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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자유about, intheatre 2020. 2. 2. 04:31
진짜 자유는 구속에서 온다.
자유에 대한 착각이 때론 우리 삶을 그르친다.
자유에 대한 올바른 생각만 정리해도 변화된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떠한 면에서 그런지 몇가지 유형을 나눠서 이야기해보려한다.
1. 훈련
가장 먼저 진짜 자유는 엄격한 통제에서 온다. 그것을 우리는 훈련이라고 부른다.
예술을 하는 우리에겐 특히 절실히 와닿는 단어일거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소개해서 유명해진 개념인 '일만시간의 법칙'이 바로 그러한 좋은 예이다.
진짜 탁월함은 오랜 통제와 훈련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런 면에서 엄격한 훈련 속에서
진정한 자유함을 맛볼수가 있다.
피아니스트가 엄격한 훈련을 통해 연주 속에서 자유함을 맛보고
축구선수가 오랜 훈련 속에서 공을 컨드롤할 자유를 맛보는 것과 같다.
자유에도 수준이 있다는 걸 아는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멋대로 행동하고 아무런 제약없이 살아가는 면에서의 자유는 방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장 수준이 낮은 형태의 자유이다.
왜냐하면, 낮은 자신의 수준이 전혀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업그레이드가 되지않았는데, 자유롭게 인생이란 맵을 헤집고 다녀봐야 그게 그거다.
더 깊은 던전을 들어가기위해선 몬스터를 잡고 경험치를 쌓는 훈련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기위해
역설적으로 자유를 제약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훈련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입시를 대하는 태도도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더 재미가 있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학교가 경쟁이 치열하면, 그래서 더 도전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경쟁이 치열하다는건 그만큼 내가 도전할 여지가 더 있다는 것이며, 나를 성장시켜줄 여지가 더 크다는 걸 증명한다.
이러한 경쟁이 싫어서 쉬운 길을 너무 쉽게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 쉬운 길. 빠른 길이라 포장하는 길은
항상 가장 멀리 둘러가는 길일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가장 힘들어보이는 산이
가장 빨리가는 지름길일 경우가 많음은 수많은 전쟁의 역사가 증명해왔다.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 초기에 강대국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대담하게 진격. 최단기간을 쉬지않고 달려가 점령해버려
전세계를 충격속에 빠뜨려버린 것이 이를 잘 입증한다.
아무도 거대한 강대국의 수도 한복판으로 곧바로 진격해버리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 충격은 거대했다.
힘겨운 목표를 만난다면
어찌보면 가슴이 뛴다.
그 목표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성장시켜주고
나를 더 놓은 단계로 이끌어줄
진정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2. 친밀감
그런데 이러한 자유의 역설은 관계에서도 온다.
관계역시 구속에서 진정한 자유가 온다는 걸 아는가?
진정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를 관계속에서 구속함으로
진짜 친밀감을 맛본다.
사람들 사이의 진짜 깊은 관계는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맛볼수가 없다.
어찌보면 사랑이란
너의 자유와
나의 자유를
서로에게만큼은 양보하고
서로에게 단단히 구속하는 것과 같다.
끼르띠에의 유명한 팔찌인 러브팔찌는
까르띠에 드라이버로만 풀 수 있다.
손으로 열어서 풀수가 없다.
어쩌면 서로에게 관계적 족쇄를 채운다는 상징이 들어있다.
막 시작한 가슴뛰는 연인들은
이러한 구속을 슬픔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기에 비싼 돈을 주고 이 팔찌를 구입하는 것이 아닐까?
진짜 관계적 풍성함, 관계적 친밀감 역시
구속에서 온다.
수많은 사람을 의미없이 만나면
오히려 그 n분의 1만큼 내 삶의 풍성함이 축소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의미없이 상대하는게
힘든 일이라 우리는 감정노동이라고까지 부르지 않은가?
사랑의 관계도 이와같다.
황제가 수천명의 후궁을 뒀다면
그건 수천배의 친밀감을 나눈게 아니다.
어찌보면 수천분의 1의 친밀감속에서
불행하게 허덕인 것은 아닐까?
나 개인적으로는 수천명의 연락처를 지우고,
페이스북 수천명 친구들을 끊고 난뒤로
주변 지인들은 아날로그적으로
약속잡고 얼굴보고 만나서 이야기하는걸 선호한다.
나는 일부러 관계를 축소했지만
축소되었기에 더욱 관계적 풍성함을 누리고 있는건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다.
3. 사명과 헌신
몰입속에서 훈련속에서 자유가 있다고 말했고
이러한 구속이 관계적으로도 적용될 수 있고 그 관계적 적용이 사랑의 관계에서 또는 주변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풍성한 관계로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구속의 자유적인 측면은
사명과 헌신의 영역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내가 가야할 길
내 목표
내 사명
너무 거창한 사명을 말하는게 아니다.
사명이란 단어는 거창한 단어가 아니다.
아주 작게
세탁소를 운영해도 그 속엔 사명이 있을수가 있다.
