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의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시야를 넓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번에 짧은 일정으로 킬링필드와 앙코르왓의 나라, 절망과 가능성이 공존하고 외국인들과 밀림이 공존하는 캄보디아땅을 다녀왔다.

고아원에서 가난한 환자들과 고아들을 모아놓고 (1200명가량)

무료진료봉사를 했다.

국내 최고의 의료진 18명이 지원한 이번 봉사에

나도 끼어 간 것.

덕분에 치과에서 마취주사만들고 소독도하고, 외과치료하는 것도 도와드리면서

의료분야도 마음껏 기웃거렸다.

 

캄보디아에서도

역시

직업은 직업인지라 입시를 생각했다.

킬링필드를 걷고, 메콩강에서 바람을 맞으며 학생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통찰을 얻기위해서 깊이

고민했다.

 

 

 

 

학생들은 답을 찾는다.

수학공식처럼

또는 어떤 특강이나 방식이나

쪽집게나

또는 어떤 맞춤식 강의를 원한다.

 

학생들은

그런 식의 패턴에 익숙해져 있다.

수학은 수학과외

영어는 영어과외

미술은 미술과외

국악은 국악과외

등등

 

그런데 연극과 영화는 다르다.

또 한예종, 서울예대는 더더욱 다르다.

그런식의

강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부족한게 뭘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

자타가 공인하는 것은

(나는 정말 확신을 가지고 책임감있게 주장하는 것이다)

영화나

연극이나 연출이나 극작이나

입시를 준비하는 체계나

커리큘럼이나

'방법'적인 면에선

우리 학원이

가장 정답에 근접한, 말하자면 가장 확실한 준비를 하게 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갖고있다.

그 세부적인 내용들은 이 블로그 구석구석에 녹아져있으니 동의할 것이다.

그 부분에선 국내 최고이다.

우리는 붙을 것 같은 학생, 붙어야 되는 경력을 가진 학생은

단 한번도 입시에서 실패시킨 적이 없다.

 

올해 특전에서도 마찬가지.

붙을것 같은 학생을 무조건 합격시키는 게 그게 진짜 실력이다.

금메달을 딸 자질이 있는 것과

실제로 금메달을 따는 것은 다르다.

그 사이에서 가능성을 결과로 바꾸는 것에는

실수가 없다.

 

 

그러나

영화나 연극입시는

결국 그런 입시준비. 학원의 커리큘럼. 빠짝 해서...뭔가 준비하는 것으로는

치명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또한

이번 특전을 통해 느꼈다.

 

 

그래서 공부잘하는 학생들이

이쪽 분야에선 어이없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단 한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학생들이...

 

공식이나

준비나

단기간의 확실한

스토리나 면접준비나 이미지텔링이나

모든 면에서 탁월하게 준비할 수 있지만

무언가 부족한 것 또한 있다.

 

 

캄보디아에서 봉사하며 깨달은 것이 결국

이것이다...

 

 

 

삶이 곧 스펙이라는 것...

 

그리고 그 깨달음에서 앞으로 우리 학원의 입시가 더욱 더 혁명적으로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도.

 

 

결국,

인생......

 

결국

인생이 필요한 것이다.

 

위의 2008년도 플리쳐상 수상 사진을 보라.

사진 자체의 기술적인 면도 뛰어나지만

사실 저 정도를 찍을 수 있는 사람은 많다.

저 사진이

감동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곳엔

인생이 있기 때문아닐까?

인생...

진실된 삶은

그 자체로 스펙이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그래서

진실로

젊은 나이에

겪은

실패는

절대로

실패가 아닌 것이다.

 

인생을 더 깊고

더 풍성하고

더 극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더 실패해도 좋은게

젊음이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냥 실패하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진짜 실패 그 자체인것이다.

반드시 실패에는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

터닝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

실패하는 것이지

실패 자체가 약이 되기에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단순한 스펙이 아니다.

수상을 한 경력.

또는 무언가 대단한 작품을 쓴 경력

(물론 그런 경력도 매우 중요하지만)

 

여러분이

치열하게 인생과 마주해서

시도해보고

여러번의 실패 끝에도 무언가를 얻어낸 경험.

그런 좌절과 성취의 기록들...

나는

그런 경력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런 도전도 없이

좌절 끝에 이뤄낸 성취도 없이

그저

영화과를 들어가기위한

영어과외, 수학과외같은

어떤 단기간의 준비를 찾아서

우리 학원에 온다면

이제부턴, 그런 학생들은 왠만하면 받지 않으려고 한다.

 

좀 부족해도

도전이 있고

그 도전끝에 어떤 경험이 있는

그런 학생들....

 

상담올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제가 연기할 실력이 될까요?

영화나 극작을 할 실력이 될까요?

 

그런데 사실 너희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실기실력이 아니다.

그건 두달 학원다니면 충분하다.

그런데

내가 절대로 못 만들어주는게 있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친구야.

정말 진실로 말하는건데

그깟

입시에 통하는 글쓰기

입시에 통하는 면접스타일

입시에 통하는 자소서

입시에 통하는 언어와 외국어...

딱 한두달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정말 그만한 실력이 있다.

 

특전학생들 중에 2~3명의 학생들은 (합격생을 포함해서)

준비한 자소서나 글쓰기.

객관적으로

외부의 감독님들이나 한예종 재학생들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 있었다.

 

놀랍다.

단 두달만에 비약적으로 실기실력이 는 거다.

정시에선 반드시 합격할꺼다.

 

그런데

그 친구들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스펙이나 수상경력이 아니다.

 

인생 그 자체의

도전과

경험과

예술적 시도와

치열함과

스타일과

고독과

내면과

싸움과

좌절과

인식과

부정과

그리고

극복

 

아닐까...

 

 

다시한번 말하지만

네가 그런 시도나

경험이 부족하다면...

그냥

다람쥐 바퀴돌듯

주어진 틀안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왔다면

 

그런 부분이

가장 우려해야 할 점이다.

 

실기실력이 부족한게 아니라.....

