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맥기 교수는 기업인들에게도 스토리 컨설팅을 하고 있다. 사업도 결국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이야기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는 경영진에게 “파워포인트·슬라이드를 과감히 치우고, 좋은 스토리로 말해야 청중을 장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올댓스토리]
“그의 가르침은 픽사(PIXAR·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회사)의 법이다.”(픽사 창립자 존 레세터)
이들뿐만이 아니다. 할리우드의 숱한 감독과 프로듀서·작가·배우에게 영감을 준 스토리텔러가 있다. 로버트 맥기(71·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교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맥기는 미국 영상산업의 큰 기둥이다. ‘스토리 구루(Story Guru·스토리 대가)’로 불린다. 영화 ‘백투더 퓨처’ ‘뷰티풀 마인드’ ‘디어 헌터’ ‘포레스트 검프’ ‘컬러 퍼플’ ‘토이스토리’ ‘슈렉’, 드라마 ‘프렌즈’ ‘엑스 파일’ 등이 그의 제자들 손을 거쳐 태어났다.
폴 해기스·제인 캠피온 감독 등 그의 제자들은 36개의 아카데미상 트로피와 164개의 에미상 트로피를 차지했다. 또 그의 책 『스토리』(한국판 제목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는 많은 영화(영상)학교가 교재로 채택했다. 스토리 작법의 바이블로 꼽힌다.
맥기가 1983년 이후 매년 진행해온 ‘맥기 스토리 세미나’도 인기다. 지금까지 전세계 영화감독·제작자·배우·작가·기업인 등 5만5000여 명이 수강했다. 그는 GE·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을 상대로 비지니스 스토리 컨설팅을 맡기도 했다.
그가 29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최초로 한국에서 스토리 세미나(서울 양재동 엘타워·02-564-6922)를 연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의 시대, 러시아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그를 e-메일로 만났다.
-스토리란 과연 무엇인가.
“스토리텔링은 인간 본성에 대한 ‘메타포(은유)’다. 모든 스토리는 어떤 사건에서 시작된다. 그 사건이 주인공의 삶의 균형을 깨뜨리고,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되찾게해 줄 대상을 욕망한다. 주인공은 힘든 환경 속에서 본래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스토리는 삶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다.”
2004년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석권한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 감독은 영화의 성공을 스승 로버트 맥기 교수의 공으로 돌렸다. [중앙포토]
“관객(독자)의 관심을 잡아 끄는 훅(hook), 관심을 유지시키는 홀드(hold), 이야기의 절정에서 감정과 궁금증을 풀어주는 페이오프(pay off), 세 요소를 갖춰야 한다. 장르에 상관없이 신빙성과 논리는 필수적이다.”
-요즘 영화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스토리 작법의 실패는 무엇인가.
“논리적 허점이 보이거나 인과관계가 맞지 않거나 캐릭터의 행동이 납득이 가지 않을 경우 관객은 바로 불신의 벽을 쌓는다. 의미 없는 사건으로 점철된 영화들도 많다. 어떤 영화는 형편없는 스토리를 과도한 영화적 효과와 편집으로 가리려 한다.”
-부실한 스토리의 영화를 꼽는다면.
“‘트랜스포머’야말로 싸구려 반전의 견본이다. 스토리와 논리가 형편없고, 인과관계의 부족을 ‘변신’이라는 겉치레로 감춰버린다. 장난감을 팔아먹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의 전개로 관객이 캐릭터에 동화돼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다. 훌륭한 스토리텔링은 이런 경이로운 반전을 품고 있다. 사건이 툭 튀어나와 흐름을 끊어버리고, 캐릭터와 사회에 대한 성찰이 없는 반전은 싸구려 반전일 뿐이다. 액션 작가들이 종종 그런 싸구려 반전에 기대곤 한다.”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한국영화를 꼽는다면.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다. 사회가 구현해주지 못하는 정의를 사회적 약자인 여자가 직접 복수에 나섬으로써 이뤄낸다는 구도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피해자들과 범죄의 비밀을 공유한다는 심리도 복수·정의라는 강력한 감정과 맞물려 관객의 감정을 더욱 확장시킨다.”
-선거에서는 어떤 스토리텔링이 효과가 있나.
“스토리텔링 전략에서 보면 미 대선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할 것 같다. 오바마는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고통받는 국민들을 세심한 의사처럼 달래고 북돋워주는, ‘병원 드라마’ 스토리를 택했다. 이상주의적이기만 한 롬니의 스토리보다 현실적으로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다. 게다가 롬니는 국민이 아닌,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훌륭한 정치적 스토리텔링은 국민들과 그들의 삶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야 한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발달이 스토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동굴 속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기 시작했던 선사시대 이래 우리는 공포를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 스토리를 만들어왔다. SNS 때문에 간단한 스토리가 유행할 순 있어도, 그런 스토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로버트 맥기=1941년 미국 출생. 할리우드의 저명 시나리오 전문가. 30여 편의 연극을 연출했고, 이후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83년부터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교수로 스토리 세미나를 시작했다. ABC·BBC·디즈니·미라맥스·파라마운트 등 미디어 업체에서 정기적으로 스토리 교육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