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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힘줄 / 강 정 (한예종, 한예종 연출과, 한예종 영화과, 한예종 연극과)비평하다... 2015. 2. 21. 16:33
시적 힘줄
강 정/ 키스
시적힘줄
시에도 힘줄이 있나보다. 강정의 시를 읽으면 남성의, 그리고 야생동물의 거친 힘줄이 떠오른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실내에서 잘 관리한 세련된 무엇이 아니다. 거친 들판에서 햇빛을 받아 단단해진 구리빛 몸. 그 몸의 껍데기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 힘줄이다. 힘줄은 피부 아래, 혈관 위에 자리 잡은 거대한 어떤 내면적 힘의 원천이다. 그것은 피와는 또 다른 무엇이다. 말하자면 피보다 더 질기고 단단하고 억척스런 생명의 뿌리다. 힘줄은 질기다. 그 질긴 힘으로 온 몸의 압력을 홀로 지탱하고 있다. 강정의 시는 힘줄이다. 그의 시는 질기며, 거칠며, 언제나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고 그의 시는 그 질긴 근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압력들을 지탱하고 있다. 거대한 고래와 사투를 벌이는 어부의 힘줄처럼, 그는 ‘생명’의 거대한 아픔을 지탱하고 있다. 시인 강정에게 산다는 것, 그의 시에 흐르고 있는 과도한 ‘생명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짝짝 신의 볼기를 치듯 허공을 굴착하던 투전꾼들의 폭언이 내 몸 깊숙이 박혀있다
남들이 써놓은 문장에 화들짝 놀랄 때마다
그때의 뜨겁고 날카로운 소리가 온몸을 훑어 내린다
내 음성에 배인 빙초산 냄새를
가끔 사랑으로 의역하던 이들 앞에서
네발로 기며 쏟아냈던 불덩이는
그때 벌어진 상처를 열고 숨어든 눈먼 짐승 의 울음이었다
-「달빛을 받는 체위」中
그가 끊임없이 생명력을 탐하면서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근원적 아픔을 답습하는 지 이 시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내면적, 존재론적 아픔에서 시작한다. 말하자면 내면의 상처, 개인적 인생의 아픔에서 오는 현실과의 부조화 문제가 첫 번째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런 개인적, 내면적, 프로이트적 잠제의식, 환경적이 아닌 그저 산다는 것의 허무, 산다는 것의 무의미함, 그 존재 자체에서 오는 고통이다. 이 첫 번째 아픔과 두 번째 아픔의 교집합에서 시인 강정이 말하는 ‘키스’가 탄생된다. 시인 강정이 말하는 사랑은 절대 감각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의 사랑은 ‘내 음성에 배인 빙초산 냄새’이다. 그것은 바닷가 부두에서 달빛을 받으며 놀음하는 어부들의 삶에서 기인한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 그 거친 인생 앞에서, 바다라는 거대한 망망대해를 떠도는 어떤 인생의 무서운 환경아래서 시인은 ‘그때 벌어진 상처를 열고 숨어든 눈먼 짐승의 울음’을 쏟아낸다. 이것은 사랑의 따뜻한 고백이 아닌 ‘네발로 기며 쏟아내는’ 짐승의 불덩이이다.
이처럼 그에게 사랑의 고백은 울부짖음이다.
고통의 넘나듬, 그것이 ‘키스’다
나는 네게서 아름다운 유방의 원형과 심리 적 근친상간의 전형성을 확인하려 든다...살짝 혀를 빼는 순간, 내 혓바닥에 어느 불우한 가 족사가 크로키로 그려져 있다「키스」中
결국, 그의 키스는 남녀간의 연애를 뛰어넘는 종족간의 번식이며, 음울한 환경의 넘나듬이며 그 고통의 농밀한 나눔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의 시의 매력이 탄생한다. 그의 시가 지극히 개인적인 아픔을 말하고 있으나 그의 시가 보편적 매력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랑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그가 시를 통해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랄하고, 깜찍하고, 귀여운 사랑. CF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이미 만들어진 사랑의 식상함 앞에서 시인이 보여주는 힘줄의 거친 사랑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인스탄트의 사랑, 아무 의미없는 껍데기뿐인 사랑은 반쪽짜리 사랑이다. 그런데 그 나머지 반쪽을 채울 뜨거운 힘줄을 강정은 보여주고 있다. 그의 사랑은 그저 번듯한 오락이 아니다. 아픔의 교감이며, 상처의 넘나듬이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이렇게 색다르고 어쩌면 진실되다.
