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빨려갈 듯 아름다운 그림. <우주>라는 그림 제목처럼 저 별하늘의 세계가 캔버스에 옮겨진 듯 한 저 그림에 감탄하다가, 저 그림이 이번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40억 가까운 돈에 팔렸다는 뉴스를 봤다. 비싸게 팔렸다는 그림이라고 언론에 나온 그림중에 이번 김환기의 <우주>만큼 매혹적인 그림이 없어서 이 그림의 배경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다.

 

 

 

 

사실 한 분의 아내로서 아름다운 예술의 여정을 묵묵히 내조하신 분을, '유명시인의 아내였다. 혹은 두 명의 천재와 결혼한 여인이다'라고만 묘사하는 것이 민망하지만, 그것이 또한 너무나 매력적인 스토리기에 그 이야기부터 시작하려 한다.

바로. 시인 이상의 아내였으며, 화가 김환기의 아내인 김향안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엘리트여성이 시인 이상을 만나 

'우리 같이 죽을까, 어디 먼 데 갈까'란 간지 철철 넘치는 프로포즈? 를 받고 그 길로 1936년 이상과 결혼했지만, 결혼한지 4개월만에 이상은 일본 도쿄에서 폐결핵으로 죽게된 슬픈 사연.

나같이 스토리에 관심있는 사람은

영화장면처럼 장면을 자꾸 상상해보게 된다. 역사적 텍스트 사이 빈틈에 스며들어가는 감정과 정서에 대해 생각해본다.

도쿄로 달려가 시인 이상의 유골을 안고 돌아온 그녀는, 얼마나 깊은 슬픔속에서 삶을 보냈을까.

 

 

 

 

 

 

천재 시인과 사랑에 빠져 짧은 신혼을 보내다가 홀로 도쿄로 이상을 떠나보내고, 그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시인의 아내 김향안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신혼의 달콤함보다, 남편의 예술세계에 대한 배려가 더 크기에 홀로 남편을 일본으로 보내지않았을까.  그러나 폐결핵으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남편의 유골 하나만을 가지고 홀로 남겨진 그녀는 얼마나 슬펐을까. 차라리 그때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국에 남아서 가정을 돌보라고 보통 남편들처럼 평범하게 아내곁을 지켜줄 것을 요구했어야 했는데 후회하지않았을까.

남편의 예술에 대한 깊은 존중과 희생이 있기에 더 슬픈 일이 아니었을까.

 

.

 

이후 그녀는 김환기를 소개받게되는데, 김환기는 딸을 셋 둔. 이미 한번 결혼해 이혼한 바 있는 상황이라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은 믿음이고 꼭 내가 낳아야만 자식인가' 라며 반대를 무릎쓰고 사랑과 믿음으로 김환기의 사랑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름또한 남편의 성을 따 김. 남편의 호인 '향안'을 합쳐 김향안으로 개명하게 되는걸 보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낭만적인지 알 수 있다. (1944년 결혼)

 

 

 

 

당시 부부가살던 집을 그린 그림인데 부부는 이 집을 수향산방이라고 불렀다. 남편의 호와 아내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키가 180이넘었다고 하는 김환기와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나 정겹다.

 

김환기는 일본대학 미술부에서 유럽의 미술경향을 섭렵한 전위적인 스승들의 영향을 받아 유럽의 최신 미술트렌드를 익혔고, 당시 이중섭등과 교류하며 추상미술의 기반을 마련. 한국적 모더니즘의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적 인물인데 일본유학 후 한국에서 서울대, 홍익대 교수, 미술협회 이사장등 화가이자 교육자, 행정가로서 한국미술계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중 1956년 불연듯 현대미술의 중심인 파리로 떠나게된다.

현재의 안정에 머무르지않고 새로운 일에 기꺼이 도전하게된 부부의 결정속에는 역시 김향안의 역할이 컷다고 생각한다. 예술적 도전을 위해 40대초반의 나이에 한국을 떠나 파리로 과감하게 떠나게된 부부의 결정. 예술을 향해, 그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진정한 모더니스트의 모습이 아닐까한다.

 

내 개인적 견해으로는 파리에서의 폭넓은 작품활동과 도전의식이 그의 작품세계가 확장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화풍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마치고 국내에 있다가 다시 예술의 길을 찾아 뉴욕으로가기까지. 도전을 멈추지않는 부부의 삶은 낭만적이나, 마냥 그렇게 달콤한 것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작품활동 내내 생활고와 병과 그리고 고독과 싸워나가야 했음은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도 남편이 그림을 그리면 아내는 글도 쓰고, 때론 백화점에서 일도하며 그렇게 생활을 책임진건 김향안의 몫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김환기는 뉴욕에서 생활고로 보험조차 들지않아 미루고 미뤘던 수술 (오랜 작품활동으로 두통과 목디스크가 심했다고 한다) 을 받고나서 회복 중에 침대에서 떨어져 의식불명에 빠져 숨을 거두게된다. 

도쿄에서 폐결핵으로 죽은 첫번째 남편 시인 이상.

그리고 서울과 파리를 거쳐 뉴욕에서 수술 후 사고로 숨을 거둔 김환기.

두 천재 작가의 죽음 뒤로 위에 소개한 수향산방에서의 아름다운 신혼시절의 그림이 자꾸만 겹친다. 

그야말로 삶과 죽음과 예술과 도전과 생활과 고독과 낭만이 모두 넘쳐나는 인생 그자체이다. 

 

.

 

김환기의 작품이 2019년 11월에 140억에 거래되었다고하지만,

나는 그 작품 뒤에 숨어있는 작가의 고독과 쓸쓸함과 그리움을 본다. 

그리고 예술세계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위대한 사랑의 그림자를 본다.

김향안은 남편의 파리작품시절엔 파리에서 두개의 대학에서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전공했고, 뉴욕에서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활동을 한, 뛰어난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과 낭만에 몸을 던질 줄 알았고, 언제나 현재에 안주하지않고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않은 도전적인 여성이기도 했다. 그녀의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 김환기의 미술세계가 펼쳐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사랑과는 또다른 모습의 사랑이야기.

진정한 모더니즘인 추상미술 뒤에 이렇게 헌신적인고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그래서 김환기의 그림이 더 아름다워보이는거 아닐까.

김환기는 자신의 그림에서 그려내는 색은 서양식의 blue 가 아니라, 한국에만있는 '청'의 색으로 둘은 다른 색이라고 했다.

이번에 경매된 그림은 김환기가 죽기직전 병과 싸워나가며 그림을 그렸던 1970년대시절의 작품이다. 

그 시절을 대표하는 또다른 대표작을 하나 소개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작품은 병과 가난과 싸우던 미국시절 김환기의 지인인 시인 김광섭에게 받은 편지에서 작품이름이 기인한다.

이 작품 이름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며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Posted by inthea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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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 2019.11.26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때로는 삶이 더 영화같고 드라마 같다고 느껴집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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