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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인정받아야 할 진짜 대상 (한예종, 한예종 영상원 합격자, 한예종 영화과 합격자, 한예종 연기과 합격자, 한예종 전문사 합격자, 한예종 방송영상 합격자)연극영화과에 대해 말하다 2014. 8. 16. 10:32
홍명보 국가대표축구팀 감독과의 인터뷰를 봤다.
그는 말을 길게 하는 편도 많이 하는 편도 아니다.
정답에 가까운 말만 짧게 한다.
그런데 꽤 솔직하고 힘이 있다.
어떤 인생이 아름다운 인생인가?
이런 질문 받아보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홍명보의 대답은 이렇다.
아름다운 인생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최선을 다하는 인생이 아름다운 인생이다.
정답에 가까운 말이라 생각한다.
친구야.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자.
나도 예를들어 돈 많이 벌고 사업 잘하는걸 목표로 한다고 해보자. 사업체를 얼마나 키웠고,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느냐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해보자.
안타깝지만 나는 '돈'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면,
성공하기 힘들다.
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왜 그런가?
난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내가 돈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많이 없으니
돈을 아주 많이 벌기는
불가능한거다.
오늘날은 돈이 돈을 낳고
돈이 결과를 낳는 시대다.
돈을 많이 벌고 싶나?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고, 통찰력있게 살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라고 하지만
솔직히 다 뻥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네가 돈이 많으면 된다.
돈이 많으면
너무나도 쉽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통찰력도
인문학적 사고도
인격도
실력도
외모도
학력도 아니고
그냥 돈 그 자체다.
앤디워홀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성공해라. (예술분야에서)
그러고나면, 네가 똥을 싸도 사람들은 (예술적 표현이라고)박수 칠 것이다.
적용해보자면,
돈 많이 가지라.
그러고나면, 네가 똥을 싸도 돈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니
돈 많지 않다면
돈 많이 버는걸
인생의 목표로 삼지마라.
아무리 노력해봐야
돈많은 놈 못 따라간다.
그러나 나는
돈이 내 목표가 아니기에
행복하다.
홍명보가 말했듯이
아름다운 인생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어떤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분야와 방식에 특정된 것도 아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말.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과로 판단한다면 그건 불의한 일이다.
출발선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노력한다고 성공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열심히 훈련한다고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누구는 대충 훈련해도 세계적 축구선수가 될 수도 있다.
세상은 결과로 그 사람을 인정해준다고 생각하지?
절대 아니다.
결과만을 판단한다고 했지? 세상은?
절대 아니다.
결과로 판단하는건
미디어다.
언론이다.
기업이다.
자본이다.
획일화된 한국의 재래식 입시체제다.
그러나
네가 진짜로 판단받아야 할 대상.
진짜 중요한
너를 평가해주는 사람은
기업도 아니고
방송도 아니고
언론도 아니다.
네가 진짜로 인정받아야 할 대상은 바로
최우선적으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너의 가족이고, 너의 자녀들이고, 너와 피와 살을 나눈 가족들.
그리고 너의 가까이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도
외적 성공으로
아이의 존경을 살 수는 없다.
아버지가 돈 많은건 인정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자녀도 많다.
사회적 성공은 이뤘지만
온 가족이 반목하며 갈갈이 찢어진 가정도 많다.
대기업 오너의 자녀가 자살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그러나 아버지가 비록 겸손한 삶을 살았고 그다지 특출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가족들이
그 아버지를 존중하고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그 아버지는 성공한 사람이다.
우리는 너무 저질스러운 자들, 우리를 잘 모르는 자들의 판단에 기대어 산다.
너를 평가하는 기준은 연봉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고, 부장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다.
너를 가장 잘 아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정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너를 존경한다면
너는
성공한 사람이다.
두번째론, 너의 일이다. 네게 맡겨진 일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동네 일식집 사장님은 회전초밥을 이쁘게 포장할때 가장 아름답고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은 새벽에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열심히 꿈을 키우며 아르바이트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중학생은 중학생 다울때 가장 아름답고
퇴임하고 주택에서 콩나물을 키우는 할머니의 쭈그러진 손가락도 아름답다.
기준은
바로 너다.
네가 선택한 삶이
최고의 삶이다.
너의 인생이
세상 어떤 인생보다
중요하고
가치있다.
바로 너의 인생이기에 !!!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학생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일이 내게 맡겨진 일이기 때문이다.
내 일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거다.
이 일을 해서 무언가를 이루기위해 최선 다하는거 아니다.
내가 옛날에 성수동에서 얼굴맛사지 기구 조립하는 아르바이트를 할때
너무 과도하게 열심히 하니까...
사장이 그러더라.
너는 왜 아무도 보지 않을때도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고...
내 기준에선 그건 너무 당연했다.
보든 보지않든
그건 내 일이니까 !
내 이름이 걸린 일이니까, 대충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아르바이트이지만
내게 맡겨진이상. 내 일 이니까.
나는 누구를 위해서 일해본 적이 없으니까.
난 나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거다.
내가 좋아하는 희곡작가 중에
아서 밀러가 있다.
아서 밀러의 대표작은 물론 세일즈 맨의 죽음이지만
시련 이라는 작품도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 나오는 명대사 있잖은가?
"그건 내 이름이니까요!!"
프락터가 교수형을 당하는대신
그의 이름을 선택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묵묵히 남편의 죽음앞에서 마음으로 존중과 존경을 표한다...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인가?
그건 우리의 이름이니까,
우리의 삶이니까
비록 내가
아르바이트로 아줌마들 얼굴맛사지 기구를 만드는 초라한 현실이더라도
나는 내 인생에 대해서
존중을 바치지 않아선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건 내 인생이니까!
