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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지정희곡 - 체홉의 벚꽃동산에 대한 에세이 (안톤체홉- 벚꽃동산, 집- 김광림, 상상병환자, 맥베스)극작/연출/서사창작 2013. 9. 18. 13:11
(대본첨부 : 한예종 2014년도 연극원 지정희곡 - 벚꽃동산, 집- 김광림, 상상병환자, 셰익스피어- 멕베스)
1. Chekhov
처음 체홉작품을 읽었을때가 생각난다.
그땐 연극을 처음 전공했던 시절.
세상 최고의 공연이 라이어인줄 알았던 그래서 인터넷사이트에 싸게 파는 (당시엔 쿠팡같은게 없었지만 그 비슷한) 그런 공연이 최고의 공연인줄 알았던 그 시절.
처음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읽었던 내 감상은 이거였다.
아이씨. 도대체 얘가 누구야?
꼰스딴찐, 콘스탄틴, 뜨레쁠레프, 뜨레블레프, 꼬스쨔 등등
한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들이 너무 다양하고
러시아 사람들 이름 자체가 전혀 구분자체가 되질 않았다.
한줄 읽고 다시 첫장에 인물소개 읽고
한줄 읽고, 다시 첫장으로 돌아가 인물소개 읽고
그렇게 띄엄띄엄 안톤 체홉과 만나기 시작했다.
체홉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이란 말을
나도 확인해왔다.
사랑을 하면서
갈매기가 가슴팍을 파고 들어왔다.
갈매기 1막의 '인간, 사자, 독수리, 뇌조, 뿔달린 사슴...' 그 대사가
세월의 더께가 쌓이며 4막에서 그 섬세하고도 풍성한 삶의 결을 드러내듯
내가 살아온 순간만큼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게 체홉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체홉에 중독되어 버렸다.
공연예술을 전공하면서
특히 연극에 대한 비평을 전공하면서
연극을 전공한다는 것, 특히 이론적으로 공연을 전공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론 텍스트와의 만남이고
다음으론 공연 프로덕션과의 만남 (드라마터그, 연출부 등)
그리고 공연을 통한 관객과의 만남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연을 통한 나 자신과의 만남이라는 걸 배웠다.
그래서 설레었다.
무대위에서 배우들과 스텝들과 함께 할때 떨렸고
그리고 대본을 통해 작가와 작품속 인물들과 만나면서 설레었고
공연의 현장을 찾을때면
언제나 선택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천박한 공연이라도
극장안에 서면
숭고해졌다.
20여명 남짓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나는 어찌 이리도 복이 많은 사람일까...
세상 수십억 사람들 중에
신이 이 공연을 보도록 허락한 단 20명 중 한명에 내가 들어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부족한 공연들도
가슴 벅차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이디를 in + theatre로 만든거다.
극장안에서라면, 언제고, 나는 행복하기 때문에 -
체홉의 공연을 무대위에서 본적 있는가?
그것도 잘 연출된 공연을 본적이 있는가?
체홉의 작품은
무대위에 체홉만의 정서가 있다.
때론 슬프고
때론 희망에 차있고
때론 시끌벅적하고
때론 적막한
정서가 무대위를 휘감는다.
이미 잘 연출된 체홉공연은
입장때부터
무대를 통해
그 정서가
가슴을 파고든다.
어떤 체홉공연은
<바냐 아저씨>였는데
무대위에 거대한 창틀이 존재했다.
즉 무대위를 거대한 창틀이 이등분한거다.
그리고 극이 진행됨에 따라
그 창틀이
때론 펼쳐지고, 때론 접혀지고,
그래서 배우들이 때론 엿보고, 때론 숨고, 때론 노출이 되며
그렇게 창틀을 멋지게 활용했다.
오브제를 굉장히 잘 사용하는 공연이구나...란 생각을 할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공연스텝들이 들어와
극의 진행과는 상관없이
그 창틀을 하나씩 거대한 나무판자로 못질하기 시작했다.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장면.
