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찾아 떠나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고,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고통스러운' 여행 (레슨포케이아트연기학원,한예종연기과,터놓고연극영화)2015 연기칼럼 2015. 5. 13. 18:24
연기칼럼 첫번째 - (연기칼럼을 시작하며...)
나를 찾아 떠나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고,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고통스러운' 여행
by intheatre 5월 13일
진짜 재미난 고통
세상에는 수많은 재미난 일들이 있다.
그런데 진짜 재미있는 것들은 모험이 따른다.
우리는 이런 모험적 요소를 스릴,모험,짜릿함,도전,승부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일종의 고통을 즐기는 인간본위의 변태적 쾌락이라 하겠다.
컴퓨터게임을 해도, 난이도가 없으면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적당히 고난과 역경이 있어야 게임이 흥미롭다.
생각해보라.
정말 재미있는 건 전부 고통의 요소를 담고있다.
도전이 없는 핸드폰게임을 생각해보라.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아이템을 먹기만하고 몬스터같은 방해장치가 없는 게임.
수비수가 없어 공을 차면 100% 들어가는 축구경기를 생각해봐도 좋다.
상대방의 반격이 없는 UFC, 평지에서만 천천히 안정적으로 저속운행하는 롤러코스터, 욕과 공격성없는 갱스터음악...
착하고 겸손한 순종적인 장동민? 설탕안쓰고 요리하는 백종원?? 빠릿빠릿하게 말잘듣는 꽃할배 일섭할배???
단순히 재미만을 생각해도
재미와 고통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는게 아니다.
그러나 고통은 더욱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진짜 가치있는 일은 대부분 고통 속에서 자라난다.
우리가 관심있어하는 입시가 대표적이다.
나는 입시를 일종의 게임이자 쾌락으로 보고, 그래서 입시에 따르는 노력의 순간들을 즐긴다.
내가 입시를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끌고갈 수 있는 것도, 이 일을 즐거운 게임처럼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쓰는 것도 그렇고, 공부하는 것도, 경영하는 것도.
어느 하나 쉬운건 없지만, 모두 다 즐거운 놀이 아니겠는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신비로운 일이
인간이 인간을 낳는다는 사실이라고 본다.
자세히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놀랍고 무섭고 기적같은 일인지.
내가 소개시켜줘서 결혼한 커플이 있는데, 처음에 둘이 서로 호감을 가질때부터 나는 그 둘을 알고있었다.
거의 십년만에 만나니까 애가 셋이 있는데 5명이 우루루 다니니까 무슨 작은 마을공동체가 되어있더라.
형이 소개시켜줘서 우리 만났어요 고마워요, 그러는데. 나는 너무 신기한게
내가 소개시켜줬을땐 그냥 두 명의 남, 녀 였거든. 서로 잘 알지도 못했던 그냥 남과 녀, 서로 전혀 다른 객체와 객체^^
근데 이 둘이 만나 결혼하고 아이낳고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자라있는데
이 아이들은 어디서 온건가?
또 이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생기는 수많은 사건과 일상과 삶들은 감히 예상이나 했을까?
인간보다 소중한게 없는데
인간이 인간을 만들수 있다는 것 보다 신비로운 일이 있을까?
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
막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너무 신기하더라
저 애들이 어디서 온거지?
그러면서 생각해봤다.
창조주는 참 낭만적인 분이다.
오직. 사랑만으로 생명과 생명이 이어지도록 설계했으니 말이다.
사랑이 사랑이란 감정적 행위에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랑이란 행위에
생명의 영속성을 연결시킨
창조주의 설계에 감탄한다.
그러나
아이를 낳는 그 과정. 또 키우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아이를 낳는 일이 숭고하다고해서, 감히 그 일에 도전하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선택이 가지는 고통의 크기는 가늠할수가 없을거다.
나는 반드시 아이를 낳고 키울꺼다. 내가 남자라 출산은 못하겠지만. 아이를 키우는건 기꺼이 최선을 다해 감당할 거다.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일이고
가장 보람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일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생명의 소중함에는 비할바가 못되기 때문이다.
생명을 생각해보면 한마디로 이해가 될 거다.
가장 가치있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이 따른다.
입시도 마찬가지다.
입시가 힘겨우면 힘겨울수록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게 옳다고 믿는다.
경쟁률이 높으면
오히려 좋아해야 되는거 아닌가?