관념어의 주술
그의 시는 투박하다. 시적인 비유가 감각적이지 못하다. 시집 전체에서 몇몇 감각적인 시어가 있지만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투박하다. 이 투박함이 어디서 기인하는가 하면 그의 느슨한 관념어에서 온다.
심장에서 솟구치는 애액들이 식도를 달 군다
먹은 걸 토하다 보면 머릿속에 달이 떠 오르기도 한다
새벽 길가 하수구 수챗구멍에 고개 박 은 채 구토하던 남자를 향했던
강간충동이 나의 진짜 욕망이었다
-「달빛을 받는 체위」中
‘심장에서 솟구치는 애액들이 식도를 달군다’ 라는 문장이 대표적이다. ‘심장, 솟구치는, 애액, 식도, 달군다......’ 이 정도로 한 문장 안에서 비슷한 관념어들을 쏟아내는 것은 거의 폭력에 가까운 쏟아냄이며 어떤 관점에서는 느슨함이다. 강정의 시는 전체적으로 이렇게 비슷한 느낌의 시어를 한 문장 안에서 마구 쏟아낸다. 이러한 비슷한 느낌의 관념어가 그의 시에는 너무 많다. 남성적이고 거칠고, 즉물적이나 그것이 너무 과도하게 쏟아진다. 그러나 강정은 이 쏟아짐을 하나의 즉물성으로 그의 시적 스타일로 확립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랩과 같은 시적언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슬랭과 욕설이 여과없이 쏟아지는 것, 그러나 이 상투적이고 즉물적인 쏟아짐은 그의 시적 구조력 안에서 빛을 발한다. 그 다음 행에, 시인이 관념어를 잘 이해하고 있음이, 그래서 그가 시적 구조력을 갖춘 시인임이 잘 나타난다.
‘먹은 걸 토하다 보면 머릿속에 달이 떠 오르기도 한다’
‘새벽 길가 하수구 수책구멍에 고개 박 은 채 구토하던 남자를 향했던 강간충동이 나의 진짜 욕망이 이었다‘
아래 문장에선 관념어가 아닌 구체적 행동속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달이라는 시어를 통해 공간을 창조한다. 그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달빛 아래 구토하는 남자’라는 상황이 있기에 앞서 구토했던 관념어의 쏟아짐들이 충분히 공간적으로 구조를 갖춘다. ‘심장에서 솟구치는 애액들이 식도를 달군다’ (A), ‘먹은 걸 토하다 보면 머릿속에 달이 떠오르기도 한다’ (B), ‘새벽 길가 하수구 수책구멍에 고개 박은 채 구토하던 남자를 향했던 강간충동이 나의 진짜 욕망이었다‘(C)라고 할 때, A에서 마구 쏟아진 관념어는 뜨거움과 격렬함이라는 이미지를 성취하고 B에 이르러 디테일한 상황과 공간위에서 그 모호함을 벗는다. 결국 시인의 모든 힘이 모아지는, 그래서 시적 미학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C인데, 시인은 C에서 ’구토하는 남자를 향한 강간충동‘이라는 상황의 역설, 또는 역겹게 비틈으로 그의 내면의 구토, 그리고 역겨운 욕망의 근원성을 구조적으로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즉, 그는 매우 무책임하고 거친 랩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거침 속에 탄탄한 전략을 숨길 줄 아는 전략적인 시인이며, 뛰어난 관념어의 주술사이다.
시인의 말을 빌어 다시 한번 그의 시를 정의한다.
‘그러니까 이 키스는 약물중독과 무관한 고도의 유희와 엄밀성의 접촉이다’「키스」中
<레슨 포 케이아트 연기학원>
<레슨 포 케이 아트 영화학원>
<터놓고 연극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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