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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주제보다 앞선다 (한예종 영화과, 영상원 특별전형, 한예종 방송영상과, 한예종 영상이론과)영화과 2014. 2. 2. 23:44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점은
스토리가 주제보다 앞선다는 사실이다.
이 점 꼭 기억하고 스토리를 구상하기 바란다.
학생들 글을 첨삭할때 학생들의 글을 지적하면 많은 학생들이 이런 변명을 한다.
"이러저러한 말을 하고 싶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자신이 어떤 주제를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에
자신의 글은 가치가 있다는 일종의 정당방위다.
자신이 어떤 거대하고, 숭고한 가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글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은연중에 깔려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는 그런게 아니다.
나는 직설적으로 말해
영화의 세계에 '주제'란 존재하지 않는 말이라고 단정한다.
왜냐고?
주제란 창작자가 의도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주제를 창작자가 작품을 통해 보여줄 수가 없다.
주제를 이미 창작자가 정해버리고 작품을 만들 경우
관객이 그 의도와 다른 주제를 생각하면 어떻게할 건가?
주제를 창작자가 이미 정해버린다는 말은
관객의 해석적 자유를
빼앗아버리고
심지어는 강요한다는 말이다.
예를들어 기독교선교극이나, 북한의 공산주의영화 등을 생각해보면 쉽다.
아니면 예비군 훈련장에서 하루종일 강제로 들어야 하는
안보영상을 생각해봐도 좋다.
그런게 바로 창작자가 이미 주제를 한정짓고
관객에게 주제를 강요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주제는 창작자가 완성하는게 아니다.
주제는 관객이 완성하는 것이며, 심지어 저마다 해석이 다르다.
느끼는 점은 관객의 삶에 따라 다를 것이며
관객의 삶을 통해 진짜 주제는 완성되는 거다.
그렇다면 창작자는 무엇을 붙들고 가야하는가?
당연히
스토리다.
이야기의 완성도가 최우선이다.
영화과 입시에서 스토리를 지독하게 보는 이유가 있다.
한예종 영화과도, 한양대 영화과도, 중앙대 영화과도, 어떤 대학 영화과도, 심지어 성균관대 영상학과는 면접으로라도 스토리를 본다.
스토리가 주제보다 앞서야 한다는 예시로
이창동의 대표작 박하사탕을 들어보자.
박하사탕은 우선
독특한 형식미가 눈에 띈다.
기차가 거꾸로 향한다는 설정을 통해
현재에서 과거로 기차는 거꾸로 여행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가면서 한장면씩 고통의 근원이 밝혀지는데
처음에는 복수, 그 다음엔 가정의 붕괴, 그 다음에는 한 인간의 광기를 강요하는 시대적 상황이 제시된다.
주제가 점점 더 심오해지고 근원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 느껴지는가?
이러한 이야기를 형식적으로는 기차의 역행이.
그리고 스토리적으로는
박하사탕이라는 상징적 오브제를 통해
'순임'이라는 첫사랑 여성과의
만남과 엇갈림의
틀을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영화의 가장 심장부
영호의 트라우마 가장 깊은 곳엔
5.18광주의 그 날이 있다 !!
즉. 작가는 한 인간의 몰락을 다루면서
복수에서 가정의 붕괴로 그리고 시대적 상황을 거쳐
가장 깊은 곳에
정치적 이유.
즉 민주화항쟁을 폭력으로 짓누른
광기의 역사.
슬픈 한국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적 스토리는
이런 비유가 옳다.
수면 위에서 돌멩이 하나를 떨어뜨린다고 상상해보자.
영화적 스토리란.
이 돌멩이가
바닥까지
깊은 바닥까지
깊고 깊게 떨어지고
관객이
수면위에서
영화라는 틀을 통해
그 깊은 바닥까지
시선이
닿도록 하는 거다.
알겠는가?
영화는 수평이 아니라
수직의 예술이란 걸
항상 기억하자.
이창동의 박하사탕이
바로 그러한 수직적 깊이를 보여준다.
