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려고 하는데

역시 창작의 호르몬? 이 넘치는 시간은 새벽 3시가 틀림없다.

오늘도 좋은 생활습관을 갖는데 실패하고

글 하나를 쓰고 있다^^

 

오늘 꽤 기억에 오래남는 기사를 하나 읽었다.

 

이탈리아 축구의 전설이자 AC밀란의 전설인 파울로 말디니가 최근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때문이다.

 

 

 

 

"나는 패배자입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3번 졌고, 유럽축구연맹(UEFA) 슈퍼컵에서 1번 졌습니다. 인터컨티넨털컵 결승에서 3번 패했고, 월드컵 결승과 유로 결승에서도 1번씩 졌습니다. 월드컵 4강에서도 패한적이 있구요. 계속할 수도 있는데 계속할까요?"

 

말디니는 유럽축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 우승만 5번. 우승 트로피만 26개를 가지고있는 역대 최고의 수비수이다. 챔피언스리그우승 5회가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는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다.

그런 그가 

패배자라고 말한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10대, 20대, 30대 동생들에게서 나는 루저야 나는 패배자야 라는 말이

거의 주문처럼 반복되고 있는걸 본다.

 

아니다.

너는 패배자 아니다.

너는 패배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패배자라는 말은 딱 한번 쓰일수가 있는데

그건 바로 위에 언급한 말디니처럼

수많은 승리의 이면에 있는 패배를 강조할때 '만' 쓸 수 있는 말임을 기억하라.

 

26번 우승한 말디니가 

나는 패배자라고 말할때만

패배자라는 표현을 사용가능하다.

 

너는 패배자가 아니다.

 

너는 젊고 뚜껑은 열어봐야알고 

인생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거기 때문이다.

 

조커가 루저라고 생각하나?

 

나는 영화 조커를 보면서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팔자 모른다는거다.

 

저 찐따가

저런 패배의 과정을 딛고 일어서서

 

그 무시무시한 역대 최고의 빌런. 최고의 매력넘치는 캐릭터 

악의 상징이자 고담시의 지배자

그 유명한 

'조커'가

되어버렸구나!

 

생각했다.

 

 

조커는

루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영화 조커가 루저가 대단히 매력적인 스타가 되는 과정을 다룬

성공신화로 읽힌다.

그 찌질했던 조커가

그 위대한 빌런이 되다니!

이것이야말로 인생팔자 모른다는걸 증명해주는 영화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인생 모른다.

또 촌스럽게 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중학교때 중퇴를 했다.

무기정학을 당해서.

어떤 사고를 쳤는지는 이야기안하련다.

 

대구에서 공익을할때

나는 대구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10평짜리 주공임대아파트에 살며

매일 새벽에 주공1단지 사람들의 차를 손세차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주공1단지는 임대가 아니고 

내가 살던 주공2단지는 임대아파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공1단지가 그렇게 비싸고 좋은 아파트도 절대 아닌데

나는 그때 주공1단지 살면 부자인줄 알았다.

 

한 15년전쯤엔

성수동 얼굴맛사지기 만드는 알바를 했으며,

 

10년전엔 연기학원에 취직해서 월~토 일하고 140받았는데

그때 그 140을가지고 이제 나는 성공했다. 결혼도하고 차도사고 다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어설펐고

그만큼 세상물정을 몰랐다.

 

근데 정말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나만큼 고생많이 해본 사람도 요즘엔 거의 없을텐데

나는 정말 옛날에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금 잘나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주공아파트 살때 나는 재미있었다.

아파트주변으로 밤이되면 닭똥집 꽂이? 노점과 떡뽁이 오뎅 노점이 늘어서는데

떡뽁이와 순대와 꽂이? 를 사서 집에들어와서 베란다문을 열어두고 먹으면서 스타크래프트중계방송을 보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 제일 행복한거지 않나? 도대체 뭐가 더 있어야 되는거냐? 따뜻하고 배부르고^^)

 

한예종다닐때 석관동근처에 자취할땐 옥탑방에 살았는데 그때도 좋았다. 월세 17만원인데

옥탑방 욕실에 5만원짜리 욕조사다가 물받고 반신욕하며 노트북으로 FM풋볼매니저하고 책읽으며

욕실창문사이로 시원한 바람과 노을이 지는 풍경이 얼마나 예쁜지!

 

가난한건 가난한거고

외모가 못난건 못난거지

그게 왜 패배자여야 하는가?

 

나는 정말 모르겠다.

 

가난하면 불행해야 하는가?

 

얼마만큼 가난해봤는가?

 

나는 중학교때 학교그만두고

빚쟁이 피해 절에 숨어들어간 아버지따라 절에 숨어살때

너구리 라면이 먹고싶어서

동전모아 눈길을 헤집고 1시간을 굴러내려가 너구리 라면 하나 사들고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쑥을 캐먹고 냉이를 캐먹고

분홍색 소세지가 아까워서 아주 잘게 썰어넣어 먹고 그랬다.

 

내 키가 174인데 아버지가 178이다.

어머니도 키가 크시므로 유전적으로라면 나는 180이 넘어야되는데

성장기때 못먹어서 못큰게 아닌가 싶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망바로 직전의 상해등급을 받으셨고

아버지는 사업이 부도가 나고

뭐 흔한 레파토리일수 있어서 더이상 이야기는 안하려 한다.

 

그런데

진실로

나는 그때도

행복했다.

 

 

왜 상황이 내 인생을 결정지어야 하는걸까?

 

가난한 상황이 내 인생의 행복을 결정짓는다면

그건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살다보면 가난할수도 있고 부자일수도 있는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현실때문에 내가 불행해야만 한다면

그건 너무 운명론적인 사고 아닌가?

 

그러나 참 다행인건

 

우리 인간은 운명론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란 사실이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행복을 빼앗아갈 수가 없다!

내가 그 행복을 단단히 붙잡기만 한다면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정말 스스로에게 진실되게.

 

행복은 결정되어있는가? 선택할 수 있는가?

 

나는 가난했던 과거가 부끄럽지 않다.

 

지금의 내가 그다지 자랑스럽지도 않다. 그냥 과거에도 좋기도했고 나쁘기도했고

지금도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정말 제대로 가난을 경험해보니

가난이 두렵지가 않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시절에도 행복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가서 느낀 점이 그것이다.

 

가서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봉사를 해야되겠다.

는 마음으로 탄자니아를 간건데

 

나는 거기서

너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 사실 구호단체들이 방송에서 묘사하는 아프리카의 대상화된 이미지 

(다 죽어가고 고통과 절망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로 묘사되는 아프리카)

에 반대한다.

 

탄자니아 사람들이 가난한건 맞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건 아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여서 노래부터 부른다.

그리고

소박한 식사를 하고

소박한 일을 하지만

그속에도 행복이 넘친다.

 

 

탄자니아 다르에르살렘 마을 어귀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콜라마시면서 조그만 TV로 축구중계를 보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행복해보이는지 모른다.

 

가난한건 실패가 아니다. 

외모도 실패가 아니고

심지어 실수하는 것도 실패는 아니다.

실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패배라는 단어는

바로

파울로 말디니처럼 쓰는 말이다.

 

나는 루저입니다.

 

26번의 우승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패배가 있었습니다.

많은 성공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더 많은 실패가 있었기에

나는 루저입니다.

 

이렇게 멋지게 쓸 수 있는 말이

루저라는 말이다.

 

 

루저란 말은 자조적인 말이 아니다.

 

멋진 말이다. 위 말디니의 예처럼.

 

네 스스로가 생각할때 너의 좋지못한 것들을 쭈욱 나열해보라.

 

상황과 환경들 실수들 후회들 모두 나열해보라.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보라.

 

네가 마침내 그 실패들을 딛고 일어서는데 성공한다면.

 

그 많은 아픔들이 전부 성공의 한 요소가되어

그동안의 아픔을 합친만큼의 큰 성공으로 돌아오지 않냔말이다.

 

페르시아의왕자란 고전게임을 아나?

 

그 게임을 하다보면 분신이란 놈이 자꾸 내 에너지를 갉아먹고

내 물약도 빼앗아먹고 그런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 12층의 제일 꼭대기에서

그 분신은 주인공 나와 결합해

그동안의 모든 에너지를 합친 강력한 내가 되도록 해준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승리하도록 나를 이끌어주는 소중한존재였던 것이다!

 

 

 

 

환경이 너를 함부로 결정짓도록 절대로 내어주지 마라.

상황과 환경이 너를 불행하게 만드는게 아니다.

불행을 선택한 네 자신이 너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고통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게 인간의 위대함이다.

그리고 참 놀라운건

그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바로 그 인간의 위대함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못난걸 너무 미워하지마라.

못날수도 잘날수도 있지만

그래도 행복은 넘치지않나? 우리주변에 말이다.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네가 이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행복은 눈덩이와같아서

행복은 또다른 행복을 불러온다.

 

내가 환경에 흔들리지 않을때

진짜로 환경이 좋아지는걸 경험한다.

 

지금 나는 예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은 걸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때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가진걸 잃어버려도 행복을 선택할 것이다.

 

행복은 선택이고

선택은 힘이고

영향력이고

변화이다.

 

 

패배자는 멋진 성취를 이루고 난 다음에 써야 할 단어이지

지금은 아니다.

 

넌 패배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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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2 2020.05.13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택이아니었기에 할 원망대신 현재 가진 선택지를 기쁘게 받은 마음부자신게 느껴집니다. 맞아요 행복은 소유가 다가 아닌데ㅠ

 

삶의 많은 부분 혼동의 근본원인은

목표와 목적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는데서 온다.

 

명문대에 입학하는게 목표가 아닌 목적이 될때

그 학생의 삶은 공허해진다.

명문대에 입학해도 실제 삶이 뚜렷하게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기 때문이다.

명문대 입학을 한 것은 시작일뿐이고 또다른 수많은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명문대 입학이 목적이 되어버린 학생들은 발전하지못하고 대학교1학년의 유치한 상태에 머물러버린다.

 

목표와 목적의 차이는 간단하다.

