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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엘리트가 아니다2015 새로운 포스팅 here!! 2015. 11. 24. 04:33
나는 엘리트가 아니다.
아마 당신도 엘리트가 아닐 것이다.
혹 엘리트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승자독식사회로 가는 이 사회적 분위기에서
엘리트의 범주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결국 엘리트가 되기위한 노력으로는 계속해서 실망만하게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엘리트는 매우 좁은 기준으로 보면
어느정도 정해져있다.
우선 판검사를 들수 있겠고, 그 다음 투자컨설팅회사의 파트너급이상 정직원,
그리고 행정고시출신 공무원과 대기업 임원들.
서울대, 연고대를 다닌다고 엘리트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가능했다. 대학만 나와도 엘리트란 소리 들을만했다.
그러나
지금 20대의 경쟁률이 과거 20대의 경쟁률보다 훨씬 더 극심하다.
단순 학벌만으로 엘리트 소리를 듣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나는 엘리트가 아니다.
여러 보편적인 기준으로 볼때 확실하다.
별로 신용등급도 높지않을 뿐더러.
아마 결혼정보회사에 가도 쫓겨날 스펙이었을거다.
한예종이란 학교. 남자가 나와봐야 아무 도움안되니까.
연극전공한 남자?
결혼정보회사에서 1순위로 쫓겨나는 대상이다.
나는 연극전공한 남자니까
사회적 기준에서 엘리트는 택도없다.
아마 이 블로그를 기웃거리는 당신도
엘리트가 아닐 확률이 높고
앞으로도 엘리트가 못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감독으로 아무리 성공해봐야
한국사회에서 파워엘리트에 끼기는 힘들것이다.
힘들게 최고의 위치에 올라섰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하락할수도 있는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내 친구동생은 진짜 엘리트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서 사법고시에 합격했는데
최근에 판사로 임용되었더군. 20대의 나이에 말이다.
연수원 성적이 최고였다더라.
아내는 총장딸이고.
그 친구 페이스북에 있는 친구들을 봤는데
변호사협회회장님, 총장님들, 판검사, 그리고 위에 언급한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
압도적으로 많더라.
즉.
엘리트집단은 그 나름대로의 룰이 있고
사회가 형성한 매우 정확하고 정교한 모집조건이 있으며
거기엔 노력하라는 가벼운 자기계발서적인 말만으론
위로할 수 없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부인하지마라.
삶은 불공평한 것이다.
삶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거다.
평등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어제 위에 언급한 친구동생놈의 페이스북을 눈팅하다가
문득
내 옆에 있는 강아지를 봤다.
콩이란 이름인데
이렇게 생겼다.
이제 곧 한살되는데
최근 몸무게를 쟀는데 딱 1키로 나온다.
초소형 미니 요키다.
(애보다 먼저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는데
그 녀석은 7살만 살고 죽었다)
내 옆에서 자는 콩이를 보고
판사 페이스북을 보는데
이 글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엘리트가 아니다.
너도 아마 아닐 것이다.
연극이나 영화쟁이를 선택한 순간
그렇다.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콩이에게 맹세컨데.
나는
부럽지
않다.
누가?
엘리트가.
나는 판사안되어도 좋고
교수 안되어도 좋다.
(대학원을 두개나 했는데 시간강사조차도 안하는 나를 어머님은 싫어하시겠지만.
물론 박사과정은 갈꺼지만. 그건 교수랑은 전혀 상관없이 공부하고 싶어서 그런거고)
나는
무엇이 안되어도 좋다.
옛날엔
무엇이 되고 싶었다.
무엇이 되어야만 행복한 줄 알았고
무엇이 되어야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줄 알았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여러 활동을 하며
진짜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니까
부와 권력이 인생 목표가 되어서는
인생이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고?
공정한 경쟁이 아니니까 !!!!!
엘리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터놓고를 보는게 아니고
자기들끼리 유리천장을 치고 있다니까?
장하성교수말처럼 사다리도 걷어차고
등등
조건이 불평등하다고 느껴질때.
내가 평생 일해 벌지도 못할 돈을
너무 쉽게 너무 멍청한 애들이
다 깔아놓은 판 위에서
너무 쉽게 얻어가는 걸 본적있나?
나는 학원하면서 죽어라고 지랄도 아주 팔자지 온갖 욕이란 욕. 오해란 오해는 다받고
겨우겨우 꾸려나가는데
내 친구는 (여자임) 재벌 막내아들인 아버지가
프랜차이즈를 청담동에 개업해서 선물해 주더라. 매출액 쫙쫙 나오는 레스토랑말이다.
딸이 둘인데 한명당 하나씩 하나는 청담. 하나는 정확히 모르겠다.
말하자면. 나는
삶은 기준문제. 라는 걸
깨달았다는거다.
돈에 기준을 두면
좌절한다니까.
아무리 돈벌려고 아웅다웅해봐야
돈 쉽게 버는 사람은 따로 있는게 한국사회니까.
엘리트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채념하라는 말인가?
자조적인 말인가?