 

그런건

만들수가 없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그래서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가라데 국가대표 출신이거나

고등학교를 딱 하루만 다니고 고아원에서 자신이 쓴 작품을 올렸거나

자신이 영화동아리를 만들고 영화를 찍었거나

아니면 미국의 유명한 영화스쿨에 합격했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가진 학생이거나...

오랫동안 은둔하면서 책만 보고 좌절의 끝에 섰지만, 연극을 만나면서 희망을 깨달았다거나

아니면

머리깍고 스님이 되려고 절에 들어갔다가 속세로 탈출하고 다시 연극패에 들어가서 활동했거나

한예종에서 미술을 전공한 경력을 살려 줄리 테이머같은 영화연출자가 되겠다고 꿈꾸거나

국가대표 양궁선수출신으로 집중력과 예술이 연결됨을 믿는다고나...

 

위에 언급한 학생들은

전부 내가 지도한 경험이 있는

현재 한예종에 재학중인 합격생들이다.

 

글로만 봐도

인생이 보이지 않나?

 

더 놀라운건, 저들 중 절반은 고3이라는 것이다.

 

3이라고해서

경험과 도전이 없다는 것은

핑계일뿐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이 참 좋은 건

무익함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술은

무익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익함을 위한 추구

그것이 예술이기에

 

네 인생 속의 무익함을 향한

무익한 시도들이

너무나도 절실한 것이다.

 

친구야.

혹시 네 인생에 그런 무익함이 가득하다면

이제 예술을 선택해보자.

 

네게 정말 멋진 길이 열릴거라 믿는다.

 

무익함을 위한

추구

그 무익한 시도들을

오늘도 해보자.

 

그게

예술하는 재미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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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학생들, 특히 이 분야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특징. 요즘 학생들의 특징은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다.

세상 무서운 것도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

세상은 이루어지는 일보다 이루어지지 않을 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의 고민은

두가지로 모아진다.

내가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와

내가 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이다.

이 두 질문을 분석해보면

학생들 문제의 핵심을 유추할 수 있다.



우선 두 질문 다 결과지향적이다.

입시는 물론 어느정도는 결과지향적이어야 하겠지만

이 놈의 세상이 언젠가부터

모두가 다 결과지향, 실적지향적이 되어버려

예술을 하면서도 결과를 지향하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예술을 결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네가 A대학을 들어가면 목표를 이룬 것이고

B대학을 들어가면 실패한 것인가?



결과는 결과를 쫓으면 반드시 결과를 내지 못한다.

집착은 예술과 상극이다.

너는 반드시 결과가 아닌 과정을 가치를 깨달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예술을 하는 첫번째 발걸음이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예술을 침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둘째로, 두 질문 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기저에 깔고 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보통 큰 사고를 치는 사람을 보면

열등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결국

네가 싸우는 전쟁터가 실제로 무시무시해서 네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두려워하고, 자꾸만 극단적인 선택들을 하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입시에서 요구하는 것은 별게 아니다.

대단한 실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차분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준비하면 누구나 합격할 수 있는 것인데

두려움과 걱정과 열등감과 스스로 만든 문제들 속에서

고민하다가

실제로 입시를 준비하는 절대적 노력은 터무니 없이 작은 것이다.

고민은 입시와 상극이다.

둘 다 에너지를 필요로하면서도

고민은 자꾸만 갉아먹고

연습은 너를 성장시킨다.

합격하는 사람의 특징은 최선을 다해 '실질적'인 노력에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붙는다는 것이다.

걱정할 시간에 연습이나 하라는 말은 진리이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멋진 문장 하나를 소개해 주겠다.

Aiming High 

어때?

심플하지?

평생 간직하고 기억하자. 이 문장을.



너희들과 상담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있어서 놀랐다고 했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계산적이 되고 예측적이 된다는 말.

그래서

대충 현실에 주저앉는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고작. 21살인데 !!!

92년생이

내게 와서...입시에 두번 실패했다고

자신은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때면

기가차서 말이 안나온다.



야 !

너 지금 삽질하고 있냐?

야 !

정신차려 !

네 나이는 지금 삽질해야 되는 때야.

네 나이는 삽질하는게 당연할뿐더러.

삽질을 해야만 되는 시기라고.



삽질을 잘하는 방법은

삽질을 열심히 하는 거야.

20대초반이라면

어떤 꿈이든 꿀 수 있는 나이이며

모든 꿈들을 실현할 수 있는 나이야.



한예종 입학 따위는 꿈이라고 할 수도 없어.

어떻게 한예종 입학 따위가 꿈이 될 수 있냐?

단기목표라면 몰라도.



네가 21살이라면

10년이 지나도 31살, 20년이 지나도 41세 아니냐...

41세도 충분히 젊고 건강하고 매력적이고 왕성한 나이야.

51세도 마찬가지.


자.

네가 원하는 한가지 분야에

30년을 한결같이 투자하고도

그 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할까?

과연 그럴까?

아니야.


너는 지금

판사가 될수도 있고

UN 사무총장이 될수도 있고

세계 최고의 감독이 되어 아카데미상을 받을수도 있다고.

2012년에서 30년이지나면 2042년이다. 2042년 !!!


너희들이 한창 활동할 전성기는 2042년이라고 !!

2012년이 아니라 !!!!


2042년에

네가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

오늘 판단하는건

너 자신에 대한 테러이자

끔찍한 죄악 아니니?


왜 30년 뒤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는거냐고?


2041년엔

외계인이 침공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네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기에는

적당한 시간아니니?


나는 벌써 33살이기에 다소 시간이 좀 지났지만

나도 허황된 꿈을 꾸는데

너희들이 왜 허황된 꿈을 꾸지 않니?


그건 너희들 자신에게 죄를 짓는거야.



더 놀라운 사실 한가지를 알려줄까?

Aiming High. 목표를 원대하게, 크게 잡는 사람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성장의 폭이 크기 때문이다.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시기는

이렇게 생각하면 돼.

네 가능성을 땅따먹기하는 시기라고.

광활한 광야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한가운데 네가 서 있어.

그리고 마구 뛰어

멀리보고.

그 뛴만큼

다 네 땅이 되는 시기가 바로 10대, 20대라고.


만족해서는 안되는 시기야 !