목표는 계속해서 발전하며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은 다르다.

목적은 계속해서 발전하며 변화하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해가며 목적에 다가가는 것이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타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목적에 대해 잘 알려주는 영화다.

 

실상 제대로 된 대부분의 영화는 모두 목표가 아닌 목적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위대한 문학작품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인간의 반영이라고 볼때

결국 

인간의 삶의 질은

목표가 아닌 목적이 좌우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고레에타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결국 한 남자가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다.

아버지가 된다.

는 명제는

다가서고 다가서도 길이 먼

진정한 목적중 하나이다.

 

평생을 걸쳐 그 목적을 향해 다가서더라도 인생이 아깝지않을 바로 그런 지점이 목적이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에게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 삶은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아버지가 된다는건 생각할수록 어렵다.

 

서두에 언급한바와같이

 

우리 삶의 수많은 비극은 대부분

 

목적과 목표를 혼동해서 오는 문제이다.

 

목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을 목적으로 혼동해서 벌어지는 문제들

(스카이캐슬에서 서울대의대를 목적화하여 결국 비극에 빠지고마는 가족들처럼,

포르쉐를 타서 폼나게 살아야겠다라든가)

 

이것만 이루면 다 죽었어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뤄보면 알겠지만

아무도 죽지않는다^^

하나의 목표를 성취하면 기다리고있는건 또다른 목표의 시작점인 거다.

 

 

반대로 목표로 생각해서는 안될것을 목표로 생각해서 벌어지는 문제들도 있다.

 

평생 지향점으로 삼아야 할 목적을

 

수단화, 계량화하여

 

목적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목적이아닌 단기간의 이익만을 바라보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자녀를 수단화하여 자신이 이루지못한 야망을 대리만족하려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서 발생하는 비극이다.

 

 

 

세계를 이끄는 두 기업. 알리바바와 테슬라의 두 CEO 마윈와 일론 머스크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면

근본적인 시작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윈의 경우 그게 돈이 되는가? 가 질문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면

일론 머스크는 그게 내 꿈과 관련이 있는가? 가 그의 대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실기반형 사고와 이상기반형 사고라고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윈을 잘 모른다. 그래서 마윈의 현실기반형사고에 대해 무어라 규정짓고싶지않다.

다만 한국인들은 마윈쪽에 가깝냐 머스크 쪽에 가깝냐라고 했을때

단연 마윈쪽에 가깝다고 장담한다.

 

한국인들은 마윈쪽에 가깝다.

 

책도 제일 잘 팔리는 책은, 실용서다.

무언가 그 자체로 목적성을 가지는 책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 인기가 많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문제지만

 

나는 머스크가 훨씬 더 좋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발전하기위해선 머스크같은 말도안되는 스케일을 가진 이상주의자들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CEO로 유명한데 테슬라의 주가총액은 이미 1000억달러를 돌파

포드와 지엠을 합친것보다 많고, 폭스바겐그룹의 시가총액보다 더 많다. 

상승률이 4월 한달에만 무려 40%의 거의 투기주에 가까운 역사적인 상승률을 보이고있다.

지난 3월 한달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는

벤츠도 아니고 BMW 도 아니고 테슬라 모델 3라고 하는 소식도 테슬라의 인기를 반영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주가상승소식이 있기 불과 몇달전만해도 일론 머스크의 부도설이 언론을 채웠던걸 보면

그의 주식은 롤러코스터 이상으로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괴짜 CEO 일론 머스크는 그러나 테슬라의 비전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전기자동차를 만드는데 있지않고, 전기자동차는 그의 궁극적인 꿈을 향한 과정에 불과하다고 여러차례 밝힌바 있다.

 

그의 꿈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화성에 이주하는 거다.

 

일론 머스크의 목적은 화성에 이주하는 유년시절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이 꿈을 이루기위해 그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있다.

 

그 꿈을 이뤄가려다보니 전기차도 만들고 여러가지 회사들도 만들게되었지만, 여전히 막대한 돈을 들여 화성이주의 꿈을 향해 한발자국씩 나가고 있다.

 

이상지향적인 사람은

현실의 좌절에 굴복하지않는다.

 

그리고 진정한 창의성은 이상지향적인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상지향적이어야 합리성의 벽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지향적이어야 현실이란 벽 또한 깰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에서도 예측을 벗어난 카오스의 세계가 미학의 영역에 들어온 것 처럼 (잭슨 폴락, 사무엘 베케트등의 부조리극 등 포스트모던 예술을 생각해보라)

이상지향적인 사람에겐 필연적으로 이치에 맞지않는 일을 위해 기꺼이 도전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상지향적인 사람은 눈앞의 성공이나 실패에 구속받지 않는다.

애당초 목적자체가 현실이 아닌 이상에 있기 때문에, 현실적 성공이나 만족은 진정한 갈증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교육의 가장 나쁜 점 중 하나가

실패할 자유, 혹은 실패할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데 있다고 본다.

 

이상주의는 말자체에 이미

터무니없는 상상과 비현실적 시도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너무 쉽게 실패라는 낙인을 찍는 바로 그곳에

 

인류의 미래가 바뀌고 담대한 꿈을 꾸는

위대한 혁신의 씨앗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목표와 목적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대학입시가 목적이 될수가 없음을 기억할때

오히려 대학입시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는 자신만의 매력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안에 이상주의적인 모습이 있다면, 그것을 공상이라고 치부하기 이전에

당신 역시 세상을 바뀔 위대한 혁신가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그 꿈을 위해 때로는 이치에 맞지않는 도전들을 감행하는 것이 나는 옳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목말라있고

변화는 급속도로 진행되며

가장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변할거라는 그 사실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치에 맞아보이지않는 그것이

내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가장 이치에 맞아보이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이제 실용서는 그만 읽고

말도 안되는 책을 읽기 시작해보자.

 

나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다시 구입해서 읽고 있다.

우주의 세계속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우주에 대해 알고 싶은건

내게 어떤 유익을 줘서가 아니다.

 

그냥 알고싶은거다.

 

그냥 알고싶은걸 위해 공부하고

그냥 하고싶은것을 위해 일하고

그저 그것이 어린시절 꿈이었기에 내 삶을 다 그 꿈에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이상주의자.

 

세상은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돌아가는 것이기에

너의 희소함과 개성

그리고 과감한 혁신은

반드시 인정받게 될 것이다.

 

내가 철학자는 아니기에 마음속 꿈을 따라 가는 삶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경험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현실이 아닌 꿈을 따라갔을때 지금 나는 또래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풍족하게 채워왔다고

 

그것은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여행도 가보고 내 이름도 책도 내보고 인세도 받아보고 공연도해보고 한예종에서 시인들과 시도 써보고 평론가협회활동도 해봤고 몰디브도 가보고 프랑스여행도 해보고

지금 언급한것들중 그다지 쓰잘데기 있는건 하나도없다.

한예종 전문사에 합격했다고 어머님께 말씀드렸을때 어머님이 화를 내셨던 기억이 난다.

그만 하면 됐지 왜 또 그런 돈안되는걸 하냐고....

 

그러나 돈안되는거, 별쓸모없는 것들만 수북히 쌓아온 지금.

돌아보니

또래들에 비해 꽤 쓸만한게 많은 사람이 되어있는건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어느순간부터 무언가 이룬게 많은 사람이 되어있는 것 또한 삶의 아이러니이다.

 

 

쓸모없는 것들에 네 모든걸 걸어보라.

 

그것이 너를 너답게

너만의 것으로

채워줄

 

유일한 지름길이다.

 

 

이 블로그까지 찾아와서 이런 시덥잖은 글을 읽고 있다면 틀림없다.

너는 무언가 이쪽 코드 사람이다.

그깟 실패 뭐가 두렵냐?

실패가 실패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거다.

 

길을 벗어나서야

비로서 길이 보이게 되는건

참으로 신비로운 인생의 역설이 아닐까?

 

 

하나밖에 없는 인생

꿈이 있다면

그 꿈이 네게 깃든것만으로도 기적이다.

 

꿈이없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이 세상에서

너만의 꿈이있다면

너는 이미 특별한 목적을 가진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꿈이 깃들었다면

그 꿈의 소리를 향해 한발자국 용기있게 내딛어보라.

 

그 발걸음이 너를 어디로 인도해나갈지

기대된다.

 

 

진정한 혁신가가 이 세상에 나오기를

그게 바로 너와 나 이기를

이시간 바라며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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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g 2020.04.28 0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저에게 영감을 주셔서 감사해요 좋은하루보내세요!

 

짧고 굵게 간다.

사십평생을 살아보니

과거를 돌아보니

지난날 대부분 너무 물렁했고 단호하지못했고 잘못된 것들에 적절히 대응하지도 못했더라

그 모든 과정들을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결국 이 짧은 문장 속에 모든 답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문장은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열정, 내 모든걸 다 쏟을 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돌아보니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처럼 부족한 내게도 내편이 되어주고 언제나 내곁에 있어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부모님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배우자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

 

 

어찌보면 그들의 사랑과 관심을

나는 너무 당연한것으로 여기지 않았나 돌아본다.

 

돌아보니 후회되는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지못한 것들만 후회로 남는다.

 

부모님의 사랑에 좀 더 잘 반응했다면... 부모님 사랑의 반의 반이라도 보답했었다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이라도 더 많은 사랑을 나눠줬었더라면...

 

우리 인생은 짧고

우리가 가진 사랑의 능력은 제한이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사랑할 여력이 넘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나를 아끼고 사랑해준 사람들에게만이라도

적합한 사랑의 응답을 해주는 것만이라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더 큰 사랑, 인류애적 사랑, 좋아보이는 것에 대한 사랑, 유명인에 대한 사랑, 멋져보이는 것에 대한 사랑

종교적인 사랑...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랑의 영역들이 우리의 사랑을 기다린다.

 

후회한다.

 

그 많고 다양한 수많은 영역의 사랑에

너무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쏱아부었던 것을. 

 

너무 종교적인 열정을 쏟아부었고

너무 유명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부었고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애를 써왔다.

