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가진 사람의 마음about, intheatre 2019. 11. 21. 07:32
오늘은 그랜저 이야기로 좀 시작하려고 한다.
요즘 그랜저광고때문에 말이많던데, 뭐 그랜저 정도타면 성공한거다 뭐 그런 내용인데,
사실. 저 광고는 꽤 잘만든 광고다. '성공하면 그랜저정도는 타야지...'라는 '쌈마이' 생각을 레트로한 질감으로 잘 구현한 '니마이' 광고라. 내가 지금쓰고있는 이런 류의 논쟁까지도 마케팅과 연결시키려하는 정교한 타켓팅과 전략이 숨겨져있는, 그냥 한마디로 일부러 쌈마이로, 논쟁적으로 만들었다고 보면된다.
그랜저.
그랜저라면 일단 아주 옛날 약 30년전 정도?
그때 아버지회사 사장님이 타고다니던 각그랜저가 생각이 난다. 정말 번쩍번쩍 확실하게 각져있는 그 그랜저는 부의상징이고, 확실히 무언가 압도적인 마초적 포스가 있었다.
그땐 감히 쳐다볼수도 없었던 포스넘치는 부의 상징이었던 이 각그랜저가, 지금은 일종의 코미디요소로 쓰이고 있는게 참 격세지감이다. 시꺼멓고, 크고, 번쩍번쩍하고 각져있는 저 디자인이 그 시대의 삶을 기준을 잘 보여준다.
세월이 흘러, 그랜저도 변화를 거듭하며 동글동글 귀여워져갔는데
그랜저는 계속해서 내 삶에 영향을 줬다.
고향에서 공익을 할때,
새벽에 세차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주공2단지였는데, 임대아파트 한마디로 광역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였고,
같은 이름이지만 주공1단지는 임대아파트가 아니라, 그래도 조금 낫게 사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였다.
그 주공1단지 지하에 주차된 차들을 세차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거다.
그땐 새벽에 일어나서 2~3시간씩 그것도 일주일내내 매일 해야되는 그 아르바이트가 힘들기도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최선을 다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내 차를 신속하고 깨끗하게 세차를 잘해서 주변사람들이 놀란다)
그때 나는 지하주차장에 세워진 저 금색 그랜저XG를 세차하며 가까이서 그랜저를 구석구석 느끼고, 만져보고, 그러면서 감탄했다. 그 오묘한 금색이며 저 유려한 곡선이며... (어떻게 차가 금색일수가 있을까? 금덩어리는 타고다니는 느낌은 아닐까) 내게있어선 정말 저 금색 그랜저가 꿈의 차였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주공2단지 사는 내가 저런 멋진 차를 탈 수 있을까? 그런 일이 벌어질까? 지금 내가 사는 모습. 내 현실을 비추어볼때 아무리 계산하고, 아무리 각을 재도 저런 멋진 삶을 살수는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면,
지금 생각하면 저 그랜저XG를 매일 아침 세차해주는 주공2단지에 사는 공익이
주공1단지의 삶을 부러워하는게 좀 우스꽝스러워보이지않나?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면 말이다.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보면 코미디'라는 그 말이 딱 맞다.
새벽세차알바를 하는 주공2단지 사는 공익이 똥색 그랜저를 만지며 주공1단지의 삶을 부러워하는 장면은 좀 우스꽝스러워보인다. 그냥 순수하고 철없고 한편으론 한심하기도 하고.
그런데 '시간이 흘러' 보니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잘 곱씹어봐야 한다.
'시간이 지나보니 = 객관적 기준이 세워짐'
시간이 지나, 객관적으로 보는 기준이 생기게 되었고, 그 기준이 사실 정확한 기준이다.
그 공익이 똥색 그랜저를 새벽마다 닦으며, 자신의 미래가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할거라고 단정짓는 건
한마디로 성공의 기준이 촌스러운거였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 라는 거리감을 통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제대로 평가받는다. 진짜는 항상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오늘을 잘 사는 방법은
오늘 내 삶을
'시간이 흘러 깨닫게되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에 있지 않을까?
.
인터넷을 보면, 지배적정서가 루저의 정서인 걸 본다.
루저라는 말 자체에 이미 '비교'하는 정서가 깔려있다.
키가 어떻고 외모가 어떻고...서열이 어떻고
비교하기에 루저가 존재하는거다.
소유냐 존재냐 라는 멋진 책을 남긴 에리히 프롬의 책 제목을 인용하자면
'비교냐, 존재냐' 라고도 말할 수 있을 거다.
비교하느냐, 존재하느냐
비교의 반댓말은 비교하지않음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식 표현으로하자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개성이 명확해지고, 각자의 삶을 각자가 진실되게 마주하고, 내 정체성이 세워져있을때
우리는 비교하지 않을수 있고, 비교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질문이 있을수가 있다.