흙수저의 자기만족인가?
생긴바꾸대로 살란 말인가?
자기정당화, 자기위안 하란 말인가?
아니다.
나는 콩이에게 어젯밤 맹세했다.
콩이가 곁에 있어서 너무 좋고
콩이가 있으니
왜 이렇게 기분좋고
든든하고
기쁜지 모르겠다고.
나.
행복하다.
내가 사랑하는 일터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학생들이 있다.
바꾸라고 해도
나는 바꾸지 않을거다.
화려한 삶이나
엘리트적인 삶보다.
왜냐면
지금
내 삶이
내겐
가장
잘 어울리는
내 몫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좋고
무조건 화려하고
무조건 대단한 것이
행복을 주는게 아니라
내 '몫'인 것들이
내게 행복을 준다.
나는 나다울때 가장 행복하고
나는 요모양 요꼴일때가
가장 행복한거다.
최적화는 컴퓨터 성능에만 필요한게 아니라
인생에 더욱 필요하다.
최적화된 삶.
좀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팽팽 돌아가는
컴퓨터가
훨씬 더 좋은 법이니까.
나는 최신 게임 별로.
나는 고전게임의 정서가 좋다.
페르시아 왕자 마지막까지 가봤나?
마지막에 가면
칼이 하나 있고
내 생명을 훔쳐먹는 '분신'이란 놈이 나온다.
그 놈을 찌르면
내 에너지가 줄어든다.
근데
'믿음'을 가지고
칼을 집어넣고
그 분신에게로 달려가면
분신과 나는
하나가 된다.
그동안 훔쳐먹었던 에너지를
숨겨놓았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주는
주인공 영혼의
간절한 도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나서
긴 낭떠러지.
어떠한 방법도 없다.
건너편. 공주가 있는 성까지 가기위해선.
어떻게해야할까?
눈을 감고
공주를 믿고
나를 믿고
달린다...
달린다.
달리면.
낭떠러지에
길이
생긴다.
결국 '믿음'이었다.
그게 페르시아 왕자 1의 서사이다.
페르시아왕자 긴 벽을 뛰다보면 벽에 있는 횃불과 페르시아의 창문들이
내게 무한한 상상을 주곤했다.
그 창밖을 상상하며
페르시아의 밤을 상상하곤 했다.
그 두툼한 배경음과 효과음.
다시 들어도 그보다 더 설레이는 게임음악은 별로 없는듯하다.
성경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그렇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는 사회.
엘리트적 기준.
연극쟁이, 영화쟁이가 비록
결혼정보회사에서 퇴짜맞으면 어떤가?
그런 방법으로 결혼 안하면 된다. ^^
무대에서
인연을 만나보자.
연극쟁이들은
무대에서
운명적 짝을
만나더라.
보이지않는 것의 가치를
소중히 안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비교하지 않고
나 자신을 믿고
나를 아끼고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을때
삶은 경탄에 차있는 것.
삶은
너무나 신비로운
것이더라.
내 옆에 자고있는 콩이의
근육을 만져보았다.
갈비뼈도 만져보았고
가는 털도 쓰다듬어보았다.
온기도.
뾰족한 귀도
촉촉한 코도
그리고
앙증맞은 발바닥도
발바닥과 코, 입술이 같은 성질의 가죽? 인거에 또 한번 놀라고.
방금 생리를 시작한
콩이의 생리가
지저분하게 느껴지지않았다.
오히려
저 작은 놈이
생명을 잉태할 준비를 하고 있구나.
신비로왔다.
강아지 하나를 봐도
이렇게 신기한것 투성이인데
오감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엔
놀라운 것 천지 아닌가?
그게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오감을 열고
세상을 보는 사람.
과학자는 과학을 통해 물질세계를 창조하고
경영가는 자본을 통해 기업을 만들어간다면
예술가는
오감을 열고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주는 사람 아닐까?
보는 사람.
보여주는 사람.
눈을
뜨게 해주는 사람.
나는 엘리트가 아니다.
정말 솔직하게
나는 엘리트가 되고싶지도 않다.
나는 엘리트가 될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신비롭게 귀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가는
이 행복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몫'을
뜨겁게 사랑할 것이다.
나는
내 생긴대로 요모양 요꼴로 사는 인생을
너무 행복하게
즐기고 맛볼
준비가 되어있다.
콩이를 키워보니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알겠다.
세상 어느 아빠가
자기 아이를 다른 것과 바꿀까?
내 몫이란
바로 그런것이다.
내것이기에
그것은
절대가치를 가진다.
삶도, 나의 아이처럼.
(나는 아직 아이가 없어 개로 대신 글을 썼지만)
내것이기에
그것은
절대적으로
비교될 수 없는
바꿀 수 없는
영원한 만족을 주는
내 '몫'인 것이다.
나는 나 다운 삶을
절대로 타협하거나 바꾸거나 다른 가치로 대체시키지 않을거다.
나는 엘리트가 아니다.
엘리트.
되지않아도
행복하다.
인생엔 비교형태란 없다.
오직 절대형태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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