(SNS같은 것들)

 

 

그저 내 작은 사랑의 몫이라도 충실히 채워나가며 살면

그게 최고의 삶인것을 이제서야 깨달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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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nqnenqdn 2020.04.24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최근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게 신기하네요 ㅎㅎ
    진짜 유한한 시간속에 나를 미워하고 시기 질투 하는사람을 돌리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 보단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더 사랑을 주는 게 가치 있다는 걸 꺠달은 요즘입니다!
    근데 글을 보며 더 이런 생각이 정리가 되고 힘이 되는것 같아요 ㅎㅎ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intheatre 2020.04.27 2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보답하기에도 우리 삶이 너무 짧고 유한한거 같습니다. 좋은하루되세요!

  2. ohh 2020.04.24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sns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코로나 상황이 되고나서 

평소에 해왔던 루틴이 깨져

거의 아무 일도 제대로 못했다.

글도 못쓰고

생각도 정리가안되고

모든게 뒤죽박죽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이제 조금씩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이제 코로나상황에도 적응이 되어가는건지

새벽축구와

오프라인수업과

자유롭게 해외를 다니거나

자유롭게 사람들과 소통하는 이 모든 것들이

불가능해진

이 상황역시

어느정도 익숙해진걸까

 

내일 투표는 꼭 해야겠다.

 

마윈이랑 엘론 머스크 관련 글은 지금써야되는데... 

쓸 글은 쌓여있다. 하나씩 풀어봐야지

 

아 힘들다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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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4. 02:10 about, intheatre

하되, 잘하라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을 잘 한다고 했을때 '예술적'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관용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수월성을 갖추어야 한다.

한마디로 할꺼면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입시학원을 하는 원장으로서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만나며

어느정도 첫만남에서부터 앞으로의 장래가 어느정도 가늠이 되는 경우가 많고

실제 결과도 거의 예상과 비슷하다.

 

여기서 좋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경우는 대부분

예술적인 수월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

다른말로 하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이다.

 

어떤 성취를 위해서

투자해야 할 노력이나 과정을

가볍고 허황되게 생각하지않고

진지하게 그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갈것을 충분히 고려한다는 말이다.

 

반대의 경우는 명확하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한다.

어떤 성취를 위한 노력이나 과정에 관심을 갖기보단 막연한 결과와 분위기에 집중한다. 

목표가 추상적이고 분위기에 심취해있지만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술적 분위기는 쫓지만 무엇을 채울것인지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은 빈곤하다.

 

단순하다.

과정에 집중하는 사람이 결과를 이루고

결과에 집중하는 사람은 결과를 이루지못한다.

 

예술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건 

일종의 변태적 행위라고 봐도 된다.

 

고통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무용수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발레리나들의 발가락을 보면 얼마나 오랜시간 훈련에 투자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발레리나들이 그 고통을 즐기면서 하지는 않겠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뿐.

분명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언급했듯 어떤 분야에 일만시간의 법칙을 투자한 사람이라면 그는 그 일을 즐기고 사랑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투덜대고 빌어먹을 이놈의 무용 빨리 때려치워야지 지긋지긋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무용수라 하더라도

그가 일만시간을 무용연습에 투자하고 있다면

 

그는 무용을 사랑하고 즐기고 있는 것임을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거다. 일종의 겸손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다.

 

고통에서 행복을 느끼는게

예술적 성취의 기본이다.

 

무언가를 창작한다는건

무지 고통스러운 일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겠지만

창작의 고통에 비할 어려운일이 많지는 않다.

 

영화 한편을 찍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쉽다.

 

영화를 잘 모르는 학생들

그저 영화적 분위기에만 심취해서 카톡플사나 인스타는 멋지고 아리쏭한 이미지로 채울줄 알지만

실제로 영화를 잘 모르는 학생들은

영화를 낭만적인 일종의 패션아이템같은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영화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영화란 기획단계에서부터 제작단계 후반작업단계를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공방같은 것이란 걸

아는 사람들이다.

 

영화를 알면 알수록

과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만듦새에 집중해서 보게된다.

 

 

예술은 수월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은

교회영화나 군대선전영화같은걸 생각해보면 된다.

만듦새가 형편없는 

수월성이 떨어지는 작품을 그들의 종교적 코드와 맞다고 해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그들끼리 박수쳐주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그들안에서만 통용될뿐

다른 이들에겐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지 않는가?

 

그래서 예술은 메세지보다 형식적 수월성이 일차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예술에서 메세지 역시 중요하지만 (랑그)

 

메시지와 형식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이다.

 

형식이 앞에 서야지

메세지가 빛나게 된다.

 

형식이 떨어지는

좋은 메세지를 가진 예술작품이란

없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저 교인들 사이에서 형제님 자매님 하면서 지들끼리 박수치는

자기위안에 불과하다.

 

형식은 탁월한데 메세지가 부족한 예술작품이 있을수 있을까?

나는 그래도

형식이 먼저고 메세지가 나중이라는 순서만 잘 갖추고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의외로

 

그 유명한 마셔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한 말이 있지않은가?

 

'미디어가 메세지이다'

 

이 말을 바꿔말하자면

형식이 곧 메세지가 된다는 말도 된다.

 

그러므로 형식이 뛰어나다면

의외로 그 뛰어난 형식자체가 메세지가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저 잘 만들기만 한 예술작품 앞에서

우리가 감탄을 하며 저마다 그속에서 메세지를 찾는걸 생각해보면 쉽다.

 

잘 만들면

의외로 메세지가 부차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은거다.

잘생긴 오빠가 숨만쉬어도 무언가 젠틀하고 착해보이고 자기철학이 있어보이는것처럼? ^^

 

그래서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 학생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말이

메세지가 형식보다 앞서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고

과정보다 결과가 앞서도 안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예술을 한다고 결심했으면

반드시

잘 하는 사람이 되도록

피땀을 흘려야 한다.

 

그게 예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입시에 적용해보자면

경쟁률이 높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행복해해야 한다.

각오를 단단히하고

진지하게

과정에 노력을 기울일줄 알아야 한다.

 

합격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날수록

오히려 합격에 가까워진다.

 

과정에 충실하다보면

합격은 저절로 따라온다.

 

영화분야나 연극분야는

일종의 놀이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결국

잘 놀줄 아는 학생을 뽑게 되어 있다.

 

잘 놀되, 

영화를 가지고 잘 노는것.

 

연극을 가지고 잘 노는게 

교수들이 찾는 인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에선 '놀자'라는 단어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거다.

 

한판 놀아볼까?

잘 논다.

좀 놀줄아네

같이 놀아볼까?

좀 놀아봤어?

 

 

이런 말들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경쟁이 치열하다면

오히려 그 경쟁을 뚫는다면 큰보람과 성취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진지하게 과정을 밟았다면

반드시 성장하게 될거다.

 

성장을 성취한다는 면에선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모두 무언가를 성취하게 된다.

 

뜻을 이루든

혹여

못 이루더라도

성장할 수 있다.

 

그러기위해선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

진지한 마음으로 엄격하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

고통속 변태적 기쁨을 누려야 한다.

 

 

다행인건

역설적으로

성취보다 중요한게

성장 이라는게 큰 위안을 준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있는가?

 

성취보다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말 말이다.

 

만약 성장보다 성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영원히 성취하기 힘들거다.

어찌보면 삶에서 진짜 성취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실존적으로 허무한 존재이기에

어떤 성취를해도 그것을 성취하는 순간 성취가 아닌 또다른 시작이 되어 버린다.

영원히 진정한 성취란 없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죽음앞에선 역설적으로 모든 성취는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숀튼 와일더는 <우리읍내>의 에밀리를 통해

죽음을 건너

다시 삶을 관조할때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세상이여....'

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해바라기, 작은 꽃병, 따뜻한 목욕탕, 엄마가 해준 소박한 밥상...

숀튼 와일더가 바라본 삶의 기쁨은

충실한 과정에 있었음을

그는 에밀리와 무대감독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영화든 연극이든

예술적인 작업을 시도해보려하는 학생이있다면

 

그저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하고

실제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도록

행복하게 몰입해보면 어떨까?

 

분명 예술을 바라보는 생각, 입시를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게 되리라 믿는다.

 

연습하는 배우가 아름답고

무대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아름답고

함께 대사를 주고받는 파트너가 소중하고

영화를 찍는 과정이 소중하고

무대위의 따스한 조명이

우리 삶을

빛나게한다.

 

 

이번에 아카데미 대상을 받는 <기생충> 은 제작과정에서부터 유심히 살펴본 작품이다.

이 <기생충> 제작을 발표할때 봉준호는

이번작품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사이즈의 영화를 찍으려고하고

제일 즐길수 있는 소재로 즐겁고 부담없이 찍으려 한다.

밝힌바 있다.

 

역시 영화 <기생충>의 제작 과정을 살펴봐도

그 어느때보다

과정에 충실하고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즐기며

행복하게

함께

한판 재밌게 놀아본걸 알 수 있다.

 

훌륭한 형식이 위대한 메세지를 만들고

충실한 과정이 전례없는 결과를 낳는다.

행복한 몰입이 우리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존재로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우리모두는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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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어디선가 우연히 읽게되었는데

이 글이 몇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여기저기서 퍼나르고 있는걸 보아 상당히 많은 논란을 가져온 글인 것 같다.

이 글에 대한 반박에 겸해서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직업의 귀천이나 가치의 차이에 대해 짧은 글을 써보려한다

 

직업에 귀한 직업과 천한 직업이 있을까?

위 글을 쓴 사람은 교수와 청소직원에 대해 암묵적인, 귀천이 존재한다고 하며

특히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

그리고 일용직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

으로 대표되듯

귀한 직업과 천한 직업이 있을수 밖에 없다며,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 쓴 사람은 직업에 대해 지극히 한국 특유의 유교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걸로 보인다.