우와. 드디어 제대로 시험볼만한 학교가 생겼네 !
도전해볼만한 목표가 생겼네 ! 이 정도는 되어야 좀 해볼만하지 !!
경쟁률이 높다는건 그만큼 내가 생각한 학교가 내실있는 학교란 증거네 !
적어도 입시에서는,
경쟁이 낮은 곳만 찾아다니는게 아니라
어찌보면 경쟁이 치열한 곳만 찾아다니며 도전하는 것. 그래서 자신의 성장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도전적 사고방식이
고3, 또는 20대의 젊은 청춘들에게는
더 어울리는 사고방식이 아닐까?
더 강력한 상대와 싸울때 더 큰 성장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고통의 또다른 이름은, 성장인 거다.
가장 재미있고, 가장 가치있고, 가장 고통스러운 여행 - 연기
오늘부터 연기칼럼을 쓰고자 하는데
글의 서두를 고통에 대한 너무 장황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당연한 이유가 있다.
서두에 언급한 저 3가지 단어. 매력, 가치, 고통...
연기라는 분야에 가장 치명적으로 적용되는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 가장 재미있고,
나는 경험해본 모든 분야, 공부해본 모든 분야에서 가장 매력적인 분야. 매력적인 학문. 매력적인 경험. 매력적인 사람들, 매력적인 교육. 매력적인 공간을 꼽으라면
무조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연기를 선택한다.
내가 해온 경험이나 공부가 적지않다.
지금이야 내가 연기학원, 영화학원 원장짓을 하고있고
전공은 연극영화에서도 평론을 했고 평론분야도 기웃거린 적 있지만
만약 내가 세상 모든 재능이 가지고 있어서, 그냥 한가지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학원원장따윈 안할꺼다^^ 평론전공도 안하고^^
나도 뮤지컬배우, 영화배우가 되고싶다 !!!!!!!!
다만 재능이없기에,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분야이기에
나는 배우를 하지 않는거다. (못하는 거다)
진짜라니까?
나도 재미로 따지면
뒤도 안돌아보고
연기할꺼라니까?
그만큼 연기가 매력 of 매력 이라니까. 깝치지마라. 극작,연출,영화,방영...^^ 다 필요없고 연기가 재미로는 갑이라니까.
(영화학원 원장이 이런 글써도 되는건가?)
아주 매력이 엄청나서
그냥 마약같다니까
연기해보면
그 매력에서 헤어나올수가 없다니까
연기에 중독된다는거 아나?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욕먹어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연기의 세계.
그 치명적 중독.
레슨포케이아트 가로수길 영화학원이 실적이나 규모가 커나가면서 점점 주변사람들한테서 영화분야에 집중하나는 조언을 많이 듣는다.
연기쪽이 운영하는데 공간도 필요하고, 강사진도 필요하고, 시설도 필요하고 돈 드는건 많은데 그에 비해 수익이 떨어지지않느냐?
굳이 영화랑 연기를 병행하면 영화쪽에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느냐?
이런 조언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내가 연기학원을 운영하는 이유는 의외로 되게 단순하다.
이 자리를 빌어, 내가 연기학원을 고집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밝히고자 한다.
"그게 짱 재밌으니까요 !!!! 도저히 포기못해 ! 재밌어서 !!! 이 텅빈 세상에서 이 재미라도 없으면 죽어버릴것 같아~~~~~~~"
안톤 체홉의 희곡을 읽고, 뜨레블레프의 대사를 가르칠때 희열을 느낀다.
니나의 1막대사와 4막대사 사이의 간극을 느낄때 나는 행복하다.
소극장 무대에서 이름없는 배우의 잘하지못한 연기를 보고나서도 뭉클하고 짜릿하다.
레프 도진의 체홉 공연을 볼때 행복했다.
오태석 <자전거>의 마지막대사. 그 의미없어 보이는 이름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형상화! 텍스트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윤택은 솔직히 희곡이나 작품보다 사람자체가 너무너무너무 매력적이다. 예전에 서울연극제 공연평가회였나? 평론가들과 모여서 작품에 대해 피드백하는 공식자리에서 평론가가 자신작품을 비판하니까 갑자기 연단에 올라 칠판에 30분동안 강의하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리치던 그 장면. 평론가쪽 입장이었지만 멋있었고, 낭만적이었고, 그날 모든 평론가들의 기립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공연보고 맨날 대학로 어디메 구석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맥주에 치킨먹으며 예술을 논했던 시간들.