보이는 족족 다 땅따먹어야 되는 나이라니까?

멀리보고

세상 끝까지 바라보고

그걸 다 쌈싸먹으면

그게 다

너의 경험, 너의 땅이 되는 시기가

또한

10대, 20대란거지.

주저 앉는 순간.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의 가능성의 문은 닫히고 말아.

너의 땅따먹기 게임은 종료된 것이지.

누군가는 아직도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까지 눈을 돌려

네 경험과 땅의 수천배, 수만배를 수확하고 있는데 말이야.

억울하지 않아?




마지막으로

Aiming High를 해야하는 이유는,

실패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성장하는게 바로 너희들의 시기이기 때문이야.

실패가 실패가 아닌 유일한 시기.

바로 너희들의 시기야.

한국 사회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잔인한 사회이긴 하지만

너희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그런 좃같은 문화에 편승할 필요가 없어.

왜 대학 한두번 떨어지면

그 쓰레기 같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닥달해서

시집이나 잘 가라고

가기도 싫은 간호학과나 비서학과 따위를 보내는지...


네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 이후엔 그냥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아라...

왜 이런 말을 하는걸까?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알아.

내가 그런 경험도 없이 그 글을 썼을 것 같니?

내가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아왔는지 네가 들으면 깜짝 놀랄걸?


그러나

확실히 말할께.

실패가 실패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실패가 실패에 그친다면 이 글은 의미가 없겠지.

그러나

너는 지금 충분히 삽질을 했으면 좋겠어.

실패하고 좌절하고 이것도 실패하고, 저것도 실패하고...

죽을 것 처럼 힘들지만

거기서 또 용기를 내 일어나고

그게 몇 번 반복되다 보면

너는 어느새

강해져 있는거야.

최고의 훈련을 받은거라고.


네게 고난이 많으면 이렇게 생각하자.

나를 훈련시켜준다고.

그것도 공짜로.

환경과 세상이 말이야.



10대, 20대 때엔 좀 대충해야 돼.

너무 완벽하려 하지마.

좀 허술하게 해도 된다고.

좀 허술하게

덜 완벽해도 좋으니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속 도전하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그 빈공간이 채워지기 마련이거든.



인공위성을 어떻게 우주의 한 구석으로 정확히 안착시키는지 알아?


처음엔 대충 대기밖으로 대충 쏜데. 대충 큰 틀만 잡고.

그리고나서

관제탑에서 세밀하게 조정해서 목표지점에

조그만 오차도 없이 정확히 위치시킨데.


인생이 그런거야.

완벽하지 않아도

대충 일단 큰 목표를 세우고 부딪혀나가는 시기가 지금 너희의 시기야.

그리고 30, 40대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세밀하게

인공위성을 착지시키는 것이지.



처음부터 완벽하려고 하지마.






목표를 크게 잡자.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고

셰계 최고가 되려고 달려가잔 말이야.

땅따먹기를 다 해 먹어 버리자고.




기억해.

주저앉는 순간.

타협하는 순간.

어른이 되는 순간.

계산하는 순간.




너의 땅따먹기는 게임 오버야.

Game Over.


넌 끝이야.

끝이라고 !!





30대, 40대가 되어서는 균형이 중요해.

어느정도는 현실과 균형을 이루며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할 시기가 오지.

그러나

넌 아직 아니야.

넌 아직 어른이 되어선 안된다고.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우리 반드시, 정상에서 만납시다.

꼭 !

 

 

 

 

 

<레슨 포 케이아트 연기학원>

http://www.4kart.co.kr/

<레슨 포 케이 아트 영화학원>

www.lesson4karts.com

<터놓고 연극영화>

http://intheatr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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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생존에 대한 절박함' 이라는 걸 느꼈다.

 

쓰지 않으면

 

죽을 것을 확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공한 학원원장'으로 늙어죽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에서 오는 것이다.

 

내 인생이

 

성공한 학원원장으로 멈추기엔

 

너무나

 

많고 많은...

 

말이

 

있다.

 

 

 

가슴 뛰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질문이 이것이다.

 

'왜 너는 예술을 하고 싶어하나?'

 

 

 

대답은 간단하다.

 

절박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토록 절박한가?

 

예술은 창작인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인가?

 

글쎄

 

나는 절반이라고 본다.

 

 

 

나머지 절반은

 

분출이다.

 

 

싸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것이

 

예술의 이유이다.

 

(똥과 정액과 땀...이 3가지 단어속에 예술의 의미가 다 들어있다)

 

 

나의 가능성

 

나의 마음 속

 

나의 삶

 

 

분출이 동기이고

 

생산은 그 결과인 것이다.

 

 

 

.

 

 

나는 두렵다.

 

내 인생이

 

평범해지는 것이 두렵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두렵다.

 

 

그저 안락함에 멈춰있는 것이

 

많이 두렵다.

 

 

그저 안주하기엔

 

내 안에는

 

너무나 많은

 

길들이 있고

 

꿈들이 있고

 

아직 떠나지않은

 

여행 배낭 속엔

 

끊지않은 티켓과, 아직 뜯지하지 않은 CD와 신지 않은 새 운동화...

 

가득하다...

 

 

.

 

예술을 하는 이유,

 

우리가 공연을 보는 (창작하는) 이유,

 

영화를 보는 (창작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우리 마음 속엔

 

아직

 

떠나지 않은

 

여행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여행을 떠나지않고

 

현실 속에 묻어두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억울해 하기 때문이다.

 

 

.

 

 

이것을

 

아마

 

최백호는 '낭만'이라고 불렀나보다.

 

 

 

 

날마다 모험하는 이유는

 

그것이

 

낭만 적이기 때문이다.

 

 

.

 

사랑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낭만적이기 위해

 

사랑을 선택한다.

 

 

현실 앞에서 평범한 선택을 하더라도

 

그 속에서 또다른 낭만을 찾기위해

 

애를 쓰는게

 

사랑 아닌가?

 

 

그러므로 낭만과 사랑과 모험은

 

서로

 

통하는 단어이다.

 

 

.

 

나는 학원원장으로 늙어죽기 싫어서 글을 쓴다.