3막의 절망 이후에
4막이 돌아왔을때
나는 놀랐다.
너무도 평온하고, 너무도 안정적인 그
권태로운 분위기에
분명 바냐는
셰레브레꼬프 교수부부에게 분노하며
총까지 쏘지 않는가?
그런데 4막에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조공을 바치고
서로 화해하고
다시 1막의 평온함으로 돌아가다니!
신비로왔다.
그리고 모두 떠나고
텅빈 무대위에
남겨진
바냐와 소냐.
열심히 주판을 튕기며
이번달 수익이 얼마고, 지출은 얼마고를 열심히 계산하고 있는
바냐 곁에서
소냐가 희망을 말한다.
장황하고
표현주의적이고
산만하고
숭고한
긴 대사를
한다.
그리고나서
소냐가 그 창틀의 문을
안에서 닫는다.
그리고
무대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관뚜껑이 되어
버렸다.
<바냐 아저씨>의 결말에
소냐의 희망과 위대한 선언들은
과연 희망이냐, 더 큰 은폐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많이 했었다.
이 공연을 보고 확인했다.
분노보다도 더 깊은 추락이
절망이며
채념이란 것을...
나는 무대위에서
깨달았다.
거대한 관뚜껑이 된 무대 저 편에
작은 별들이 반짝이고
술주정뱅이 하나가 와서 쓸쓸히
잠이 든다.
이 아름다운 공연을 보면서
나는 경도되었다.
그 이후
레프 도진의 <바냐 아저씨>에서도
같은 정서를 확인했다.
무대위의 배턴이 배우들 머리위까지 내려와있어서
배우들은
매우 좁은 영역에서 연기를 하게된다.
그 배턴위엔
거대한 건초더미만 아무런 컨셉없이
3개가 올려져있다.
그리고
라스트씬.
역시 4막의 긴 소냐의 독백이 이어지고
이후
무대는 그 건초더미에 파묻혀
사라진다.
영원한 은폐와
영원한 잊혀짐...
분노보다
좌절보다
더 큰 추락인
채념과
단절
그리고 영원한 은혜의 세계를 무대위에서 창조해낸
도진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레프 도진 연출 <바냐 아저씨>
2. 벚꽃동산
벚꽃동산은
체홉의 4대 장막극중에서도
제일 피하고싶은 작품이었다.
우선 갈매기와 세자매는
나름 서사적 숭고함이 있다.
갈매기는 플롯자체가 흔히 말하는 감동적 요소가 충분하고
세자매 역시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과 죽음이 엇갈리는 세자매의 운명적 요소가
충분히 공감되었다.
바냐 아저씨 역시 조금 난해했지만
바냐 아저씨에 대한 워낙 좋은 공연들을 많이 봐서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벚꽃동산은 싫었다.
난해했고,
무의미했고,
사변적이라 생각되었다.
1막과 2막 내내 흥청망청 놀고 먹는 인물들의 단편적인 행동이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사랑의 숭고함조차
4막에서 전혀 무의미한
허무한 해프닝으로
끝나버리지 않는가.
그래서 벚꽃동산은
체홉의 4대 장막극 중에서도
항상 최후에 읽고, 가장 피해온 작품이었다.
그러나
올해
연극원 지정희곡으로 나온 벚꽃동산을
학생들을 가르치기위해 다시 읽으면서
한마디로
매료되었다.
과연
체홉 최고의 걸작이
<벚꽃동산>이라는 평가가
정확한 평가임을
읽을때마다 느껴왔다.
벚꽃동산은
인생 그 자체이다.
체홉의 4대 장막극은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자매>
<벚꽃동산>인데
갈매기는 인물들의 사랑과 꿈의 좌절을 그린 작품이면서 특히 인물들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면
역시 가장 먼저 쓰여진 작품답게
청순하고
고결하고
신비롭다.
바냐아저씨는 좀더 꿈과 야망, 그리고 이상의 문제에 대해 파고든다고 본다면
세자매는
모스끄바로 대표되는거대한 이상향과
그 사이에 얽힌 사랑과 희망의 몰락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무대가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세자매>를 연출한 레프 도진의 통찰은 옳은 것이다.