사농공상이라고 흔히 말하는, 문과 관련된건 귀한 일이고, 노동과 관련된 일은 천한 일이라는 유교적인 계급관념말이다.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와 

일용직 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을 나누는 기준은

문과 관련된 일과

노동과 관련된 일로 쉽게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글 속에는 그런 고정관념이 기저에 깔려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그냥 윤리적인 지향점이거나 그게 올바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시대가 인정하는 직업에 대한 가치는 계속해서 바뀌기 마련이고

한편으로

귀천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건'의 문제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평가하는 직업적인 가치는 그 시대에 따라 매우 급변하며 그러한 변화는 오늘날 특히 극심하다.

예전이라면 깍새라고 부르거나, 요리사라고 부르는 직업들이

수십개 이상의 프랜차이즈를 가지고있는 헤어디자이너로, 또 연예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스타 쉐프로 불리는 걸 바라본다.

위 글쓴이가 언급한 변호사, 의사가 부럽지않은 헤어디자이너와 쉐프들이 즐비한게 오늘날의 변화된 직업적 기준을 잘 드러내준다.

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에서 두각들 나타낸다면, 사회는 그 사람의 실력과 능력을 존중해주는 다양성과 전문성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는걸 알 수 있다.

 

변호사도 영업을 잘하거나, 전관출신이 아니면 예전같지않게 고전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무수하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글쓴이가 예로든 교수야말로 오늘날 가장 몰락한 직업군중 하나이다. 학생수가 급감해서 일부 인서울 대학의 교수들외 특히 상당수 많은 대학교수들이 학생유치를 위해 영업까지도 병행하고 있는걸 흔히 볼 수 있다. 

교수직이 급락중이라는 증거는 과거 신의직장이라 불렸던 대학교교직원의 인기가 급락한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학들이 수입이 줄어드는 바람에 교직원들을 많이 뽑지않고, 또 교직원들의 처우나 근무환경이 안좋아지게되서, 교직원좋은 날 다 갔다는 푸념을 실제 교직원들에게 많이 듣는다.

이렇게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 시대가 선호하는 직업의 가치는 변하기 마련이고

어쩌면 가장 극심하게 변하는게 직업의 가치가 아닌가 한다.

지난 50년간의 변화보다 

앞으로의 10년의 변화가 더 극심할 것이다.

이제는 변호사든 의사든 노동자든 배달원이든, 직업이 무엇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잘읽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사람들. 또 변화를 통해 새로운 직업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로 더더욱 급속하게 진입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일용직근로자나 청소직원이 가치를 덜 인정받는건

그 직업이 원래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직업에 대해 사회가 정당한 '조건'을 주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폄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호주와 유럽등을 다니며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건

그 사람들이 모두가 다 의사, 변호사, 화이트칼라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어떤면에선 화이트칼라직업을 좀 덜 남성적이고 덜 엑티브한 직업으로 오히려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것도 봤다.

운동잘하고 섹시한 몸을 가진 배관공같은 기술노동자가

실제로 여성들에게 더 인기가 있고 마초적인 매력을 풍기는걸 많이봤다.

 

기술직노동자가 섹시하고 인기가 많을 수 있는건

그 기술직노동자도 충분한 보상을 받는 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호주의 기술직노동자에게 화이트칼라 직업을 줄테니 하라고 해도

싫다고 할 것이다.

 

의사가 연봉은 높지만

공부를 많이해야하고 자신에게 긴시간 투자를 많이해야 한다면

 

기술노동자를 선택하면 몸쓰는 일이 자신은 좋고, 긴시간 투자안하고 어린나이에 빨리 직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고, 야외에서 재밌게 일할 수 있고

그러면서 본인 기준으론 충분한 돈을 받을 수 있기에

기술노동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의사와 노동자 중에 선택하라고해도 노동자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의사가 3억연봉을 받아도

기술노동으로도 한 1억만 받아도 

기꺼이 기술노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게 적성에 맞고

체질에 맞다면 말이다.

 

길게투자하지않고 빨리 직업전선에 뛰어들고 절대적인 소득자체는 비교적 적지만 충분히 가족을 부양하고 자기 삶을 여유있게 가꿀 수 있는 적절한 소득이 주어진다면 몸쓰는 일을 기피할 이유가없다. 

교수나 의사가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많은 소득을 받는것이야 당연하지만

 

좀 더 공부에 투자하고 오랜 경쟁에 노출시켜 교수나 의사같은 직업군을 선택하는가는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이지 한줄로 세운 한줄짜리 기준아래 더 잘난 사람과 상대적으로 못난 사람의 줄세우기가 아닌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절대로 개인의 노력을 무시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의사가 3억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공부도 많이했고 투자도 많이했고, 경쟁도 치열하게 통과했으니

의사가 3억버는게 맞다.

 

그게 옳은 사회다.

 

그러나

 

한편으로

 

좀 공부 길게 안하고

야외에서 활동적으로 일하고

 

좀 더 남자답게 몸을 쓰고

기술을 배워서 여러 사람들에게 실용적인 도움을 주기로 선택한 사람도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산다면

 

그 사람들이 한 1억 정도는 벌 수 있다면 ( 1억을 주라는게 아니라, 의사가 3억이라고 했을떄 한 3분의 1정도를 벌 수 있다면 이란 의미로)

 

그 사회는 정말 좋은 사회라 생각한다. 

 

직업은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

 

공부를 잘했고 오랜기간 자신에게 투자해서 많은 연봉을 받고 높은 직위를 갖는 것도 존중되어야 하고

그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해야 하며

오히려 사회가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성취를 이뤄나갈 수 있도록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격려하고 보상해줘야 한다.

 

한편으로

공부엔 소질이 없지만 또다른 자신의 길을 찾아

사회 구석구석에서

고귀한 소금같은 일을 해주는 사람이 되는걸 선택한 이들 또한

단순히 '직업적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글쓴이가 말한 가치가 덜한 것으로 나열한 일용직 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 또한

너무나 사회에 필요한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택배서비스를 생각해보면 쉽다.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있는 한국택배서비스의 이면엔

하루 배달 300건, 집하 약 300건을 맞춰야 겨우 몇백남기고 거기서 기름값이나 온갖 운영비를 다 제하고서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택배관련노동자들의 심각한 처우문제가 있다.

이렇게 일을 시키고 이렇게 일을 해내야만 유지되도록 만들어진 환경에서

이 정도의 소득밖에 주지않기에

택배노동이 귀한 일로 취급받지못하고 있는거다.

택배노동 자체가 귀하지않은 일이 아니라

심각한 노동불균형이 택배노동을 천한 일로 폄하시키고 내모는것이다.

 

반면 대학교수의 경우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한국 대학교수들이야말로 세계 최저의 투자대비 효율성을 자랑하는 직업군이 아닌가 한다.

 

하루빨리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야 되는데

별다른 노력없이도 일단 자리만 차지하게되면

수십년동안 편하게 먹고살 수 있게되니

그 직업이 귀한 직업이 되는것이지

원래부터 교수가 귀한 직업인건 아닌것이다.

 

앞서 택배서비스의 처우문제를 이야기했을때,

아 그럼 택배배달부도 돈 팍팍주고, 교수도 팍팍주면 당연히 모두가 좋지, 그러나 그게 현실적이냐?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교수이야기를 한거다.

경쟁력이 없는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비효율성을 없애고

그 비효율성이 실제로 경쟁력을 갖춘 직업군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직업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 어디서든 택배배달부보다 대학교수가 더 좋은 직업으로 평가받는건 당연하다.

길게 공부를 해야하고, 좋은 대학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춰야 대학교수를 할 수 있으니까.

(한국은 전혀 그렇지않지만)

세계적인 석학이 단순노동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건 오히려 불평등일테니까

그러나 그건, 투자대비 적성의 문제일뿐  

본질적으로 직업적 귀천의 문제는 아닌것이다.

 

 

 

특히 더 안타까운 건

이런 사회적 구조속에서 

너무 쉽게 사농공상적인 태도를 학습하고 받아들여버리는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더더욱 안타깝다.

 

왜 사회가 강제로 부여한 말도안되는 기준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버리는가?

 

 

왜 모두가 대학을 억지로 가야 하는가?

전세계에서 대학진학률 1위라는건 자랑이 아니라 비정상이고 기형이다.

그만큼 이 사회가 아직도 사농공상의 계급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이지 않은가?

 

대학 안가도 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이 사회는 너무도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비교하고 줄세우고 있다.

남자는 어째야되고 여자는 어째야되고, 결혼하려면 뭐는 해야되고, 직업은 어때야되고, 외모는 어째야되고........

숨막히는 비교와 획일적 기준과 그것을 강요하는 문화야 말로

이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이다.

 

 

별로 이상적이고 복잡하고 어려운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가치를 인정해주라는건 복잡한 이념적인 어떤 지향점이 아니다.

 

그냥

 

'정당한 대우'만 해주면 된다.

 

일용직노동자도 충분히 만족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고 노후를 생각할 수 있는 대우,

대리운전기사도

청소직원도.

 

글쓴이가 언급한 청소직원의 경우가 그 증거다.

 

구청에서 공무원으로 청소직원을 인정해주고, 노동의 안정성을 주고 공무원의 대우를 해주니

청소부가 인기직업이되어 실제로 대학졸업자뿐만아니라 석사이상 명문대출신들도 청소부를 지원했다는 기사를 우리는 본적이 있다.

 

청소부라서 가치가 없는게 아닌 것이다.

사회가 그만큼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에

그 직업이 천함을 억울하게 '덮어쓴' 것일 뿐이다.

 

청소부하는데 월 700주고 정년까지 일하고 연금도 준다고하면

하겠냐 안하겠냐?

개인적으로 

나는

한다.

 

지금하는 일 때려치고

지금 바로!

 

글쓴이 처럼 귀한 사람으로 귀한 가치를 억지로 인정해주고 '에헴'하면서 존중을 억지로 쥐어짜낼 필요없다.

 

돈을 많이주면 된다. 

 

가치를 인정해주는게

존중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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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g 2020.02.23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네요 너무..

