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intheatre'에 해당되는 글 57건

  1. 2020.06.08 죽음과 삶 (4)
  2. 2020.04.10 코로나 슬럼프
  3. 2020.02.24 하되, 잘하라
  4. 2020.02.18 직업에 귀천이있다 서울대 대나무숲글을 읽고 (4)
  5. 2020.02.02 진짜자유 (4)
  6. 2020.01.21 내 탓. (6)
  7. 2019.11.26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3)
  8. 2019.11.21 못가진 사람의 마음 (4)
  9. 2019.11.15 여행은 걷는 독서다 - 인생의 감가상각 (9)
  10. 2019.11.15 빅 미스테이크 (11)

2020. 6. 8. 17:45 about, intheatre

죽음과 삶

 

강아지 콩이를 키운지 햇수로 5년하고 6개월이 되었다.

콩이가 비록 1.2키로짜리 요크셔테리어지만 아이를 충분히 낳을 수 있는 모성애와 강인한 정신을 갖고있어서

수의사와의 상담끝에 임신을 시키기로 하였다.

 

세차례 시도끝에 겨우 임신에 성공. 뱃속에 두마리의 새끼가 들어있는걸 확인하고

9주간의 출신기간을 곁에서 지켰다.

지난주 토요일에 마지막으로 초음파검사를 했는데, 두마리 중 한마리가 뱃속에서 흡수되어 한마리만 남아있다고 했다.

적잖게 충격을 받았지만 마지막 한마리는 심박수까지 체크해봤는데 너무 건강하고 활발해서 안심을 했다.

그리고 지난주 일요일

 

 

하루종일 멀쩡하게 뛰어놓던 콩이가 급격히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고

출산의 징후가 보였다.

나는 그때 학생의 글을 지도해주느라 잠깐 학원에 있었는데

콩이 뱃속에서 꼬리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아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갔다.

 

차 안에서 콩이는 진통을 느끼고, 그 짧은 이동시간을 견디지못하고 차 안에서 출산을 했다.

보라색 태반속에 강아지가 쌓여서 나오는 장면을 보는건 너무나 놀라운 경험이었다.

 

우리 콩이는 출산을 하는 당일까지도 아픈 기색하나없이

오히려 엄마아빠를 안심시켜주는 대견한 강아지이다.

입덧도 한적없이 잘 먹고 잘 뛰고 잘 놀던 우리 강아지

진통도 너무 갑자기 왔고

대응을 하기엔 너무 갑자기 출산을 했다.

 

수의사를 채 만나지전에 출산이 이뤄져 전화로 지시사항을 들으며 조치했으나

작은 콩이의 몸에서 새끼강아지가 태어났을때

새끼강아지는 미동도 없었다.

 

수의사의 지시에 따라 등을 쓰다듬고 위 아래로 세차게 흔들기도하고

마침내 수의사를 만나 새끼강아지를 조치해보았으나

이미 죽어있었다.

 

그렇게 강이지 콩이의 새끼 콩주는 태어나자마자 

죽게 되었다.

 

그 출산의 경험을 다하며 콩이가 가장 힘들었을텐데 콩이는 자기 몸도 돌보지않고 새끼부터 찾았다.

 

죽은 새끼의 등을 열심히 핥아주는 모습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슬픈광경일 것이다.

 

 

죽은 새끼강아지를 안고 집에 돌아왔는데

 

새끼가 너무 예뻐서 더욱 슬펐다.

엄마 콩이와 너무 닮고

너무 예쁘고 털까지 다 자란 완벽한 형태의 새끼를

콩이가 작은 몸으로 내색한번 안하고 키워온게

너무 대견했고

그래서 더 슬펐다.

 

정말로 견디기 힘든 슬픔은

죽은새끼를 찾는 콩이의 행동들이었다.

산통때문인지 밤새 잠 한숨못자며

밤새도록 울부짖으며 새끼를 찾는 콩이와 함께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함께 많이 울었다.

 

집안 곳곳을 수색하고

심지어 화장실 변기 뒤편까지도 

혹시 죽은 제 새끼가 있을까 찾아다니는

콩이를 볼때 나도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다.

 

콩이는 지지난주 일요일에 출산을 했고

콩이의 새끼 콩주의 생일은 5월 31일. 그리고 새끼강아지가 죽은 날도 5월 31일이 되었다.

 

6월의 첫날인 지난주 월요일에

죽은 새끼강아지를 조용히 묻어주고

죽은 아가를 위해 글을 써서 읽어주고

태어날때 탯줄을 자르기위해 준비한 명주실에 고이 싸서

묻어주었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겪으며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죽음을 경험하니

신비롭게도 삶의 소중함이 불쑥 다가왔다.

곁에있는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의 사랑이

절실한 소중함으로 다가왔다.

 

새끼강아지의 죽음을 경험하며

내 삶에 고통을 안겨줬던 집착과 불안과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삶을

애써 살아갈

용기를 내본다.

 

짧게 우리곁에 왔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생명인

사랑하는 수컷요크셔테리어 강아지 콩주 (2020.5.31- 2020.5.31) 에게

이 글을 남긴다. 

 

 

 

 

주말에 시름에 빠진 콩이를 위로해주고자 시원한 바닷가로 데리고가

집이아닌 야외에서 자는걸 선택했고

콩이는 조금씩 상처를 이겨내며 이렇게 밝은 미소를 되찾고 있습니다.

슬픔을 견뎌내고 이겨내고 있는 강아지 콩이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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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b 2020.06.08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귀여워요 콩이. 눈이 참 예쁜 강아지네요!
    아마 잘 이겨내겠죠.

    • intheatre 2020.06.09 0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해요. 정말 너무 대견해요. 이 작은 생명에게서 배우는게 너무 많습니다.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들이 제게 오히려 위로를 줍니다.

  2. 행인2 2020.06.10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과 뒤가 같은 날짜라니
    참.. 마음이아프네요

    콩이가참이뻐요.
    잘이겨내길 응원한다고 전해주세요.

 

코로나 상황이 되고나서 

평소에 해왔던 루틴이 깨져

거의 아무 일도 제대로 못했다.

글도 못쓰고

생각도 정리가안되고

모든게 뒤죽박죽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이제 조금씩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이제 코로나상황에도 적응이 되어가는건지

새벽축구와

오프라인수업과

자유롭게 해외를 다니거나

자유롭게 사람들과 소통하는 이 모든 것들이

불가능해진

이 상황역시

어느정도 익숙해진걸까

 

내일 투표는 꼭 해야겠다.

 

마윈이랑 엘론 머스크 관련 글은 지금써야되는데... 

쓸 글은 쌓여있다. 하나씩 풀어봐야지

 

아 힘들다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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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4. 02:10 about, intheatre

하되, 잘하라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을 잘 한다고 했을때 '예술적'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관용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수월성을 갖추어야 한다.

한마디로 할꺼면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입시학원을 하는 원장으로서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만나며

어느정도 첫만남에서부터 앞으로의 장래가 어느정도 가늠이 되는 경우가 많고

실제 결과도 거의 예상과 비슷하다.

 

여기서 좋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경우는 대부분

예술적인 수월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

다른말로 하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이다.

 

어떤 성취를 위해서

투자해야 할 노력이나 과정을

가볍고 허황되게 생각하지않고

진지하게 그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갈것을 충분히 고려한다는 말이다.

 

반대의 경우는 명확하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한다.

어떤 성취를 위한 노력이나 과정에 관심을 갖기보단 막연한 결과와 분위기에 집중한다. 

목표가 추상적이고 분위기에 심취해있지만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술적 분위기는 쫓지만 무엇을 채울것인지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은 빈곤하다.

 

단순하다.

과정에 집중하는 사람이 결과를 이루고

결과에 집중하는 사람은 결과를 이루지못한다.

 

예술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건 

일종의 변태적 행위라고 봐도 된다.

 

고통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무용수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발레리나들의 발가락을 보면 얼마나 오랜시간 훈련에 투자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발레리나들이 그 고통을 즐기면서 하지는 않겠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뿐.

분명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언급했듯 어떤 분야에 일만시간의 법칙을 투자한 사람이라면 그는 그 일을 즐기고 사랑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투덜대고 빌어먹을 이놈의 무용 빨리 때려치워야지 지긋지긋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무용수라 하더라도

그가 일만시간을 무용연습에 투자하고 있다면

 

그는 무용을 사랑하고 즐기고 있는 것임을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거다. 일종의 겸손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다.

 

고통에서 행복을 느끼는게

예술적 성취의 기본이다.

 

무언가를 창작한다는건

무지 고통스러운 일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겠지만

창작의 고통에 비할 어려운일이 많지는 않다.

 

영화 한편을 찍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쉽다.