그런 치기들
한예종 수업에서 교수한테 지독하게 당하고 씩씩대며 지하로 내려가 아무공연이나 본다. 실험무대? 상자무대? 뭐 이런 이름들이었던 것 같은데
보고나면 촌스럽게 용기를 얻었다. 힘이 났다. 내용도 기억안나는 보잘것 없는 공연이었는데도 나를 성장시켜주었다.
대학로에서 처음 두달간 조연출했는데 공연끝나고서 연출이 어디서 돈을 왕창 가져오더니, '미안하다. 이거밖에 못벌었다' 하더라. 그리고는 모든 배우, 스텝을 n분의 1해서 지가 먼저 딱 그만큼 챙겨가더라. 그래서 나도 28만원 받고 극장을 나섰는데도, 그게 억울하다거나. 그게 지랄맞게 느껴지지는 않더라. 다만 좀 안쓰러울뿐.
내 사랑과 꿈과, 청춘의 모든 기억은
연극과 무대와 극장에 있다.
그 까만 극장이. 그 냄새하고 습하고 가난했던 그 공간과 그 시절과 그 기억들이
나를 지탱해주었고
나를 만들었고 (실패작인듯)
나를 형상화해주었기에
나는
연기를 해서, 연극을 해서
행복하다.
연기를 가르칠꺼다. 내가 돈주고서라도 나는
연기를 가르칠꺼다.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 매력을 가진 분야가
연기다.
확실하다.
가장 가치있고,
또 가장 가치있는 분야를 꼽으라해도 나는 연기분야를 꼽을 것이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한양대의 전설적인 연기선생님. 최형인 연극영화과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종종 이런 말을 하셨다.
연기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연기는 바깥으로 발산되어지는게 아니라
자신 속에서 찾아나가는 거라고.
왜냐하면
인간 모두는 태어날때부터 연기적 모든 재능을 타고나는데
아이를 생각해보면 쉽단다.
애들은 모두 위대한 배우들이자, 위대한 즉흥극 퍼포머 들 아닌가?
엄마~~~~~~~ 외칠땐 발성이 최고다. 애들이 말하고 울고 떼쓸땐 우리가 그토록 연습하는 복식호흡 + 신체의 모든 기관을 발성기관시키는 증폭이 저절로 되는거 아닌가?
그리고 발음도 애들이 얼마나 찰지고 정확한지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고. 솔직하고 예측불가능한 최고의 배우들
바로 아이들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쯤엔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으므로
우리 모두는 위대한 배우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최형인 선생님의 주장은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사회화를 겪으면서
사회적 기준과
고정관념과
통념을 지나면서
여자는 이래야돼.
남자는 이래야돼.
그 기간들을 지나면서
우리는
배우의 현존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연극을 치료의 개념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심리학과 정신과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는 분야중 하나가 싸이코드라만가 뭔가 해서
연극적 역할놀이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치료하는 전문분야이다.
연기라는 행위는 숭고하고 고결하다.
모든 예술은 도구가 있다.
미술가는 캔버스로
도예가는 진흙으로
조각가는 조각품으로
건축가는 건축물로
표현한다.
배우는
무엇으로 표현하는가?
자신을 통해서 표현한다.
즉
연기예술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예술자와 그 표현도구가 동일하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연기는 숭고하다.
인간에 가장 근접한 예술이다.
아니
인간 그 자체가 곧 연기이다.
그래서 좋은 연기는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
좋은 연기는 그 자체로 쾌감을 주고, 치유하고, 삶을 바꾼다.
그것이 아무리 끔찍한 상황에 대한 연기라 할지라도
나는 그 속에서 인생을 보고, 예술을 본다.
역할에 몰입한다는 것 자체가
인생이고
예술이고
인간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그러나 연기는 고통스럽다.
혹시나 지금까지의 글이 여러분에게 무책임한 낭만만 말해온건 아닌가 돌아보게된다.
나 자신도 연극을 선택했기에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결코 가볍지 않았기에
연기자들에게 물어보라. 연기 잘 선택했느냐고?
대부분 하지마라 정도가 아니라 한대 쥐어박고 말리면서 시작할거다. 아님 엄마한테 '나 이제 연기할꺼야'라고 말해보라. 심하면 정신과상담예약 잡힐수도 있다^^
이유가 있다.