꿈과 이상, 그리고 야망과 사랑. 그리고 이 모든 요소의 몰락에 대해
지속적으로 체홉이 말해왔다면
<벚꽃동산>이야말고
이러한 주제의식을
가장 폭넓고, 가장 심층적으로 다룬 작품일 것이다.
굳이 단정짓자면 -
체홉의 마지막 장막극인 <벚꽃동산>은
인생- 그 자체-
인생 그 자체를 포괄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처음 <벚꽃동산>을 읽었을때는
1막과 2막의 사변적인 대사와 무의미한 행동들속에 숨겨진
강력한 갈등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은 엄습하는 공포이다.
변해간다는 것.
이 놀랍도록 변해가는 세상에서
조금씩 밀려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미 충분히 잘 알고있는 인물들 속에서
흥분과 파티와 권태는
결코
드러난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4막에서
드디어
가에프와 라네프스까야는
단 둘이 남겨진다.
벚꽃동산이 팔리고
모두가 뿔뿔히 흩어지는 그 상황에서
단 둘이 남겨졌을 때
가에프는 라네프스까야와 부등켜안고
처절하게
운다.
가에프가
당구를 치고
쓸데없는 이상에 대해 늘어놓을때
그 허풍이
어쩌면
실존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
마치
사슴이 궁지에 몰리면
구덩이에 얼굴만 파묻고
안전함을 느끼듯
그런
나약한
안전함을
추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가에프가 공감이 될때
비로소 벚꽃동산은
내게 최고의 체홉작품으로
확실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이다.
로베르토 쥬코가
작품 전체를 통해 드러낸
인간의 실존적 허무함을
체홉은
단 하나의
표현주의적 장면으로
압도한다.
내가 너무 경도된
바로 그 장면.
1년에 100편 넘게 공연을 보고
거의 모든 한국어로 번역된 희곡 텍스트를 다 소장하고 있는
내게
모든 희곡의 장면 중
가장 아끼는 장면
무덤 속까지라도 가져가보고 싶은 장면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벚꽃동산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말할 것이다.
모두 떠나고
텅 빈 벚꽃동산의 영지에
늙은
피르스가
왜소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는 병들었다...
그리고
날 잊은게로구나...
라는
너무도
실존적인 대사를
던진다.
그리고 알수없는 말을 지껄이며
작고 초라한 의자에 주저않는 그 -
피로함과 두려움, 그리고
치밀어오는 권태.
육체적 쇠잔함.
정신적 소멸.
그리고
의자에 눕는 피르스.
마치 태아처럼.
잊혀진 그는
태아처럼 웅크리고
죽.어.간.다.
이 장면을 보라.
이 위대한 장면을 보라.
체홉은
4막 내내 허풍만 떨다가도
단 하나의 장면으로
이후의 모든 인간의 실존을 다룬 작품들을 압도하는
초신성같은
응축된 장면으로
작품의 날카로운 현대성을
드러낸다.
체홉은 그런 작가다.
벚꽃동산의 서스펜스는
결코 드러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춰진 서브 텍스트에
강력한 서사적 줄기가 있다.
벚꽃동산이 매각되고 - 1막 (사건의 발생)
한 부자가 그 벚꽃동산을 구입할 거란 정보가 들어옴 - 2막 (사건의 점층)
* 벚꽃동산 매각을 둘러싼 라네프스까야와, 가예프, 그리고 로빠힌 각각의 행동들
-보조플롯 1) 라네프스까야의 과거 (영지에서 아들이 호수에 빠져죽은 일, 그리고 파리에서 일어난 일들)
-보조플롯 2) 로빠힌과 바랴의 애정관계
-보조플롯 3) 가예프와 라네쁘스까야의 벚꽃동산 매각에 대한 나름의 대처방안
그리고 로빠힌이 그 벚꽃동산을 구입했음이 밝혀짐 - 3막 (위기와 절정)
모두 떠나고, 남겨진 피르스 - 4막 (결말)
의외로 사변적이기만 한 것 같은 <벛꽃동산>이
탄탄한 서사적 짜임새와 긴장관계를 갖추고 있음에 주목하기 바란다.
