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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픽션이므로 실제 인물, 실제 사실과 다릅니다. 소설입니다. 사실이 절대 아닙니다. 신춘문예에 응모할겁니다. 가상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이거 2탄 언제 올라오느냐고 물어보는 질문 수십번도 넘게 들어서
뒤늦게 올린다.
쪽팔려서 안 올리려고 했는데
워낙 많이들 보채서
뭐 올려야지. 내가 뭐 힘이 있냐.
자. 시작한다.
(뭔말인지 모르는 사람은 B급인생기 1편을 먼저 정독하고 올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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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충격적인 고백이 나를 한예종으로 이끌었다.
그놈이
어느날
선생님께 고백할 것이 있다며 고백을 하는거야.
그리고 그날의 충격이 나를 한예종으로 가게 했다니까.
진짜로 !
녀석의 말인즉슨
녀석이 점을 봤데
(이거 진짜 실화야. 개뻥이라고 하지말길. 증인들도 있으니까)
지가 한예종을 올해에 갈 수 있는지를 물어본거야.
그러니까 점쟁이가
넌 불가능이래.
근데 한가지 묘수가 있긴 있데.
이렇게 하면 녀석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서.
녀석은 귀가 솔깃했겠지.
네가 진짜 한예종을 가고 싶다면
한밤중에
수위아저씨도 자는 깊고 고요한 밤에
한예종 정문에서부터
실기고사장까지
'기어서'
갔다오면 합격한다는거야.
학교의 기운을 온몸으로 흡수한다나?
허벌~~~~~~
헐~~~
그 말을 듣고 내 질문은 뭐였을까?
"진짜 한건 아니지?"
녀석의 대답
거의 울면서
"했어요 !"
.
.
.
.
.
.
.
.
그날 너무 충격을 받아서
박카스 세병 원샷하고
컴퓨터를 켰다.
미친듯이
한예종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때마침 그주간이 원서마감이더군.
그래서 며칠 고민하고
결국 극작과와 비평전공을 고민하다가
(극작은 실기와 경쟁률이, 비평전공은 영어시험이 걸리더군)
결국 비평전공 시험을 봤지.
한예종이 종교더라구. 종교.
근데 나도 오기가 생기더라구.
(그 학원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됐어. 내가 일했던 그 해에 말이야. 물론 내가 잘 가르쳐서 그런건 아니야. 그러나 즐거운 추억이 너무 많아. 지금은 탑스타가 된 친구도 몇명 돼. 그때 말이야. 내가 있었던 그 해에 진짜 인재들이 많이 쏟아져나왔어. 솔직히 나 진짜 뭐가 있는것 같아. 어딜가도 그러니...)
그리고 합격했어.
1명 뽑는데 된거지.
근데 사실
한예종에서의 일들은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다.
왜냐하면 내가 학교에서 제대로 적응을 못했거든
학교 팔아먹는 놈 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직도 뭔가 죄지은 놈처럼 이 글을 쓰고 있잖아.
게다가 난 학교생활을 거의 퇴학당하는 분위기로 학교생활을 엉망으로 했거든.
대학원에서 D, F도 받고 말이야.
그래도
그곳에서 좋은 경험도 많아.
돌아보니
내가 글을 잘쓰는건 맞아.
그건 사실이야.
내가 맘잡고 들었던 유일한 수업 비평수업에서 그 유명한 교수님께 A+를 받은건 또 나니까 말이야. 거의 유일할껄?
그리고 선생님께서 나를 비평가협회에 보내주셔서 내가 진짜 2년동안 열심히 했거든.
MT기획을 너무 잘해서 교수님들이 완전 행복해하셨다고 !
내가 가자미낚시도 기획하고
현장에서 통통배타고 회도 즉석에서 먹고
그렇게 재밌는 MT는 처음이었어. 나도, 다른 이들도...
그 훌륭한 모 대학 예술 대학장 선생님께 심리테스트도 해드리고
(깔깔깔깔. 맞아 맞아. 내가 젊었을때 인기가 좀 있었지....)
