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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귀천이있다 서울대 대나무숲글을 읽고about, intheatre 2020. 2. 18. 04:33
이 글을 어디선가 우연히 읽게되었는데
이 글이 몇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여기저기서 퍼나르고 있는걸 보아 상당히 많은 논란을 가져온 글인 것 같다.
이 글에 대한 반박에 겸해서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직업의 귀천이나 가치의 차이에 대해 짧은 글을 써보려한다
직업에 귀한 직업과 천한 직업이 있을까?
위 글을 쓴 사람은 교수와 청소직원에 대해 암묵적인, 귀천이 존재한다고 하며
특히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
그리고 일용직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
으로 대표되듯
귀한 직업과 천한 직업이 있을수 밖에 없다며,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 쓴 사람은 직업에 대해 지극히 한국 특유의 유교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걸로 보인다.
사농공상이라고 흔히 말하는, 문과 관련된건 귀한 일이고, 노동과 관련된 일은 천한 일이라는 유교적인 계급관념말이다.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와
일용직 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을 나누는 기준은
문과 관련된 일과
노동과 관련된 일로 쉽게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글 속에는 그런 고정관념이 기저에 깔려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그냥 윤리적인 지향점이거나 그게 올바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시대가 인정하는 직업에 대한 가치는 계속해서 바뀌기 마련이고
한편으로
귀천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건'의 문제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평가하는 직업적인 가치는 그 시대에 따라 매우 급변하며 그러한 변화는 오늘날 특히 극심하다.
예전이라면 깍새라고 부르거나, 요리사라고 부르는 직업들이
수십개 이상의 프랜차이즈를 가지고있는 헤어디자이너로, 또 연예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스타 쉐프로 불리는 걸 바라본다.
위 글쓴이가 언급한 변호사, 의사가 부럽지않은 헤어디자이너와 쉐프들이 즐비한게 오늘날의 변화된 직업적 기준을 잘 드러내준다.
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에서 두각들 나타낸다면, 사회는 그 사람의 실력과 능력을 존중해주는 다양성과 전문성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는걸 알 수 있다.
변호사도 영업을 잘하거나, 전관출신이 아니면 예전같지않게 고전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무수하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글쓴이가 예로든 교수야말로 오늘날 가장 몰락한 직업군중 하나이다. 학생수가 급감해서 일부 인서울 대학의 교수들외 특히 상당수 많은 대학교수들이 학생유치를 위해 영업까지도 병행하고 있는걸 흔히 볼 수 있다.
교수직이 급락중이라는 증거는 과거 신의직장이라 불렸던 대학교교직원의 인기가 급락한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학들이 수입이 줄어드는 바람에 교직원들을 많이 뽑지않고, 또 교직원들의 처우나 근무환경이 안좋아지게되서, 교직원좋은 날 다 갔다는 푸념을 실제 교직원들에게 많이 듣는다.
이렇게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 시대가 선호하는 직업의 가치는 변하기 마련이고
어쩌면 가장 극심하게 변하는게 직업의 가치가 아닌가 한다.
지난 50년간의 변화보다
앞으로의 10년의 변화가 더 극심할 것이다.
이제는 변호사든 의사든 노동자든 배달원이든, 직업이 무엇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잘읽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사람들. 또 변화를 통해 새로운 직업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로 더더욱 급속하게 진입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일용직근로자나 청소직원이 가치를 덜 인정받는건
그 직업이 원래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직업에 대해 사회가 정당한 '조건'을 주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폄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호주와 유럽등을 다니며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건
그 사람들이 모두가 다 의사, 변호사, 화이트칼라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어떤면에선 화이트칼라직업을 좀 덜 남성적이고 덜 엑티브한 직업으로 오히려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것도 봤다.
운동잘하고 섹시한 몸을 가진 배관공같은 기술노동자가
실제로 여성들에게 더 인기가 있고 마초적인 매력을 풍기는걸 많이봤다.
기술직노동자가 섹시하고 인기가 많을 수 있는건
그 기술직노동자도 충분한 보상을 받는 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호주의 기술직노동자에게 화이트칼라 직업을 줄테니 하라고 해도
싫다고 할 것이다.
의사가 연봉은 높지만
공부를 많이해야하고 자신에게 긴시간 투자를 많이해야 한다면
기술노동자를 선택하면 몸쓰는 일이 자신은 좋고, 긴시간 투자안하고 어린나이에 빨리 직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고, 야외에서 재밌게 일할 수 있고
그러면서 본인 기준으론 충분한 돈을 받을 수 있기에
기술노동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의사와 노동자 중에 선택하라고해도 노동자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의사가 3억연봉을 받아도
기술노동으로도 한 1억만 받아도
기꺼이 기술노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게 적성에 맞고
체질에 맞다면 말이다.
길게투자하지않고 빨리 직업전선에 뛰어들고 절대적인 소득자체는 비교적 적지만 충분히 가족을 부양하고 자기 삶을 여유있게 가꿀 수 있는 적절한 소득이 주어진다면 몸쓰는 일을 기피할 이유가없다.
교수나 의사가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많은 소득을 받는것이야 당연하지만
좀 더 공부에 투자하고 오랜 경쟁에 노출시켜 교수나 의사같은 직업군을 선택하는가는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이지 한줄로 세운 한줄짜리 기준아래 더 잘난 사람과 상대적으로 못난 사람의 줄세우기가 아닌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절대로 개인의 노력을 무시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의사가 3억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공부도 많이했고 투자도 많이했고, 경쟁도 치열하게 통과했으니
의사가 3억버는게 맞다.
