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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승- 전- '병' (극작과, 영화과, 연출과, 한예종 연극원)연극영화과에 대해 말하다 2014. 4. 23. 21:43
네가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제일 많이 비난하는게 뭔가?
허약한 스토리구조아닌가?
흔히 기/승/전/병이라고 부르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의 짜임새.
그게 가장 문제라는데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치르는 입시에서
너희들이 그렇게 씹어왔던
한국영화/ 한국막장드라마
스토리 짜임새보다
훨씬 더 어처구니없고,
형편없는
스토리를 쓰고 있다는 건 알고 있는지?
왜 스스로는 돌아보지 못할까?
너희들이 입시장에서 쓰는 시나리오
한마디로
지금 TV 에서 니들이 가열차게 씹어대는
막장드라마보다
훨씬 더
급수가 낮은 글들이다.
그러면서
영화입시, 극작/연출 입시를 한다고
스토리를 쓴다고 말하고 다니는거냐?
너희들이 지금 당장
영화과, 극작/연출과 입시를 위해
점검해야 할
단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그건
네가 쓰는 시나리오, 혹은 이야기의
극적 짜임새이다.
한국인들의 고질병인지
기성세대나
입시한다는 애들이나
이 극적 짜임새에 왜 이리 취약할까?
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탄탄한 교육을 갓난아기 때부터 시키는
유럽의 교육방식
(셰익스피어는 이미 어렸을때부터 공부한다)
극적짜임새를 탄탄하게 교육하는
미국의 스토리텔링 및 영화교육기관들
가장 근본적으로는
문자문화로 문자적으로 전승되어온 서사구조를 체계화시킨
서양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부터 시작해 고대 그리스의 작가들, 또 수많은 과거의 문학적 유산들이 모두 문자화되어 전승되어 왔다)
동양의 스토리전승은
할머니 무릎팍에서 전해지는
건너고 건너고 건너서
전승되고
채집되어온
구술문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거다.
위의 주장과 관련된 내용은
월터 옹이 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란 책에서 자세히 밝혀져 있으니 참고해보고
모든게 다 이런 문제 때문이다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체계적이고
탄탄한
극적 짜임새가
현재
한국적 교육에 젖은 학생들에게
가장 취약한 요소란 점만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자. 어찌되었든
너희가 입시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무조건
극적짜임새에 올인해야 한다.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다보면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게
단연
스토리의 극적 짜임새이기 때문이다.
수업을 해봤을때
너희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스토리텔링 실수들을 몇가지 언급해보면,
1. 소재에 경도되어 스토리전개가 되지 않는 경우
1번의 경우가 뭐냐면,
너희들이 뭔가 엄청난 소재를 잡았다고 했을때 (사실은 별로 신선한 소재도 아님)
그 소재에 대해 언급하고 그 소재에 대해 분량을 할애하느라
정작 스토리구조 자체는 매우 허약한 경우이다.
어떤 독특한 소재
독특한 공간
독특한 인물로
이야기를 구성하더라도
항상
그 기본이 되는 스토리의 극적 짜임새는
치열하게 검증해야 한다.
네 스토리의 극적 짜임새를 점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거두절미하고
너의 글을
시작-중간- 끝
혹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혹은
기-승-전-결
등의 3~5개의 문장으로 축약해보는거다.
거창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사실
요약해놓고보니
엄마와 갈등이 생겼다. 그래서 엄마를 죽였다. 그리고 나도 창밖으로 날아올랐다. 바깥 공기가 상쾌했다. (자살한 걸 이런 식으로 표현, 그걸 상징이라고 우김)
뭐 이 정도의 스토리전개가
전부인 글이 대다수이다.
너는 아닐것같지?
지금이라도
네가 쓴 장황한 글을
위의 예시처럼
3개에서 5개의 문장으로 축약해보라.
내가 위에 요약한 스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거다. 진짜다. 한번 해보라.
2. 항상 마무리가 문제다.
항상 마무리가 문제다.