 

그리고 예술 한답시고 감성팔이만 하는 글을 쓰고 싶지않고

 

더 치열하게 훈련받고 싶어, 박사학위 과정에 도전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유행가의 공통된 주제

 

수많은 시인들의

 

창작의 이유가 되는

 

그 숭고하고

 

중요하고

 

우리 삶에서 가장 낭만적인 그 단어

 

'사랑'

 

이란 단어 앞에서

 

현실과 등가교환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을 지키기 위하여 -

 

사랑하고 있다.

 

 

 

.

 

아마

 

쉽지 않은 사랑을 선택한 그 모든 여자

 

혹은 남자

 

(불륜이나, 60대와 30대의 만남도 그렇고, 국경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나...그 어떤 형태라도)

 

들은

 

아니면

 

지극히 평범한 사랑을 하고 있는 남녀라도

 

그들이

 

사랑하며 느끼는 곡예를 기꺼이 감당하는 이유는

 

곡예하며 추락하는 것이 추락이 아니라

 

곡예조차 하지 않고 주저않는 것이

 

더 큰 추락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 아닐까?

 

 

 

 

이 선택 때문에

 

내 삶의 모든 것이 상실되더라도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 마저 붙들지 않고는

 

'그렇게 살아서는 아무 의미없음'이라는

 

더 큰

 

존재적 추락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 모든 이야기들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그것은 결국 '낭만'

 

이다.

 

 

 

 

 

그래서 모든

 

예술가들은

 

필연적으로 낭만적이다.

 

표현의 방식이 리얼리즘적이라 해도

 

그 속엔 낭만이 있을 것이다.

 

 

낭만은 모험이고

 

그래서 사랑은 낭만적인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인 낭만...

 

나는 예술이 낭만을 극복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예술에 있어 낭만성을

 

혐오했으나

 

 

 

그것은 낭만성에 대한 오해였다.

 

낭만적이기에

 

예술을 한다.

 

 

낭만적이기에 예술을 하지만

 

표현하는 것은

 

낭만적이기만 해선 안되는 것 -

 

 

그래서

 

모든 예술가들은 모순을 안고 사는 것이다.

 

 

 

낭만에서 시작하지만, 또 낭만을 고통스럽게 극복해야 하는 것 -

 

 

그것이 또 하나의

 

예술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레슨 포 케이아트 연기학원>

http://www.4kart.co.kr/

<레슨 포 케이 아트 영화학원>

www.lesson4karts.com

<터놓고 연극영화>

http://intheatr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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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수백 수천만이 다녀간 블로그도 흔하고

네이버에서 한번만 소개되어도 수백만 찍는건 일도 아닌데다가

파워블로거도 많지만

 

겨우 이제 50만을 바라보는 하루 200~300명밖에 안오는 이 블로그가

내게는

너무 소중하다.

 

가끔씩 매너리즘에 빠질때마다

 

이 블로그의 첫번째 글을 보곤한다.

 

학생들에 대한 약속.

 

무엇이든 정보를 주고, 개방하고,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그 약속.

 

지난 5년동안 성실하게 지켰는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 블로그를 빼곡히 채워왔다.

 

그런데 요즘에 학원 일이 바쁘고 (바빠도 너무 바쁨)

 

나 자신도 시간에 쫓기면서

 

이 블로그에 도통 새로운 글을 쓰지를 못했다.

 

 

 

이제 4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내 자식같은 블로그.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글을 쓰고 싶다.

 

노트에 기록해둔 포스팅 주제는 수십개가 쌓여있는데

 

집중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여러분도 좋은 글이라면, 댓글도 많이 달아줘서

 

더 좋은 글을 쓰는데

 

힘을 주기 바란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자.

 

좋은 글들로 만납시다. :)

 

 

감기 조심하구 ~

 

 

*4월에 다룰 주제들

 

- 무리뉴와 개성강한 이들에 대한 포스팅

 

- 장 쟈크 샹페와 제인 구달에 대한 포스팅

 

- 사진 자체에 답이 있다 포스팅

 

- 디테일 연구를 위한 실제적 방법 포스팅

 

- 글은 이해하고 쓰는게 아니라, 쓰면서 이해하는 것이다.

 

- 어느순간 찔끔찔끔 걷잡을 수 없이

 

- 두 명의 암스트롱

 

- 드라마에 대한 정의 (아리스토텔레스와 조지 스타이너)

 

- 면접은 소개팅이다

 

 

이 정도의 주제가 이미 구상은 되어 있는데, 시간이 부족해 쓰질 못하고 있다.

 

저 주제들 중 뭐부터 먼저 다루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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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푹 빠진 사진작가가 있다.

 

때마침 현재 대림미술관에선 그의 사진전이 진행중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청춘 - 그 불완전성에 대한 작가

 

라이언 맥긴리이다.

 

우선 그의 사진 몇개를 보자.

 

 

 

 

 

 

 

 

 

 

 

 

 

 

 

 

 

 

 

 

 

 

 

 

 

 

 

 

 

 

 

 

 

 

 

 

 

 

작품에 대한 인상은 각자의 것이니 여기서 말할 것은 못되고

 

나는 청춘의 찬란함과 일탈과 불완전성에 대해 탐구하는 맥긴리의 사진들을 보면서

 

또 그의 인터뷰 자료를 보면서

 

청춘과 고통과 예술의 등가원칙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가장 좋아한다.

 

수백편이 넘는 희곡을 읽었고

 

연극이론과 비평 등을 한양대와 한예종을 넘나들면서 공부했지만

 

그 수많은 희곡들 중

 

최고의 희곡은

 

무조건 갈매기였다.

 

 

 

 

체홉의 갈매기는

 

청춘에 대해 탐구한다.

 

중년인 아르까지나와 뜨리고린 은

 

청춘인 니나와 뜨레쁠레프와 대립되는 삼각형을 이루지만

 

그 구도 속에서 조차

 

빛나는 것은

 

청춘이다.

 

 

 

 

늙고 소멸되어 가는 존재들은

 

오히려 더욱 강렬한 욕망으로

 

젊음을 탐하기 때문이다 ( 아르까지나, 뜨리고린 )

 

 

 

 

체홉이 바라보는 청춘의 특징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작품 속 청춘에 대한 묘사들은 다음과 같다.