 

영화를 잘 모르는 학생들

그저 영화적 분위기에만 심취해서 카톡플사나 인스타는 멋지고 아리쏭한 이미지로 채울줄 알지만

실제로 영화를 잘 모르는 학생들은

영화를 낭만적인 일종의 패션아이템같은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영화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영화란 기획단계에서부터 제작단계 후반작업단계를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공방같은 것이란 걸

아는 사람들이다.

 

영화를 알면 알수록

과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만듦새에 집중해서 보게된다.

 

 

예술은 수월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은

교회영화나 군대선전영화같은걸 생각해보면 된다.

만듦새가 형편없는 

수월성이 떨어지는 작품을 그들의 종교적 코드와 맞다고 해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그들끼리 박수쳐주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그들안에서만 통용될뿐

다른 이들에겐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지 않는가?

 

그래서 예술은 메세지보다 형식적 수월성이 일차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예술에서 메세지 역시 중요하지만 (랑그)

 

메시지와 형식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이다.

 

형식이 앞에 서야지

메세지가 빛나게 된다.

 

형식이 떨어지는

좋은 메세지를 가진 예술작품이란

없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저 교인들 사이에서 형제님 자매님 하면서 지들끼리 박수치는

자기위안에 불과하다.

 

형식은 탁월한데 메세지가 부족한 예술작품이 있을수 있을까?

나는 그래도

형식이 먼저고 메세지가 나중이라는 순서만 잘 갖추고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의외로

 

그 유명한 마셔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한 말이 있지않은가?

 

'미디어가 메세지이다'

 

이 말을 바꿔말하자면

형식이 곧 메세지가 된다는 말도 된다.

 

그러므로 형식이 뛰어나다면

의외로 그 뛰어난 형식자체가 메세지가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저 잘 만들기만 한 예술작품 앞에서

우리가 감탄을 하며 저마다 그속에서 메세지를 찾는걸 생각해보면 쉽다.

 

잘 만들면

의외로 메세지가 부차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은거다.

잘생긴 오빠가 숨만쉬어도 무언가 젠틀하고 착해보이고 자기철학이 있어보이는것처럼? ^^

 

그래서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 학생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말이

메세지가 형식보다 앞서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고

과정보다 결과가 앞서도 안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예술을 한다고 결심했으면

반드시

잘 하는 사람이 되도록

피땀을 흘려야 한다.

 

그게 예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입시에 적용해보자면

경쟁률이 높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행복해해야 한다.

각오를 단단히하고

진지하게

과정에 노력을 기울일줄 알아야 한다.

 

합격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날수록

오히려 합격에 가까워진다.

 

과정에 충실하다보면

합격은 저절로 따라온다.

 

영화분야나 연극분야는

일종의 놀이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결국

잘 놀줄 아는 학생을 뽑게 되어 있다.

 

잘 놀되, 

영화를 가지고 잘 노는것.

 

연극을 가지고 잘 노는게 

교수들이 찾는 인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에선 '놀자'라는 단어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거다.

 

한판 놀아볼까?

잘 논다.

좀 놀줄아네

같이 놀아볼까?

좀 놀아봤어?

 

 

이런 말들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경쟁이 치열하다면

오히려 그 경쟁을 뚫는다면 큰보람과 성취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진지하게 과정을 밟았다면

반드시 성장하게 될거다.

 

성장을 성취한다는 면에선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모두 무언가를 성취하게 된다.

 

뜻을 이루든

혹여

못 이루더라도

성장할 수 있다.

 

그러기위해선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

진지한 마음으로 엄격하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

고통속 변태적 기쁨을 누려야 한다.

 

 

다행인건

역설적으로

성취보다 중요한게

성장 이라는게 큰 위안을 준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있는가?

 

성취보다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말 말이다.

 

만약 성장보다 성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영원히 성취하기 힘들거다.

어찌보면 삶에서 진짜 성취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실존적으로 허무한 존재이기에

어떤 성취를해도 그것을 성취하는 순간 성취가 아닌 또다른 시작이 되어 버린다.

영원히 진정한 성취란 없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죽음앞에선 역설적으로 모든 성취는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숀튼 와일더는 <우리읍내>의 에밀리를 통해

죽음을 건너

다시 삶을 관조할때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세상이여....'

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해바라기, 작은 꽃병, 따뜻한 목욕탕, 엄마가 해준 소박한 밥상...

숀튼 와일더가 바라본 삶의 기쁨은

충실한 과정에 있었음을

그는 에밀리와 무대감독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영화든 연극이든

예술적인 작업을 시도해보려하는 학생이있다면

 

그저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하고

실제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도록

행복하게 몰입해보면 어떨까?

 

분명 예술을 바라보는 생각, 입시를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게 되리라 믿는다.

 

연습하는 배우가 아름답고

무대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아름답고

함께 대사를 주고받는 파트너가 소중하고

영화를 찍는 과정이 소중하고

무대위의 따스한 조명이

우리 삶을

빛나게한다.

 

 

이번에 아카데미 대상을 받는 <기생충> 은 제작과정에서부터 유심히 살펴본 작품이다.

이 <기생충> 제작을 발표할때 봉준호는

이번작품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사이즈의 영화를 찍으려고하고

제일 즐길수 있는 소재로 즐겁고 부담없이 찍으려 한다.

밝힌바 있다.

 

역시 영화 <기생충>의 제작 과정을 살펴봐도

그 어느때보다

과정에 충실하고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즐기며

행복하게

함께

한판 재밌게 놀아본걸 알 수 있다.

 

훌륭한 형식이 위대한 메세지를 만들고

충실한 과정이 전례없는 결과를 낳는다.

행복한 몰입이 우리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존재로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우리모두는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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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어디선가 우연히 읽게되었는데

이 글이 몇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여기저기서 퍼나르고 있는걸 보아 상당히 많은 논란을 가져온 글인 것 같다.

이 글에 대한 반박에 겸해서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직업의 귀천이나 가치의 차이에 대해 짧은 글을 써보려한다

 

직업에 귀한 직업과 천한 직업이 있을까?

위 글을 쓴 사람은 교수와 청소직원에 대해 암묵적인, 귀천이 존재한다고 하며

특히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

그리고 일용직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

으로 대표되듯

귀한 직업과 천한 직업이 있을수 밖에 없다며,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 쓴 사람은 직업에 대해 지극히 한국 특유의 유교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걸로 보인다.

사농공상이라고 흔히 말하는, 문과 관련된건 귀한 일이고, 노동과 관련된 일은 천한 일이라는 유교적인 계급관념말이다.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와 

일용직 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을 나누는 기준은

문과 관련된 일과

노동과 관련된 일로 쉽게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글 속에는 그런 고정관념이 기저에 깔려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그냥 윤리적인 지향점이거나 그게 올바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시대가 인정하는 직업에 대한 가치는 계속해서 바뀌기 마련이고

한편으로

귀천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건'의 문제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평가하는 직업적인 가치는 그 시대에 따라 매우 급변하며 그러한 변화는 오늘날 특히 극심하다.

예전이라면 깍새라고 부르거나, 요리사라고 부르는 직업들이

수십개 이상의 프랜차이즈를 가지고있는 헤어디자이너로, 또 연예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스타 쉐프로 불리는 걸 바라본다.

위 글쓴이가 언급한 변호사, 의사가 부럽지않은 헤어디자이너와 쉐프들이 즐비한게 오늘날의 변화된 직업적 기준을 잘 드러내준다.

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에서 두각들 나타낸다면, 사회는 그 사람의 실력과 능력을 존중해주는 다양성과 전문성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는걸 알 수 있다.

 

변호사도 영업을 잘하거나, 전관출신이 아니면 예전같지않게 고전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무수하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글쓴이가 예로든 교수야말로 오늘날 가장 몰락한 직업군중 하나이다. 학생수가 급감해서 일부 인서울 대학의 교수들외 특히 상당수 많은 대학교수들이 학생유치를 위해 영업까지도 병행하고 있는걸 흔히 볼 수 있다. 

교수직이 급락중이라는 증거는 과거 신의직장이라 불렸던 대학교교직원의 인기가 급락한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학들이 수입이 줄어드는 바람에 교직원들을 많이 뽑지않고, 또 교직원들의 처우나 근무환경이 안좋아지게되서, 교직원좋은 날 다 갔다는 푸념을 실제 교직원들에게 많이 듣는다.

이렇게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 시대가 선호하는 직업의 가치는 변하기 마련이고

어쩌면 가장 극심하게 변하는게 직업의 가치가 아닌가 한다.

지난 50년간의 변화보다 

앞으로의 10년의 변화가 더 극심할 것이다.

이제는 변호사든 의사든 노동자든 배달원이든, 직업이 무엇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잘읽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사람들. 또 변화를 통해 새로운 직업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로 더더욱 급속하게 진입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일용직근로자나 청소직원이 가치를 덜 인정받는건

그 직업이 원래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직업에 대해 사회가 정당한 '조건'을 주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폄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호주와 유럽등을 다니며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건

그 사람들이 모두가 다 의사, 변호사, 화이트칼라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어떤면에선 화이트칼라직업을 좀 덜 남성적이고 덜 엑티브한 직업으로 오히려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것도 봤다.