  2. 권재 2020.04.26 1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입니다. 언제쯤 그런 세상이 올까요.
    그런데 진입장벽도 고려되야 할 것 같아요.
    한국도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블루칼라는 대우가 좋지요..
    택배, 청소는 사실 맘만 먹으면 아무나 할 수 있기에
    인구가 지나치게 많아진 현대사회에선 쉽게 대체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저임금을 받으면서라도 해야하는 것 같아요. 먹고 살려면.
    심지어 드론, 청소로봇까지 나오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들의 교섭력을 키우기 위해 직업이 없어도 굶어죽지는 않게 해줘야 할텐데 아쉽네요..

    • intheatre 2020.04.27 2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의 차이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믿습니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인공위성은 처음부터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도달하는게 아니라

어느 정도 목표지점을 타켓으로 잡고 일단 날아간뒤

정밀한 목표지점을 수정해나가며 결국 정확하게 우주의 한구석 목표지점에 닿는다고 한다.

이 인공위성이 날아가는 과정을 생각하며 글을 써본다.

 

1. 내 삶의 방향성과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항상 염두에 두라

 

 

인공위성이 우주 한 공간 목표지점을 향해 날아갈때. 가장 두려운 일은 '궤도이탈'이다.

 

피더 드러커는 '10년후와 10분뒤를 동시에 생각하라'

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바쁜 일상속에서 또는 인생의 큰 변화속에서 (예를들면 취직이나 육아등)

그 변화속에 함몰되어서 목표와 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냥 되는대로 살기가 너무 쉽다는 말이다.

입학하고난뒤

취직하고난뒤

결혼하고난뒤

아이가 생기고 난뒤

이렇게 무언가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고난 다음이

오히려 위기라고 본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일상 속에서 무언가 큰 목표를 상실하고 훨씬 더 거대한 잠재력을 가졌는데 그걸 다 못채우는 경우가 많다.

나는 축구게임 FM(Football manager)을 즐겨하는데 요즘엔 중독될까봐...또 제대로 즐기기엔 시간도 많이 빼앗기고, 가상구단을 경영할 노력으로 현실의 경영에도 시간이 없이 허덕이느라 잘 못하지만

학교다닐때 방과후에 치킨시켜놓고 FM한판 때리면 세상에서 그것보다 행복한 시간은 별로 없었던거 같다.

FM게임에선 재밌는 개념이 있는데, 어빌리티와 포탠셜로 선수의 능력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어빌리티는 현재 드러난 능력이다.

포탠셜은 그 선수가 가지고있는 최대 능력치이다.

예를들어 메시같은 선수는 포탠셜이 199 (199만점) 어빌리티가 199다.

그냥 현존 최고의 선수란거다.

 

FM을 많이 하다보면, 팔카우falcao 콤파니kompany 반더바르트van der vaart 이런 애들이 세계적인 선수가 된걸 보면 꼭 내가 키운거 같다. 

잠재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임에도 훈련을 제대로 해주지않거나 히든스탯 (성실함, 적응력, 부상빈도 등)이 좋지않으면

자신의 잠재력을 다 채우지못하고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버린다.

 

반대로 포탠셜이 아주 높지는 않은 선수라 하더라도

적절한 훈련과 히든스탯이 높으면 유명팀의 주전선수로 충분히 활약할 수 있게된다.

 

내 인생에도 포탠셜과 어빌리티가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나는 과연 내 포탠셜을 다 채우고 죽는 사람이 될까?

이런 생각이 든다.

내 포탠셜이 반드시 높아야할 이유는 없으나

최소한 내 포탠셜만큼은 어빌리티로 다 채우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매일 그렇게 다짐을 한다.

 

이런 개념을 갖고 생각을 해보니 중요한 고비들을 넘기게 되는 힘이 생기더라.

 

책을 내는게 힘들지만 내 삶의 포탠셜을 채워보자 란 생각으로 버티다보니 책을 출판하게되고

(작년 한해 꽤 팔렸더라? 너무 놀랍고 큰 힘이 되는 일이다)

대학원을 다니는게 힘들지만 역시 포탠셜을 채워보자는 생각으로 버티게 된다.

 

FM게임 안에서 히든스탯을 정확하게 확인하거나, 포탠셜을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에디터를 쓰지않는이상 정확한 수치를 알수는 없다. 스카우터를 통해 간접확인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우리 삶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삶의 포탠셜은 어디까지일까?

 

절대 현실에 만족해선 안되고

더 큰 목표 더 거대한 욕구 더 거대한 잠재력을 향해

항상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aiming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내 삶의 포탠셜은 다 채우고 생을 마감해야 그 삶이 후회없는 삶이 되지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조금만 더 버티고 조금만 더 참기만해도

 

나는 글을쓸때 했던 말을 또하고 했던 말을 또하는걸 매우 좋아한다.

그게 좋은 말이면 몇번이고 계속해서 써도 계속해서 새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말 조금만 더 버텨야 한다.

조금만 더 참아야한다.

 

무언가 성취되는 지점. 그것이 합격이든 취직이든

그 지점은 보통 100이 아니다.

51이다.

51은 100을 얻고

49는 하나도 얻지못하는게 법칙이다.

 

어떤 기준을 통과하면 합격이고, 합격은 모든 것을 얻은거고

어떤 기준을 통과하지못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거다.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사법고시 합격은 합격이고

불합격은 0과 동일한 것과 마찬가지다.

불합격은 불합격일뿐 더 높은 불합격이 없다는게 인생의 아이러니다.

 

50이란 기준을 넘어서면 무언가 성취한다고 했을때

보통 가장 크게 좌절하는 구간은

40~49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그 아래는 아예 현실성있게 성취를 생각하지도 않기때문에 좌절도 크지않다.

 

그러나 그 목표가 눈앞에 있을수록

그런데 그 목표가 이뤄지지 않을수록

우리의 좌절은 크다.

 

48을 해놓았는데

이제 3만 채우면 되는데

 

포기해버리고마는 48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조금만 더 버텨서 3을 채워 50을 넘어서게 되면

51을 얻는게 아니라

100을 얻는다는걸 기억하라.

48에게 3이 더해지면

51이 아니라, 100을 얻게된다.

 

그러나 48이 포기를 하면

그냥 0가 되는거다.

 

조금 더 버티고

조금 더 참고

 

그건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조금 용납못할 일들이 있어도

그 관계의 끈을 놓치않고 참고 계속해서 소통하다보면

세상에 이해못하고 용납못할 일이나 사람이

그렇게 많지않다는걸 깨닫게된다.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의 끈을 놓지않다보면

어느순간 그 사람이 생각치도 못한 기회를 가져다주는 경우를 너무 많이 경험해왔다.

 

 

 

3.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이면 충분하다

 

나는 일이든 개념이든 단순화시키는 걸 좋아하는데

실천가능한 일도 매우 단순하게 만들어서 실천한다.

내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나는 항상 '어제보다 오늘 단 1개라도 발전하자'

는걸 목표로 삼아

무엇이든 하나라도 어제에 비해 발전한게 있으면 1점을 준다.

그리고 그걸로 만족하고, 오늘하루 충분히 수고했다라며 보상을 듬뿍준다 (맛있는음식이나 휴식, 수면, 맘껏놀기 이런거로)

어제까지는 못했던 미뤄왔던 일을 오늘 한게 있으면 그것도 발전이므로 1점.

꼭 연락해야 할 고마운 분에게 연락을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 연락했다면 1점.

밤에 야식안먹기로 했는데 오늘하루는 식사를 건강식으로 잘 챙겨먹었고 9시이후엔 음식에 일절 손 안댄것도 발전이므로 1점

독서한 건 전부 1점

부모님께 선물드리고 안부전화드린 것도 좀 더 나은 인간이 된거니까 1점.

 

이렇게 종목, 중요도 따지지않고 무엇이든 어제보다 발전한 무언가가 있으면 1점을 준다.

그리고 두둑한 보상을 준다.

 

요즘 독서에 재미들려서 일주일에 거의 10권이 넘는 책을 읽고 있는데

최근에는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조던 피터슨 역시 4번째 법칙에서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

라는 말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일의 유익함을 말하고 있다.

 

조던 피터슨의 책과, 최근에 읽은 '그릿' '리더의 용기' (브레네 브라운) 와 같은 좋은 책들은

곧 정리해서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려 한다.

 

내가 독서에 취미를 들이게된 좋은 계기가 있었는데,

어렸을때 아버지께서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내게 스스로 공부를 했으면 얼마를 했건 500원을 주시기로 하셨다. 

나는,

'책 읽은 것도 공부로 치나요?'

라고 물어봤을때

'당연하지!' 

라고 아버지께서 대답하셔서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없었다. 좋아하는 놀이인 책읽기를 마음껏해도 용돈을 받을 수 있다니 말이다!

그래서 정말 원없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유년시절부터 길러온 책읽는 습관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내 삶에 거대한 유익과 돈으로 바꿀수없는, 심지어 어떤건 돈으로도 바꿔지는!! (인세를 받아보니 작은 돈이지만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다. 정말 기쁜 일이다) 그런 유익함을 한가득 안겨줬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삶에 질서가 생겼다는 뜻이고, 여유가 넘친다는 증거이다.

 

보상은 후해야 한다.

그리고 성취한 일이라면, 크고 작음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주는 선물이

작은 선물이건

큰 선물이건

모두 나를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

 

사소한 일에서라도 어제보다 오늘 발전할 수 있다면

그런 발전이 쌓일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성장해있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너무 큰 목표를 세우고 너무 다양한 목표를 여러개 세우면

성취되지 않은 목표들이 자꾸 미래에 성취해야 할 더 중요한 목표들의 발목을 잡는다.

 

저것도 못했는데 뭘 성취했다는건가... 이렇게 채념하고 포기하기가 쉽다.

 

그래서 무엇이든 크건 작건 성취하고 변화되었다면

후하게 보상을 주는 습관은

실제로 내 삶을 크게 바꾼 좋은 습관이라 생각한다.

 

 

 

 

 

 

서두에 말한 인공위성을 다시 생각해보자.

저 우주의 망망대해 한 구석 어딘가에

기계덩어리를 정확히 날려보내야하는 일.

그 일을 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일단 방향이 맞아야하고

궤도이탈하지않도록 계속 가고있는 방향을 생각해야 하겠지.

