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캣츠> 오리지널 캐스팅 내한공연을 봤다. (삼성전자 블루스퀘어관)
공연비평 전공자이면서도 겨우 이제서야 이 유명한공연을 봤다는게 좀 민망하지만 후기를 남겨본다면
뮤지컬 <캣츠>는 가벼운공연이 아니다.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에 뒷골목 거리를 배회하는 '뒷골목 고양이'들의 정서가 있다. 그것은 고리끼 밑바닥 인물들의 뮤지컬판 은유라고도 할수있다. 아무리 화려한 과거와 현재를 가지고있다해도 그들은 고양이일뿐이니까. 즉 작가는 고양이의 의인화는 의도했지만 고양이의 정체성 (이기적 인간의 틈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실존) 까지는 부인하지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상류의 은유가 아니라 하류의 은유가 된다.
이 철학적 은유를 드러내는 중요한 축을 잡는 캐릭터로 존경받는 원로이자 선지자인 - 올드 듀터러너미 Old Deuteronomy, 과거엔 아름다웠으나 현재는 늙고 추한 몰골로 공동체에서도 환영받지못하는 그리자벨라 Grizabella, 과거에 사로잡힌 명배우출신 고양이 거스 Gus가 있다.
이들은 모두 화려했던 과거를 기억하지만 현재의 모습은 쓸쓸하고 적막하다.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의 모습은 바로 올해 한예종 연극원 지정희곡으로 선정된 유진 오닐의 <얼음장수 오다>가 연상된다. 그러나 <캣츠>의 서사가 고리끼나 유진 오닐의 인물들처럼 파멸로 끝나지않는 이유는 그들의 상승의지에 있다. 기꺼이 이방인을 단 한명의 '선택자'로 선택하는 고양이들의 존중과 사랑이 상승의지로 나타나 뮤지컬의 클라이막스 장엄한 승천장면으로 이어진다.
얼핏 <캣츠>의 이야기는 각 고양이들의 특성이나 소개하다 유명한 노래 '메모리' 로 문득 끝내버리는 '전형적인 뮤지컬'다운 형편없는 이야기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획일적이고 익숙한 스토리라인에 집중하며 보기보단 풍성한 은유와 특유의 분위기, 그리고 장면들의 상징적 연결에 주목해본다면 뮤지컬 <캣츠>의 참 맛을 즐길 수 있다.
나도 뮤지컬을 보기전엔 그 절절하고 아름다운 엔드류 로이드웨버의 명곡 '메모리'를 왜 저 초라하고 거지같은 고양이가 불러야하는지 의아해했다 (간지가 안난다)
뮤지컬을 보고난다음에야 생각이 확실해졌다.
'메모리'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이다. 아름답게 표현되어야 한다. 최대한. 그리고 그 아름다운 곡을 부르는 고양이는 더욱 더 못나고 비천해야한다.
T.S 앨리엇의 우화 <완벽한 고양이가 되기위한 지침서>가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란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 뮤지컬은 인생에 대한 낭만을 노래하는 뮤지컬이 아니라 인생을 직시하고 현실속에서의 관점과 은유를 드러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느끼는 인생의 거대한 무게, 거대한 자본의 틈바구니에서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탁월한 비유(우화)가 도시 뒷골목 고양이들의 뮤지컬 <캣츠> 인 것이다.
Practical cats, dramatical cats
Pragmatical cats, fanatical cats
Oratorical cats, delphioracle cats
Skeptical cats, dispeptical cats
Romantical cats, pedantical cats
Critical cats, parasitical cats
Allegorical cats, metaphorical cats
Statistical cats and mystical cats
Political cats, hypocritical cats
Clerical cats, hysterical cats
Cynical cats, rabbinical cats
<뮤지컬 캣츠 오프닝 넘버 Jellicle Songs for Jellicle cats 가사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