작은 라사를 운영하며
다림질 하나에도 사명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장인이라고 부른다.
그런 장인들이 많은 사회가
튼튼한 사회이고, 기초가 튼튼한 사회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가르칠때 사명을 가질 수 있고
약사는 약을 처방하며 사명을 가질 수 있다.
사명없는 배우는 너무 가벼워진다.
무대는 그런면에서 마법의 공간이다.
참 이상하게도
그저 아무의미없이 무대위에 서는 배우는 티가 난다.
그래서 난 무대를 사랑한다.
무대는 사명이 없이는
단 1초도 버틸 수 없는 마법의 공간이요
검증의 공간이다.
사명을 찾으려 노력하는 예술가는
그 자체로 숭고하다.
우리는 숭고한 예술가를
만나고 싶어한다.
이렇게 내 삶을 어떤 뚜렷한 사명, 혹은 헌신된 삶의 영역으로
계속해서 집중시키고
구속시키고
몰입시키는 것.
삶이 그저 살기위해 허덕이는 상태로 방치되어있지 않고
더 숭고한지점을 향해 집중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사명 혹은 헌신이라고 부른다.
4. 구속을 통한 진정한 보상, 인정
결국 진짜자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구속에서 온다.
그것이 훈련이든, 관계적 구속이든, 사명과 헌신의 영역이든 말이다.
이러한 구속에서 우리는 진짜 보상을 맛본다.
인생의 깊은 맛이라고 할까?
정말 깊은 맛.
자극적이지 않고 인스탄트가 아닌
정말 깊은 맛 말이다.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는
아이에게 자신의 삶을
때론 눈물날 정도로 힘겹게 구속시키고서야
엄마의 깊이에 도달 할 수 있다.
그 절대적 구속이
엄마와 아이라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엄마가 된다. 혹은 아빠가 된다라는 인생의 깊은 지점은,
절대적 헌신과 구속의 시간이 없다면 성립하지 않을 지점이다.
일에서 오는 보상도 그렇다.
내가 오래도록 헌신하고 매일의 나를 구속시켜 온 시간들이 쌓여서
그 일에서 보상이 나타나기 시작할때
우리는 깊은 보람과 기쁨을 얻는다.
영화를 찍는다는건 그런 과정을 겪는 것이다.
한 영화를 만들기위해 너무 많은 노력과 수고가 들었기에
그 영화가 주는 기쁨도 크다.
졸업도
책 한권을 내는 것도
논문도
다 그렇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결국 이런 인생의 단계들에서
매듭짓기를 잘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을 구속시켜
어떤 단계를 잘 마무리하는데서 기쁨을 얻고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갈 줄 아는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학위라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책을 내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논문을 쓰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크건 작건
한겹 한겹씩
삶의 단계들을 매듭지어가며 전진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어찌보면 깊은 단계의 자유를 맛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사람이 못되었기에 ^^ 그렇게하지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새벽에 글을 쓰고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새로운 책을 내는 것은
내게는 작은 구속이고
매듭짓기이며
나는 글쓰는 이 순간들을통해
참 많이 성장해왔기에
나는 글을쓰고 책을 내는 매듭짓기를 통해
삶의 또다른 깊은수준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거다.
5. 겸손함
진짜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진짜 자유는 구속에서 온다.
이런 자유의 모순된 특성은
결국
겸손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지인중에
어떤 아저씨^^를 예로들어보면
이 겸손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모대학 경영학과교수님으로, 박근혜탄핵때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하셔서 유명해지신 분이시다.
사회적으론 대통령 앞에서 권력앞에서 불의함에 굽히지 않으신 분으로 언론에 많이 나오신 분인데
그분과 개인적으로 친해서 그분의 집에서 자주 식사를 하곤했다.
교수님이 국수를 직접 삶아주시곤 했는데
어느날은 중면을 안사와서 사모님에게 쿠사리?를 먹는걸 봤다.
'여보 소면이 아니라 중면이라고요 중면. 이번 국수는 꼭 중면으로 사오셔야돼요'
어이구야 하면서 아파트에서 나가
국수를 사러나가는 교수님의 뒷모습에서
왠지모를 즐거움이 느껴졌다. 무언가 삶의 깊은 즐거운 지점이 느껴졋다.
불의앞에선 대통령앞에서도 굽히지않으시는 분이
스스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저렇게 성실하게 스스로를 구속하시고
그속에서 진짜 깊은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구나.
어제 대통령앞에서도 굽히지않고 법정에 섰던 사람이
오늘은 아내에게 한소리 들으며
중면을 사러 슈퍼를 가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그게 참 근사해보였다.
겸손함이란
힘이 없음이 아니다.
힘이 있음에도
스스로를 구속시키고
가치있는 더 작은 영역
더 작은 분야
더 작은 세계속에
나를 밀어넣을 수 있는게
바로
겸손이다.
진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스스로 구속시킬줄 아는 것.
그 겸손함 또한
진짜 자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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