 

 

 

불완전연소 (마치 갈매기 1막, 뜨레쁠레프의 불완전하게 연소되는 공연처럼)

 

내일을 모름

 

막연함

 

고통스런 축소

 

자기위안

 

질주

 

모순

 

방황

 

욕망

 

탐구

 

등등이다.

 

 

 

 

청춘을 두고 흔히들

 

찬란하다. 빛난다. 아름답다. 등의 용어를 쓰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

 

뒤돌아 서서 보는 청춘이다.

 

 

질주하는 청춘의 오늘에서는

 

그런 단어들이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

 

승화된 자가

 

여유롭게

 

뒤를 돌아볼 때

 

느낄 수 있는 청춘에 대한 정의이지

 

 

청춘 그 자체는

 

고통이 뒤따른다.

 

체홉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시한번 위의 사진들을 보라.

 

 

내가 언급한

 

청춘의 특징들이 사진의 결 속에서

 

느껴지는가?

 

 

작가인 매긴리의 청춘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나는 그림을 그리다 시를 쓰고, 시를 쓰다 디자인을 전공했고,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사진을 찍다가 사진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반드시 실수를 한다. 나는 그걸 포착하려고 한다'

 

 

 

'내가 젊은이들과 주로 작업을 하는 이유는...

 

실험적이고, 모험적이고, 반항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어느 시대든, 어떤 환경이든 모두 다 고통스럽다.

 

어떤 삶을 살지 아직 결정을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젊었을 때, 나 역시 젊음, 그 자체가 힘들었다.

 

 

모든 좋은 작품엔 고통이 동반된다.

 

자연스럽게 내 청춘의 고통이 작업을 통해 표출되고, 그럴수록 나 자신이 강해지는 걸 느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작품 또한 강해지면서

 

비로소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

 

 

(2013년 11월 대림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그의 사진 전시전을 직접 찾은 맥긴리와의 인터뷰 직접 인용)

 

 

 

 

 

청춘과 고통과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보다 더 명쾌하게 정리한 글을 본적이 있는가?

 

 

 

청춘은 고통스럽다.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정되어 있지 않기에

 

본질상 불안하다.

 

불안하기에

 

추구한다.

 

불멸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직 온전히 연소되지 않은 질주 (추구) 는

 

가끔, 사고를 부른다.

 

그래서

 

청춘은 위태롭고 위험하다.

 

 

 

 

 

예술의 속성 또한

 

동일하다.

 

 

 

예술 또한 고통스럽다.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규정되지 않기에

 

본질상 자유롭다.

 

자유롭기에

 

수많은 책임이 뒤따른다.

 

세상엔 공짜란 없으니까

 

반드시 그 자유에 대한 혹독한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예술가도 불멸을 추구한다.

 

아직 채 연소되지 않은 허무는 (인간은 본질상 불완전하며, 사회도 불안정스러우며, 인간의 존재 또한 그러하므로)

 

거의 대부분 사고를 부른다.

 

그래서

 

예술가는 때때로

 

단명한다.

 

 

 

그러나

 

청춘과 고통과 예술의 진짜 상관관계는 따로 있다.

 

 

그것은

 

족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자취를 남기는 것

 

또는 흔적을 남기는 것

 

그것이  청춘과 예술의 본질적 공통점이다.

 

청춘은 인간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말하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과정성을 가진다.

 

과정은 곧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청춘은 결과로서 존재하지 않기에

 

가치가 있다.

 

 

청춘의 불완전 연소는

 

그의 인생 전체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큰 방황은 때로 큰 사람을 낳기도 한다.

 

 

터널을 질주하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듯이

 

 

청춘과 예술에서의 고통은

 

승화 된다는

 

매력이 있다.

 

 

맥긴리는

 

그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이 단지 고통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아무런 자취가 남겨지지 않은

 

쓸모없는 경험이다.

 

 

그러나

 

그 어떤 고통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통은

 

없다.

 

 

고통의 흔적은

 

더 높은 인식의 원천으로

 

우리 삶을 승화시킨다.

 

 

맥긴리는 그걸

 

강해진다라고 표현했다.

 

 

강해진다고 하면

 

근육운동이 생각난다.

 

근육운동이란

 

 

인위적으로 근육을 찢는 것이다.

 

찢고

 

아물고

 

찢어지고

 

아물어지는

 

그 과정을 반복하며

 

근육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

 

바로 근육운동이다. (흔히 말하는 헬스)

 

 

그렇다면

 

당연한 결론을 낼 수 있겠다.

 

 

고통은 바로

 

성장의 원천이라고 말이다.

 

 

 

 

네가 청춘의 시기라면

 

너 자신을 돌아보자.

 

 

너는 고통스러운가?

 

 

상황이 고통스러운가?

 

마음이 고통스러운가?

 

둘 다 인가?

 

 

그렇다면

 

눈을 떠라 !

 

 

청춘은 곧 고통이란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고통스러운게 당연한데

 

고통스러운 것을 고통스러워하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아닌가?

 

 

 

고통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이다


너의 선택이 가치를 결정한다

 

 

 

 

 

근육운동을 하면서 몸이 힘든 것을

 

가슴이 터질듯이 아파하고 좌절하는자 있는가?

 

때론 그 고통을

 

우린

 

즐기기도 하는 것 아닌가?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은 쾌감을 준다.

 

진짜 쾌감이 있는 것은

 

고통이 수반된다.

 

 

그러나

 

맥긴리의 언급처럼

 

반드시 그 고통은

 

무언가로 승화되는

 

원천이 되어야 마땅하다.

 

 

 

고통이 고통 그 자체로 끝나버리는가?

 

아니면

 

고통을 통해 무언가를 승화시키는가?

 

청춘의 기로는

 

여기에 있다.

 

 

너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특히, 청춘이면서 예술가이기 까지를 욕망하는 너라면

 

선택은

 

어디에

 

있어야 하겠는가?

 

 

 

예술가는 어쩌면 변태이다.

 

-고통을 가까이 해야하는 운명이란 점에서 말이다.