 

그러면서도

조금씩 정교하게 궤도를 잡아 마침내 목표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디테일 역시 잡아나가야겠지.

 

목표와 현실.

두가지를 동시에 생각할때.

우주 한구석에 정확한 내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음을 믿는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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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독자1 2020.02.16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텐셜은높을거라고 믿기로한 1인입니다
    치킨시켜놓고 fm때리는행복을 말할 때 저도 콧물닦으며 웃던때 생각하면서 행복했네요
    1점씩 꾸준히 쌓아서 51점도 넘고 포텐셜에도 닿고 하지만 작은 오늘에도 행복을 놓치지않기를 다짐하게되네요 오늘따라 동네형이 등두드려주신거처럼 더 찡합니다요

    • intheatre 2020.02.20 0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저는 저 자신의 포탠션은 낮아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높으면 좋겠지만 낮다 하더라도 저는 행복할 거 같아요.
      하지만 제가 가진 포탠션을 채우지못하는 삶은 반드시 피하고싶어요.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도전하기를 쉬지않고자 합니다. 같이 서로의 포탠션을 풀포탠션으로 채워봅시다 :)

2020. 2. 2. 04:31 about, intheatre

진짜자유

 

진짜 자유는 구속에서 온다.

자유에 대한 착각이 때론 우리 삶을 그르친다.

자유에 대한 올바른 생각만 정리해도 변화된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떠한 면에서 그런지 몇가지 유형을 나눠서 이야기해보려한다.

 

1. 훈련

 

가장 먼저 진짜 자유는 엄격한 통제에서 온다. 그것을 우리는 훈련이라고 부른다.

예술을 하는 우리에겐 특히 절실히 와닿는 단어일거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소개해서 유명해진 개념인 '일만시간의 법칙'이 바로 그러한 좋은 예이다.

진짜 탁월함은 오랜 통제와 훈련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런 면에서 엄격한 훈련 속에서

진정한 자유함을 맛볼수가 있다.

피아니스트가 엄격한 훈련을 통해 연주 속에서 자유함을 맛보고

축구선수가 오랜 훈련 속에서 공을 컨드롤할 자유를 맛보는 것과 같다.

자유에도 수준이 있다는 걸 아는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멋대로 행동하고 아무런 제약없이 살아가는 면에서의 자유는 방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장 수준이 낮은 형태의 자유이다.

왜냐하면, 낮은 자신의 수준이 전혀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업그레이드가 되지않았는데, 자유롭게 인생이란 맵을 헤집고 다녀봐야 그게 그거다.

더 깊은 던전을 들어가기위해선 몬스터를 잡고 경험치를 쌓는 훈련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기위해

역설적으로 자유를 제약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훈련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입시를 대하는 태도도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더 재미가 있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학교가 경쟁이 치열하면, 그래서 더 도전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경쟁이 치열하다는건 그만큼 내가 도전할 여지가 더 있다는 것이며, 나를 성장시켜줄 여지가 더 크다는 걸 증명한다.

이러한 경쟁이 싫어서 쉬운 길을 너무 쉽게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 쉬운 길. 빠른 길이라 포장하는 길은

항상 가장 멀리 둘러가는 길일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가장 힘들어보이는 산이

가장 빨리가는 지름길일 경우가 많음은 수많은 전쟁의 역사가 증명해왔다.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 초기에 강대국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대담하게 진격. 최단기간을 쉬지않고 달려가 점령해버려

전세계를 충격속에 빠뜨려버린 것이 이를 잘 입증한다.

아무도 거대한 강대국의 수도 한복판으로 곧바로 진격해버리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 충격은 거대했다.

 

힘겨운 목표를 만난다면

어찌보면 가슴이 뛴다.

그 목표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성장시켜주고

나를 더 놓은 단계로 이끌어줄

진정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2. 친밀감

 

그런데 이러한 자유의 역설은 관계에서도 온다.

관계역시 구속에서 진정한 자유가 온다는 걸 아는가?

 

진정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를 관계속에서 구속함으로

진짜 친밀감을 맛본다.

 

사람들 사이의 진짜 깊은 관계는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맛볼수가 없다.

 

어찌보면 사랑이란

너의 자유와

나의 자유를

서로에게만큼은 양보하고

서로에게 단단히 구속하는 것과 같다.

 

끼르띠에의 유명한 팔찌인 러브팔찌는

까르띠에 드라이버로만 풀 수 있다. 

손으로 열어서 풀수가 없다.

어쩌면 서로에게 관계적 족쇄를 채운다는 상징이 들어있다.

막 시작한 가슴뛰는 연인들은

이러한 구속을 슬픔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기에 비싼 돈을 주고 이 팔찌를 구입하는 것이 아닐까?

 

진짜 관계적 풍성함, 관계적 친밀감 역시

구속에서 온다.

 

수많은 사람을 의미없이 만나면

오히려 그 n분의 1만큼 내 삶의 풍성함이 축소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의미없이 상대하는게

힘든 일이라 우리는 감정노동이라고까지 부르지 않은가?

 

사랑의 관계도 이와같다.

황제가 수천명의 후궁을 뒀다면

그건 수천배의 친밀감을 나눈게 아니다.

어찌보면 수천분의 1의 친밀감속에서 

불행하게 허덕인 것은 아닐까?

 

나 개인적으로는 수천명의 연락처를 지우고,

페이스북 수천명 친구들을 끊고 난뒤로

주변 지인들은 아날로그적으로

약속잡고 얼굴보고 만나서 이야기하는걸 선호한다.

 

나는 일부러 관계를 축소했지만

축소되었기에 더욱 관계적 풍성함을 누리고 있는건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다.

 

 

 

3. 사명과 헌신

 

몰입속에서 훈련속에서 자유가 있다고 말했고

이러한 구속이 관계적으로도 적용될 수 있고 그 관계적 적용이 사랑의 관계에서 또는 주변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풍성한 관계로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구속의 자유적인 측면은

사명과 헌신의 영역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내가 가야할 길

내 목표

내 사명

너무 거창한 사명을 말하는게 아니다.

사명이란 단어는 거창한 단어가 아니다.

아주 작게

세탁소를 운영해도 그 속엔 사명이 있을수가 있다.

작은 라사를 운영하며

다림질 하나에도 사명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장인이라고 부른다.

그런 장인들이 많은 사회가

튼튼한 사회이고, 기초가 튼튼한 사회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가르칠때 사명을 가질 수 있고

약사는 약을 처방하며 사명을 가질 수 있다.

 

사명없는 배우는 너무 가벼워진다.

 

무대는 그런면에서 마법의 공간이다.

 

참 이상하게도

그저 아무의미없이 무대위에 서는 배우는 티가 난다.

 

그래서 난 무대를 사랑한다.

 

무대는 사명이 없이는

단 1초도 버틸 수 없는 마법의 공간이요

검증의 공간이다.

 

사명을 찾으려 노력하는 예술가는

그 자체로 숭고하다.

 

우리는 숭고한 예술가를

만나고 싶어한다.

 

이렇게 내 삶을 어떤 뚜렷한 사명, 혹은 헌신된 삶의 영역으로

계속해서 집중시키고

구속시키고

몰입시키는 것.

 

삶이 그저 살기위해 허덕이는 상태로 방치되어있지 않고

더 숭고한지점을 향해 집중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사명 혹은 헌신이라고 부른다.

 

 

4. 구속을 통한 진정한 보상, 인정

 

결국 진짜자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구속에서 온다.

그것이 훈련이든, 관계적 구속이든, 사명과 헌신의 영역이든 말이다.

 

이러한 구속에서 우리는 진짜 보상을 맛본다.

 

인생의 깊은 맛이라고 할까?

 

정말 깊은 맛.

 

자극적이지 않고 인스탄트가 아닌

정말 깊은 맛 말이다.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는

아이에게 자신의 삶을 

때론 눈물날 정도로 힘겹게 구속시키고서야

엄마의 깊이에 도달 할 수 있다.

 

그 절대적 구속이

엄마와 아이라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엄마가 된다. 혹은 아빠가 된다라는 인생의 깊은 지점은,

절대적 헌신과 구속의 시간이 없다면 성립하지 않을 지점이다.

 

일에서 오는 보상도 그렇다.

내가 오래도록 헌신하고 매일의 나를 구속시켜 온 시간들이 쌓여서

그 일에서 보상이 나타나기 시작할때

우리는 깊은 보람과 기쁨을 얻는다.

 

영화를 찍는다는건 그런 과정을 겪는 것이다.

한 영화를 만들기위해 너무 많은 노력과 수고가 들었기에

그 영화가 주는 기쁨도 크다.

 

졸업도

책 한권을 내는 것도

논문도

다 그렇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결국 이런 인생의 단계들에서

매듭짓기를 잘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을 구속시켜

어떤 단계를 잘 마무리하는데서 기쁨을 얻고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갈 줄 아는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학위라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책을 내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논문을 쓰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크건 작건

한겹 한겹씩

삶의 단계들을 매듭지어가며 전진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어찌보면 깊은 단계의 자유를 맛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사람이 못되었기에 ^^ 그렇게하지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새벽에 글을 쓰고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새로운 책을 내는 것은

내게는 작은 구속이고

매듭짓기이며

나는 글쓰는 이 순간들을통해

참 많이 성장해왔기에

나는 글을쓰고 책을 내는 매듭짓기를 통해

삶의 또다른 깊은수준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거다.

 

 

5. 겸손함

 

진짜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진짜 자유는 구속에서 온다.

 

이런 자유의 모순된 특성은

결국

겸손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지인중에

 

어떤 아저씨^^를 예로들어보면

이 겸손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모대학 경영학과교수님으로, 박근혜탄핵때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하셔서 유명해지신 분이시다.

사회적으론 대통령 앞에서 권력앞에서 불의함에 굽히지 않으신 분으로 언론에 많이 나오신 분인데

그분과 개인적으로 친해서 그분의 집에서 자주 식사를 하곤했다.

교수님이 국수를 직접 삶아주시곤 했는데

어느날은 중면을 안사와서 사모님에게 쿠사리?를 먹는걸 봤다.