그러나 이런 갈등이나
긴장들은
시끌벅적하고
의미없고
난잡한
행동과
잡다한 인물들의 표현
그리고
춤추고 파티하고 당구치고 마술하고 먹고 마시는 행위 자체의
수면
아래에
은폐되어 있을 뿐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게 우리 현대인의
실존적 자화상이 아닌가?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강남 가로수길의 중심부에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난 너무 잘 알겠다.
흥청망청함
뒤에 숨겨진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과
두려움에 대해 말이다.
3. 잡다함에 대하여
체홉에 대한 잡다한 생각들을 늘어놓으며 이 글을 끝내려 한다.
체홉의 인물들은 소통이 되지 않는다.
체홉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난파선이다.
체홉의 인물들은 자기자신에만 관심이 있다는 면에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체홉의 작품을 공연한 스타니슬랍스키와 네미로비치 단첸코의 모스끄바 아트 씨어터 (MAT) 말리 극단은
모든 등장인물이 주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는 철학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체홉의 작품은
어느 인물의 입장으로 봐도
작품이 풀린다.
예를들어 내가 처음엔 전혀 관심도 두지 않았던
<갈매기>의 마샤가
나이가 서른이 넘고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절절하게 다가온다.
<갈매기>의 모든 인물들은 추락하는데
가장 먼저 날개가 꺽힌것 같고
가장 먼저 현실과 타협한 것 같은
마샤가
어쩌면
유일하게
추락하지 않은 인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갈매기>가 또
새롭게 보였다.
체홉은 분위기와 낭만, 그리고 무드가 있다. 마치 왕가위의 화양연화처럼.
체홉 속에는 사실주의와
표현주의, 실존주의
더 나아가 부조리극의 현대적 요소까지
모두 다 들어있다.
체홉의 껍데기가 사실주의적인 것은 맞다.
분명하다.
그러나 그 속은
알 수가 없다.
모든 극적 양식을 넘나든다.
체홉에서 의외로 중요한 요소가
청각적 요소이다.
벚꽃동산의 4막에서도
벚꽃동산이 베어지는 소리와 함께
구슬픈 구음이 들린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면
놀랍도록 <벚꽃동산>과 유사한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예전에는 <세일즈맨의 죽음>이 그렇게 좋았는데
지금은 <벚꽃동산>에 비한다면
한마디로 호날두와 나니 차이만큼의 격차가 느껴진다.
체홉은 각자에게 저마다의 체홉이 있다.
체홉 잘못만나면 신세 망친다. 내 지인중에 부산에서 의사 잘하다가 체홉 잘못 읽어서 의사 때려치고 한예종 연극원 전문사 다니는 사람 한명 있다.
연출가 전훈도 그런 사람이라고 그러더라. 자기 스스로 ^^
체홉의 인물들은 다중적이다.
위대한 꿈을 꾸면서도, 또 눈앞의 정욕에 손쉽게 굴복한다 (야스뜨로프)
또
이상을 꿈꾸지만, 그 이상을 현실화할 능력이 없는 인물이 많다.
결국
현실에 적응하는자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의 이분법적 경계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체홉이 드라마적으로 위대한 것은
거의 최초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무대 가장 중요한 곳에
드러낸 작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을 한다고 했을때
그 얼마나 위대한 사랑을 해왔냐?
모스크바를 횡단하고, 대륙을 넘나들며 소설보다 위대한 사랑을 써왔다는 사람 몇이나 될까?
대부분 범인들의 사랑이란
이런거 아닌가?
학원에 어떤 오빠를 혼자 좋아하다가
그 오빠가 괜히 말걸면
괜히 예민하게 반응해서
사이 더 안좋아지고
뭐 그럭저럭 지내다가...
