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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에서, 한사람으로2016 포스팅 2016. 1. 30. 00:31
우리는 사람때문에 상처받는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많이 겪을수록
사람 만나는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문제들은
반드시 사람들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기업 이미지를 둔갑시기키위해 남발하는 '사람이 희망이다'같은 광고문구에 쉽게 동의하기가 힘들다.
사람은 희망이 아니라
절대적 문제의 시작이란 걸, 내 짧은 삶을 돌아봐도 너무 뼈저리게 느껴왔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이지, 사람이 희망이라는 말을 매우 거슬려했다.
당해봐야 알지. 사람이 얼마나 절망적 존재인지. 속으로 비웃었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마음을 닫고 살았다.
구태여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성향이라
수백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친구들을 끊었다.
오랫동안 만들어왔던 인맥들도,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다.
페이스북을 안하고, 카스를 안하고, SNS를 안 한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올해 내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경험이었다.
나이 어린 학생 한명.
나보다 무려 열여섯살이나 어린 이제 21살이 되는 여학생이다.
삼수생 나이.
올해 우리 학원이 한예종 합격생이 많이 나왔다.
그중에
작년에 우리학원에서 준비했다가, 작년에 떨어지고
올해 다시 준비해서 합격한 친구가 있다.
1차합격후에 가장 먼저 연락해주고
또 이런저런 도움을 구했던 친구였고
결국 올해 한예종에 최종합격했다.
붙은 학생이 고맙다고 하는건 쉬운 일이나
떨어졌던 학생이 기억해주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떨어졌지만, 준비했던 시간들이 소중했고,
또 올해 합격까지 조언해줘서 고맙다고
손편지에 작은 선물까지 준비한 친구.
뭐랄까.
불합격한 친구가 불합격했기에 오히려 많이 겸손해졌고
그래서 올해 합격한게 들뜨지 않는다는
그 친구의 깊은 생각과 배려.
그 친구가 나를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 친구의 '챙겨준' 행위가 고마워 이 글을 쓰는게 아니다.
(나는 무언가 신세지는걸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다)
그 작은 행위가
생각보다 거대한 힘으로 내 마음을 채워주었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거다.
그러니까.
사람이 불행을 준다면
행운을 줄 수 있는 것 역시 사람이란 희망.
슬픔을 주는게 사람이라면
반대로 기쁨을 주는 것 역시 사람이라는 작은 희망.
작은 행동. 작은 감사. 작은 섬김이
대부분 그냥 지나가고,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때로
물결처럼
크게 공명되어
한 사람의 삶을 바꿀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런 가능성이 너무나 값지기에
시도해볼 만 하다는 사실.
나는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서른일곱이 되어서야
조금 용기를 내어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배려하고, 작은 마음을 표현한다는게
많이 잊혀지고
별 소용없는 행동같고
바보같은 행동이지만
때론
기적처럼
그런 작은 섬김과 표현이
누군가에겐
거대한
삶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서른일곱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돌아보니 항상 신년계획은 일적인 계획들이었다.
올해는 학원을 어떻게 성장시키자.
올해는 학위를 따고, 책을 내고, 건물을 어떻게 계약하자...
이런 계획들을 항상 계획했고, 기록했고,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올해는 신기하게도 그런 계획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올해 계획을 난 이렇게 썼다. 노트에.
올해는 '감사의 해'로 정했다.
올해 목표는
은혜를 값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만나온 모든 감사한 이들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기로 목표를 세웠고
그 리스트를 적고
어떻게 표현할지도 적었다.
그냥 감사의 말이 아니라 작은 선물까지도 준비해서.
특히. 은혜를 받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지나갔던 모든 분들을
반드시 찾아뵙고
구체적으로 감사의 표현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결국.
서두에 한 말을
죄송하게도 스스로 번복해야겠다.
나는 사람이 희망이라는 명제를 혐오한다.
그것의 상업적 변용도 혐오한다.
그러나
결국 돌고돌아
사람이 희망이란걸
믿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사람이 절망이기에
오히려
그 절망을 벗겨낼 가능성도
유일하게 사람에게 있음을.
그래서 돌고돌아
사람은 희망이다.
기적이 아니었으면
그 수많은 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이 아니었으면
나는 절대로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정말 내 힘으로 다 된다고 믿어왔고
항상 자신만만했고
믿을건 나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가 땀흘려 내가 성취한 것이니, 내 인생에 다른이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고 철저히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전부
생각치못한 기적과도 같은
만남에서 시작되었더라.
나의 부모님과 나는 계획하에 만나지 않았으며,
나의 은사님들.
나의 미래의 자녀.
나의 친구들.
나의 학생들을 계획하에 만나지 않았다.
한 사람때문에 절망하고
다시또 한 사람때문에
다시 일어선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를 사랑한다.
그 영화는 초반 강렬한 살인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치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보는듯
폭력의 극한을 보여준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새벽공기를 마시며 자전거를 타고 경찰서로 스스로 가는장면을 롱테이크로 잡는 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매우매우 지루한 전개.
우연한 만남과
느리고 느린 회복과 소통의 단계들이
인생의 축약이기에
사랑한다.
인간을 통한 절망은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지지만
그것이 회복되고 새로운 희망이 동트기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
그래서
아름답다.
노력하고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맹목적인 믿음은 (특히 인간에 대한)
어린애들의 전유물이다.
철없는 불나방이다 (그래서 영화 우나기의 초반장면엔 불로 뛰어드는 나방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반드시 상처받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불행한 존재인지
잘 알면서도
결국 인간이 희망임을 믿는 믿음은
값진 도전이라 믿는다.
한 사람에서, 또 한 사람으로.
한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기에
회복되는 것도 한 사람의 몫이다.
사소한 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기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사소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희망이되는 일은
거창하고 거대한 행동이 아니다.
그건
어린아이가 강가에 돌을 던지듯
그냥
작은 배려와 희망을 던지는거다.
대부분 땅속에 가라앉겠지만.
가끔.
누군가에겐
거대한 공명이되어
큰 물결로 한 사람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참으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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