'여보 소면이 아니라 중면이라고요 중면.  이번 국수는 꼭 중면으로 사오셔야돼요'

어이구야 하면서 아파트에서 나가

국수를 사러나가는 교수님의 뒷모습에서 

왠지모를 즐거움이 느껴졌다. 무언가 삶의 깊은 즐거운 지점이 느껴졋다.

 

불의앞에선 대통령앞에서도 굽히지않으시는 분이

스스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저렇게 성실하게 스스로를 구속하시고

그속에서 진짜 깊은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구나.

 

어제 대통령앞에서도 굽히지않고 법정에 섰던 사람이

오늘은 아내에게 한소리 들으며

중면을 사러 슈퍼를 가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그게 참 근사해보였다.

 

겸손함이란

힘이 없음이 아니다.

 

힘이 있음에도

스스로를 구속시키고

가치있는 더 작은 영역

더 작은 분야

더 작은 세계속에

나를 밀어넣을 수 있는게

바로 

겸손이다.

 

 

진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스스로 구속시킬줄 아는 것.

그 겸손함 또한

진짜 자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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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g 2020.02.05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되고 학생인 저에게 다시금 자극시켜주는 글이네요! 더 많이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2. 독자1 2020.02.05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로는 대비되는개념이 실제로는 연장선이라는 게 신기할때가있어요. 제 생각도, 오류로 보이는 어느 것들도 그러겠죠? 자유든 사랑이든 성취든, 중요한것을 선택하고 아까워하지않는 용기가있기를:) 좋은글 감사하비다!

면접을 위한 대화의 기술 (2)

 

면접을 위한 대화의 기술 1편에 이어 2편을 정리해봤다. 2편에선 1편보다는 좀 더 근원적이고 깊이있는 방향에서 준비해볼 내용들을 다루어본다. 

 

 

 

1. stay foolish 

 

똑똑해보이려 하지말고 멍청해보이려 하는데서 독특함과 개성이 나온다.

나만의 쓸데없는 취향이나 쓸데없는 경험들에서 나만의 매력이 터져 나온다.

남과 다른 분야에 어리석게 (다른 학생들은 다 학원다니고 학교성적때문에 고민할 시기에) 집중해서 무언가 결과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그런 경험이야말로 면접에서 반드시 써먹을 수 있는 경험이다.

나만의 엉뚱하고 멍청해보이는 것이 어찌보면 다른사람에겐 매력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 독특한 매력들을 잘 발견해주는게 면접지도의 핵심인데

영화나 연기분야는 역시 그런 독특한 매력으로 승부하는 곳이기에 자신만의 엉뚱함은 큰 무기가 된다.

내가 입시지도하면서 경험한 한예종 합격 사례에서만 언급해봐도

 

-아줌마감성 : 

사방팔방 주변인들의 삶에 관심이많고, 수다스러우며, 글도 그렇게 수다스러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경우. 나는 농담으로 '넌 아줌마감성을 가졌구나'라고 놀린다. 그렇게 주변사람들의 삶을 수다스럽게 바라볼 줄 알고, 글로 담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또한 그런 일상속에서 공감을 불어일으키는 영화를 찍을 수 있으리란 믿음이 생긴다.

 

-과학기술덕후 :

과학기술에 관심이많고, 실제 이러한 공상과학적인 상상을 글로 옮겨쓰는데 능하다. 이런 엉뚱함은 이 학생이 독특한 질감의 영화를 찍을 재능이 엿보이게 한다.

 

-뮤지션유형 : 

음악을 해본 경험이 있거나 특히 밴드연주를 해본 경험이 있는 경우 농담으로 뮤지션유형이라고 부르는데, 역시 음악에 빠져있는 학생의 예술적 감성이나 경험들. 그리고 취향등이 창작과 연결되면 좋은 결과를 불러온다.

 

-스포츠우먼 :

여고 축구부 주장으로서 본인의 학교를 축구대회 결승까지 이끈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어필!  승부의 세계를 즐기는 열정적인 여학생이라면 영화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찍을 것 처럼 보인다.

 

-약사 :

영화찍기엔 약사만한 직업이 없다며... 오전에만 파트타임 약사로 일하거나, 직원을두고 약국을 경영하는 등 내 밥벌이는 잘 할 수 있으니, 이제 남은 여생을 평소하고 싶었던 영화에 쏟겠다... 역시 합격.

 

-중국대륙의 고등학생 가이드 :

중국유학은 갔으나, 홈스쿨링을 고집하는 부모님때문에 중국에서 알바로 관광가이드도 해보고 직접만든 쿠키를 팔기도 하는등 공부보단 여러 재미난 경험을 많이 한 학생 ---> 외국어특별전형 중국어로해서 합격

 

-성적1등유형 :

공부열심히하는게 고등학생에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공부열심히하느라 영화는 못봤지만 그래도 영화는 찍고싶다는 학생. 그 패기로 합격^^

 

 

이 정도만 써도 충분히 감을 잡을거다.

무엇을 말하고있는건가?

위와같은 유형을 따라해야 된다고 합격의 비결따위를 가르쳐주고 있는건가?

아니다. 

스웨그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거 아니냐.

네 멋대로, 네 스타일대로 무언가 거기서 영화를 찍을, 예술을 할 계기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그 어떤 스타일이든 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 아니냐.

 

 

네 멋대로 하되, 그 속엔 나름의 질서와 신념이 있는 학생.

자신만의 엉뚱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무언가 창작으로 연결지을수 있는 학생.

 

그런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거다.

 

너는 스타일이 곧 너의 매력이다.

 

 

 

 

2. 신념을 가지라

 

 

어리석음이 단지 어리석음에만 머무르지않고, 매력으로 승화되기 위해선

신념이 필요하다.

내가 살아온 길.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신념. 

그리고 내가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기대와 믿음.

그런게 필요하다.

 

신념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나름의 철학이라고 할까. 자신만의 확신이라고 할까.

 

영화의 길. 예술의 길. 그 길에 심취해있고

그 길을 깊이 사랑하는 모습속에 신념이 엿보이는거다.

 

기억하라.

 

네가 선택한 길을 깊이 사랑할때

네가 확신에 차있고 신념이 있어 보이는거다.

 

확신있어보이고, 신념있어보이는 태도를 만들려고 하지마라.

그저, 네가 지원하는 분야를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라.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지 못할 방법은. 없는 법이다.

 

 

 

 

3. 내가 사랑하는 분야에 대한 러브스토리를 가꿔가라

 

 

나만의 foolish를 발견하기 위해선 신념이 있어야 하고, 이런 신념은 내가 지원하는 분야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런 열정이나 신념이 드러나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원하는 분야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가꿔가는걸까?

 

내가 지원하는 분야와의 풍성한 러브스토리가 필요하다.

 

러브스토리란 무엇을 말하는가?

연애를 하면 울고 웃고 배신당하고 성취하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않나?

영화를 찍으려 하면서 생긴 모든 울고 웃고했던 모든 순간들이 러브스토리가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네가 지원하는 분야에 대한 생각뿐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뛰어들고 경험한 실체적인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냥 머리속에서만 사랑하는건 짝사랑밖에 안되니까.

 

영화과 입시에서 경험을 많이 본다는건 이런 면에서 나온 말이다.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하는 학생이, 영화와 관련된 어떠한 경험도 없다면 그것만큼 말이안되는 말도 없지않겠는가?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들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고등학생이 영화를 찍어본다고 해서 얼마나 찍어보겠는가?

 

그러므로 질적으로 양적으로 나의 예술적경험을 비교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번듯한 영화를 찍어본게 중요한게 아니라

아무리 부족하더라도 영화를 찍어보려고 노력하고, 영화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영화와 추억을 쌓으려 노력해봤다는 그 경험이 중요하다.

 

또 하나의 노하우를 알려주면.

직접 영화를 찍어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삶의 어떤 경험이더라도 영화와 연결시켜서 생각하고 정리하고 규정해나가려는 태도 역시

 

영화와의 러브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위에 언급한 한예종합격생들의 사례만 봐도 (아주 극히 일부다. 몇초만에 후딱 떠올린 예들. 그외에도 수많은사례들이 있다)

 

결국 자신의 다양한 경험이나 취향들을 (중국에서 가이드한 경험, 축구팀주장경험, 약사경험, 과학기술경험 등등)

영화 혹은 자신이 지원하고자 하는 분야와 잘 연결지어

풍성하게 러브스토리를 가꾼 경우이지 않냐는 말이다.

 

 

 

 

 

4.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극복한 과정으로 연결지어라

 

 

그러므로 영화를 하거나, 예술분야에 지원하려고 했을때 생기는 어려움이나 힘든 현실 그 모두가

역시 면접이나 자소서의 풍성한 자산이 된다.

 

영화속에선 항상 주인공 프로타고니스트가 있으면 내 행동을 방해하는 안타고니스트가 존재하는 것처럼

내가 영화나 예술을 생각할때

그 속엔 항상 어려움과 극복해야 할 과제들로 가득하다.

 

그것이 부모님의 반대일 수도 있고

재정적인 어려움. 환경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고

함께 영화를 찍는 친구들과의 갈등일수도 있고

자신 스스로의 상처일 수도 있고

열등감일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이겨내고자하는 그 과정을

잘 정리하고 잘 생각해야 한다.

 

자소서든 면접이든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필수요소가 된다.

 

어려움이 있다면

당연히 있는거라고 생각하고

어려움 속에 너를 그냥 방치하지말고

그 어려움에 맞써 아무리 작더라도 무언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험을 해보고 

그런 경험을 했다면 반드시 기록하고 정리해서

 

면접이든 자소서에 활용하라.

 

 

 

 

5. 짧은 면접진행에서 돋보이게 나를 보여주는 방법

 

 

그런데 면접현장에서 느끼는건 위에 쓴 글과 좀 다를때가 많다.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거다.

한예종 입시는 자소서도 보고 면접도 조금 시간을 주는 편이지만

다른 학교 입시에서는 길어봐야 5분내에 면접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저런 깊이있는 지점까지 생각하는게 무슨 소용일까 싶을거다.