그게 옳은 사회다.
그러나
한편으로
좀 공부 길게 안하고
야외에서 활동적으로 일하고
좀 더 남자답게 몸을 쓰고
기술을 배워서 여러 사람들에게 실용적인 도움을 주기로 선택한 사람도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산다면
그 사람들이 한 1억 정도는 벌 수 있다면 ( 1억을 주라는게 아니라, 의사가 3억이라고 했을떄 한 3분의 1정도를 벌 수 있다면 이란 의미로)
그 사회는 정말 좋은 사회라 생각한다.
직업은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
공부를 잘했고 오랜기간 자신에게 투자해서 많은 연봉을 받고 높은 직위를 갖는 것도 존중되어야 하고
그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해야 하며
오히려 사회가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성취를 이뤄나갈 수 있도록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격려하고 보상해줘야 한다.
한편으로
공부엔 소질이 없지만 또다른 자신의 길을 찾아
사회 구석구석에서
고귀한 소금같은 일을 해주는 사람이 되는걸 선택한 이들 또한
단순히 '직업적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글쓴이가 말한 가치가 덜한 것으로 나열한 일용직 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 또한
너무나 사회에 필요한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택배서비스를 생각해보면 쉽다.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있는 한국택배서비스의 이면엔
하루 배달 300건, 집하 약 300건을 맞춰야 겨우 몇백남기고 거기서 기름값이나 온갖 운영비를 다 제하고서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택배관련노동자들의 심각한 처우문제가 있다.
이렇게 일을 시키고 이렇게 일을 해내야만 유지되도록 만들어진 환경에서
이 정도의 소득밖에 주지않기에
택배노동이 귀한 일로 취급받지못하고 있는거다.
택배노동 자체가 귀하지않은 일이 아니라
심각한 노동불균형이 택배노동을 천한 일로 폄하시키고 내모는것이다.
반면 대학교수의 경우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한국 대학교수들이야말로 세계 최저의 투자대비 효율성을 자랑하는 직업군이 아닌가 한다.
하루빨리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야 되는데
별다른 노력없이도 일단 자리만 차지하게되면
수십년동안 편하게 먹고살 수 있게되니
그 직업이 귀한 직업이 되는것이지
원래부터 교수가 귀한 직업인건 아닌것이다.
앞서 택배서비스의 처우문제를 이야기했을때,
아 그럼 택배배달부도 돈 팍팍주고, 교수도 팍팍주면 당연히 모두가 좋지, 그러나 그게 현실적이냐?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교수이야기를 한거다.
경쟁력이 없는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비효율성을 없애고
그 비효율성이 실제로 경쟁력을 갖춘 직업군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직업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 어디서든 택배배달부보다 대학교수가 더 좋은 직업으로 평가받는건 당연하다.
길게 공부를 해야하고, 좋은 대학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춰야 대학교수를 할 수 있으니까.
(한국은 전혀 그렇지않지만)
세계적인 석학이 단순노동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건 오히려 불평등일테니까
그러나 그건, 투자대비 적성의 문제일뿐
본질적으로 직업적 귀천의 문제는 아닌것이다.
특히 더 안타까운 건
이런 사회적 구조속에서
너무 쉽게 사농공상적인 태도를 학습하고 받아들여버리는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더더욱 안타깝다.
왜 사회가 강제로 부여한 말도안되는 기준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버리는가?
왜 모두가 대학을 억지로 가야 하는가?
전세계에서 대학진학률 1위라는건 자랑이 아니라 비정상이고 기형이다.
그만큼 이 사회가 아직도 사농공상의 계급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이지 않은가?
대학 안가도 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이 사회는 너무도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비교하고 줄세우고 있다.
남자는 어째야되고 여자는 어째야되고, 결혼하려면 뭐는 해야되고, 직업은 어때야되고, 외모는 어째야되고........
숨막히는 비교와 획일적 기준과 그것을 강요하는 문화야 말로
이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이다.
별로 이상적이고 복잡하고 어려운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가치를 인정해주라는건 복잡한 이념적인 어떤 지향점이 아니다.
그냥
'정당한 대우'만 해주면 된다.
일용직노동자도 충분히 만족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고 노후를 생각할 수 있는 대우,
대리운전기사도
청소직원도.
글쓴이가 언급한 청소직원의 경우가 그 증거다.
구청에서 공무원으로 청소직원을 인정해주고, 노동의 안정성을 주고 공무원의 대우를 해주니
청소부가 인기직업이되어 실제로 대학졸업자뿐만아니라 석사이상 명문대출신들도 청소부를 지원했다는 기사를 우리는 본적이 있다.
청소부라서 가치가 없는게 아닌 것이다.
사회가 그만큼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에
그 직업이 천함을 억울하게 '덮어쓴' 것일 뿐이다.
청소부하는데 월 700주고 정년까지 일하고 연금도 준다고하면
하겠냐 안하겠냐?
개인적으로
나는
한다.
지금하는 일 때려치고
지금 바로!
글쓴이 처럼 귀한 사람으로 귀한 가치를 억지로 인정해주고 '에헴'하면서 존중을 억지로 쥐어짜낼 필요없다.
돈을 많이주면 된다.
가치를 인정해주는게
존중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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