운동잘하고 섹시한 몸을 가진 배관공같은 기술노동자가

실제로 여성들에게 더 인기가 있고 마초적인 매력을 풍기는걸 많이봤다.

 

기술직노동자가 섹시하고 인기가 많을 수 있는건

그 기술직노동자도 충분한 보상을 받는 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호주의 기술직노동자에게 화이트칼라 직업을 줄테니 하라고 해도

싫다고 할 것이다.

 

의사가 연봉은 높지만

공부를 많이해야하고 자신에게 긴시간 투자를 많이해야 한다면

 

기술노동자를 선택하면 몸쓰는 일이 자신은 좋고, 긴시간 투자안하고 어린나이에 빨리 직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고, 야외에서 재밌게 일할 수 있고

그러면서 본인 기준으론 충분한 돈을 받을 수 있기에

기술노동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의사와 노동자 중에 선택하라고해도 노동자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의사가 3억연봉을 받아도

기술노동으로도 한 1억만 받아도 

기꺼이 기술노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게 적성에 맞고

체질에 맞다면 말이다.

 

길게투자하지않고 빨리 직업전선에 뛰어들고 절대적인 소득자체는 비교적 적지만 충분히 가족을 부양하고 자기 삶을 여유있게 가꿀 수 있는 적절한 소득이 주어진다면 몸쓰는 일을 기피할 이유가없다. 

교수나 의사가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많은 소득을 받는것이야 당연하지만

 

좀 더 공부에 투자하고 오랜 경쟁에 노출시켜 교수나 의사같은 직업군을 선택하는가는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이지 한줄로 세운 한줄짜리 기준아래 더 잘난 사람과 상대적으로 못난 사람의 줄세우기가 아닌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절대로 개인의 노력을 무시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의사가 3억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공부도 많이했고 투자도 많이했고, 경쟁도 치열하게 통과했으니

의사가 3억버는게 맞다.

 

그게 옳은 사회다.

 

그러나

 

한편으로

 

좀 공부 길게 안하고

야외에서 활동적으로 일하고

 

좀 더 남자답게 몸을 쓰고

기술을 배워서 여러 사람들에게 실용적인 도움을 주기로 선택한 사람도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산다면

 

그 사람들이 한 1억 정도는 벌 수 있다면 ( 1억을 주라는게 아니라, 의사가 3억이라고 했을떄 한 3분의 1정도를 벌 수 있다면 이란 의미로)

 

그 사회는 정말 좋은 사회라 생각한다. 

 

직업은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

 

공부를 잘했고 오랜기간 자신에게 투자해서 많은 연봉을 받고 높은 직위를 갖는 것도 존중되어야 하고

그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해야 하며

오히려 사회가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성취를 이뤄나갈 수 있도록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격려하고 보상해줘야 한다.

 

한편으로

공부엔 소질이 없지만 또다른 자신의 길을 찾아

사회 구석구석에서

고귀한 소금같은 일을 해주는 사람이 되는걸 선택한 이들 또한

단순히 '직업적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글쓴이가 말한 가치가 덜한 것으로 나열한 일용직 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 또한

너무나 사회에 필요한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택배서비스를 생각해보면 쉽다.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있는 한국택배서비스의 이면엔

하루 배달 300건, 집하 약 300건을 맞춰야 겨우 몇백남기고 거기서 기름값이나 온갖 운영비를 다 제하고서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택배관련노동자들의 심각한 처우문제가 있다.

이렇게 일을 시키고 이렇게 일을 해내야만 유지되도록 만들어진 환경에서

이 정도의 소득밖에 주지않기에

택배노동이 귀한 일로 취급받지못하고 있는거다.

택배노동 자체가 귀하지않은 일이 아니라

심각한 노동불균형이 택배노동을 천한 일로 폄하시키고 내모는것이다.

 

반면 대학교수의 경우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한국 대학교수들이야말로 세계 최저의 투자대비 효율성을 자랑하는 직업군이 아닌가 한다.

 

하루빨리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야 되는데

별다른 노력없이도 일단 자리만 차지하게되면

수십년동안 편하게 먹고살 수 있게되니

그 직업이 귀한 직업이 되는것이지

원래부터 교수가 귀한 직업인건 아닌것이다.

 

앞서 택배서비스의 처우문제를 이야기했을때,

아 그럼 택배배달부도 돈 팍팍주고, 교수도 팍팍주면 당연히 모두가 좋지, 그러나 그게 현실적이냐?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교수이야기를 한거다.

경쟁력이 없는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비효율성을 없애고

그 비효율성이 실제로 경쟁력을 갖춘 직업군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직업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 어디서든 택배배달부보다 대학교수가 더 좋은 직업으로 평가받는건 당연하다.

길게 공부를 해야하고, 좋은 대학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춰야 대학교수를 할 수 있으니까.

(한국은 전혀 그렇지않지만)

세계적인 석학이 단순노동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건 오히려 불평등일테니까

그러나 그건, 투자대비 적성의 문제일뿐  

본질적으로 직업적 귀천의 문제는 아닌것이다.

 

 

 

특히 더 안타까운 건

이런 사회적 구조속에서 

너무 쉽게 사농공상적인 태도를 학습하고 받아들여버리는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더더욱 안타깝다.

 

왜 사회가 강제로 부여한 말도안되는 기준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버리는가?

 

 

왜 모두가 대학을 억지로 가야 하는가?

전세계에서 대학진학률 1위라는건 자랑이 아니라 비정상이고 기형이다.

그만큼 이 사회가 아직도 사농공상의 계급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이지 않은가?

 

대학 안가도 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이 사회는 너무도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비교하고 줄세우고 있다.

남자는 어째야되고 여자는 어째야되고, 결혼하려면 뭐는 해야되고, 직업은 어때야되고, 외모는 어째야되고........

숨막히는 비교와 획일적 기준과 그것을 강요하는 문화야 말로

이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이다.

 

 

별로 이상적이고 복잡하고 어려운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가치를 인정해주라는건 복잡한 이념적인 어떤 지향점이 아니다.

 

그냥

 

'정당한 대우'만 해주면 된다.

 

일용직노동자도 충분히 만족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고 노후를 생각할 수 있는 대우,

대리운전기사도

청소직원도.

 

글쓴이가 언급한 청소직원의 경우가 그 증거다.

 

구청에서 공무원으로 청소직원을 인정해주고, 노동의 안정성을 주고 공무원의 대우를 해주니

청소부가 인기직업이되어 실제로 대학졸업자뿐만아니라 석사이상 명문대출신들도 청소부를 지원했다는 기사를 우리는 본적이 있다.

 

청소부라서 가치가 없는게 아닌 것이다.

사회가 그만큼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에

그 직업이 천함을 억울하게 '덮어쓴' 것일 뿐이다.

 

청소부하는데 월 700주고 정년까지 일하고 연금도 준다고하면

하겠냐 안하겠냐?

개인적으로 

나는

한다.

 

지금하는 일 때려치고

지금 바로!

 

글쓴이 처럼 귀한 사람으로 귀한 가치를 억지로 인정해주고 '에헴'하면서 존중을 억지로 쥐어짜낼 필요없다.

 

돈을 많이주면 된다. 

 

가치를 인정해주는게

존중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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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g 2020.02.23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네요 너무..

  2. 권재 2020.04.26 1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입니다. 언제쯤 그런 세상이 올까요.
    그런데 진입장벽도 고려되야 할 것 같아요.
    한국도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블루칼라는 대우가 좋지요..
    택배, 청소는 사실 맘만 먹으면 아무나 할 수 있기에
    인구가 지나치게 많아진 현대사회에선 쉽게 대체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저임금을 받으면서라도 해야하는 것 같아요. 먹고 살려면.
    심지어 드론, 청소로봇까지 나오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들의 교섭력을 키우기 위해 직업이 없어도 굶어죽지는 않게 해줘야 할텐데 아쉽네요..

    • intheatre 2020.04.27 2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의 차이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믿습니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2020. 2. 2. 04:31 about, intheatre

진짜자유

 

진짜 자유는 구속에서 온다.

자유에 대한 착각이 때론 우리 삶을 그르친다.

자유에 대한 올바른 생각만 정리해도 변화된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떠한 면에서 그런지 몇가지 유형을 나눠서 이야기해보려한다.

 

1. 훈련

 

가장 먼저 진짜 자유는 엄격한 통제에서 온다. 그것을 우리는 훈련이라고 부른다.

예술을 하는 우리에겐 특히 절실히 와닿는 단어일거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소개해서 유명해진 개념인 '일만시간의 법칙'이 바로 그러한 좋은 예이다.