너희들 스토리의 가장 큰 문제는
첫째로는 스토리를 절대 마무리짓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마무리가 뻔하거나
지나치게 파격적이라는 것이다.
살인, 방화, 자살등의 마무리를 피해야되는 이유는
위의 결말이 스토리에서 써서는 안되기 때문이 아니라
3000자 이내의 글에서
위의 행동이 정당화될만큼의
서사전개의
정당성.
짜임새를
만들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진짜다.
3000자안에
주인공을 죽이거나
주인공이 누군가를 죽이거나
주인공이 자살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개연성을 가진
사건을 만들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결국
이야기의 극적짜임새란
설득의 과정이다.
네가 쓴 이야기에서 나타난
살인이나
방화나
자살이
보는이로 하여금
충분히 공감이 되도록
설득하기위해서
단 3000자만이 허락되어있다....
이건 셰익스피어가 재림해도 힘든 문제이다.
그러니
될리가 있나.
갑자기 결말이 마무리되고
모든게 다 주인공의 상상이었다거나
모든게 다 XX 였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결말...
모두 통하지 않는다.
결말로써 내가 가르친 학생 중 최고였던 학생의
이야기를 소개해줄께.
참고로 이 학생은 한예종 극작과에 합격해
지금 잘 다니고 계신다.
(기)
사이비교주 A씨는 오늘도 전을 굽고 있다.
TV 뉴스
'현재 청소년들의 성윤리가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어...여중생들의 임신비율이 날로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이 뉴스를 보면서 전을 굽는 사이비교주 A씨
"쯧쯧...세상말세로구나...할렐루야"
이때
전을 굽다가
기름이 튀어
나자빠진 A씨
넘어지면서
집에있던 쓰레기통이 뒤집어지고
거기서
A씨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있는 한 물체.
임신테스트기다.
가운데 줄이 그어져있다.
A씨의 대사
'어라? 마누라는 10년전에 죽었고, 우리집엔 여중생딸밖에 없는데 이건 뭐지? 내가 임신한것도 아니고??'
(승)
딸을 닥달하고 있는 A씨
"빨리 말해. 네가 어디가서 사고를 안저지르고서야 어떻게 임신할 수가 있어?"
딸 눈을 동그렇게 뜨고
"아빠도 알잖아. 매일 학교 데려다주고 학원데려다주고 한시라도 떨어진적이 있었어? 1초도 안떨어져있었잖아"
"아니 이 년이 미쳤나? 네가 어디가서 사고를 안치고 어떻게 임신을 할수가 있어?"
"몰라. 나도 모르는데 그냥 임신이 된걸 어쩌라고"
(전)
산부인과 병원. 의사와 A씨와 여중생 딸이 싸우고 있다.
"싫어. 낳을꺼야. 내가 키울꺼라고"
"아니 이 년이 미쳤나..."
격투끝에 딸을 수술대위에 묶어놓는데 성공한 산부인과 의사와 A씨.
딸이 묶여있는 모습이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같다.
(결)
천상이다.
등장인물은
대천사 미카엘, 성부, 성자, 성령
대천사 미카엘이 다급하게 보고한다.
"성부님....이번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백만스물번째 재림이 또 실패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성부
길게 한숨쉬며...
"아...이제 진짜 포기해야되나?"
자. 이야기를 대충 요약해서 쓰느라
다소 좀 허술한면도 있지만
위의 이야기가
내가 생각할때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쓴 결말 중
최고의 결말이다.
대단하지 않나?
예수는 처녀 마리아가 낳았으므로
다시 오실 예수도 처녀의 몸에 왔는데
현대엔 처녀가 임신하면
죄다 중절수술을 해 버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백만스물번째 늦춰지고 있다는
저 유쾌한 패러디.
그리고
갑자기 천상의 세계로 날아가버리면서도
놓치지 않는 극적 개연성.
수술대에 십자가모양으로 묶인 그 상징성.
이런게 결말이다.
이런게 결말이라고.
3. 시작부터 실패한다.
시작이 장황해선 안된다.