경제
1차적으로는 모두가 다 알겠지만, 경제적인 고통이다.
실화다. 지금의 내가 그렇게보이지는 않겠지만. 내가 31살때도 학교다니고 있었는데 석관동 옥탑방 살고 있었다.
보증금 200에 월세가 17이었는데 돈 200이 없어 보증금 100에 월세 22로 했다. 그 보증금 100만원도 50빌려서 냈다.
가난하면
저금통에서 동전을 빼서 쓰게되는 일이 많은데
어느날엔 너구리가 너무 먹고싶어 동전을 세어보니
세상에 십원짜리 다 긁어모아야 안성탕면을 사먹을 돈밖에 안되는거였다.
그래서 너구리 못먹고 안성탕면 먹어본적 있는가?
조금 서럽더라.
옥탑방이 나는 솔직히 좋았다. 여름엔 여름답게 따뜻해서 좋고, 겨울엔 겨울답게 시원해서 좋았다.
그런데 그런 나도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은
꽁꽁 얼어붙은 옥탑방에 이십년된 보일러가 툭하면 고장날때.
특히 멀리다녀와서 몸이 너무 지치고 피곤한데 한밤중에 보일러가 얼어붙어있을때.
너무너무 추운 옥탑방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새벽내도록 가스렌지에서 물을 끓여 부어도 녹지않는 보일러를 볼때
아주 조금은 서러웠다.
그러나 그런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이겨내는 건 어찌보면 관점의 문제이기에
조금 불편하기만 할뿐
그 경제적 어려움보다 큰 꿈이 있다면
전혀 힘들지않게 이겨낼 수 있다.
기억하라.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는건 너무 쉽다는거.
그 경제적 어려움보다 큰 꿈만 가슴에 품으면 된다는 거.
나는 당연하게도 경제적 어려움보다 꿈이 월등히 컷으므로
내게 경제적 문제는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또 경제적 문제가 적어도 내게는 별게 아니었던 이유는
어렸을때부터 워낙 없이 자랐으므로
가난과 불편함이 그냥 익숙한 일상이었다는거.
그냥 지하철타고다니고 걸어다녔지만
돌아보면
지금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나는 오히려
그때처럼 폭넓게 인생을 사유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을 쏘다니며 서울을 구석구석누비고 다녔던 그 시절이
훨씬 더 자유로웠고 당당했고 활기찼고...어쩌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연기를 선택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거는
사실 그렇게 본질적인 고통은 아니다.
자. 정신 바짝차려라.
지금부터 제대로 된 고통들을 열거해주겠다.
이 글을 읽고나서 왠만한 지망생들은 싸그리 다 포기할지도 모른다.
경쟁
경제적인 것은 적어도 내게는 큰 고통은 아니었다. 옥탑방에 살면서 라면 먹으면서도 가슴엔 꿈이 있었고 젊음이 있었기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연극을 선택하면서 경제보다 더 큰 고통이 있더라
그건 경쟁이다.
너무 많은 연기지망생이 있고, 너무 흔한 연기지망생, 연극영화지망생이 있어. 그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잡는게 쉽지가 않다.
연극영화과를 보면 쉽다.
겸손해야 할 대학도 연영과는 전혀 겸손하지가 않다.
한예종 연기과 경쟁률은 살인적이다. 지원자 4000명중 30명인데, 남,녀 성별을 따지면 15명이다.
내가 계속해서 말해왔지만
한예종 저 경쟁률보고 우와~~~ 하면 안된다.
저건 달리말하면
일년에 30명은 꼬박꼬박 강제로 뽑아준다는 말이된다.
그건 해볼만한 경쟁이다.
입시는 사실 해볼만한 경쟁이다. 나는 저게 힘든 경쟁이라는 생각이 안든다.
진짜 힘든 경쟁은
불확실한 경쟁이다.
언제 기회가 올지조차 모르는
기약없는 경쟁이 훨씬 더 힘든 경쟁이다.
배우의 삶이 그렇다.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는채 경쟁해야 하는 막막한 경쟁.
한예종 연기과는 일년에 꼬박꼬박 30명이라도 뽑지
뮤지컬 주연자리는?
예를들어 박하사탕의 주연자리는?
우연히 이창동이 기획사사무실에서 설경구 배우를 정말 우연히 만나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우연의 가능성은 몇대 몇이되는가?
