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기섭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것은 여성격투기 선수인 임수정선수의 기사를 통해서였다.
당시 일본방송에 출현해 선수출신 남자 3명에서 두들겨맞고 난뒤 몸도 마음도 지쳐 격투기를 그만 두려 했던 얼짱 파이터 임수정선수가
복귀전에서 일본선수를 상대로 멋진 승리를 거두고 인터뷰한 기사.
그 기사에서 임수정선수는 이기섭관장이란 이름을 수십번은 넘게 언급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기섭관장님 이기섭관장님 이기섭관장님......
도대체 이기섭관장이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이렇게 고마워할까? 선수를 스타로 만들어준 실력있는 관장이어서 그렇다고쳐도...이렇게까지 임수정선수가 고마워하는 바로 그 스승은 누굴까? 궁금했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며칠 시간이 흐른뒤,
오늘 우연히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임수정 선수를 키운 이기섭관장에 대한 인터뷰기사를 읽었다.
충격이었다.
우선, 격투기 지도자가 양팔이 없는 장애인이었다는 것에 놀랐다. 그것도 22살 꽃피는 나이때 사고를 당했다는 것. 선천적인 장애보다 후천적인 장애가 몇배는 더 극복하기 어려운건 당연한 일.
두팔이 없이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힘들텐데
격투기 지도자로써 그 힘든 여러가지 훈련을 모두 다 받아주고 있었다.
의수를 차고 모든 격투동작을 다 받아주고 이끌어준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그냥 말로 하는 일이 아니다. 격투기 코치란 일이)
임수정이라는 유명한 스타 격투기선수를 키워낸 관장이란 면에서 한번 놀라고,
양팔이 없는 격투기 지도자라는 점에서 더 놀랐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그의 인생이 언뜻 보기에도 너무나 큰 고통의 연속이었다는 점이다.
22살때 아르바이트를 하다 건물 옥상에서 변압기를 잘못 건드려 양팔을 잃고
재기를 위해 시작한 당구장이 화재로 건물이 통째로 불타버리고 (당시 9시 뉴스에도 나온 큰 화재였다고 함)
자살할 생각도 수십번이었지만
당시 무에타이 도장의 관장이던 친구의 권유로 그 무에타이 도장에서 8년을 사무실 바닥에서 먹고자면서 여러가지 잡무를 돕는 일을 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았다. 그 누구도 쉽게 감당하기 힘든.
그러나 내가 진짜 대단하다고 느낀 점은
그의 얼굴이다.
위 사진에 나와있는 이기섭 관장의 얼굴을 보라.
행복해보이지 않는가?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오늘 하루 너무나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행복을 주위에 나눠주는 용기있는 사람인 것이다.
양팔이 없는 장애인으로 그는 조용한 기적을 많이 만들어냈다.
우리는 너무 쉽게들
인생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미 이 사회는 너무나 불공평해서
이미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고 말이다.
물론 사실이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고,
이미 몇발자국 유리한 위치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은게 사실이다 (재벌이나 정치인의 2세,3세들을 생각하면)
인생의 레이스가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은 현실이다.
인정한다.
그러나 인생의 레이스가 출발부터 다르다는 말의 의미는,
보통 사람들보다 불공정하게 훨씬 앞서 시작하는 이들이 있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보다
불공정하게
훨씬 뒤쳐져서
시작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저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이 하나도 없이 인생에 내던져진 정도가 아니라,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불합리한 수많은 조건들을 몸에 매단채 인생이란 레이스에 내던져진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창 꽃을 피울 나이인 22세에 양팔을 잃어버렸다면
그건 인생이란 레이스에서
그저 유리하지 않았을 뿐인 조건이 아니라
어처구니없고, 불합리하고, 원망스러우며, 저주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불리한 조건은 다 갖고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기섭이라는 한 사람의 저 평온한 얼굴이
그런 모든 생각들을
뛰어넘게 해 주었다.
그는. 양팔이 없는 장애인이라는 점을 빼놓고서라도 몇가지 놀라운 일을 성취했다.
우선 그는 임수정이라는 최고의 격투기선수를 키워낸 유능한 지도자이다.
또 그는 이 힘든 시기에 70~80명 정도의 수련생을 이끄는 국내최대의 무에타이도장을 운영하는 성공한 운영자이기도 하다.
더 놀라운 점은, 그는 무에타이 선수출신도 아니며, 무에타이와 관련된 경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라는 것.
경력도 없고
장애인이기까지 한 그를 보고
처음 상담왔다가 실망해서 떠난 수련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남들보다 훨씬 불리했기에
수련생 한명 한명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고 한다.
특히 어느 체육관에서도 받아주지 못하는 문제아들을 잘 받아주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문제가 있는 학생들은 그저 조금 더 예민하고 조금 더 반응이 늦을 뿐이라는 것. 깊은 관심과 격려를 쏟아주면 얼마든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감성적인 성향이 아니기에
장애인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감동받아서 여기저기 퍼 나르고 감상적으로 이 성공담을 접하는게 아니다.
나는 그의 인생에서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깊은 원칙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가슴이 벅찬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문제와 환경의 절대치보다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평범한 원칙 말이다.
이 반응하는 태도가 얼마나 위대한지
양팔이 없는 사람도 국내 최대의 무에타이 도장을 이끌고, 또 국내를 대표하는 스타선수도 키워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원칙이 진리임을 입증하는 것.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다면
즉, 희망을 발견하기로 반응만 할 수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원칙 말이다.
인생은, 어떤 환경 아래 있는지보다, 그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원칙.
내 남편을 어떤 사람으로 고르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고른 남편과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멋지게 살아서
내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란 원칙 말이다.
반응의 원칙.
내가 비록 객관적으로 힘든 연기자의 길, 감독의 길, 또는 뮤지컬배우의 길, 공연연출자의 길을 선택했다하더라도
정말 자유롭고 가치있는 인생을 살아 나의 선택이 빛나는 선택이었음을 입증 할 수 있는 그 원칙.
반응의 원칙.
이기섭 관장의 인터뷰 마지막에 그가 남기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 반응의 원칙을 말하고 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희망이 있기에 노력할 수 있고, 또 노력하다보면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서 도와주며 언젠가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생이란 긴 레이스에서
남들은 훨씬 유리한 조건들을 갖고 달려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너의 그런 지적은 정당하다.
이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이니까 말이다.
불합리한게 사실이고,
네가 많이 억울하게 느끼는 것 또한 진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앞서가는 사람, 불합리한 인생조건 속에서 힘들어할때면
가끔 뒤를 돌아보자.
불공평이라는 건,
그저 유리하지 않다는 것 뿐만아 아니라.
치명적 문제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기섭씨처럼.
그러므로
우리는 남과 비교해서는 안된다.
시작할때 마이너스 50억을 갖고 시작한 사람이 50만원을 벌었고,
또 시작할때 플러스 50억을 갖고 시작한 사람이 100억을 벌었다고 했을때
난 50만원을 벌었으니까...100억 번 사람에 비해 가치없다고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환경 자체를 바꿀 전지전능함은 없지만
그 환경 아래서 반응할 전지전능함은 갖고 태어난다.
얼마나 전지전능한지,
양팔이 없는 사람이 국내 최고의 무에타이 지도자도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반응할 자유는 전지전능한 자유를 갖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자.
전지전능한 반응의 자유를 누리자.
어처구니없는 환경일수록
더욱 더 빛나는 것이 반응의 힘임을 기억하자.
반응이 환경보다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