영호라는 한 인물의
성격화과
깊고
깊은 수면 아래
심연의 바닥까지
관객의 시선이
닿도록
유도함이
느껴지는가?
철길 선로위에 기대어서
어린여고생을 오인사격하고
빗속에서 울부짖는 극중 영호를 떠올려보라.
워커를 벗었을때
핏물 반 빗물 반인
그 고통속 엉엉 우는 영호를 생각해보라.
그 한 인간의 깊이있는 성격화 속에
정치적 관점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감독은
한국 정치사의
가장 치욕스런 장면을
처절하게
새겨나가고 있다.
이게 주제다.
박하사탕에서
정치적 주제를 빼고
영화를 봐도
그 영화는 좋은 영화이다.
주인공 영호와 순임을 둘러싼 논리적인 이야기 전개.
그리고 기차의 퇴행이라는 구조적 아름다움.
그리고 박하사탕, 기차, 선로 등의 뚜렷한 상징성.
이런
영화적 미학성이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기에
절정에서의 정치적 메세지가
존재할 존립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스토리가 먼저고
주제는 그 다음이다.
만약 박하사탕이
탄탄한 영화적 구성이 없이
어설프게 정치적 메세지를 담았다면
그건 한마디로 좌파 선동영화에 그치고 말았을거다.
그러므로
영화는 드라마가 먼저고, 다음이 주제라고 단언한다.
박하사탕과 비교해서 볼만한 영화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적 형식미가 한참 떨어지는
화려한 휴가를 반면교사로 보고 싶다.
두 영화를 동일선 상에 두고볼때
오히려 주제를 폭팔적으로 증폭시키기 위해선
주제 자체를 반복적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탄탄한 스토리와 드라마가 선행된 후
말하자면 관객의 혼을 드라마를 통해 싸잡아 맨 후
주제의 직격타를
관객의 뇌에
날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영화과 입시에서
스토리를 보는 거다.
스토리가 되면
즉. 관객을 유혹할 수 있으면
관객과의 교감을 통해
드디어 무엇이든
생산해 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때문이다.
연극대본이지만
내가 사랑하고 사랑하는
오태석의 <자전거>를 또다른 예로 들고 싶다.
오태석의 <자전거>에는
단 한번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이름만 이백개가 넘게 나온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다룬
어떤 작품보다도 더 처절하고
슬프고
비통하다.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나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오태석 작품이 갖는
주제적 힘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오태석 작품에는
직접적 주제의식이나
어설픈 메세지나
강요를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오태석의 <자전거>에는
그저
자전거 타고 가다 귀신에게 홀린
구서기와 윤서기의 드라마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드라마를 보고 난 관객의 마음속에는
한국전쟁의 참혹함,
인간의 실존적 황폐,
그리고 동족상잔의 역사적 비극미가
켜켜이 새겨진다.
마치 작품속에서 살아남은 당숙이 사금으로 자신의 이마를
켜켜이 긋는 것 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선댄스 최고상에 빛나는
위대한 영화 <지슬>을 꼽고 싶다.
<지슬>역시
위대한 메세지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는 오직
드라마를 올곶게 밀어붙인다.
앞서 언급한 영화에 비해 특히 주목할 점은
<지슬>은
탁월한 형식미를 통해
주제를 완성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드라마와 형식미가 결합된
가장 주제와는 멀고, 비끌어지는 서사방식인
코미디를 통해
영화는
매우 독특하고
순결한 부분으로
미끌어져 들어간다.
그리고 그 미끌어진 바닥에선
제주를 둘러싼 슬픈 이념갈등의
역사적 진실이 있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를 사랑한다.
주제는
감독이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감독은 등대가 아니다.
깃발도 아니다.
감독은 거울이다.
거울을 통해
진실되게 비춰줄때
그 진실을 목도한
관객이
자신의 힘으로
찾아내는 진실이
바로
주제이다.
스토리가 주제보다 앞선다.
그게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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