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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나지만 죽지는 않는다 (레슨포케이아트)2016 포스팅 2016. 4. 1. 13:35
한태숙 <이아고>의 한 장면
"피는 나지만 죽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 <오셀로> 중 이아고의 대사)
- 알파고시대의 예술
최근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기억할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바둑영역에서마저 인공지능에 정복당하는 걸 보면서
앞으로 기계가 인간을 정복하게 되리란 조급한 우려를 쏟아냈다.
알파고가 연승을 거뒀을때 조선일보 1면에 특별기고 형식으로 뉴라이트 소설가 복거일이 때맞춰 글을 남긴게 대표적 호들갑이다. 주요매체들은 신문 1면을 매일 할애하며 알파고의 승리소식을 다뤘다.
내용은 다들 비슷하다.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지성을 추월하는건 시간문제라는 것.
셰익스피어의 대답은 무엇일까?
이미 셰익스피어는 답을 내놓고 있다.
흔히 말하는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극 중 오셀로는 이렇게 말한다.
"피는 나지만 죽지는 않는다"
터미네이터 같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키는 영화들의 서사구조는 단순하다.
인간은 선이고 기계는 악이다.
선과 악의 대립이 그대로 적용된다
마치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과 그에 맞서는 인간의 구도처럼.
이런 선과 악의 공식은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승계된다.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알파고
이 3가지는 맥락이 같다.
기계는 악하고, 인간은 선하다.
그러나
400년전 셰익스피어의 견해는 다르다.
그는 인간성의 통찰을
광기와 악함 으로 봤다.
악함의 근본은 '이유없음'이다.
이성적으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상태이다.
인간의 악함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악함과 광기는 서로 연결된다.
리어왕에서
리어왕이 눈멀자 드디어 선과 악을 구분할 통찰을 얻게되고
광기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가장 어리석은 어릿광대가 가장 현명하며
폭풍우 몰아치는 그 광증 속에서
통찰을 얻는 것처럼
광기와 악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서 맥락이 연결된다.
결국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보고있다.
인간성의 근원은 악이며, 광기이다.
악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존재들이 사라져도
인간성의 근원인 '악' 그 자체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피는 나지만 죽지는 않는다' 라는 대사를
이아고가 하게되는 것이며
<오셀로>에서
절대악의 상징인 이아고가
데스데모나와 오셀로를 타락시킨 이유는
작품 속에서
끝끝내 밝혀지지 않게되는 것이다.
한태숙 연출가가 정확하게 봤다.
'피는 나지만 죽지는 않는다' 가 가장 중요한 대사이며
오셀로의 주인공은 이아고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보는 인간성의 근원은
결국
'악'이다.
이유를 찾을 수 없기에 더더욱 무서운 것이 악.
알파고가 인간과 다른 이유는
셰익스피어가 이미 답을 내놓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성적이다.
인공지능은 연산을 통해 사고한다.
인공지능은 이유없는 행위를 하지않는다.
인공지능은 특히 이유없는 파멸을 선택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질투하지 않고 (jeolousy, 참 매력적인 단어다)
인공지능은 시기하지않고
인공지능은 탐식하지 않고
인공지능은 교만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욕정에 타오르지않고
인공지능은 탐욕에 물들지 않는다.
악은 이유가 없기에 악이다.
오셀로를 타락시킨 이유를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선 전혀 찾을 수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모두가 다 죽어도
악의 상징인 아이고는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우리는 엿볼수가 있다.
인간이 선이고 인공지능이 악이 아니다.
인간 그 자체의 근본적인 정체성이 '악'이다.
만약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해서 멸망한다면,
그것은 인공지능의 이기적 선택에 의해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는게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인공지능을 통해서
멸망으로 귀결되는 것은 가능하겠다.
예를들어
과학기술을 통해 환경문제가 심해져 인류의 존재가 위협받는 것처럼
핵전쟁을 통해 공멸의 길을 선택하는 것처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교훈이 불과 수십년전 가까운 역사에 실존했던 것을 기억해보라.
인공지능을 통한 파멸역시.
인공지능의 악함이나 자의적인 선택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악함 때문에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해 멸망당하는 건
가능하다.
알파고시대에 예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될까?
예술은 기계가 가질 수 없는 영역이다.
게으름은 기계가 가질 수 없다
나처럼 자꾸 터놓고에 글쓰는걸
단순히 '게을러서' 자꾸 미루는 것.
기계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인간만의 독창적 활동이다.
게으른 자들의 마지막 보루가 예술이기도 하다.
게으름을 그냥 누워 자는걸로만 생각하지말고
무언가 정해진 길로 가는걸 자꾸 피하려는 '삐딱함'과 연관지어보거나
예술가들의 본질적 기질과 연관지어보면 (예술가와 과학자의 차이처럼)
예술과 게으름은 상당히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술은 모두가 다 이성적으로 A를 향해갈때
아무 이유없이 B로 가보는 것이다.
그래서 일종의 모험이고 게으름이다.
이런게 창조성의 근원이다.
창조성은 호기심이고, 모험심이고, 변주된 게으름이다.
둘러보는 것.
그냥 한번 그쪽으로 가보는 것.
문을 열면 엄청난 사고가 예고되어 있음에도
기어이 그 문을 열고야 마는 것.
이런 것들이
호기심이고
호기심은 창조성의 근원이고
예술성의 근본적인 요소이다.
알파고시대에서 예술은
훨씬 더 빛나게될 것이다.
예술은 기계가 흉내낼수는 있어도
본질적으로 기계는 예술을 할 수 없다.
예술은
비이성의 세계이고
게으름의 세계이고
때로는
거짓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거짓말을 잘 치는지가
예술의 근본이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에 이름붙이고 작품으로 내세워 미술계를 조롱한 것이나,
사무엘 베케트가
기존의 극적구조를 해체하고
전혀 의미없는 행동들 속에서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무대위에 드러낸 것등을 상상해보면
무의미한 것들의 최후의 보루가 예술이기에
알파고의 영역이 가장 난해하게 다가설 분야가 예술임을 알 수 있다.
앞파고 입장에서
바둑은 이해가능한 분야이지만
베케트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분야인 거다.
그래서 주요미래학자들은 대부분
생산, 유통, 등 대부분의 인간영역을 미래사회는 기계가 대체하리라고 보지만
예술만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으로 예측한다.
쓸모없는 것에 대한 쓸모없는 행동이 예술이라면
결국 미래는
쓸모없는 것들의 사회라고
감히 예견해 볼 수 있겠다.
2016. 4월 1일
레슨포케이아트 연극영화학원 원장
intheatre 씀.
-레슨포케이아트 영화학원이 새로운 강의실을 마련했습니다. 연기학원, 영화학원본관, 영화학원별관의 가로수길 인근 3개의 강의실에서 펼쳐지는 수업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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