보통 너희들은 시작부터
한 인물의 연대기를 시간순으로 지겹도록 써나간다.
아니다.
시작은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하나의 강렬한 사건으로 시작해야 한다.
극의 균형을 깨트리는
사건이
바로 시작인 것이다.
절정- 전개-위기- 절정- 결말
이라는 말이 있다.
즉 시작부부터 임팩트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 강렬한 사건의 원인을 개연성있게 찾아가는 과정이 전개가 되고
다시 초반보다 더욱 강력한
절정이 다가오는 것이
현재 많이 쓰이고 있는 플롯구성법이다.
4.
중간이 허술하다
끝이 문제고, 시작도 문제지만
중간도 문제다.
(결국 다 문제다)
네가 쓴 글의 중간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보통
시작과 상관없는 중간
끝과는 상관없는 중간인 경우다.
시작에서 중간이 파생되고 중간에서 결말이 이어져야 되는 것인데
시작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내용이 중간에 있고
또 그 중간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결말로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이다.
또
중간이 허술할 경우는...
예를들어
3막구조를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여자를 나무위에 올려라.
나무위에 올라간 여자가 죽을때까지 돌을 던져라
여자를 나무에서 내려오게 하라)
여기서
나무위에 올라간 여자가 죽을때까지 돌을 던지는게
바로 중간부분인데
극적전개를 말하는거다.
주인공의 위기상황이
계속 이어져야 하는거다.
주인공에게 주어진 문제가 계속해서 점층되면서 전개되는 것.
즉.
보통 학생들이 중간부분에서 많이 하는 실수가
이 허리부분에서 적절하게 점층을 하지 않고 (1의 문제- 2의 문제- 3의 문제로 계속 점층되는것)
시작이 있고 하나의 사건이 짧게 있고 바로 허술하게 결말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허리가 좋으려면
문제가 계속 점층되어가야 한다.
5.
너는 네가 창조한 세계를 존중하고 사랑하는가?
결국 본질적인 문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진지하게 묻고 싶다.
너는 네가 쓴 이야기를 사랑하는가?
네가 쓴 이야기.
입시를 위해서
쓴
허술한 이야기이지만
네가 창작한 세계아닌가?
네가 극적 생명력을 불어넣은 인물들
대사들
환경들
을
너는
사랑하는가?
아니면
선생님께 첨삭받고는 바로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듯
보잘것없는 쓰레기처럼 대하는가?
네가 쓴 이야기를 네가 사랑한다면
그 인물을 함부로 죽일수가 없다.
함부로 망치로 머리를 내려찍게하거나
함부로 자살하게 하거나
함부로 불을 지를수가 없다.
네가
창작한 인물을 네가 사랑한다면.
글을 쓴다는건
특히 스토리를 쓴다는 건
성스러운 행위다.
네가 전능자가 되어
한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애정을 갖지않고
창작한 글이
어찌 좋은 글일수가 있겠는가?
진지하게 물어보라.
너는 네가 쓴 글을 사랑하는가?
정말
존중하고
사랑하고
아끼는가?
한 인물의 성격창조.
한 인물의 대사
하나의 결말에
너의 혼신의 노력과 애정을
다
쏟아붙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넌
스토리를 쓸 자격이 없다.
마크 포스터감독의 스트레인져 댄 픽션이라는 영화를 보라.
그 영화에선
소설가가 쓴 소설 속 세계. 즉 허구 속 인물이 바로 주인공이다.
이런 설정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네가 만든 소설. 이야기. 허구 속엔
평행우주이론처럼
또 하나의 세계가 실제로 살아서 숨쉬는것이며
너는 전지전능한 창조주이다.
너의 피조물들을 사랑하라.
그리고
그 세계를 존중하고
너의 모든 노력을
쏟아부으라.
스토리텔링이
쉬운게 아니다.
전지전능한 창작작업이므로
스토리텔링 하나만 보면
그 학생의 모든 예술적역량을 심사할 수 있는거다.
전국의 모든 영화과나 극작연출과가
오직 스토리텔링 하나만 심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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