 

 

 

 

 

 

 

 

 

나의 붉은 노트

 

 

멈출 수 없었던, 의지와 맹목과

 

다르게 느껴질 수 없는 그 어떤 시기,

 

그, 청춘이라 불렸던 눈 멀고 환한,

 

그토록 빨간 거짓말을 새파란 색으로 적어가는

 

순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청춘

 

 

다음은 없다. 이것이 청춘에 대한 합당하고 유일한 정의이다.

 

온 밤을 뒤져 단 하나의 감정을 찾아보지만,

 

나는 언제나 그럴 듯하게 실패할 뿐.

 

부정을 위한 부정, 생애를 위한 생애.

 

가치와 기준 따윈 없다. 그러니 가르치려 들지 말라.

 

천년의 바위가 되느니, 찬란한 먼지가 되겠다.

 

 

 

 

- 현재 대림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라인언 맥긴리의 전시회장에 적힌 시

맥긴리와 유희경 시인과의 협업을 통해 쓰여진 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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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중요한 건 전부 딜레마다.

 

정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중에 어려운 일은 없다.

 

공기가 우리 삶에서 카르티에 시계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만

우리는 공기를 간절히 원해서 갖지는 않는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중요한 것들은 의외로 고민하지 않고

사소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문제들중

중요한 순간엔

언제나 딜레마가 있다.

 

그러므로 딜레마 적 상황을 만났을 때

선택을 지나치게 고민하지 마라.

 

선택보다 중요한게 더 많음을 기억하고

 

딜레마적 상황을 받아들이라.

 

이 길이 아니면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되었을 그때

네가 생각치도 못했던 기회가 열리고

 

네가 그렇게도 간절히 원한 그 길이

사실은 너를 고통스럽게하는 선택이 될수도 있음을...

 

답이 나오기 전엔

답을 통해 고민하지 마라.

 

실체보다 언제나

생각과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우리를 파멸시킨다.

사실 실체는 아무것도 아닌데

생각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실패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걱정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판단을 믿고

끝까지 그 문제의 실체만을 해결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생각이 우리를 죽인다.

 

딜레마는 해결할 수 있는게 아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딜레마에서 고민하지말고, 선택보다 중요한 확신을 갖고 전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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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을 쓰고 싶나?

 

라고 누가 물어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 보이는 글을 쓰고 싶다.

 

라고 대답할 것 같다.

 

 

 

나는 작가를 꿈꿨다.

 

그래서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석사까지 마치고

 

작가의 꿈을 위해

 

한예종 전문사에 비평전공으로 들어간 것이다.

 

학교에선 비평공부보단

 

서창과에서 소설쓰고 시쓰는 일에 더 빠져있었다.

 

글을 계속 쓰다보니

 

내게 가장 맞는 분야는

 

에세이란 걸 알게 되었고

 

 

 

강가에서 조약돌을 하나씩 던지는 심정으로

 

매순간마다 꾸준하게

 

지난 4년동안 에세이를 써오고 있다.

 

그렇게 써온 에세이가 거의 500개가 넘게 이 블로그에 쌓여있다.

 

이 세월의 더께가

 

모두 나의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고

 

그것이 유의미한 결과를 낳을 기대를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에

 

(그랬다면 당장 네이버 블로그로 고고~~)

 

그저

 

작은 카페

 

깃든 사랑이야기 처럼

 

스토리가 있는

 

작은 공간

 

커피 향이 나는

 

카페처럼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공간이란 단어는 참 아름답고 매력적인 말이다.

 

 

 

내 글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눈

 

이 달라지게 하는

 

그런 글이길 원한다.

 

 

근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하는 글은

 

어떤 변화를 주는 글인데

 

그것이 감동일 수도 있고

 

또는 인식일수도 있다.

 

깨달음같은 것.

 

그러나

 

이 처절한 인생의 실체를 직시하게 하는 것 또한

 

세상을 보는 눈과 관련있다.

 

 

예를들어 김기덕의 영화, 특히 뫼비우스는

 

나는 보고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글이란 말은

 

나이브하게

 

감동적인 글이나

 

자기계발적인 글을

 

남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대한 처절한 인식과 통찰이 있을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리지는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이제 겨우 대학나오고 대학원나오고...30대중반.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완숙한 글이 나오는 시기는 60대 중반으로 보고있다.

 

 

30년동안

계속 글을

 

쉬지않고 써나갈 것이다.

 

30년은 쓰고나서

 

그 다음에

 

내가 좋은 글을 쓰는지 아닌지를

 

그때가서 평가해 보고 싶다.

 

 

늙을수록 완숙해진다는 것

 

너무 멋지지 않나?

 

늙음이

기대된다.

 

늙어가는게

 

너무좋다.

 

내 글이 완숙해질 수 있도록

오늘도

 

노력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글을 쓸 때이니까.

 

지금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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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생존에 대한 절박함' 이라는 걸 느꼈다.

 

쓰지 않으면

 

죽을 것을 확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공한 학원원장'으로 늙어죽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에서 오는 것이다.

 

내 인생이

 

성공한 학원원장으로 멈추기엔

 

너무나

 

많고 많은...

 

말이

 

있다.

 

 

 

가슴 뛰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질문이 이것이다.

 

'왜 너는 예술을 하고 싶어하나?'

 

 

 

대답은 간단하다.

 

절박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토록 절박한가?

 

예술은 창작인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인가?

 

글쎄

 

나는 절반이라고 본다.

 

 

 

나머지 절반은

 

분출이다.

 

 

싸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것이

 

예술의 이유이다.

 

(똥과 정액과 땀...이 3가지 단어속에 예술의 의미가 다 들어있다)

 

 

나의 가능성

 

나의 마음 속

 

나의 삶

 

 

분출이 동기이고

 

생산은 그 결과인 것이다.

 

 

 

.

 

 

나는 두렵다.

 

내 인생이

 

평범해지는 것이 두렵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두렵다.

 

 

그저 안락함에 멈춰있는 것이

 

많이 두렵다.