진짜 탁월함은 오랜 통제와 훈련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런 면에서 엄격한 훈련 속에서

진정한 자유함을 맛볼수가 있다.

피아니스트가 엄격한 훈련을 통해 연주 속에서 자유함을 맛보고

축구선수가 오랜 훈련 속에서 공을 컨드롤할 자유를 맛보는 것과 같다.

자유에도 수준이 있다는 걸 아는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멋대로 행동하고 아무런 제약없이 살아가는 면에서의 자유는 방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장 수준이 낮은 형태의 자유이다.

왜냐하면, 낮은 자신의 수준이 전혀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업그레이드가 되지않았는데, 자유롭게 인생이란 맵을 헤집고 다녀봐야 그게 그거다.

더 깊은 던전을 들어가기위해선 몬스터를 잡고 경험치를 쌓는 훈련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기위해

역설적으로 자유를 제약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훈련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입시를 대하는 태도도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더 재미가 있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학교가 경쟁이 치열하면, 그래서 더 도전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경쟁이 치열하다는건 그만큼 내가 도전할 여지가 더 있다는 것이며, 나를 성장시켜줄 여지가 더 크다는 걸 증명한다.

이러한 경쟁이 싫어서 쉬운 길을 너무 쉽게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 쉬운 길. 빠른 길이라 포장하는 길은

항상 가장 멀리 둘러가는 길일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가장 힘들어보이는 산이

가장 빨리가는 지름길일 경우가 많음은 수많은 전쟁의 역사가 증명해왔다.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 초기에 강대국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대담하게 진격. 최단기간을 쉬지않고 달려가 점령해버려

전세계를 충격속에 빠뜨려버린 것이 이를 잘 입증한다.

아무도 거대한 강대국의 수도 한복판으로 곧바로 진격해버리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 충격은 거대했다.

 

힘겨운 목표를 만난다면

어찌보면 가슴이 뛴다.

그 목표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성장시켜주고

나를 더 놓은 단계로 이끌어줄

진정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2. 친밀감

 

그런데 이러한 자유의 역설은 관계에서도 온다.

관계역시 구속에서 진정한 자유가 온다는 걸 아는가?

 

진정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를 관계속에서 구속함으로

진짜 친밀감을 맛본다.

 

사람들 사이의 진짜 깊은 관계는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맛볼수가 없다.

 

어찌보면 사랑이란

너의 자유와

나의 자유를

서로에게만큼은 양보하고

서로에게 단단히 구속하는 것과 같다.

 

끼르띠에의 유명한 팔찌인 러브팔찌는

까르띠에 드라이버로만 풀 수 있다. 

손으로 열어서 풀수가 없다.

어쩌면 서로에게 관계적 족쇄를 채운다는 상징이 들어있다.

막 시작한 가슴뛰는 연인들은

이러한 구속을 슬픔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기에 비싼 돈을 주고 이 팔찌를 구입하는 것이 아닐까?

 

진짜 관계적 풍성함, 관계적 친밀감 역시

구속에서 온다.

 

수많은 사람을 의미없이 만나면

오히려 그 n분의 1만큼 내 삶의 풍성함이 축소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의미없이 상대하는게

힘든 일이라 우리는 감정노동이라고까지 부르지 않은가?

 

사랑의 관계도 이와같다.

황제가 수천명의 후궁을 뒀다면

그건 수천배의 친밀감을 나눈게 아니다.

어찌보면 수천분의 1의 친밀감속에서 

불행하게 허덕인 것은 아닐까?

 

나 개인적으로는 수천명의 연락처를 지우고,

페이스북 수천명 친구들을 끊고 난뒤로

주변 지인들은 아날로그적으로

약속잡고 얼굴보고 만나서 이야기하는걸 선호한다.

 

나는 일부러 관계를 축소했지만

축소되었기에 더욱 관계적 풍성함을 누리고 있는건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다.

 

 

 

3. 사명과 헌신

 

몰입속에서 훈련속에서 자유가 있다고 말했고

이러한 구속이 관계적으로도 적용될 수 있고 그 관계적 적용이 사랑의 관계에서 또는 주변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풍성한 관계로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구속의 자유적인 측면은

사명과 헌신의 영역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내가 가야할 길

내 목표

내 사명

너무 거창한 사명을 말하는게 아니다.

사명이란 단어는 거창한 단어가 아니다.

아주 작게

세탁소를 운영해도 그 속엔 사명이 있을수가 있다.

작은 라사를 운영하며

다림질 하나에도 사명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장인이라고 부른다.

그런 장인들이 많은 사회가

튼튼한 사회이고, 기초가 튼튼한 사회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가르칠때 사명을 가질 수 있고

약사는 약을 처방하며 사명을 가질 수 있다.

 

사명없는 배우는 너무 가벼워진다.

 

무대는 그런면에서 마법의 공간이다.

 

참 이상하게도

그저 아무의미없이 무대위에 서는 배우는 티가 난다.

 

그래서 난 무대를 사랑한다.

 

무대는 사명이 없이는

단 1초도 버틸 수 없는 마법의 공간이요

검증의 공간이다.

 

사명을 찾으려 노력하는 예술가는

그 자체로 숭고하다.

 

우리는 숭고한 예술가를

만나고 싶어한다.

 

이렇게 내 삶을 어떤 뚜렷한 사명, 혹은 헌신된 삶의 영역으로

계속해서 집중시키고

구속시키고

몰입시키는 것.

 

삶이 그저 살기위해 허덕이는 상태로 방치되어있지 않고

더 숭고한지점을 향해 집중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사명 혹은 헌신이라고 부른다.

 

 

4. 구속을 통한 진정한 보상, 인정

 

결국 진짜자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구속에서 온다.

그것이 훈련이든, 관계적 구속이든, 사명과 헌신의 영역이든 말이다.

 

이러한 구속에서 우리는 진짜 보상을 맛본다.

 

인생의 깊은 맛이라고 할까?

 

정말 깊은 맛.

 

자극적이지 않고 인스탄트가 아닌

정말 깊은 맛 말이다.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는

아이에게 자신의 삶을 

때론 눈물날 정도로 힘겹게 구속시키고서야

엄마의 깊이에 도달 할 수 있다.

 

그 절대적 구속이

엄마와 아이라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엄마가 된다. 혹은 아빠가 된다라는 인생의 깊은 지점은,

절대적 헌신과 구속의 시간이 없다면 성립하지 않을 지점이다.

 

일에서 오는 보상도 그렇다.

내가 오래도록 헌신하고 매일의 나를 구속시켜 온 시간들이 쌓여서

그 일에서 보상이 나타나기 시작할때

우리는 깊은 보람과 기쁨을 얻는다.

 

영화를 찍는다는건 그런 과정을 겪는 것이다.

한 영화를 만들기위해 너무 많은 노력과 수고가 들었기에

그 영화가 주는 기쁨도 크다.

 

졸업도

책 한권을 내는 것도

논문도

다 그렇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결국 이런 인생의 단계들에서

매듭짓기를 잘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을 구속시켜

어떤 단계를 잘 마무리하는데서 기쁨을 얻고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갈 줄 아는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학위라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책을 내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논문을 쓰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크건 작건

한겹 한겹씩

삶의 단계들을 매듭지어가며 전진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어찌보면 깊은 단계의 자유를 맛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사람이 못되었기에 ^^ 그렇게하지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새벽에 글을 쓰고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새로운 책을 내는 것은

내게는 작은 구속이고

매듭짓기이며

나는 글쓰는 이 순간들을통해

참 많이 성장해왔기에

나는 글을쓰고 책을 내는 매듭짓기를 통해

삶의 또다른 깊은수준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거다.

 

 

5. 겸손함

 

진짜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진짜 자유는 구속에서 온다.

 

이런 자유의 모순된 특성은

결국

겸손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지인중에

 

어떤 아저씨^^를 예로들어보면

이 겸손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모대학 경영학과교수님으로, 박근혜탄핵때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하셔서 유명해지신 분이시다.

사회적으론 대통령 앞에서 권력앞에서 불의함에 굽히지 않으신 분으로 언론에 많이 나오신 분인데

그분과 개인적으로 친해서 그분의 집에서 자주 식사를 하곤했다.

교수님이 국수를 직접 삶아주시곤 했는데

어느날은 중면을 안사와서 사모님에게 쿠사리?를 먹는걸 봤다.

'여보 소면이 아니라 중면이라고요 중면.  이번 국수는 꼭 중면으로 사오셔야돼요'

어이구야 하면서 아파트에서 나가

국수를 사러나가는 교수님의 뒷모습에서 

왠지모를 즐거움이 느껴졌다. 무언가 삶의 깊은 즐거운 지점이 느껴졋다.