그건 내 이름이니까!
세번째는, 바로 신이다.
사람이 아닌 존재를 써서 미안한데
너는 반드시 신과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
특정종교를 언급하는건 아니다.
난
실존의 문제를 언급하는 거다.
너의 실존이 풀리지 않고는
인생 자체가 풀리지 않는다.
나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내가 실존적으로 가치관이 잡히지 않았을때는
인생에 방향이 없었고
삶이 무의미했다.
그러나 내가 신앙을 통해 삶의 균형이 잡힌 이후론
무시무시하게 뻗어나가는걸 스스로 느꼈다.
실존이 무너지면
인생도 무너진다.
종교에 빠지란 말이 아니다.
너의 가치관을 바로 세우고
살아가는 이유와
확신과
믿음을
굳건하게 세우라는 이야기이다.
종교도 도움이 되고
아니면 그 어떤 책이든, 관념이든 좋다.
한번 정도는
죽음 직전까지 가면서
너의 실존와 맞써는 경험을 하라.
난 그런 경험이 있다.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종교적 용어론 어노인팅 이라고 한다.
기름부음받음....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
실존이 확립되어야 한다.
죽고 싶을만큼 힘든 순간이 있는가?
진짜 자살하려고 한 적 있는가?
지금 바로 그런 고통의 순간을 지나고 있는가?
세계 최고의 신학자 헨리 나우웬이 언급했듯이
바로 그때가
실존적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회의 순간이다 !
헨리 나우웬의 표현대로라면
너의 실존이 모조리 꺽힌 그 순간에
너의 영혼은
물결친다.
요통친다.
춤을 춘다.
기회가 온 것이다.
번데기에서 벗어나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나를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니
실존적 고통을
영혼의 자유로
승화시키라 !
젊은날 자살시도도 안해본 놈하고는
인생을 말하지 않기로 하자 ^^
마지막은 바로 너 자신이다.
다른 그 누구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되지만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의 인정만은
받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려져도
가족에게 버려져도
심지어는
신에게 버림받더라도
괜찮다.
그러나
단 한 사람에게는
버림받아선 안된다.
바로
너
자신이다.
너 자신은
언제나
너의 편이어야 한다.
배우의 연기중에
참 재미있는 연기론이 있다.
바로 브레히트의 연기론인데
서사극의 이론적 근거인 생소화효과가 연기에 적용된 것인데
바로 게스투스라고 한다.
뭐냐면
배우가 연기하는 자신과 연기하는 대상을 분리시켜서 연기하는거다.
저는 송강호라고 하는 배우인데요
지금부터 햄릿을 연기해볼께요.
(햄릿 연기 하다가)
어? 잘 안되네?
뭐 요런식으로 연기하는 대상과 연기자 자신을 분리시켜서 이중성을 갖추고 연기하는 방식을 뜻한다.
그래서 매우 유명한 말이 나왔다.
연기의 이중성 이란 말이 -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과 나와의 관계가 그렇다.
내가 있고
나를 보는 내가 있다.
이 두 사람은
어떤 연인보다도
가깝고
사랑스럽고
탄탄한
관계여야 한다.
나와
게스투스하는 내가
서로를
싫어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 황폐화된다.
친구야.
지옥 끝에서라도
너와
게스투스하는 너와의
관계가 좋으면
반드시
회복되고
살아나고
구원받을 수 있다 !
내가
피에타를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 악마같은 강도새끼도 ^^ (이름이 강도다)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되니까
(무덤 아래 세 사람이 끌어안고 있는 장면)
죽어도
아름다운거다.
죽음이 아름다움으로 변하는
그런 기막힌 이야기는
바로
자신과의 회복이 이뤄진 순간이 있기에
승화
된다.
평론가 신형철이 이 장면을 두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끔찍하며 가장 고결하고 숭고한
십자가 사건에 비유할만한
장면이라고 언급한 것 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과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지옥 끝의 억울한 일을 겪더라도
모든 놈들을 저주하더라도!
단 한 사람
너 자신만은
저주하지 말아라.
아까 연기적 이중성이란 말을 했지?
곰곰히 생각해봐라.
너 자신에 대해 생각해봐라.
네가 너를 봐라.
어때?
신기하게도
네가 보이지 않나?
네가
너 자신을
볼 수 있지 않나?
네가 네 자신을 게스투스 할 수 있지 않나?
신기하지?
그렇다면
네가
너 자신을
학대하고 때리고 욕하고 무시할 수도 있고
네가 너 자신을
안아주고
존중해주고
지지해주고
격려해주고
힘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게
확인되는가?
그렇다면
반드시
너를 사랑하고 살아라.
이건 나르시즘과는 다르다.
나르시즘은 결국
남을 향한거다.
남에게 보이기위해 자신을 편애하는게 나르시즘이다.
내가 말하는건
남과 상관없고
실존과도 상관없는
너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옥에서라도
너는 너 자신을 안아주는 그 품만은
거두어서는 안된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처참한 지옥.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일들이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실존적 지옥에서조차
자신을 안아주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살아났다.
가장 튼튼한 방벽이 무엇일까?
만리장성?
콘트리트 요새?
아니다.
바로
너 자신이
안아주는
너 자신의 따뜻한 품이
만든
방벽이다.
세상 그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세상 최고의 요새이다.
친구야.
이 요새. 한번 단단히 세워보지 않을래?
힘내!
널 존중할
자격이 있는
단 한사람
바로
너 자신이야.
너 자신과 화해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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