 

 

그저 안주하기엔

 

내 안에는

 

너무나 많은

 

길들이 있고

 

꿈들이 있고

 

아직 떠나지않은

 

여행 배낭 속엔

 

끊지않은 티켓과, 아직 뜯지하지 않은 CD와 신지 않은 새 운동화...

 

가득하다...

 

 

.

 

예술을 하는 이유,

 

우리가 공연을 보는 (창작하는) 이유,

 

영화를 보는 (창작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우리 마음 속엔

 

아직

 

떠나지 않은

 

여행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여행을 떠나지않고

 

현실 속에 묻어두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억울해 하기 때문이다.

 

 

.

 

 

이것을

 

아마

 

최백호는 '낭만'이라고 불렀나보다.

 

 

 

 

날마다 모험하는 이유는

 

그것이

 

낭만 적이기 때문이다.

 

 

.

 

사랑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낭만적이기 위해

 

사랑을 선택한다.

 

 

현실 앞에서 평범한 선택을 하더라도

 

그 속에서 또다른 낭만을 찾기위해

 

애를 쓰는게

 

사랑 아닌가?

 

 

그러므로 낭만과 사랑과 모험은

 

서로

 

통하는 단어이다.

 

 

.

 

나는 학원원장으로 늙어죽기 싫어서 글을 쓴다.

 

그리고 예술 한답시고 감성팔이만 하는 글을 쓰고 싶지않고

 

더 치열하게 훈련받고 싶어, 박사학위 과정에 도전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유행가의 공통된 주제

 

수많은 시인들의

 

창작의 이유가 되는

 

그 숭고하고

 

중요하고

 

우리 삶에서 가장 낭만적인 그 단어

 

'사랑'

 

이란 단어 앞에서

 

현실과 등가교환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을 지키기 위하여 -

 

사랑하고 있다.

 

 

 

.

 

아마

 

쉽지 않은 사랑을 선택한 그 모든 여자

 

혹은 남자

 

(불륜이나, 60대와 30대의 만남도 그렇고, 국경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나...그 어떤 형태라도)

 

들은

 

아니면

 

지극히 평범한 사랑을 하고 있는 남녀라도

 

그들이

 

사랑하며 느끼는 곡예를 기꺼이 감당하는 이유는

 

곡예하며 추락하는 것이 추락이 아니라

 

곡예조차 하지 않고 주저않는 것이

 

더 큰 추락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 아닐까?

 

 

 

 

이 선택 때문에

 

내 삶의 모든 것이 상실되더라도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 마저 붙들지 않고는

 

'그렇게 살아서는 아무 의미없음'이라는

 

더 큰

 

존재적 추락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 모든 이야기들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그것은 결국 '낭만'

 

이다.

 

 

 

 

 

그래서 모든

 

예술가들은

 

필연적으로 낭만적이다.

 

표현의 방식이 리얼리즘적이라 해도

 

그 속엔 낭만이 있을 것이다.

 

 

낭만은 모험이고

 

그래서 사랑은 낭만적인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인 낭만...

 

나는 예술이 낭만을 극복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예술에 있어 낭만성을

 

혐오했으나

 

 

 

그것은 낭만성에 대한 오해였다.

 

낭만적이기에

 

예술을 한다.

 

 

낭만적이기에 예술을 하지만

 

표현하는 것은

 

낭만적이기만 해선 안되는 것 -

 

 

그래서

 

모든 예술가들은 모순을 안고 사는 것이다.

 

 

 

낭만에서 시작하지만, 또 낭만을 고통스럽게 극복해야 하는 것 -

 

 

그것이 또 하나의

 

예술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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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입시가 한창이라

 

특히 내일 서울예대 수시 시험보는 학생들이 많아서

 

살아도 산게 아닌 것처럼 살고 있는데 (자고 일어나 수업하고 자고 일어나 수업하고...)

 

그저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죠. 잘하고 싶은데, 몸은 하나고...더 좋은 시스템이 갖춰지기위해선 아직 갈길이 머니.

 

 

 

 

근데 갑자기 왼쪽 조회수를 봤는데

 

오늘 40만을 돌파했더라구요 !!

 

이건 네이버 블로그였으면 400만도 넘었을 정도의 엄청난 조회수죠.

 

티스토리라는 한계도 있고

 

사실 한번도 이 블로그가 어디에 알려진 적이 없고

 

사실 일기 비슷하게 시작한 블로그인데요.

 

너무너무 놀랍고 뿌듯합니다.

 

하루 몇백명씩 꾸준히 들어와서

 

어느덧 40만 조회수를 기록했네요.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 시작해서 이렇게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이네요.

 

자식을 커가는 모습을 보는게 이런 심정일까요?

 

화초 하나도 죽이지 않고 풍성히 살리려면 참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하는데

 

40만이 다녀간 이 블로그가

 

이처럼 꺼지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기적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3년동안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저도 참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

 

이 블로그를 통해서

 

너무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구요. (그만큼 실수도 많이 했고, 상처도 많이 줬습니다. 맘과는 다르게...)

 

또 이 블로그를 통해서

 

제 생각과 실력과 방향성을 매일 매일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었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40만이 4000만이 될때까지

 

그 어떤 연극영화와 관련된 답변이라도

 

학원과 아무 상관없는 비영리적인

 

너무나 사소한 답변이라도

 

반드시 성실하게

 

제 일처럼 답변하고 고민하고 상담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왕 시작한 일

 

정말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최선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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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1 15:45 about, intheatre

고통의 강

 

 

 

 

오늘 우연히 인터넷 자료를 검색하다가 진시황릉의 비밀에 대한 자료를 봤다.

 

우리가 알고있는 그 유명한 병마상 들은 진시황릉의 비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부대시설에 불과하다고 한다.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진시황릉 진짜 건물안에는 얼마나 대단한 것이 있을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한 과학적 자료에 의하면 수은이 흐르는 인공강과 호수, 그리고 온세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작은 소우주가 진시황릉의 본진 아래엔 빼곡히 들어차 있으리라는 것이다. 병마상이 그 정도 위용이면 실제 진시황의 무덤 자체는 얼마나 화려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진시황의 위용보다는

 

그 시대 사람들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컷을까를 생각했다.