 

불의앞에선 대통령앞에서도 굽히지않으시는 분이

스스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저렇게 성실하게 스스로를 구속하시고

그속에서 진짜 깊은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구나.

 

어제 대통령앞에서도 굽히지않고 법정에 섰던 사람이

오늘은 아내에게 한소리 들으며

중면을 사러 슈퍼를 가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그게 참 근사해보였다.

 

겸손함이란

힘이 없음이 아니다.

 

힘이 있음에도

스스로를 구속시키고

가치있는 더 작은 영역

더 작은 분야

더 작은 세계속에

나를 밀어넣을 수 있는게

바로 

겸손이다.

 

 

진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스스로 구속시킬줄 아는 것.

그 겸손함 또한

진짜 자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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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g 2020.02.05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되고 학생인 저에게 다시금 자극시켜주는 글이네요! 더 많이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2. 독자1 2020.02.05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로는 대비되는개념이 실제로는 연장선이라는 게 신기할때가있어요. 제 생각도, 오류로 보이는 어느 것들도 그러겠죠? 자유든 사랑이든 성취든, 중요한것을 선택하고 아까워하지않는 용기가있기를:) 좋은글 감사하비다!

2020. 1. 21. 20:08 about, intheatre

내 탓.

 

연말이라 일이 너무 많아 그동안 포스팅을 못했다. 결국 그릿에 대한 글은 일단 내리고 완성한뒤 다시올리기로 했고.

이제 조금 바쁜 일들이 정리가 되어 오늘 그동안 해온 생각을 짧게 정리하려한다.

 

내 탓.

 

별로 오래살지는 않았지만, 짧지만은 않은 40년의 인생을 살아보니

내게 벌어진 대부분의 나쁜 일들은 거의 다 

'내 탓'이더라.

 

내게 벌어진 좋은 일들도 물론 '내 탓'인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좋은 일은 주변환경의 영향이나 운, 적절한 시기를 잘 타고나거나 주변사람들의 도움등. 한마디로 운적인 요소가 많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벌어지는 나쁜 일들은 거의 대부분이 '내 탓'이라는 걸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절실히 느껴간다.

 

예를들어 주변에 보면 꼭 이상한 남자들만 꼬이는 여성의 경우가 있다고 하자.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이상한 스타일을 고르고 그런 스타일이 곁에있도록 기어코 만들어나가는 경향성이 있다는 걸 알게된다.

 

본인의 선택과 판단이 쌓여서 오늘내게 벌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인거다.

 

이 이야기를 하는건, 그래. 이 모든게 다 내 탓이야. 라고 자조하며 슬픔이나 좌절에 빠져있으라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나쁜 일들을 단순히 환경탓이나 운탓으로 생각해 잠시 회피하는 것으론 진정한 변화가 어려우며.

 

결국 내게 좋은 일들이 생기도록 하는 비결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벌어진 안좋은 일들이 바로 내게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진정한 변화는 바로 이 인식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새해에 나는 내게 작년 한해 일어난 나쁜일들의 리스트를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 일들을 전부 내 탓으로 인정하고

 

그 일들이 벌어지는데 내가 한 잘못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2020년을 시작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결과는 즉각적이어서,

 

작년과는 너무 다른 시작을 맞이하고 있다.

 

정말로 즉각적으로 변화가 체험이 된다.

 

꼭 한번 경험해보길 바란다.

 

 

내게 일어난 모든 잘못된 일들은

 

거의 대부분 우리에게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런 안좋은 일을 불러온 나의 선택이나 나의 결정들이 무엇이 있었는지

 

나의 습관이나 나의 잘못된 생각들이 어떤게 있었는지를 찾아보라.

 

그리고 그것을 정확하게 새해부터는 수정하기위해 노력하기 바란다.

 

장담하건데, 변화는 즉각적이고 반드시 변화된 결과를 맞이하게된다.

 

이 말을 달리 말하면, 올한해는 좋은일들이 계속 생기기 시작한다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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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26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intheatre 2020.01.30 2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서를 많이 하고, 한글로 글을 많이 써보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능언어영역준비를 해야
      한예종 1차대비를 할 수 있을꺼예요.
      만약 특별전형으로 지원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일반전형까지 생각해서 언어공부는 반드시하는걸 추천합니다.

  2. 독자1 2020.01.29 2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변화올거라고 기대하는건 정신병이라던데
    그쵸, 극복되면서 발전하는 나를 만나는 한해가 되면 좋겠네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3. @@ 2020.02.29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에 입시 상담받으러 두어번 방문했던 학생입니다.
    옛날생각이 나서 한번 들러봤는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intheatre 2020.03.14 0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소중한 인연들을 잘 이어가야하는데 무언가 많이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이듭니다. 코로나때문에 다들 힘들어하는 시기. 오히려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시간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 빨려갈 듯 아름다운 그림. <우주>라는 그림 제목처럼 저 별하늘의 세계가 캔버스에 옮겨진 듯 한 저 그림에 감탄하다가, 저 그림이 이번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40억 가까운 돈에 팔렸다는 뉴스를 봤다. 비싸게 팔렸다는 그림이라고 언론에 나온 그림중에 이번 김환기의 <우주>만큼 매혹적인 그림이 없어서 이 그림의 배경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다.

 

 

 

 

사실 한 분의 아내로서 아름다운 예술의 여정을 묵묵히 내조하신 분을, '유명시인의 아내였다. 혹은 두 명의 천재와 결혼한 여인이다'라고만 묘사하는 것이 민망하지만, 그것이 또한 너무나 매력적인 스토리기에 그 이야기부터 시작하려 한다.

바로. 시인 이상의 아내였으며, 화가 김환기의 아내인 김향안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엘리트여성이 시인 이상을 만나 

'우리 같이 죽을까, 어디 먼 데 갈까'란 간지 철철 넘치는 프로포즈? 를 받고 그 길로 1936년 이상과 결혼했지만, 결혼한지 4개월만에 이상은 일본 도쿄에서 폐결핵으로 죽게된 슬픈 사연.

나같이 스토리에 관심있는 사람은

영화장면처럼 장면을 자꾸 상상해보게 된다. 역사적 텍스트 사이 빈틈에 스며들어가는 감정과 정서에 대해 생각해본다.

도쿄로 달려가 시인 이상의 유골을 안고 돌아온 그녀는, 얼마나 깊은 슬픔속에서 삶을 보냈을까.

 

 

 

 

 

 

천재 시인과 사랑에 빠져 짧은 신혼을 보내다가 홀로 도쿄로 이상을 떠나보내고, 그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시인의 아내 김향안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신혼의 달콤함보다, 남편의 예술세계에 대한 배려가 더 크기에 홀로 남편을 일본으로 보내지않았을까.  그러나 폐결핵으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남편의 유골 하나만을 가지고 홀로 남겨진 그녀는 얼마나 슬펐을까. 차라리 그때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국에 남아서 가정을 돌보라고 보통 남편들처럼 평범하게 아내곁을 지켜줄 것을 요구했어야 했는데 후회하지않았을까.

남편의 예술에 대한 깊은 존중과 희생이 있기에 더 슬픈 일이 아니었을까.

 

.

 

이후 그녀는 김환기를 소개받게되는데, 김환기는 딸을 셋 둔. 이미 한번 결혼해 이혼한 바 있는 상황이라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은 믿음이고 꼭 내가 낳아야만 자식인가' 라며 반대를 무릎쓰고 사랑과 믿음으로 김환기의 사랑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름또한 남편의 성을 따 김. 남편의 호인 '향안'을 합쳐 김향안으로 개명하게 되는걸 보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낭만적인지 알 수 있다. (1944년 결혼)

 

 

 

 

당시 부부가살던 집을 그린 그림인데 부부는 이 집을 수향산방이라고 불렀다. 남편의 호와 아내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키가 180이넘었다고 하는 김환기와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나 정겹다.

 

김환기는 일본대학 미술부에서 유럽의 미술경향을 섭렵한 전위적인 스승들의 영향을 받아 유럽의 최신 미술트렌드를 익혔고, 당시 이중섭등과 교류하며 추상미술의 기반을 마련. 한국적 모더니즘의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적 인물인데 일본유학 후 한국에서 서울대, 홍익대 교수, 미술협회 이사장등 화가이자 교육자, 행정가로서 한국미술계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중 1956년 불연듯 현대미술의 중심인 파리로 떠나게된다.

현재의 안정에 머무르지않고 새로운 일에 기꺼이 도전하게된 부부의 결정속에는 역시 김향안의 역할이 컷다고 생각한다. 예술적 도전을 위해 40대초반의 나이에 한국을 떠나 파리로 과감하게 떠나게된 부부의 결정. 예술을 향해, 그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진정한 모더니스트의 모습이 아닐까한다.

