의 잔만으로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있게도 하라.

  마치 류트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편백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사랑은 무모해서 아름다워.

 

 

생각해봐.

 

가장 낭만적이고, 가장 기억에 오래 남고, 평생 가슴떨려하는

천만금의 황금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진짜 사랑을 받은 경험은

 

이성과 익숙함과 계산과 당위성을 뛰어넘는

 

무모한 사랑을 경험할 바로 그 순간 아니야?

 

사랑을 아름답고, 비약적으로 승화시키는

사랑의 비약.

아름다운 무모함이

우리 인생을

가치있고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아니야?

그런 사랑을 꿈꾸는것 아닐까?

 

 

 

그래서 순서가 중요해.

 

신뢰할 수 있어서 용기를 내는게 아니야.

 

이 순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오늘도 수많은 여자들이 된장녀 소리 들어가며, 남자조건 찾아 헤맨다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근데 자세히 뜯어보면 여자들이 남자의 조건을 보는 이유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야.

 

안전하고 안전한 길.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고 검증되었고 익숙해진

 

그 길을 가야 한다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선배의 위계로, 부모라는 위계로, 선생이라는 위계로, 친구라는 위계로, 방송이라는 위계로

 

강요하고 세뇌하고 있기 때문 아니야?

 

 

좋은 남자 찾아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말아라.

 

그래서 찾고 찾은 좋은 남자라고 해봐야

 

결국 적당한 직장에 적당한 외모에 엄마 등쌀에 잘 관리된 유형의 남자일텐데

 

중요한건

 

여자들이 고르고 골라봐야

 

기준이 획일적이라

 

그 별것 아닌 남자들, 그 남자의 어머니에게 사육되고 길러진 그 남자들이

 

결혼시장에서 엄청난 갑 행세를 한다는 거야.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서

 

한국사회가 만들어주고 제시해주는 좋은 남편의 기준이 너무 획일적이라

 

너만 그 남자를 고른게 아니란게 문제가 된다는거지.

 

모든 부모들, 결혼정보업체, 모든 기성세대들이 제시하는 기준이라고 해봐야 결국 똑같은거야. 너도 고르고 고르면 결국 똑같은 선택 하게되는거야.

 

 

당장 듀오니 선우니 하는 결혼업체에 가봐.

 

여자는 수십만원~ 수백만원의 돈을 내고

남자는 조건이 되면 공짜야.

 

기가 막히지?

 

고르고 골라봐야

 

악수를 두게 된다.

 

진짜야.

 

평생 자기 잘난줄 알고

자기가 갑인줄 아는 남자, 그래서 혼수가 어떠니, 집이 어떠니 이런 소리하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는 그 남자를 사육하고 기른 남자의 엄마.

 

불행하지 않은게 이상한 일이지.

 

 

 

 

서른하고도 꺽인 서른이 되어보니까

 

사랑은

 

용기란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내 이상형을 물어보면

 

나는

 

나를 향해 용기내는 여자라고

 

나같이 불완전하고

 

엉터리인 한 인간을

 

사랑하고 용기를 낼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 나의 이상형이라고

 

난 말할꺼야.

 

 

 

신뢰하기에 용기를 내는게 아니다.

 

용기를 냈기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일뿐.

 

 

 

 

적어도 사랑은 그렇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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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봅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당신과 헤어질 때 화를 내고 당신을 저주했기에 다행입니다.

 

진심입니다. 당신에게 모진 상처를 줬겠지만, 당신도 알꺼예요. 어떤 모욕적인 말이라도 그 속에 사랑이 담겨있음을 숨길 수가 없는 그런 말이 있음을. 랑그와 파롤이 서로 달라, 말은 모욕을 주는데 말 속에는 당신을 향한 절절한 사랑이 흐르는 그런 말을.

 

당신과 헤어지고 담담한 척, 잘 지내는 척, 일상이 변하지 않은 '척' 하는 나를 봐서 참 다행입니다.

 

나는 금방 좋은 사람을 만날꺼라고 촌스럽게 장담했기에 다행입니다.

 

멋지게 이별하지 못해서 참 다행인 이별도 있습니다.

 

당신과 헤어지고 혹시나 연락이 올까 30초마다 한번씩 문자를 확인하는 나를 봐서 또 다행입니다.

 

혹시나 스팸메일에 가있나 하루에도 몇번씩 스펨메일을 뒤적이는 나여서 다행입니다.

 

어떤 시인은 오지 않을 편지 기다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 시인의 당부와는 정반대로 행동해서 다행입니다.

 

바보처럼 멍하게 앉아 괜시리 작은 일에 짜증을 내는 나여서 다행입니다.

 

 

 

 

나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순간이 인생에 몇 번 찾아올까요?

 

당신과 이별할 때 저는 그 몇 안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랑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우연히 발견했을때 진짜 사랑이 뚜벅뚜벅 걸어가고 었던 거예요.

 

윤동주가 청동거울 속에서 자신을 보듯

 

이별의 순간이 투명하게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눈부시게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깊은 상처 속에서.

 

 

 

그 사람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구나

 

그 사람을 만나서 이렇게 성장했구나.

 

아프고 아파서 진심이었구나.

 

 

 

 

알아요. 당신이

 

기억 속에 젖어든 흔적과 사랑이 당신을 찌르고

 

고통의 터널을 채 건너지도 못한채 웅크려 떨고 있을거란거

 

그래도 담담하게 잘 이겨내고 있겠지요

 

알아요.

 

 

 

 

이 많고 많은 의식의 과정을 지나와서야 비로소

 

 

 

나는

 

당신을

 

봅니다.

 

 

 

 

이제서야 나는 당신을 봅니다. 이제서야.

 

 

우주는 모든것이 연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법입니다만

 

때로는 우주의 중력을 거스르고

 

내 마음의 단층에

 

소중한 추억들을 남김없이 새겨놓고 싶습니다.

 

 

 

 

이제서야 당신을 봅니다.

 

그리고 인생을 봅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아름다운것이 인생이라면

 

역설적으로 이제 새로운 날들을

 

기대해도 될까요?

 

 

 

이별의 아픔 속에서

 

또 한 칸

 

성장했습니다.

 

 

 

그대

 

부디 성장하고 날마다 더 자라나길 바래요.

 

그래서 숲들은 저마다의 높이로 자라나나 봅니다.

 

때론 초라한 나무라고 할지라도

 

숲의 곁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렇게 각자의 새로운 날들, 흔들리며 살아가는 새로운 날들을

 

기대합니다.

 

 

 

이토록 큰 아픔 뒤에서야

 

난 비로소 당신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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