 

진시황릉과 만리장성 등에 동원되여 평생을 노동에 징집된 사람들... 그러나 실상을 알면 오히려 그런 부역이 그 당시 사람들에겐 하나의 일자리 였을 수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헛되다는 거다.

 

인생은 고통이다. 고통의 연속이다. 기쁨보다는 압도적인 슬픔이 넘친다.

 

 

내 삶을 돌아봐도 정말 그렇다.

 

고통이 월등히 많다.

 

인내하고 때론 분노하고 때론 견디지만

 

진시황릉의 무덤 아래에 흐르는 수은 강처럼 우리 인생도 고통의 강에 비유할 수 있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작가 중에 헨리 나우웬이 있다.

 

내 기독교적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세계 최고의 신학자이다.

 

예일대학의 유명한 심리학교수 자리를 갑자기 박차고 나와, 캐나다 데이브레이크라는 장애인공동체에서 아담이란 이름의 중증장애인 단 한사람을 돌보며 남은 평생을 보냈다.

 

주변의 학문적 동료들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당신처럼 이렇게 훌륭한 학식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나눠주는 교수의 자리에 있는 것이 더욱 가치있는 일이 아닌가...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다.

 

그러나 나우웬은

 

기독교 서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예수의 생이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단 한 사람으로

단 한 곳을 향해

끊임없이 축소되는 삶이었다고

 

작은 곳에 심기운 씨앗의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가 돌보던 중증장애인 아담이 죽자

얼마지나지 않아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나우웬도 서거하게 된다.

 

(헨리 나우웬의 저서 <아담>의 내용)

 

 

나우웬의 삶을 보며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본다.

 

학원을 경영하면서 언젠가부터

 

내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끊임없는 확장의 욕구에 나를 내맡겨버린 것이 아닌지

 

돌아본다.

 

계기가 필요하다.

 

 

들풀 한송이, 바람냄새 한번에 마음이 씻기우는

 

진짜 영혼의 치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도 학생들에게

 

무언가 살아있는 울림을 전해주지 않겠는가...

 

 

 

글의 시작에서

 

삶은 고통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했다.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매료되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은 인생에 대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인생의 은유이다.

 

그래서 그런지

 

스토리는

 

어떤 플롯이라도

 

고통이 이끌어간다.

 

문제적 상황이 이끌어간다.

 

예를들어 7번방의 선물을 보자.

 

지능이 낮은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고 (역 아이디어)

 

거기서 꽤 괜찮은 동료들을 만나지만

 

혼자 남겨진 아이가 걱정된다 (역 아이디어)

 

기적적으로 아이를 감옥에 데려오게 되지만

 

결국 아이와는 이별해야 한다. (역 아이디어)

 

열기구 장면을 통해 멋지고 환상적인 이별을 한다.

 

그리고 위기와 절정.

 

영화는 급속도로 진행되는데

 

아버지가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당하게 되는 것 (가장 큰 역 아이디어)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즉 절정에서

 

검사로 성장한 아이가

 

눈물로 아버지의 명예를

 

모의법정을 통해 회복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장면은 세일러문 장면 (결말)

 

 

7번방의 선물 스토리를 볼때

 

내가 (역 아이디어)라고 써 놓은 장면들이

 

바로 고통이다.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주도적 아이디어 (지능이 낮은 아버지지만 아버지의 진실되고 숭고한 사랑이,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사형-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성장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입증되게 된다)

 

에 반대되는 사건. 주도적 아이디어를 방해하는 사건인 것이다.

 

이야기의 궁극적인 목적달성을 방해하는 사건을 우리는 역아이디어라고 한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것은

 

오로지

 

역 아이디어 뿐이다.

 

진짜다.

 

오직 역 아이디어만이

 

스토리를 이끌어가고, 발전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만') 이라는 단어이다.

 

 

스토리는 인생이라는 비유에 대입해보면

 

오직 고통'만' 이 인생을 이끌어가고 발전시키고 성장시킨다는 비약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풍요롭고, 모든 일이 순탄한 인생에는 고통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풍요로움, 순탄함, 여유로움 자체가

 

고통이 된다.

 

그러한 종류의 고통을 우리는

 

'권태'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러니 인생은 고통이 맞다.

 

인생을 이끌어가고

 

풍요롭게 하고

 

살찌우는 것도

 

고통이 맞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헨리 나우웬은

 

고통이 있을땐

 

춤추하자고 제안한다.

 

그 고통의 깊은 곳에서

 

만나는 실존적 자아 그리고 기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리스도를 만나는

 

진짜 믿음의 정수는

 

고통의 밑바닥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헨리 나우웬 <춤추시는 하나님>의 내용)

 

 

 

 

7번방의 선물에서 역아이디어를 삭제해보자.

 

아빠는 지능이 낮지만 착하다.

 

아이는 그런 아빠를 좋아한다.

 

아이는 잘자라 민족사관학교를 간다.

 

아빠도 열심히 일해 구청 최우수 주차요원 상을 수상한다.

 

아이는 더 잘자라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다.

 

아빠도 더 열심히 일해 전국모범아빠상을 받는다.

 

아이는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최연소 검사가 된다.

 

그리고

 

7번방의 선물의 마지막 장면.

 

아이와 아빠는 서로를 축하한다.

 

 

생각해보라.

 

당신이라면 위의 영화를 보겠는가?

 

위의 이야기가 아무런 감동이 없는 이유는

 

역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인생에 대한 은유라고 한다면

 

인생을 이끄는 힘도

 

고통이다.

 

 

물론 고통이 당시에는 힘들다.

 

피하고 싶다.

 

그러나 기억하라.

 

아무런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도 인간은 고통을 경험한다는 것을.

 

오히려 더 심각한 실존적 고통

 

권태를

 

경험한다는 것을.

 

 

그러니

 

고통이 없는 삶을 꿈꾸지 말고

 

나우웬처럼

 

고통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자.

 

 

고통 속에서

 

예술의 감각과

 

삶의 통찰과

 

인생의 서사를

 

빛나게 하자.

 

 

그게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힘들어서

 

이런 글도

 

쓸 수 있으니

 

어찌보면

 

참으로 고맙다.

 

삶이여.

 

고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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