 

내 개인적 견해으로는 파리에서의 폭넓은 작품활동과 도전의식이 그의 작품세계가 확장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화풍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마치고 국내에 있다가 다시 예술의 길을 찾아 뉴욕으로가기까지. 도전을 멈추지않는 부부의 삶은 낭만적이나, 마냥 그렇게 달콤한 것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작품활동 내내 생활고와 병과 그리고 고독과 싸워나가야 했음은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도 남편이 그림을 그리면 아내는 글도 쓰고, 때론 백화점에서 일도하며 그렇게 생활을 책임진건 김향안의 몫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김환기는 뉴욕에서 생활고로 보험조차 들지않아 미루고 미뤘던 수술 (오랜 작품활동으로 두통과 목디스크가 심했다고 한다) 을 받고나서 회복 중에 침대에서 떨어져 의식불명에 빠져 숨을 거두게된다. 

도쿄에서 폐결핵으로 죽은 첫번째 남편 시인 이상.

그리고 서울과 파리를 거쳐 뉴욕에서 수술 후 사고로 숨을 거둔 김환기.

두 천재 작가의 죽음 뒤로 위에 소개한 수향산방에서의 아름다운 신혼시절의 그림이 자꾸만 겹친다. 

그야말로 삶과 죽음과 예술과 도전과 생활과 고독과 낭만이 모두 넘쳐나는 인생 그자체이다. 

 

.

 

김환기의 작품이 2019년 11월에 140억에 거래되었다고하지만,

나는 그 작품 뒤에 숨어있는 작가의 고독과 쓸쓸함과 그리움을 본다. 

그리고 예술세계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위대한 사랑의 그림자를 본다.

김향안은 남편의 파리작품시절엔 파리에서 두개의 대학에서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전공했고, 뉴욕에서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활동을 한, 뛰어난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과 낭만에 몸을 던질 줄 알았고, 언제나 현재에 안주하지않고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않은 도전적인 여성이기도 했다. 그녀의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 김환기의 미술세계가 펼쳐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사랑과는 또다른 모습의 사랑이야기.

진정한 모더니즘인 추상미술 뒤에 이렇게 헌신적인고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그래서 김환기의 그림이 더 아름다워보이는거 아닐까.

김환기는 자신의 그림에서 그려내는 색은 서양식의 blue 가 아니라, 한국에만있는 '청'의 색으로 둘은 다른 색이라고 했다.

이번에 경매된 그림은 김환기가 죽기직전 병과 싸워나가며 그림을 그렸던 1970년대시절의 작품이다. 

그 시절을 대표하는 또다른 대표작을 하나 소개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작품은 병과 가난과 싸우던 미국시절 김환기의 지인인 시인 김광섭에게 받은 편지에서 작품이름이 기인한다.

이 작품 이름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며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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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 2019.11.26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때로는 삶이 더 영화같고 드라마 같다고 느껴집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ㅁ^

  2. 감자 2019.12.25 0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시할때 알게된 블로그인데 여전히 많은 것들을 얻어가고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네요 .항상 글 써주셔서 감사드려요!

 

오늘은 그랜저 이야기로 좀 시작하려고 한다.

요즘 그랜저광고때문에 말이많던데, 뭐 그랜저 정도타면 성공한거다 뭐 그런 내용인데,

사실. 저 광고는 꽤 잘만든 광고다. '성공하면 그랜저정도는 타야지...'라는 '쌈마이' 생각을 레트로한 질감으로 잘 구현한 '니마이' 광고라. 내가 지금쓰고있는 이런 류의 논쟁까지도 마케팅과 연결시키려하는 정교한 타켓팅과 전략이 숨겨져있는, 그냥 한마디로 일부러 쌈마이로, 논쟁적으로 만들었다고 보면된다.

그랜저.

그랜저라면 일단 아주 옛날 30년전 정도?

그때 아버지회사 사장님이 타고다니던 각그랜저가 생각이 난다. 정말 번쩍번쩍 확실하게 각져있는 그 그랜저는 부의상징이고, 확실히 무언가 압도적인 마초적 포스가 있었다. 

 

 

그땐 감히 쳐다볼수도 없었던 포스넘치는 부의 상징이었던 이 각그랜저가, 지금은 일종의 코미디요소로 쓰이고 있는게 참 격세지감이다. 시꺼멓고, 크고, 번쩍번쩍하고 각져있는 저 디자인이 그 시대의 삶을 기준을 잘 보여준다.

 

세월이 흘러, 그랜저도 변화를 거듭하며 동글동글 귀여워져갔는데

그랜저는 계속해서 내 삶에 영향을 줬다.

고향에서 공익을 할때,

새벽에 세차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주공2단지였는데, 임대아파트 한마디로 광역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였고,

같은 이름이지만 주공1단지는 임대아파트가 아니라, 그래도 조금 낫게 사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였다. 

그 주공1단지 지하에 주차된 차들을 세차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거다.

그땐 새벽에 일어나서 2~3시간씩 그것도 일주일내내 매일 해야되는 그 아르바이트가 힘들기도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최선을 다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내 차를 신속하고 깨끗하게 세차를 잘해서 주변사람들이 놀란다)

그때 나는 지하주차장에 세워진 저 금색 그랜저XG를 세차하며 가까이서 그랜저를 구석구석 느끼고, 만져보고, 그러면서 감탄했다. 그 오묘한 금색이며 저 유려한 곡선이며... (어떻게 차가 금색일수가 있을까? 금덩어리는 타고다니는 느낌은 아닐까) 내게있어선 정말 저 금색 그랜저가 꿈의 차였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주공2단지 사는 내가 저런 멋진 차를 탈 수 있을까? 그런 일이 벌어질까? 지금 내가 사는 모습. 내 현실을 비추어볼때 아무리 계산하고, 아무리 각을 재도 저런 멋진 삶을 살수는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면,

지금 생각하면 저 그랜저XG를 매일 아침 세차해주는 주공2단지에 사는 공익이

주공1단지의 삶을 부러워하는게 좀 우스꽝스러워보이지않나?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면 말이다.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보면 코미디'라는 그 말이 딱 맞다.

새벽세차알바를 하는 주공2단지 사는 공익이 똥색 그랜저를 만지며 주공1단지의 삶을 부러워하는 장면은 좀 우스꽝스러워보인다. 그냥 순수하고 철없고 한편으론 한심하기도 하고.

그런데 '시간이 흘러' 보니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잘 곱씹어봐야 한다.

'시간이 지나보니 = 객관적 기준이 세워짐'

시간이 지나, 객관적으로 보는 기준이 생기게 되었고, 그 기준이 사실 정확한 기준이다.

 

그 공익이 똥색 그랜저를 새벽마다 닦으며, 자신의 미래가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할거라고 단정짓는 건 

한마디로 성공의 기준이 촌스러운거였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 라는 거리감을 통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제대로 평가받는다. 진짜는 항상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오늘을 잘 사는 방법은

오늘 내 삶을

'시간이 흘러 깨닫게되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에 있지 않을까?

 

.

인터넷을 보면, 지배적정서가 루저의 정서인 걸 본다.

루저라는 말 자체에 이미 '비교'하는 정서가 깔려있다.

키가 어떻고 외모가 어떻고...서열이 어떻고 

비교하기에 루저가 존재하는거다.

 

소유냐 존재냐 라는 멋진 책을 남긴 에리히 프롬의 책 제목을 인용하자면

'비교냐, 존재냐' 라고도 말할 수 있을 거다.

 

비교하느냐, 존재하느냐

비교의 반댓말은 비교하지않음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식 표현으로하자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개성이 명확해지고, 각자의 삶을 각자가 진실되게 마주하고, 내 정체성이 세워져있을때

우리는 비교하지 않을수 있고, 비교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질문이 있을수가 있다.

'제가 비교하지 않는건 가능해요. 알겠어요.

근데 이 사회가 끊임없이 비교하잖아요.

외모로 저를 판단하고, 실제적인 차별이나 손해로 이어지잖아요. 그런걸 어떻게하나요? 비교하진않지만, 비교당하는건 어떻게해야하죠? '

해답은 간단하다.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폭력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자들을 차단하고, 잘못된 기준을 끊어내고,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새로운 삶에 도전해야 한다.

너의 기준을 바꿔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하고

네 삶을 기준을 바꿔줄 수 있는 건강한 시선이있는 사람들을 만나야한다.

단편적으로 환경만 바꿔도, 거대한 세계가 준비되어있다.

비교당하지않아도 이 세상은 너무나 넓고

네가 소통할 수 있는 진실된 사람들 역시 여전히 많고

도전할 과제들은 너무많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타자의 판단을 벗어나기 위해선 그만큼 진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환경을 바꾸는게 기준을 바꾸는 지름길이다.

 

 

 

겨우 그랜저 정도 타는게 성공이라면, 성공의 기준이 너무 촌스럽고 우스꽝스럽지않나?

