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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이탈 (공짜는 없다)연극영화과에 대해 말하다 2012. 10. 27. 01:16
오랜만에 칼럼을 쓴다.
수시 2차와 한예종 10월입시를 진행하면서
칼럼을 쓸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입시에만 매달렸기에
제대로 쉰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극도로 지쳐있다.
그래서 학원에 와도 내가 수업을 하거나
내가 개인적인 첨삭을 해주거나
그런 살가운 행동을 전혀 못하고 있어서
혹시나 나를 보고 온 학생들이 좀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마라.
오히려 입시를 읽는 눈은 더 좋아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코치보다는
디렉터가 되고자 한다.
전체 팀을 이끌고 가는
디렉터이고 싶다.
자.
오늘의 주제는
아래 25개 올린 포스팅에 잠깐 언급하려고 했던 주제지만
오늘 다시 올린다.
공짜는 없다.
무슨 일이든 대가를 치루려고 하라.
이게 오늘의 주제다.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정말
날로 먹으려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한예종이라면
카이스트에 비견될만한
예술계 최고수준의 국립예술대학이다.
그런 대학의
기악 전공이라 생각해보라.
아니면
성악이나 작곡도 좋다.
피아노로 한예종을 가거나
무용으로 한예종을 가려고 한다면
그 학생은
언제부터 실기를 준비하며
한예종을 준비했을까?
발가락뼈가 굽고
무릎에 피가 나도록 연습하는
무용전공 학생들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무용전공이나
체육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공부 안한다고 편견을 갖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그들의 프로패셔널은
세계적이라고 생각한다.
태릉선수촌에 들어가고자 땀흘리는 체육전공생들을 생각해보라.
그들 앞에서 함부로 말할 자격이 되겠는가?
그렇게 기량을 갈고 닦은 학생들 중에서도
절대적 소수만이
합격하는 대학이
바로
국립 예술대학
한예종이다.
그런데
너희
정말
너무 한거 아니냐?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거 아니냐?
특히 연기준비한다는 학생들.
나를 찾아오는 학생들.
제일 처음 하는 말이 뭔지 아냐?
99%가
제일 처음 나를 보지마자 하는 말.
지금 해도 되나요?
제가 해도 되나요?
아무것도 준비된게 없는데 해도 되나요?
영화 전공하겠다는 학생들, 극작, 방영 다 마찬가지다.
그 정도 자신감과 확신으로
예술을 해서
뭘 할꺼냐?
그렇게 멋없고
확신도 없고
믿음도 없는
너희들이
도대체 뭘 할꺼냔 말이다.
제발 시작하지 마라.
함부로 시작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늦게 시작했으면
무용하는 친구가
초등학교때부터
하루 8시간씩
10년을 준비했다면
너는
하루 24시간을
실기준비를 해도
터무니 없이 부족한거 아니냐?
그런데
시험을 한달 앞두고
학원을 찾아와서는
한예종을 준비한다고 해놓고
내가 좀 직설적인 지적을 하면
난 안되나보다 하고
그만두고 환불해달라고
수시준비하느라 이 정신없는 와중에
정신 사납게 하는 부류들.
제발 소원인데
그냥 오지마라.
부탁이다.
없어도 된다.
제발 오지마라.
아예 상담도 하지마라.
왜 그렇게
자신을 대단하게 평가할까?
왜 그렇게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데
그렇게 자비로운가?
그리고
나는 잘될꺼야
막연하게
그냥
잘될꺼라고 믿는건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잘 될꺼야 라는 말과
될대로 되라는 마인드다.
잘 될꺼야라고 말하지 마라.
대신
잘 될 수 밖에 없도록
철저히 분석하고
자신을 훈련하고
통찰력있는 가르침을 선택하고
최고급의 정보를 얻기위해 노력하라.
특히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지원하는 학생들.
너희들이
지금 한예종이나 서울예대 입시의 거품을 만든 주범이다.
부모님이 벌어주신
귀한 돈과
학원비와
원서접수비를
그렇게 허투루 쓰는 너희들은
부끄럽지도 않냐?
