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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출은 말이 필요없다극작/연출/서사창작 2012. 3. 30. 16:27
국내 연출자와 해외 연출 거장의 차이는
무언가를 더하는 것과
무언가를 빼려는 것의 차이이다.
물론 무조건 해외 연출자를 이유없이 좋아하고
국내 연출자들을 깍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해외 연출자들도 형편없는 자들이 너무 많기에
국내, 해외가 중요한게 아니라
연출적 컨셉이 얼마나 명확한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내 블로그를 꾸준히 읽었으면 알겠지만
명확해지기 위해선
반드시 심플해져야 한다.
내가 본 거장들의 연출은
반드시 심플했다.
그래서 명확했고
그래서 확실했다.
예를들어
안톤 체홉의 바냐아저씨는 어떤 작품인가?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결말이 의미하는 비밀을 제대로 풀어내지 않고선
바냐아저씨를 제대로 연출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연출자들이 연출한 바냐아저씨 치고 재미있게 본 작품이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톤 체홉의 작품이 위대한 이유로
명확성을 꼽는다.
아마 의외일 것이다.
안톤 체홉이야말로 불명확하고, 베일에 쌓인 모호함이 생명인 작가인데,
그의 작품이 명확하다니 !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
안톤 체홉의 작품은 하나의 단어로 그 구조를 정리할 수 있을만큼
명확하다.
갈매기는 순환,
세자매는 몰락,
벚꽃동산은 전복이라고 할때
바냐아저씨는 권태라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확실하게 구조화가 가능하다.
바냐아저씨의 4막은 매우 독특한데
1막에서부터 세례브레코프를 향한 분노를 키워오던 바냐가
3막에서는 급기야
셰레브레코프를 향해 총을 쏘는 지경까지 폭팔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4막.
당연히 더욱 깊어져야 할 갈등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다시 1막의 평온한 질서를 되찾는다.
다시 열심히 일해 셰레브레코프를 먹여 살리는 원래의 바냐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이 분노를 터트리는 것의 다음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분노하기를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
이것은 더욱 급격한 몰락이다.
바닥까지 몰락한 인물이
바닥마저 주저앉아 지하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더 깊은 슬픔의 심연 Abyss이다.
그것이
바로
채념이고
권태이고
꿈을 잃어버린채, 저항할 욕망도 잃어버린채, 그저 돈계산, 농장관리에만 빠져버리는
극도의 몰락인 것이다.
바냐아저씨의 4막은 이렇게 심오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국내 연출자가 이러한 통찰의 근처에라도 가서 연출한 바냐아저씨를
구경조차 못해봤다.
어설픈 사실주의의 흉내에 그치는
최악의 공연들만 봐왔다.
통찰없는 연출은 그야말로 쓰레기다.
통찰없는 영화는 볼거리라도 있지만, 통찰없는 연출은 그야말로 고문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연출가 레프 도진이 바냐아저씨를 연출한다고 했을때
그는
위에서 내가 주저리 주저리 설명한 저 많은 생각들을
단 하나의 무대연출로
끝내버렸다.
감탄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너무 심플하고
너무 확실한 연출.
레프 도진은
무대위 배턴 (조명다는 철제구조물)을 거의 배우들의 키만큼 극도로 주저앉혀서
무대의 3분의 2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무대의 위쪽 3분의 2 이상의 공간이 사라졌으므로
당연히 주인공들은 큰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이것이 주인공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 3분의 2의 공간에는 과연 무엇이 채워졌을까?
이것이 실제 LG 아트센터에서 공연한 레프 도진의 바냐아저씨의 실제 무대이다.
배턴이 주저앉아 생긴 저 광활한 공간을 채운것은
저 볼품없은 짚더미인 것이다.
아무 형식없이 그냥 뜯어다 부어놓은 저 건초더미 !!!!
저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낭비와
끊임없이 우리를 잠식시키는
실존적 고통의 문제들을 상징하기에
너무나 적절한 오브제 아닌가 !
낭비
채념
걱정, 근심, 헛된욕망, 이루어지지 못한 꿈, 그리고 수많은 고통의 문제들 !!
레프 도진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장면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저 건초더미가
바냐 삼촌...우리 살아요. 라는... 라스트 대사를 읊는 소냐와 바냐 위로
쏟아저내린다.
그들은 영원한 시간속에 은폐되는 것이다.
그들은 단절당한 것알수도,
단절한 것일수도 있겠다.
이것이 연출이다.
너무나 확실하고 명확한 컨셉으로
길고 긴 사유들을
무대언어로 통찰해내는 것.
그래서 위대한 연출은
긴 말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레프 도진의 제자라고 한 민다우가스 어쩌고저쩌고 라는 젊은 리투아니아 연출가의 바냐아저씨도 인상적이었는데
무대는 거대한 나무 창문들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창문은 열고 닫기에 따라 엿보기와 노출 등등이 가능하다.
특이한 점은,
스토리진행과는 상관없이 스테프들이 나무판자를 가져와 그 창문을 나무판자로 하나둘씩 못박아버리는것인데
나중엔 딱 창문반개의 틈만이 남게된다.
그리고 무대의 모든 조명은 꺼지고
그 좁은 틈 사이로 소냐의 마지막 대사가 이어진다.
바냐 삼촌...우리 살아요...
그리고 그 안에서 소냐가 스스로 그 나무문을 닫아버린다.
그러고나면
무대는
거대한 나무관뚜껑이된다.
그들은 세상과의 영원한 단절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도 정말 멋지지 않나?
말이 필요없는 것이다.
갈매기의 그 많은 상징들을, 객석위에 매달린 거대한 갈매기 조각이 무대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한큐에 정리해버린 작품,
그리고 인형의 집의 여러 주제들을, 실제 난장이배우인 남자들과 키 180에 가까운 장신 여자들. 그리고 난장이의 키에 맞춰 만들어진 인형의 집으로 심플하게 만들어버린 미국연출가 리 브루어.
등등...내가 본 좋은 공연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좋은 연출은 말이 필요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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