 

그냥 막말로 키 좀 작은 동양인이 키 조금 더 큰 동양인을 질투하고 키 VS외모 이런걸로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걸 생각해보면 된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다. 그냥 좀 키 큰 동양인. 작은 동양인. 둘 다 한국인일뿐인거다. 

물론 웃자고 한 이야기다^^ 

 

지금의 현실로 미래의 현실을 규정짓고, 단정짓고, 각을 재 보기에 현대사회의 변화는 너무나 카오스적이다. 

 

30년전에 유투브로 돈 벌어먹고 사는걸 누가 생각했겠나?

 

1년의 변화도 너무 급격한 이 시대에, 현재의 기준으로 미래를 재단하는거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행위가 아닐까?

 

 

못가진거로 너무 억울해하지마라. 네가 목메는 그 기준이 사실 별게 아니다. 미디어가 조장하고, 초중고 12년한국교육시스템이, 부모들이 자식들한테 주입해놓은 서열문화, 천민자본주의. 한국사회가 강요한 그 기준에 고결한 너의 삶을 끼워넣지마라.

관짝에 넣어서 그것보다 길면 자르고, 짧으면 늘이는 고문이 있었다고하는데, 이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아닌가한다.

 

진짜 촌스러운건 외모가 촌스러운게 아니다.

기준이 촌스러운게 진짜 촌스러운 거다.

열등하니까 자꾸 존재를 외부에서 확인받으려 한다.

Do you know시리즈가 그런거다. 김치를 아냐? BTS를 아냐? 손흥민을 아냐?

왜 BTS가 우리를 대표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준이 되어야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는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타자적 관점에서 그 기준들을 바라보면, 우습게 느껴진다. 

 

안되는 것이 없어야 한다.

 

이게 안되면 안된다. 라는 기준은 위험하다.

살아보면 알겠지만, 그게 안될때 또 다른 내일이 열린다.

망하는것도 내 생각처럼 망해지지가 않는다. 

안되는 것이 없을때 두려움이 사라진다.

변화된 오늘을 만나게 된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예측불가성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네가 그렇게 절실하게 생각했던 기준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걸 경험하게 된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절대로 예측할 수 없다. 어떤 곳에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고, 반전의 묘미가 있을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뜻대로 안되는걸 두려워하지마라. 카오스적인 세계에서는 카오스적으로 접근하는게 맞다.

인간에 대한 통찰로 위대한 안톤 체홉 역시 그의 작품속에서 지극히 예측불가능하고 일상적인 인간들의 삶을 그려냈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일상을 살아나가야하고, 인생은 항상 예측과는 어긋나기 마련이다. 

현재의 모습에서 미래를 규정짓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실책이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변화는 거대하고

혁명적이고

기회는 넘쳐나고

새로운 기회는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환경속에서 변화를 모색하기가 힘들다면, 과감하게 더 넓은 세계와 접속하라.

 

4차산업혁명의 시대는 연결의 시대이고, 공감의 시대이다.

부족한 개인들이지만,  우리는 서로 연결될 수 있고 서로와의 소통을 통해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못가진 사람들의 마음은

시급히 고쳐야 할 질병이 아니다.

미래를 바꾸는 거대한 원동력 또한 될 수 있다. 

 

새로운 정치, 산업,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

모두 못가진 사람들의 마음 = 결핍에서 시작하는거라고 확신한다.

 

결핍은 혁신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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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 2019.11.22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들과의 비교에 의해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면 죽기 전까지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ㅁ^

  2. 2019.11.23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면서도 잘 안되는게 못가진 사람의 마음가짐이네요 ㅠ

 

나는 아시아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중화권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를 보고 실제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을 여행해보면 특별한 감성에 젖어들곤 한다.

.

감가상각이라는 말 들어본적있지?

네가 옷을 하나샀는데 그게 시간이 지나 중고로 팔면 가치가 떨어지게되는걸 감가상각이라 부르잖아?

살다보면 참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감가상각은 고려하지않는 경우가 많다.

제일 중요한 감가상각이 바로, 인생의 감가상각인데 말이다.

 

무슨말이냐면

예를들어 어떤 사람이 부동산투기에 집중해서 아파트를 사는데 모든 힘을 다 쏟아부었는데

돌아보니 아파트 값은 올랐는데 그만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와서 삶을 돌아보고 무언가 즐기려해보지만 인생을 가치있게 사는것도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영역이라 빈곤한 가치속에서 허덕이게 된다.

아파트는 가치를 고려하느라

그만 인생의 감가상각은 고려하지 못한것이다.

 

살다보면 이런 일이 참 많다.

 

오늘 전문사 연기과를 지원하는 학생들 수업이 끝나서 가로수길에서 회식을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하나의 과정을 끝내놓고 합격자발표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참 초조하겠지만

돌아보면

그 순간이 제일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

 

합격일수도있고 불합격일수도 있는 그 여지를 남겨둔 이 순간.

최선을 다해서 하나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 결과를 받아들이기를 기다리는 이 순간.

그 순간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가치는 성장에 있다고 믿는다.

성공할때 행복한게 아니라, 성장할때 행복한게 삶이라고 한다면.

 

합격했다면, 그 합격의 순간에서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면 된다.

좋은 학교와 좋은 교수님들과 좋은 친구들... 그러나 신입생으로서 쉽지않은 도전과 마주하게되겠지. 모든게 다 경쟁일테니까.

 

불합격했다면, 그 불합격의 순간에서부터 또다시 도전은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합격과 불합격으로 내 가치를 나눈다면, 참 초라해질 것이다. 사실. 세상의 평가나 기준들이 모두에게 공정한 건 아니여서 산다는건 필연적으로 불평등과 조우할 수 밖에 없는게 아닌가.

그래서 출발선이 다들 다르고, 달리는 페이스가 다른데, 어떻게 나 자신에게 똑같은 기준의 성공을 강요할수가 있을까? 그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축구선수가 국가대표가 될수없는게 너무 당연한 일이듯이 말이다.

국가대표가 되지못한 축구선수가 가치없는 축구선수. 축구를 사랑하지못하는 축구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것처럼.

불합격은 실패가 아니다. 새로운 도전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 불합격 속에서 성장의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씩 무언가 가까워져가는 느낌으로 성장해나가는 기쁨. 가슴에서 차오르는 무언가 진실된 기쁨. 그렇게 긴 시간이 쌓여서 비로소 다가서는게 성공이라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성공은 그렇게 쉽게 주어지는 단어가 아니다.

합격했다고 성공이 아니며, 불합격했다고 실패가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끝자락에선 반드시 성공과 실패가 갈리게되는것 또한 인생이주는 무서운 교훈이 아닌가 생각한다.

 

.

서두에 말했듯, 여행은 걷는 독서라고 했다.

인생의 감가상각을 늘일 수 있는방법. 다른말로 좀 더 풍성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비결이라면

일단

단어 '풍성함'에 집중해봐야 한다.

 

풍성함.

 

이 단어를 요즘 매일 곱씹으며 살고 있는데,

 

우리 인생의 승패는 이 '풍성함'이란 단어가 결정짓는다.

 

강아지를 예를들어보자.

 

우리집 강아지 이름은 콩이인데,

 

 

이렇게 생긴 작고 귀여운 요크셔테리어다.

 

이 녀석을 보면서

'풍성함' 이라는 단어를 깊이 묵상한다.

 

인생의 승패라는게 있다면

나는 이 '풍성함'의 수준이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돈도아니고,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저 강아지와 얼마나 많은 추억을 쌓아왔는지모른다.

같이 제주도도 다녀오고, 콩이와 함께한 추억을 다 담기는 불가능할 정도로 정말 많은 추억을 쌓았다.

풍성하게 콩이를 사랑할때, 콩이란 강아지는 정말 풍성한 삶의 기쁨을 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비로운 어떤 가치가 바로 그 풍성한 교제에서 온다.

 

이것은 부부관계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연인관계에도 적용이 되고.

 

진시황이 수천후궁을 뒀다면, 그건 수천배의 사랑을 한게 아니라

수천분의 1의 사랑을 한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풍성하도록' 사랑하는데에

사랑의 진짜 맛이 있지않을까.

 

풍성하게, 더 풍성하게 사랑하고 함께 추억을 나누며, 더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

몸에 좋은 호르몬 등이 어떤 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것처럼.

인생의 가치를 결정짓는 어떤 '요소'가 있다면 (우리 몸에서 좋은 호르몬이 하는 일처럼)

그건 모두 '풍성함' 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풍성하게 사랑할때 사랑의 깊은 맛이 드러난다. 

풍성하게 내 일을 사랑할때, 일이 주는 진짜 가치가 드러난다.. 

풍성하게 내 삶을 사랑할때, 삶이 주는 진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풍성하게, 더 풍성하게...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여행을 추천한다.