그야말로
운도 따라야되는
그런 기회 아닌가?
그래서 배우의 길이 어려운거다.
기약이 없다는 것.
불확실하다는 것.
확실하기만 하다면
1000: 1도 두렵지가 않은데
기약이 없다는게
가끔은 절망적인 고통으로 다가온다. 분명히.
인간
그러나 그 극심한 경쟁도 나를 본질적으로 힘들게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극심한 경쟁이기에 더 가슴이 뛰었고 더 열정에 불탔고 더 도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언급하는 고통 부터는 치명적 고통의 세계로 진입한다고 보면 된다.
이제부턴 진짜 만만하지가 않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뭐 그런 개쓰레기같은 말을 들으면 피가 거꾸로 쏟아지는것 같다.
경험이 약이다. 무슨 경험이든 하라.
젊어 고생은 약이 된다.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친구야.
고생과 고통은 다르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나는 말하자면 고생에는 자신이 있다.
가난한거, 경쟁이 심한거, 불편한거, 기약없는거 다 좋았다.
그러나
사람을 통해 생기는 상처.
상처를 통한 고통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더라.
연기를 네가 한다고하면
나는 네가 가난할꺼가 걱정되거나 극심한 경쟁속에서 네가 힘들어할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순수하고 맑은 네가
상처받고 치명타를 입을
관계들 속에 노출되는게
나는
많이 두렵다.
연극영화판이 참 더럽다. 욕망의 집결지라 그렇다. 연극의 기원이 되는 그리스비극의 모체는 뒤티람보스 축제에서 기인하는데 뒤티람보스축제는 바로 디오니소스 제전의 일부이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어고, 라틴어로 바꾸면 박카스가 된다.
술의 신, 욕망의 신, 관능과 섹스의 신. 광기의 신. 바로 디오니소스이다.
어찌보면 연극영화란 욕망의 최전선에 다름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배신당하고, 또 이용당하고...그런 일들이 너무 많다.
연기분야라면
더더욱 그렇다.
직설적으로 말해
네가 여배우라면
더 심하다.
정글의 세계.
약육강식의 세계.
그리고 욕망이 판을 치는 세계
동네로 따지면
너는 연기판에 들어가고자 할때
아마 뉴욕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맨하탄, 브로드웨이...
아니면 낭만적 파리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아한 여배우. 샤넬을 입고 우아하게 걷는 그런 모습?
동네로 비유하자면
연기판은 뉴욕이나 파리가 아니라
라스베가스, 혹은 마카오라고 보면 된다.
라스베가스가 연기판에 더 적절하다.
담배연기 자욱한 마카오도 가능할 듯.
그러니까
섣불리 경험해선 안된다.
함부로 선택해서도 안되고
아무 기회나 덥썩 물어서도 안된다.
젊음을 낭비하고
별것아닌 연기자로 전락하기에 딱 좋은 쉬운 기회들이 너무 많을거다.
게다가 유혹도 많을거다. 별 잡놈들이 다 유혹할거다.
연기쪽에선 이렇게 생각해라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가는게 아니라고.
밑바닥에서 올라가는게 아니라
밑바닥에선 지하로 내려가게된다.
그럼 어떻게해야하나?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올라가는 그런 일이 연극판에선 거의없다.
오히려
너의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뚝심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예를들어볼까?
연극배우생활을 오래한 배우들은
밑바닥을 선택한게 아니다.
오히려
순수함을 용기있게 지킨 것에 해당된다.
연극판이 가난하다고해서 밑바닥이라 할 수 없고, 스타가 돈이 많다고해서 높은 곳에 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극판을 지켜온 배우들이 뒤늦게 뜬 경우라면
좀 가난하고
좀 불편하고
좀 유명하지않은
그런 상황을
용기있게 버텨나간 것이다.
이렇게 순수함을 지켜나가는게 중요하다.
버티는 용기가 필요하다.
손쉽게 연기를 하면서
빨리 가는길. 빨리 성공시켜주는 길을 피해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너는 작은 초식동물에 불과하다.
연기판이라는 정글에서는 말이다.
아프니까 청춘 아니다.
아프면 치명상을 입는다.
경험이 재산이다는 말은
고생에 한정된 말이다.
사람의 이기심과 탐욕을 통한 순수함의 훼손, 그리고 치명적 상처...존재의 낙인과 전락.
