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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와 sub-text2016 포스팅 2016. 1. 30. 01:19
오늘은 달린다.
포스팅을 두개 연속으로 쓰는거니까
이 포스팅을 짧게간다.
희곡분석엔 이런 용어가 있다.
텍스트와 서브텍스트.
안톤 체홉의 희곡을 이해하려면 특히 텍스트와 서브 텍스트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체홉의 마지막 장막극인 <벚꽃동산>에 이르러선
거의 서브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작품해석이 아예 안되기 때문이다.
서브-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하고선
<벚꽃동산>의 마지막 장면에서
단둘이 남은 가예프와 라네스까야가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오만하기만 한 두 남매가
아무도 보는 이 없을때
갑자기 부둥켜 안고 우는 장면.
나는 그 장면이 <벚꽃동산>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의외로 안톤 체홉의 작품에선 소리가 중요한데
특히 <벚꽃동산>이 그렇다.
시끌벅쩍한 파티소리. 그 기뻐보이는 요란한 위장과
시시각각 조여드는 현실을 대변하는
벚꽃동산을 벌목하는 소리.
이 두 소리의 대비.
마지막 장면에서 남겨진 피르스가
내뱉는 한마디. '나를 잊으셨구나'
잊혀진 피르스는 홀로 벚꽃동산에 남겨져
의자위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텍스트와 서브텍스트에 대한 이해는
우리 삶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너무 드러난 말의 노예가 되어왔다.
말에 너무 크게 상처받고
말때문에 너무 많은걸 판단해왔다.
그래서 나는
SNS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트위터는 최악이다.
SNS는
오로지 40자? 의 텍스트만이 허용되는데.
텍스트로만 소통하는게 위험한 이유는
텍스트보다
더 중요한
서브텍스트가
삭제된 의사소통방식이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서브 텍스트가 없는 텍스트만의 의사소통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텍스트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의 말에서 잠깐만 거리를 두고
그 사람 자체를 바라보고
말 속에 담긴 뜻을 파악하려고 할때
대단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그녀가 나에게 마구 말을 쏟아붙는건
어찌보면, 그만큼. 나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강렬한 호소일 수 있다.
말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바라보려고 하니까
말 속에
숨겨져있던
진짜 언어 (서브-텍스트)가 떠오른다.
그때 그 말만 듣고, 그 사람을 보내는게 아니었는데
그때 그 말을 듣고 그에게 상처를 주는게 아니었는데
이 세상에서
말 만 빼고
바라보면
얼마나
더
정확하고
정교하게
대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연극의 선구자들은
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이오네스코, 핀터, 베케트......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표현을 할때
우리는 관용적 표현으로
'말못할' 사정이 있다.
라는 표현을 쓴다.
'말못할'
그래.
상대방에게
저마다의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고
말로 표현해선 안되는
이유와 사정들이 있다.
그래서 '말못할' 사정인거다.
그 말못할 빈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
말없이 그 말못할 빈공간을
이해해주고
채워주고
감싸주고
덮어주고
그리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람.
얼마나 근사한가?
말에서 벗어나는 길이
어쩌면
영혼이 성장해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말로 담을 수 없다.
최근에 호주에 갔는데
코알라의 통통한 뱃살과
골드코스트의 뜨거운 햇살.
그리고 브리즈번의 이름모를 카페에서 들었던 라이브...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내가 느낀 그 무언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확실히.
말로 표현하면 변질되어 버린다.
text는 완전하지 않다,
sub-text를 채워가는거
희곡분석에서도 결국 sub-text가 위대한 언어를 만든다.
<갈매기> 니나의 마지막 대사. "인간, 사자, 독수리, 뇌조, 뿔달린 사람, 거위, 거미, 말없는 물고기....."
텍스트로만 이해하면
쓸데없는 단어의 나열이지만.
그 속엔 거대한
사랑과 인생에 대한 절절한 호소가 담겨있음은
<갈매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텍스트는 불완전하다.
서브 텍스트를 채워가려고 노력할때
관계는
진짜가 된다.
진짜 신비는
보이지 않는 것에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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