 

여행이 주는 가장 좋은 가치는, 바로 직접적으로 우리 삶에 풍성함을 더해준다는거다.

 

그 땅의 공간, 사람들, 시간, 기록, 그리고 추억들이 입체적으로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

 

비싼 돈을 들여 여행할필요없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고, 항공권도 여러번 환승하는거로 예약하고해서 가더라도 수많은 새로운 공간을 다니며

내 삶에 '풍성함'을 더해주도록 하자.

 

내 삶을 돌아보면, 가난한 이십대 시절 힘들게 돈을 모아 다녔던 수많은 오지들이 

얼마나 많은 성장을 줬는지 모른다. 탄자니아 다르에르살렘에서의 추억들.. 거기서 유명강사인 김창옥형을만나 나중에 같이살기까지했던 인연으로 연결됐고...

몽골에서 공연한 기억, 20년전 일본도쿄를갔던 기억. 홍콩에서의 추억들... 익숙한 홍콩거리를 홍콩영화에서 볼때 더 풍성해지는 기억들. 이십년전에 아직 풋풋하고 순수한 중국대학생들을 우한과 남창지역에서 만났던 기억. 중국의 명문대학중 하나인 화중이공대학 기숙사에 들어가서 학생들과 교류했던 기억들...

 

여행만한 풍성함이 없겠지만 버금가는것으론,

 

역시 예술과의 만남을 추천한다.

 

특히 공연을 추천하는데, 

다양한 좋은 공연들을 많이 보길바란다. 특히 서울국제연극제가 아직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국제연극제에 초청된 해외공연들을 추천한다.

대형뮤지컬은 또 대형뮤지컬대로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주고

실험적인 공연은 실험적인 공연대로 우리 삶을 또 풍성하게 해준다.

공연이 얼마나 내 삶을 풍성하게 해줬는지.. 돌아보면 그 공연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내 삶이 밋밋했을까 아찔하다.

 

오셀로를 공연한 어떤 공연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공식초정작으로 봤는데

하얀작은피아노를 검고거대한피아노가 덮치고있는 무대위로 실제 피아니스타가 연주하며 진행되는 오셀로 공연이었다.

초반에는 작품의 진행과 관련있게 공연이 진행되다, 극의 후반이 되니까 극의 진행과는 상관없이 피아니스트가 멋대로 연주하다가 피아노선을 뜯어내기까지..

근데 그런 행동이 돌아보면 전부 오셀로의 심리와 연결되는 그런 공연.

 

추후에 연극원에서 희곡을 공부하니 더욱 와닿는 공연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의 공연을 직관한것도 기억에남는다.

내 눈앞에서 얼음덩어리를 깨서, 파편을 맞아가며 봤던 공연.

 

공연의 백미는.

 

내가 출연하거나, 내가 사람들과 함께하며 만든 공연이 아닐까 한다.

 

이름없고 형편없는 공연이라 할지라도

그 공연을 함께 준비하고 함께 삶을 나누며 울고 웃으며 만든 그 공연들이

주는 풍성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더 길게 말할 것 없이

여행이든, 공연이든, 

사랑이든,

일이든

우리 삶의 감가상각을 늦추며

우리 삶을 진정한 성공으로 이끄는 길은

 

오직 '풍성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풍성함이라는 관점으로

우리 삶을

우리 주변을 바라본다면

생각보다 풍성함은 비싼 비용이 드는것도 아니며

진짜 풍성함을 주는 것들은

값비싼 것들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강아지를 더 풍성하게 사랑하는데 큰 돈이 들지않는것처럼.

아이를 더 풍성하게 사랑하는데 역시 큰 돈이 들지않는것처럼.

 

.

 

합격이 성공이 아니고

불합격이 실패도 아니다.

 

그저 새로운 도전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일뿐이다. 합격했다면 합격한 그 자리에서 새로운 도전이. 불합격했다면 불합격한 그 자리에서 새로운 도전이 이어진다.

그러나

풍성함을 놓친다면, 그건 분명한 실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풍성함을 더할 수 있다면

그건 성공으로 향해가는 한걸음이라고 믿는다.

 

풍성함의 기준으로 오늘하루를 살아보자.

분명 어제와는 다른 하루가 시작될거다.

 

 

 

 

 

*이번 포스팅부터 앞으로 다음 포스팅 내용을 미리 예고하려고 하는데

(글쓰는 나 자신에게도 동기부여가 되니까)

다음 포스팅은 바로, 연극영화과 학종. 베일에 쌓여있는 연영과 학종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를 살짝 풀어볼까 한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두드림전형이나 성대 영상학과 학종전형같은게 대표적이다.

 

 

 

 

 

 

 

 

 

 

 

 

 

 

 

 

Posted by inthea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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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15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9.11.15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안녕 2019.11.16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질적인 행복보다 정신적인 행복이 더 유효기간이 긴것 같습니다.
    여행가면 눈에 담아오고 사진에 담아오고 소리도 기억하고 싶어 영상도 찍어오고
    볼때마다 새롭게 행복합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ㅁ^

    • intheatre 2019.11.18 2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저도 이번 겨울에도 여행을 다녀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변 선생님이나 학생들도보면, 여행을 자주가는 선생님, 학생들이 확실히 여유가 많고 생각의 폭이 넓으신거 같더라구요.

  4. rewae 2019.11.16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네요

 

오랜만에 다시 블로그에 글을 쓴다.

다시 글을 쓰게된 계기가 있는데,

사실 블로그에 글을 쓰는게 별 의미가 없이 느껴진적이 있었다.

댓글이 갑자기 사라져서...

소소하게 사람들과 소통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갑자기 댓글이 사라져버려서, 아무도 이 블로그를 보지않는다 생각하니

서글퍼져서 자연스럽게 글을 덜쓰게 되었다.

 

어제,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누군가 댓글을 쓰고싶어도 못써서 답답하다고 제보를 해준것.

살펴보니, 티스토리 로그인을 해야 글을 쓸 수 있게 설정이 그 오랜세월동안 되어있었던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댓글을 못쓰게 막아놓고도 모르고 있었던거다.

 

댓글 해제를 풀고나니 갑자기 댓글이 달리기 시작해서 신기하기도하고'

다시 글을 쓰게 될 큰 동기부여가 된거 같다.

 

그렇다면 다시 글을 써봐야겠다.

 

댓글 풀었으니 많이들 달아주시라...

 

 

 

 

 

 

 

Posted by inthea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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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 2019.11.15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서관에서 쓰신 책 읽고 여기에 쓰신글들 다 읽어보고 있습니다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ㅁ^

  2. 2019.11.16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 있었는데 너무 안올라와서 슬퍼하고 있는데 다시 써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많이 보고 배우고 있어요

  3. 푸릉 2019.11.18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돌아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때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지금은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글을 기다리는건 선생님의 글이 입시생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충분히 필요하고 보편적인 내용이 담겨있다는 게 그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쁘신 중에 틈틈히 올려주신 글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종종 댓글 남기겠습니다.

  4. hithere 2019.12.06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요. 왜르케 빙하기가 찾아왔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으셨군요!

  5. Enqnenqdn 2020.03.06 2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이 블로그를 항상 북마크 해놓고
    거의6년이라는 시간동안 선생님의 글을 보며 많은 뜨거움도 느끼고 동기부여도 받으면서 글쟁이를 꿈꿔왔던 25살 여자입니다.
    최근에는 책을 내셨기에 바로 사서 하루만에 완독을 하기도 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앞으로도 계속 써주신다니 정말 반가운 소식인것 같아 어느곳에서도 댓글은 남겨보지 않았는데 용기를 가지고 댓글을 남겨봅니다.
    선생님만의 사색이 묻어있는 그 글들이
    저에게 만큼은 감동으로 다가오고 또 가슴을 뜨겁게 했기에 앞으로도 좋은글들 부탁드립니다
    저도 이제는 댓글 자주 남기도록하겠습니다 ㅎㅎ

    • intheatre 2020.03.14 0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코로나때문에 우울증에 빠졌는지 기운이 없는 일상이었는데 큰 힘이됩니다. 좋은 글로 소통하고싶습니다. 건강유의하세요 :)

    • intheatre 2020.03.14 0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큰 격려가 되고 힘이됩니다. 제 부족한 책도 구입해주셨다 하셔서 더 고맙습니다. 요즘 코로나때문에 강제로 집에있는데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보게되고 일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들인거 같습니다. 격려에 힘을내서 좋은 글로 열심히 소통하고자합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건강 유의하시구요. 코로나 기간동안 마음의 양식 가득채우시기 바랍니다. 하시는 일마나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6. 초록 2020.03.13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대학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한 학생입니다. 처음 동아리에 들어가 연기에 대한 호기심과 막막함을 갖고 있었을 때 이곳에 써주신 글들을 읽고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댓글을 달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어 기쁘네요. 좋은 글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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