'제가 비교하지 않는건 가능해요. 알겠어요.
근데 이 사회가 끊임없이 비교하잖아요.
외모로 저를 판단하고, 실제적인 차별이나 손해로 이어지잖아요. 그런걸 어떻게하나요? 비교하진않지만, 비교당하는건 어떻게해야하죠? '
해답은 간단하다.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폭력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자들을 차단하고, 잘못된 기준을 끊어내고,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새로운 삶에 도전해야 한다.
너의 기준을 바꿔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하고
네 삶을 기준을 바꿔줄 수 있는 건강한 시선이있는 사람들을 만나야한다.
단편적으로 환경만 바꿔도, 거대한 세계가 준비되어있다.
비교당하지않아도 이 세상은 너무나 넓고
네가 소통할 수 있는 진실된 사람들 역시 여전히 많고
도전할 과제들은 너무많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타자의 판단을 벗어나기 위해선 그만큼 진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환경을 바꾸는게 기준을 바꾸는 지름길이다.
겨우 그랜저 정도 타는게 성공이라면, 성공의 기준이 너무 촌스럽고 우스꽝스럽지않나?
그냥 막말로 키 좀 작은 동양인이 키 조금 더 큰 동양인을 질투하고 키 VS외모 이런걸로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걸 생각해보면 된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다. 그냥 좀 키 큰 동양인. 작은 동양인. 둘 다 한국인일뿐인거다.
물론 웃자고 한 이야기다^^
지금의 현실로 미래의 현실을 규정짓고, 단정짓고, 각을 재 보기에 현대사회의 변화는 너무나 카오스적이다.
30년전에 유투브로 돈 벌어먹고 사는걸 누가 생각했겠나?
1년의 변화도 너무 급격한 이 시대에, 현재의 기준으로 미래를 재단하는거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행위가 아닐까?
못가진거로 너무 억울해하지마라. 네가 목메는 그 기준이 사실 별게 아니다. 미디어가 조장하고, 초중고 12년한국교육시스템이, 부모들이 자식들한테 주입해놓은 서열문화, 천민자본주의. 한국사회가 강요한 그 기준에 고결한 너의 삶을 끼워넣지마라.
관짝에 넣어서 그것보다 길면 자르고, 짧으면 늘이는 고문이 있었다고하는데, 이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아닌가한다.
진짜 촌스러운건 외모가 촌스러운게 아니다.
기준이 촌스러운게 진짜 촌스러운 거다.
열등하니까 자꾸 존재를 외부에서 확인받으려 한다.
Do you know시리즈가 그런거다. 김치를 아냐? BTS를 아냐? 손흥민을 아냐?
왜 BTS가 우리를 대표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준이 되어야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는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타자적 관점에서 그 기준들을 바라보면, 우습게 느껴진다.
안되는 것이 없어야 한다.
이게 안되면 안된다. 라는 기준은 위험하다.
살아보면 알겠지만, 그게 안될때 또 다른 내일이 열린다.
망하는것도 내 생각처럼 망해지지가 않는다.
안되는 것이 없을때 두려움이 사라진다.
변화된 오늘을 만나게 된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예측불가성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네가 그렇게 절실하게 생각했던 기준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걸 경험하게 된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절대로 예측할 수 없다. 어떤 곳에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고, 반전의 묘미가 있을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뜻대로 안되는걸 두려워하지마라. 카오스적인 세계에서는 카오스적으로 접근하는게 맞다.
인간에 대한 통찰로 위대한 안톤 체홉 역시 그의 작품속에서 지극히 예측불가능하고 일상적인 인간들의 삶을 그려냈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일상을 살아나가야하고, 인생은 항상 예측과는 어긋나기 마련이다.
현재의 모습에서 미래를 규정짓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실책이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변화는 거대하고
혁명적이고
기회는 넘쳐나고
새로운 기회는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환경속에서 변화를 모색하기가 힘들다면, 과감하게 더 넓은 세계와 접속하라.
4차산업혁명의 시대는 연결의 시대이고, 공감의 시대이다.
부족한 개인들이지만, 우리는 서로 연결될 수 있고 서로와의 소통을 통해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못가진 사람들의 마음은
시급히 고쳐야 할 질병이 아니다.
미래를 바꾸는 거대한 원동력 또한 될 수 있다.
새로운 정치, 산업,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
모두 못가진 사람들의 마음 = 결핍에서 시작하는거라고 확신한다.
결핍은 혁신의 원동력이다.
'about, intheat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탓. (6) 2020.01.21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3) 2019.11.26 여행은 걷는 독서다 - 인생의 감가상각 (9) 2019.11.15 빅 미스테이크 (11) 2019.11.15 내일이 있는 의미 - 내일 하라고 있는거다 (2) 2019.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