어느날
그 오빠가 학원의 다른 어떤 이쁜 언니랑 사귀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는
학원 안나오고
옛날기준으로
싸이
방명록 전부 닫고
싸이 프로필에
알듯 말듯한 사진과 함께
사랑은 가고...또 하나의 계절은 흐른다...
뭐 요따위
허세적인 글 하나 남겨놓고
혼자
끙끙앓는
이런
찌질한
사랑이
더 많을까?
압도적으로 찌질한게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찌질한 사랑이라해서
숭고하지 않은가?
절실하지 않았던가?
절절하지 않았던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진짜 갈등과
진짜 무서움과
진짜 사랑과
진짜 절절함과
진짜 서사와
진짜 깊은 상처는
인생의 서브 텍스트 -
수면 아래의 거대한 빙산.
바로
우리의
마음 속에 있지 않을까?
그 인생의 서브텍스트를
드러낼 수 있는
극적 형식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체홉의 위대함은
엄청난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장 중요한 곳에 드러냄으로
인생을
드러내는데 성공한
위대한 작가
안톤 체홉
그를 만나건 행운이었다.
진실로 -
기존에 학원이나 과외 등으로 준비하기 힘든 전문성 있는 전공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을 개설합니다.
전부 학원 내 전문강사진의 "그룹과외식" 수업으로 진행됩니다. (정규과정과 상관없이 그룹레슨식으로 진행됨)
운영계획 :
레슨 포 케이아트의 서울예대 및 한예종 출신 경험많은 전문강사진의 그룹과외식 수업
(각 전공당 5명이내로 정원 엄격히 제한) 으로 과외와 학원의 장점을 섞은 획기적 커리큘럼
<서울예대 그룹과외반>
개설전공 :
가. 서울예대 연출과 수시대비 그룹과외반 (정시과정까지 이어짐)
강사 및 커리큘럼
A: 연출, 워크숍 - 박현욱 레슨 포 케이아트 연기담당 디렉터
B: 연극관련 기술적 코칭 : 조명, 무대감독 등 - 서울예대 연출전공 전문 강사진
C: 글쓰기 및 희곡분석, 면접 - 원장직강
나. 서울예대 극작과, 문창과 수시대비 그룹과외반 (정시과정까지 이어짐)
강사 및 커리큘럼
A : 극작문창 전공 - 김지혜 레슨 포 케이아트 극작연출 전임강사
B : 스토리텔링 - 원장직강
다. 서울예대 방송영상과, 예술경영 수시대비 그룹과외반 (정시과정까지 이어짐)
강사 및 커리큘럼
A : 서울예대 방송영상전공 수시수업 - 서울예대 방송영상전공 강사진
B : 서울예대 예술경영전공 - 서울예대 예술경영전공 강사진
C : 서울예대 방송영상 논술 및 면접 - 원장직강
라. 중앙대 연출전공 수시 대비반
강사 및 커리큘럼
A: 연출, 워크숍 - 박현욱 레슨 포 케이아트 연기담당 디렉터
B: 연극관련 기술적 코칭 : 조명, 무대감독 등 - 서울예대 연출전공 전문 강사진
C: 글쓰기 및 희곡분석, 면접 - 원장직강
<한예종 그룹과외반>
마 : 한예종 방송영상 11월 입시대비 그룹과외반 (5명정원)
-한예종 해당전공 직강 + 원장 직강
바 : 한예종 예술경영 11월 입시대비 그룹과외반 (5명정원)
-한예종 해당전공 직강 + 원장 직강
사 : 한예종 연극학 11월 입시대비 그룹과외반 (5명정원)
-한예종 해당전공 직강 + 원장 직강
아 : 한예종 영상이론 11월 입시대비 그룹과외반 (5명정원)
-한예종 해당전공 직강 + 원장 직강
자 : 한예종 한국예술학 10월 입시대비 그룹과외반 (5명정원)
-한예종 해당전공 직강 + 원장 직강
문의 : 레슨 포 케이아트 홈페이지 (www.lesson4karts.com)
010-8984-4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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