 

그래서 짧은 면접을 대비하는 요령도 같이 도움을 주자면.

 

 

1) 짧은게 짧은게 아님을 기억하라 -

위와같이 자신의 영화적 세계나 예술적 길에 대해 깊이있게 준비하고 생각하는것과

짧게 면접을 준비하는건

신기하게도

사실

전혀 충돌하지않는다는게 포인트다!

 

풍성하게 준비한 학생이

짧고도 창의적이고 간결한 대답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짧은 면접이야말로

오히려 나의 풍성함을 드러낼 절호의 찬스인 것이다!

 

학생들이 제일 어려워하는게 짧게 요점만 말하는건데

짧게 요점만 말할 수 있는 비결은

의외로

풍성하고 확실하게 나의 생각이 정리되어 있는 것에서 온다.

1을 말해도 99가 보이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0.01밖에 없는데 1을 말하는 학생이 허다한 면접장에서

99를 가진 학생이 1을 말하는 그 1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도 있고

 

교수는 너의 1을 보고 99를 상상하기를 즐겨한다.

그러므로 꼭 99을 보여줘야된다고 착각하지말라.

 

99가 채워져 있는 1은 단순한 1이 아닌것이다.

 

99가 채워져 있는 1은

그냥 1이 아니다.

 

 

2) 절대 글로 말을 준비하지마라.

 

이게 무슨말이냐면,

 

면접준비를 할때

 

답변을 글로 정리한뒤 말로 하려고 하는 시도를 말하는거다.

 

이렇게 면접준비하면 안된다.

 

면접이 너무 경직되고 말이 꾸며진 것처럼 보이게된다.

 

그러므로 절대 글로 정리해서 외우지말고

 

생각을 깊이있게 정리하고

 

그걸 말로 정리해서 주변사람과 계속 모의면접을 해보는 방식이 훨씬 더 좋다.

 

같이 입시준비하는 친구를 옆에두고

 

말로 내 생각들이나 답변들을 정리해서 말하면

 

친구가 피드백을 줄텐데

 

그 어떤 피드백이라도 친구가 해주는 피드백이 더 통찰력있을 확률이 높으니

안심하고 친구의 피드백을 수용하라.

 

원래 또래친구들이 과도하게 솔직하게 팩트를 잘 지적한다 ^^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말할때 표정이 참 이상하네... 넌 차라리 손을 쓰지마라... 넌 그냥 그런말은 안하고 입닫고 있는게 좋겠다 등등

솔직하고 가감없는 피드백을 서로 주고받으며 연습하면 큰 도움이 된다.

 

 

 

3) 그 학교의 면접스타일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예를들어 서울예대의 경우엔 어떻게든 자신감넘치게 말하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등의

각 학교마다 면접에서 선호하는 특성이 있다.

이건 그 학교를 다니는 선배들의 도움을 받으면 큰 도움이 된다.

우리 학원의 경우는 그래서 올해부터 각 학교별 대학생 선배들을 특별활동 등 명분을 만들어 자꾸만나게하고 면접지도도 해주게한다. 면접지도를 학생이 지원한 학교 선배가 해주는건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된다.

 

 

6.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평소의 행동이 면접을 결정짓는다.

 

면접때 순식간에 속이는건 불가능하다.

평소의 너의 습관이나 생각이나 태도등이 가감없이 면접에선 드러나기 마련이다.

평소에 네가 어떤 사람인지가 결국 중요한거다.

주변사람들을 먼저 배려하고 내가 손해보더라도 팀플레이를 하고 이런 학생들이 단기적으론 손해를 보는것같아도

그런 학생들의 습관이나 태도가 DNA처럼 박혀있어서 결국 면접때 잘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다.

 

좀 손해보고 좀 어리석어보이더라도 팀플레이를 하고, 네가 속한 어느곳이든 함께 더불어 좋은 결과를 내기위해 노력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라. 보이지않는 곳에서 채운 삶의 DNA가 결정적인 순간에 너를 성공으로 이끄는 법이다.

 

 

7. 교수들은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측면에서 바라본다 = 보이지않는게 면접에선 훨씬 더 중요하다

 

앞서말한바와같이

교수들은 면접때 정면에서 너를 보지않는다. 측면에서 바라본다.

네가 하는말을 똑바로 듣지않는다. 비스듬히 검증하며 듣는다.

그래서

보이지않는게 중요하다.

 

입장해서 인사할때

서서 교수들을 바라볼때

 

어떤 결음걸이로 들어오는지

어떤 자세로 앉는지

 

자신의 의견이 거절당할때 학생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예측하지못한 질문이나 상황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하는지

 

자신을 꾸며내기위해 거짓말을 서슴치않는 학생인지

 

모든 것들을 검증하는 자리가 면접자리라고 보면 된다.

 

거듭말하지만 면접은 검증의 자리이다. 순진하게 생각해선 안된다.

 

보이는 것보다 보여지지않는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하다.

 

8. 외적인 매력을 가꾸는 것 역시 중요하다.

 

외적인 매력 역시 매우 중요하다.

 

외모에 대해 다음 양 극단의 말이 모두 잘못되었음을 알아야한다.

연극영화입시는 외모밖에 안본다는 극단과

외모는 전혀 상관없다는 극단

 

두 극단 모두 잘못되었다.

 

단 외모라는게 진부한 외적으로 꾸며진 아름다움을 말하는게 아니다.

'성형미인'같은 단어에서 느껴지는 그런 외모적 차원이 아니란 말이다.

 

자신의 매력을 잘 드러낼 의상을 단정하게 소화할줄 알고

밝고 경쾌하게 자신의 장점을 잘 드러낼줄 아는 기술

그런 이미지적 연출 역시 중요하다.

 

정답은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잘 찾아서

그 매력을 드러낼 수 있으면

그게 외모를 잘 가꾸고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획일화된 아름다움은 지루함을 불러온다.

 

자신만의 개성을 잘 찾아내고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건데

이 부분은 글로 설명하기가 참 힘든 부분이다.

 

촌스럽다는게 아름다움일수도 있고

엉뚱한 패션이 너무 잘 어울리는 학생이 있을수도 있고

어떤 학생은 단정한게 매력일 수 있고

어떤 학생은 세련된게 매력일 수가 있는 거다.

 

이 부분은 주변 선배들이나, 선생님들이나, 가족들, 주변 친구들과 많이 대화를 대나가고 조언을 얻다보면

자연스럽게 찾아나갈 수 있을거다.

 

외모가 중요하지않다고 치부하는 것 또한 큰 오해이다.

외모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과 외모가 전혀 중요하지않다고 하는 것 모두 정답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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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21. 20:08 about, intheatre

내 탓.

 

연말이라 일이 너무 많아 그동안 포스팅을 못했다. 결국 그릿에 대한 글은 일단 내리고 완성한뒤 다시올리기로 했고.

이제 조금 바쁜 일들이 정리가 되어 오늘 그동안 해온 생각을 짧게 정리하려한다.

 

내 탓.

 

별로 오래살지는 않았지만, 짧지만은 않은 40년의 인생을 살아보니

내게 벌어진 대부분의 나쁜 일들은 거의 다 

'내 탓'이더라.

 

내게 벌어진 좋은 일들도 물론 '내 탓'인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좋은 일은 주변환경의 영향이나 운, 적절한 시기를 잘 타고나거나 주변사람들의 도움등. 한마디로 운적인 요소가 많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벌어지는 나쁜 일들은 거의 대부분이 '내 탓'이라는 걸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절실히 느껴간다.

 

예를들어 주변에 보면 꼭 이상한 남자들만 꼬이는 여성의 경우가 있다고 하자.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이상한 스타일을 고르고 그런 스타일이 곁에있도록 기어코 만들어나가는 경향성이 있다는 걸 알게된다.

 

본인의 선택과 판단이 쌓여서 오늘내게 벌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인거다.

 

이 이야기를 하는건, 그래. 이 모든게 다 내 탓이야. 라고 자조하며 슬픔이나 좌절에 빠져있으라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나쁜 일들을 단순히 환경탓이나 운탓으로 생각해 잠시 회피하는 것으론 진정한 변화가 어려우며.

 

결국 내게 좋은 일들이 생기도록 하는 비결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벌어진 안좋은 일들이 바로 내게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진정한 변화는 바로 이 인식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새해에 나는 내게 작년 한해 일어난 나쁜일들의 리스트를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 일들을 전부 내 탓으로 인정하고

 

그 일들이 벌어지는데 내가 한 잘못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2020년을 시작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결과는 즉각적이어서,

 

작년과는 너무 다른 시작을 맞이하고 있다.

 

정말로 즉각적으로 변화가 체험이 된다.

 

꼭 한번 경험해보길 바란다.

 

 

내게 일어난 모든 잘못된 일들은

 

거의 대부분 우리에게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런 안좋은 일을 불러온 나의 선택이나 나의 결정들이 무엇이 있었는지

 

나의 습관이나 나의 잘못된 생각들이 어떤게 있었는지를 찾아보라.

 

그리고 그것을 정확하게 새해부터는 수정하기위해 노력하기 바란다.

 

장담하건데, 변화는 즉각적이고 반드시 변화된 결과를 맞이하게된다.

 

이 말을 달리 말하면, 올한해는 좋은일들이 계속 생기기 시작한다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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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26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intheatre 2020.01.30 2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서를 많이 하고, 한글로 글을 많이 써보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능언어영역준비를 해야
      한예종 1차대비를 할 수 있을꺼예요.
      만약 특별전형으로 지원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일반전형까지 생각해서 언어공부는 반드시하는걸 추천합니다.

  2. 독자1 2020.01.29 2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변화올거라고 기대하는건 정신병이라던데
    그쵸, 극복되면서 발전하는 나를 만나는 한해가 되면 좋겠네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3. @@ 2020.02.29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에 입시 상담받으러 두어번 방문했던 학생입니다.
    옛날생각이 나서 한번 들러봤는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intheatre 2020.03.14 0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소중한 인연들을 잘 이어가야하는데 무언가 많이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이듭니다. 코로나때문에 다들 힘들어하는 시기. 오히려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시간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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