그러나 비평이란게 내가 좋아하긴 하지만
학문적 체계가 나랑 안 맞더군.
난 영어도 잘 못하고
그리고 공부도 체계적으로 잘 못해.
특히 각주랑 논문인용 등 꼼꼼한걸 너무 싫어했거든.
난 제멋대로였어.
나 한양대에서 석사를 마칠땐 성적 나쁘지 않았어.
충분히 괜찮은 학생이었다고. 그런데 한예종 와서는 완전히 박살이 났지.
교수님들이 기대하시던 학자의 재능과 열정이 내겐 없었던거지.
혹시몰라. 내가 서사창작과에 들어가서 수필을 썼다면 (김현진씨처럼)
그럼 정말 잘했을지도.
청강으로 서창과 수업을 듣고 시집도 내고 그랬으니까.
난 창작을 죽도록 하고 싶었는데
까다로운 학문에 대한 전공이 내게 힘겨웠던 것 같아.
교수님들께 죄송한 마음 뿐이야.
미안하다.
성공적인 학교생활을 나눠주지 못해서
근데
실패했기에
너희들과 더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거야.
성공보단 실패에 익숙하고, 그리 잘나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잘 아니까 말이야.
즐거웠던 일들은
우선 첫학기에 세계적인 연출가 필립 쟈릴리라는 위스콘슨 매디슨이랑 영국 엑시터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
위대한 연출가와 함께 <4.48 싸이코씨스>란 공연을 한거지.
그때 드라마터그로 공연에 참여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건 대본을 번역할때의 추억이야.
영국에서 오신 선생님들이랑
즐겁게 번역을 했어. 맥도널드에서 밤새면서
행복한 기억이었지.
필립 쟈릴리 선생님은 정말 위대한 예술가였어.
그 분 공연이 끝나고는 정말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을 끌어안고 울었다고
진짜 스승의 면모가 있었다고. 그분은.
그리고
그분의 연출도 좋았어.
동양적 선과 색과 면을
가장 난해한 천재작가 사라 케인의 작품과
절묘하게 녹여냈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그 분의 독특한 신체훈련. (각종 동물들의 동작에서 정형화시킨 동양적 신체창조의 미학)
그런 것들이 내게 엄청난 자극을 줬지.
사실 나는 입학 할때부터 사기를 쳐서 들어간거나 마찬가지야.
시험 볼때 영어 2문제 중 한문제밖에 못풀었거든.
둘다 주관식으로 번역하는 거였는데
진짜 한문제는 단어를 하나도 모르겠더라구.
단 하나도 !!
그런데
다른 문제는 한 반은 알겠더라구.
그래서 하나는 손도 못댔지.
밑에 껀 대충 썼어. 내가 또 번역은 못하지만 한국말로 썰은 잘 풀거든.
면접 때 교수님께 당당하게 말씀드렸지 !
내가 한양대에서 석사를 논문전까지 모든 과정을 다 이수할 정도로
영어를 아주 못하는 실력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제가 보기에도 너무 영어가 듣도보도 못한 난해한 영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몰라서.
입학해서 배우겠습니다 !
근데
의외의 반응이었어.
선생님들끼리 싸우시는거야.
"거봐요. 선생님. 너무 어려운 단어를 내셨다고 했죠?"
.
이 글을 쓰면서도 잘 모르겠다.
내가 레슨을 하는게 무슨 죄인지
내가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무수히 넘어다녔는지
그 좁은 학교에서는 레슨을 하는게 너무 큰 문제가 되더라.
솔직히 너무 잘 보내서 문제인거야.
너무 잘 알아서.
중대, 동대, 한양대, 그리고 같은 한예종이라도 영상원, 미술원, 전통예술원, 협동과정, 음악원...은
아무 문제안되는데
왜 연극원은 그런지 잘 모르겠어.
한예종 학생은 사실 다들 레슨 한다고.
다들 학생들 가르쳐. 한예종 학생은.