이런것들은 치명상이다.
회복되지가 않는다.
고생과 고통은 다르다.
고생은 얼마든지 괜찮아도
상처는 평생 극복할수가 없을지도 치명상을 남긴다.
그러니 절대적으로 인간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희망이다라고 하는데 반쪽짜리 말이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믿을건 너 자신뿐이다. 너를 성공시키고 너를 구원시키는 것도 너 자신이다.
사람은 희망이기도 하지만
모든 치명적 절망은 모두 사람에게서 온다는 것도 기억하라.
자기자신
점점 뒤로가면서 부터 강한 고통인데
이제 끝판왕이 등장할 차례이다.
결국 연기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대상은
자기자신이 될 거다.
일차적으론
재능의 문제를 끊임없이 느껴갈 것이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와
내가 표현가능한 세계 사이.
대중이 원하는 세계와
내가 원하는 세계의 사이.
연출자가 원하는 세계와
내가 표현가능한, 또는 내가 원하는 세계 사이의
간극.
이런 간극들이 너를 힘들게 할거다.
앞서 언급한대로 연기는 자기자신을 통해 표현해내는 예술이므로
예술적 표현의 모든 영향력이 모두 자신에게로 집결된다.
그것이 긍정이건 부정이건...
주로 부정일 경우가 대부분이며.
긍정일 경우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락을 주기도 할 것이다.
결국 연기의 가장 근본적인 고통은
연기예술 그 자체에 기인한다.
배우 자신의 삶과 연기예술이 동일시되기에
배우는 자신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비비안 리 가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촬영을 마치고
블랑쉬역과 자신의 동일시가 너무 커서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라스트씬은 블랑쉬가 스탠리에게 강간당하며 미쳐버리는 장면이다. 어찌보면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야말로 연기에 대한 순수한 꿈을 가진 연기자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비정함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평생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까운예로 <악마를 보았다>에서 장경철을 연기한 최민식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가 자기를 아는채하자
이 새끼가 왜 나를 아는척하지? 란 생각이 스스로 들어서
스스로 섬뜻했다는 고백이 있다.
연기자는
연기자 자신의 삶을
예술의 도구삼는 사람이기에
결국
그 모든 영향력을
고스란히 안고살아가야 한다.
숭고하지만 비극적이기 쉽고
고결하지만 타락하기 쉽고
매력적이지만 고통스럽고
모두가 원하지만, 그 누구도 성취하기 힘든
그
모순의 분야가
바로
연기예술의 분야인 것이다.
모순.
이 한마디로
정의가능하겠다.
어떤가?
결국
친구야
네게 해줄 말은 이것뿐이다.
운명이면,
하라.
란 것.
거부해도
운명이면
네게 허락될 것이다.
안된다면
굳이
애써서 하지는 말아라.
안톤 체홉 갈매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니나의 대사.
4막에서 그렇게 만난 뜨레쁠레프에게
니나는 하는 이야기는...
결국....
"우린 모두 슬픈 순환속에 빠져든거죠....."
슬픈 순환.
그게 인생이고
그게 연기라면
그 뫼비우스의 띠에 들어간다면
그 답없는 세계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운명이어야 한다.
그것밖에는 정당성을 설명할 길이 없다.
안톤 체홉은 그 말을 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연기 칼럼은...
연기의 시험요소
자유연기
당일대사
특기
면접을 어떻게 준비하는가?
연기의 기본요소
입장하는 것
서있는 것
숨쉬는 것
비물체를 표현하는 것
호흡의 중요성
표정
시선
언어
당일대사의 법칙 GO 연기법
즉흥연기의 표현방법
즉흥연기 = 에뛰드의 법칙 (레슨포케이아트 연기학원 박현욱부원장님 특별칼럼으로 진행예정)
연기에 대한 레슨포케이아트 박현욱 부원장님의 특별칼럼
등으로 연기칼럼을 꾸려나갈 계획이고
4~5번에 걸쳐 일단 마무리지을 계획이야.
슬픈 순환속에 빠져든 자들이여. 힘내시게나. 운명이다. 어쩔수없다.
(레슨포케이아트연기학원, 연기입시, 한예종연기, 서울예대연기,터놓고연극영화)
'2015 연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극영화입시관련 두서없는 100문 100답 (20~40 *연기편) (11) 2015.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