로버트 프랭크가 쓴 승자독식사회를 보면
0.001%가 전체의 부를 독점하는
연예산업의 경우
그 산업을 지탱하는 건
그 0.001%의 성공을 보고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지망생이라 한다.
그런데 그 지망생들은
모두
그 혹독한 환경과
성공의 가능성이 극히 미미한
객관적인 현실은
보지않고
나만은 다를꺼야
나만은 잘될꺼야
나는 잘 풀릴꺼야
라는 환상으로
현실을 보는 눈을 감춘다고 한다.
이를 워비콘 호수 현상이라고 한다.
이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한예종 입시나
연영과 입시도
어쩌면
학생들의 자기기만 위에
세워진 잔치가 아닌가 한다.
워비콘 호수 현상.
우리가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는 용어이다.
공짜는 없다.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해도
인생이 탄탄해진다.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지 말라.
자기 자신에게 혹독해야 한다.
어설픈 낙관주의에 너를 맡기지 말라.
혹시나 싶은 요행을 바라지마라.
어설프고 가벼운 꾀를 쓰지 말라.
어설픈 꾀를 쓰는 대표적인 예를 한번 들어볼까?
한예종 입시해보니 어떠냐?
쉽냐?
어렵냐?
붙기 어렵지?
내가 진실을 말해줄께.
입시가 어려우면
무조건 너희들은 그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대학이
가장 좋은 대학이고
너에게
가장 확실한 성공을
이끌어줄 수 있는 대학이다.
또
너를 가장 많이 성장시킬 대학이며
가장 가치있는 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할 대학이다.
지원자들이 바보가 아니므로
가장 좋은 학교가
가장 들어가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왜
쉽게 지름길로 가려고 하는가?
한예종에 못 간다고
이름이 비슷한
한0진이나 서0종이니...
(의도가 읽히지 않냐? 그 학교들의 그 상술이?)
그런 종류의 학교에
왜 부모님의 생명과도 같은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헌납하는가?
너희는
사이비교에 빠져서
헌금을 바치는 교인들과 다를바 없다.
막연한 환상
막연한 스타에 대한 동경.
그러나
예술가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가는
그
험난한 댓가는 치루려 하는 않는
그 쉬운 생각들...
물론 위에 언급한 학교를
어떤 목적에 따라 진학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다.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이지마라.
미숙한 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위의 학교를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게 아니라
성공을 위한 댓가를 치루려고 하지않은채
쉽게 합격시켜주고
쉽게 보장해줄 것 같고
쉽게 꿈을 이루어줄 것 같은
길을 선택하는
너희들을 꼬집는 것이다.
위의 대학들을 가장 가치있게 다니는 예도
충분히 많다.
실제로 학위가 필요하면서 시간이 부족한 현직 예술가들에겐
아주 좋은 학교이다.
또 학위를 받을수 있기에
권장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30대의 전문대졸 학생이
대학원을 가기위해 위의 학교를 가는 경우가 아니라
겨우
20살인 네가
왜
한예종을 한두번 떨어졌다고해서
포기하고
손쉬운 길을 선택하는거냐?
내가 보장하는데
원서만 내면 100% 합격할꺼다.
그러나
그만한 댓가를 치루지 않았기에
네가 치뤄야할 극심한 경쟁의 댓가는
훨씬 더
가혹할 것이다.
친구야.
먼 길을 돌아가려고 하는
네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부러
돌아가고
일부러
더 멀리 가려고 하는
그런
네가 될 수 없을까?
아직
꿈을 포기하기엔
너는 너무 젊지 않냐?
19세면
아직도
59살이 되려면 40년이나 남지 않았냐?
59살이면
아직도 젊디 젊은 나이 아닌가.
한 사람의 예술가로써.
절대 포기하지 마라.
그리고
자신에게 가혹하라.
한번 떨어지면
두번 도전하고
두번 떨어지면
더 치열하게 준비하라.
그리고
더 큰 꿈을 향해 도전하면서
한편으로
현실적인
치밀한 분석과
통찰.