19살짜리 1학년들도 비싼 돈 쳐받으며 과외를 한다고.
어떤 놈은 외제차를 두개 끌고 다니는 놈도 있다고.
나는
목적을 갖고 이 레슨을 한게 아니야.
많은 돈을 쳐 번 것도 아니고.
나는 오히려 많은 학생들을 도와줬지.
방황하고
문제많고
상처많은 학생들이 정말 많았어.
그런 학생들을 많이 지도했어.
피 흘리면서 품어줬어.
그리고 놀라운 결과를 무수히 만들었어.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어 ! 그 결과를 말이야...
그런데
그게
영상원에서도 문제가 안되고
다른 전국 모든 대학에서도 문제가 안되는데
오로지 연극원에서는 문제가 되는거야.
나는 아직도 의문이야.
그게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렇게까지 숨죽여야될 중범죄냐?
나는
진짜 제대로 입시를 가르쳤다고.
그거 정말 정직한거야.
물론 예전엔 내가 실적주의라서
학생들에게 모진 상처를 많이 줬어. 지금도 너무 미안하다.
이용도 많이 해먹었지.
예를들어 전체수석같은걸 광고했거든.
근데 돈내고 버스 지하철에 한건 아니야.
그냥 게시판 같은데다 올린거라고.
그건 관심갖고 열심히 찾아보지 않으면 안되는거고.
나는 그게 너무나 당연한거라 생각했어.
내가 가르친건 사실이잖아. 거짓을 홍보한게 아니잖아.
불법레슨이 아니거든.
내가 대학원 재학생이고 몇명 안가르쳤기에 불법이 아니야. 절대로 (그땐)
나혼자 가르쳤었고.
물론 살짝 살짝 합법의 경계를 넘어선 적도 있었지만
그땐 장소도 없어서 카페에서 3명 4명 데리고 했는데 무슨.
(그 다음해엔 학생들이 좀 많이 모여서 합법의 경계를 넘은적이 있는건 인정해)
그런데 상처를 많이 받았어.
나는 한예종 학생들을 가르쳐서 엄청난 이득을 취하려고 한게 아니라고.
그리고 목적을 가지고 레슨을 시작한것도 아니고
그냥 한명두명 가르치다 보니까
그냥 이 일이 내게 맞아서 한거야.
그냥 잘 인도해주고 싶었어. 아이들을.
이왕 가르칠꺼 잘 가르쳐주고 싶었어.
내 희곡분석 강의가 끝나면 우는 학생들도 많았어.
그런데
내가 인격적으로 너무 학생들을 매몰차게 대하고
소통이 안되고
이기적이었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차고.
사실 나도 많이 부족했다고 그땐. 인생 자체가 혼란스러웠고, 가난했고, 막막했고....
그러나 지금은 나도 많이 달라졌지.
아무튼.
이젠 나도 강의와 입시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강의 따위는 다른 훌륭한 강사진에게 맡기고
나는 예술분야 입시 컨설팅에 전념하려고 해.
책도 내고, 강의도 하고.
그리고 상담도 하고. 그리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 싶어.
자. 내가 왜 연극영화, 한예종을 토픽 삼고 이런 블로그를 운영할까?
내겐 계획이 있어.
한국 최고의 에세이작가가 되고 싶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구라
이 상처받은 진짜 청춘들한테는 안치고 싶어.
사랑에 대해, 연애에 대해
신앙에 대해, 종교에 대해
예술에 대해, 연극과 영화에 대해
마음껏 세상과 소통하며 떠들고 싶다고.
글로.
그게 내 꿈이야.
알랭 드 보통같은 에세이스트가 되는거.
그런데
그 시작. 그 입문을
내가 가장 잘알고
내가 가장 잘 알 수 있는 연극영화와 한예종을 삼은 것 뿐이라고.
입시는 내게 과정이야.
첫번째 토픽일 뿐이라고.
.
한예종에 있으면서 서창과 학생들과 함께 시집을 낸일.