특히
너 자신의 현재 강점과
단점을
분석해서
너의 수준에 가장 적합한 시작이 있다면
거기서 부터 시작해라.
사실 나는
학교를 여러번 준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학교 따위가 목적이 아니기에
좋은 학교를 가기위해서
몇번씩 준비하는 것은
일종의
허영이다.
그러나
요즘 교육은
뒤로 갈수록 중요하다.
한예종에도 전문사라는
엄청나게 매력적인 과정이 있지 않은가?
전문사 출신으로서 진실을 말하건데
전문사가
학벌을 본다는
이상한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보기에
다소 명성이 떨어지는 학교나
위에 언급한 학점은행제 출신도
많이 합격한다.
그러나
서울대, 연대 출신.
특히 연대, 고대 출신은
내가 본 것만 수십명이 떨어졌다.
진짜다.
그러나
조금 학교의 명성이 떨어지더라도
자신의 예술을
올곶게 간직하고
발전시키고
그런 장인정신이
그런 땀방울이
포트폴리오에
이력서에
자기소개서에
새겨져 있는 학생
(지금 어떤 학생 한명을 생각하면서 쓰고 있다)
그런 학생이라면
전문사에 100% 합격할 것이다.
올해 최종합격하면
내가 그 학생과 인터뷰를 한
포스팅을 올리겠다.
단. 그 학생이 동의한다면.
난
그런 학생을
사랑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 학생의 진가는
교수들이 알아볼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분석하고
통찰하는
예리함 또한 함께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따위는 도전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제발
공짜는 없다는 걸 기억하고
먼 길을 돌아가는 용기를 선택하자.
어쩌면
우리가
예술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먼 길을 돌기로
작정한 것 아닌가?
이미
궤도 이탈이 아닌가?
우리가
예술을 선택했기에
우리는
궤도를
이탈한 인생이다.
그러나
궤도를 이탈했기에
더욱 자신에게 가혹해야 한다.
방종과
자유는 다르다.
네가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네가 사는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짜는 없다.
예술의 진짜 자유는
몰입속에서 만끽하는 자유이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느끼는 자유.
작가가 글을 탈고하고 느끼는 자유.
발레리나가 조명 아래서 만끽하는 자유.
연출자가 마지막공연을 마치고
객석 끝줄에서 조용히 관객들의 박수를 듣는 자유.
피아니스트가
연주회의 마지막 건반을 누르는 자유...
자유...
진짜
자유를 위해
잠깐의
가벼운 자유는
기꺼이
포기하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에
스페인의 국민작가
안토니오 부에로 바에호라는 작가가 있다.
그의 대표작은
타오르는 어둠속에서이다.
그 작품의 배경은
맹인학교다.
맹인학교에서
맹인들이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고
자신들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잊은채
정상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행복하게
연애도 하고 꿈도 꾸면서...
그런 맹인학교에
이그나시오라는 한 맹인이 입학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그나시오는
이 맹인학교를
거짓 위에 세워진
학교라고 단정짓는다.
아무리
행복해도
그것이
거짓위에
세워진
행복이라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런 이그나시오는
학교의 기득권을 상징하는 까를로스에 의해
살해당하고
맹인학교에 단 한명 정상인인 교장의 아내는
살해현장을 보고도
침묵함으로 은폐한다.
이 희곡은
바로
예술하는 우리를 위한
희곡이다.
작가는 묻고 있다.
거짓위에 세워진 행복을 추구할 것이냐
불행할지라도
진실위에 새겨진 삶을 추구할 것이냐...
묻고 있다.
극 중 맹인 이그나시오의 대사를 인용하며
포스팅을 마친다.
후아나 :
왜 그러는거야? 네가 원하는 것이 뭐지?
이그나시오 :
앞을 보는 것!
그래! 보는 것!
비록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앞을 보는 것!
비록 나의 삶 전체가 이 소망 하나로 인해
소득 없이 소멸될지라도,
나는 앞을 보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나는 만족할 수 없어.....
나는 앞을 보고 싶거든 !
PS: 이 대사를 사랑하는 사람.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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