밤새며 공연에 참여했던 추억.
그리고 협회활동 (투덜대면서 현수막 붙이고, 뭐 그런 일들)
많은 추억들이 있어.
상처도 있지만.
돌아보면 모두 나라는 사람을 완성하는 퍼즐조각이 될꺼야.
약속하고 싶어.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작가가 되겠다고 말이야.
그래서
짧게는 기대를 저버렸을 지언정,
길게 인생 전체로는 반드시 나를 인정해주신 교수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말이야.
지금도 그 교수님 쪽으로는 발도 함부로 못 뻗어.
존경해.
그리고 죄송해. 교수님께. K 교수님... 내가 진실로 존경하고 따랐던 분.
.
그래도 내가 비평수업은 진짜 모질게 공부했어.
기억에 나는 추억은
선생님 수업이 2시면
그 전날 오후 6시쯤 도서관에가서
그때부터 글을 썼어.
그리고 밤새서 그 다음날 오후 2시까지 글을 썼다고.
공연비평을.
그런데도 시간이 모자라.
한 10분쯤 늦는데 전화드려서 지하철 막 내렸다고 뻥을 쳤지.
그리고 가면 또 세시간 동안 까이고.
까이면서도 행복했고.
그때 나는 정말 글쓰는 것의 몰입과 재미와 행복을
진짜 글쓰기를 맛봤던거야.
행복했어. 진짜로.
그리고
감사했고.
.
이후에
처음 레슨 했던 학생 중에 연극학과 합격생을 시작으로
다음해엔 극작과, 그 다음해엔 연극, 영상원 전체수석 및 전문사 연기과 등등 합격이 배출되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온거지.
정말 날마다 기적을 만들었어. 매년.
근데
떨어지는 학생도 많아.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한예종, 연기, 영화. 이 입시는 떨어지는게 당연한거야.
이 정도 붙는거면 정말 히스토리를 만드는거라고.
모두가 다 어떻게 한예종엘 붙을 수 있겠어.
막말로 내게 3년만 기회를 줘봐라. 지금까지 떨어진놈들 다 붙일수 있었을꺼야.
그래도
떨어진 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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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비평숙제를 하려고
극장에 가면
행복했어.
세상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라는 사람이 오늘 하루도 선택되어
이 객석에 앉을 특권을 갖게 되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난 어떤 공연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그 공연을 사랑했어.
오태석 자전거의 마지막 대사들을 사랑했고.
우리읍내의 무대감독을 사랑했고
체홉의 비밀과 니나의 꿈과 뜨레블레프의 사랑과
한여름밤의 꿈의 미래 연극에 대한 통찰과
바냐의 상실과
베케트의 도식과
최인훈의 한국미와
소포클레스의 완벽한 형식미와
박조열의 절제와
유령의 충격과 페르귄트의 서사와 로버트 브루슈타인의 저항연극과 오스카 G 브로케트의 연극의 역사와 연극개론, 그리고 밀리 S 베린져의 연극이해의 길과 서양연극사이야기, 그리고 동시대연출가론과 만프레드 브라우넥의 20세기연극....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했어.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의 햄릿을 사랑했고 야끼니꾸 드래곤을, 리 브루어의 인형의 집, 레프 도진, 이성열의 뱃사람들...양정웅의 페르귄트, 그리고 수많은 공연들...내 삶을 수놓았던 별과같은 추억들.
아. 그리고 진짜 좋아하는 작가. 샘 셰퍼드의 작품들...지금은 구하려고 해도 죄다 절판이더라. 굶주리는 층의 저주. 진짜 사랑하는데...트루 웨스트랑...
연기를 가르치는 순간들,
희곡분석을 가르치는 순간들,
그 모두를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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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빛나는 추억들이
연극과 함께 했기에
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거대한 힘이기도 하고.
더욱 치열하게 경험하고 좌절하고 실패하면서 더 많은걸 배우고 싶다.
내일은 또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
이젠 더 이상 미꾸라지는 안되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