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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덕보려고 대학가지 말라연극영화과에 대해 말하다 2012. 3. 29. 09:34
나는 13년간 대학을 다녔다.
그 사이에 대학원을 두개나 나왔다.
공부를 성실하게 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성실하지도, 실력이 탁월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학생)
공부에 관심이 많은 학생
대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
학문에 대한 열정이 많은 학생은 확실했다.
혼자 도서관에 가서 이것저것 책 빌려보는 시간이 내겐 가장 행복했다.
도서관에서 2년동안 빌려본 책이 500권이 넘은 적도 있다.
많이 빌려보면 상준다. 도서관에서.
그리고 나는 13년 대학을 다닌 것 뿐만이 아니라
평론가협회나 여러 사회활동을 통해 교수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수백명이 넘는다. 그것도 매우 가까이서.
요즘엔 연극영화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 교수님들과 또 어떻게 연결되서 함께 외국도 가고, 함께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 이 정도면
나는 한국 연영과 대학교수에 대해 말할 자격이 된다고 본다.
대학선택할때, 교수진을 최우선의 고려사항으로 넣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교수가 그렇게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할까?
물론, 정말 훌륭한 선생님도 많이 계시다.
그런데 그 소수의 훌륭한 선생님들도 심각한 문제에 둘러쌓여 있기는 마찬가지.
훌륭한 교수의 요건은, 실력과 인격 두개의 발란스가 잡혀있으면 최고고
적어도 실력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실력있는 교수는
무조건 많은 학생들, 많은 학교일에, 많은 외부일에 치여 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일을 잘하니까.
그 교수가 일을 추진하면 일이 되니까.
여기저기 부르는데가 많은 것이다.
대학 시스템도 전형적인 한국적 시스템이어서
보면 일 잘하는 실력있고 탁월한 1명의 사람이 19명 정도의 그저그런 사람을 대신해서 혼자 일 다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네가 교수를 보고 대학을 간다고 했는데
대부분의 실력있는 교수는 바쁘다.
그리고 연극영화쪽 실력있는 교수는 자기작품을 잘하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연극영화에서 자기작품을 잘한다는 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 작품에 쏟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바쁘다.
아주 많이.
그리고 실제 한국 연영과의 정교수들은
뭐 그냥 그저 그런 분들이 압도적 다수이다.
진짜 괜찮은 교수진은
오히려 강사쪽에 많다. 자기 길을 개척해 성공한 사람들이 강사쪽에 많다. 오히려 박사학위받고 정교수하는 분들은 뭐라 그럴까, 통찰에 넘치는 분들이 많지는 않다. 그냥 고대나 서울대 나오고...그냥 미국 어디 유학가고...그냥 책 몇개 쓰고...뭐 그냥저냥 그런 분들인거다.
그리고 국악이나 음악과는 달리 연극영화는 교수가 이끌어주고, 자기 당을 짓고, 자기 사람을 심고...뭐 그런게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한 시스템이기도 한거다.
자.
그러므로 여기서 너는 인식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교수진이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아닐수도 있다. 진짜 알맹이는 학교 홈페이지보고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니다. 오히려 그냥 평범한 전통의 명문대가 그냥 제일 좋다. 그리고 그 기준은 이미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실기적인 면에서 활발하게 도전하는 분위기가 잡혀있는 대학, 도전하고 패기있는 대학을 선택하라. 그런면에서 추천할만한 학교들, 입학성적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실제 졸업생들이 잘 활동하고 있는 몇몇 대학들을 다음에 추천해볼까 하는데...실제 학교이름을 거론하기엔 이 블로그가 너무 유명해졌다. 에구구... 입학하기가 상대적으로 조금 덜 까다로운...(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수월한 편임 ^^) 학교들 중 계원예대는 확실히 집어넣고 싶다. 박수 짝짝짝. 서울과 천안에 있는 S대 연극영화과도. (입학은 쉬운 편이나 졸업후에 괜찮은, 서울에 전용극장도 있고, 한예종처럼 세분화된 전공에 전문적인 교수진)
나는 교수님들을 비판하기 위해 이 포스팅을 쓰는게 아니다.
분명히 좋은 교수님들 많다.
내가 만나온 수 많은 선생님들 중엔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교수님들이 더 많았다.
항상 교수님들께 감사하고 있다. 진심으로.
그러나
교수를 존중하는 것과
교수를 보고 대학가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교수님을 존경하는 것, 명성있는 선생님을- 특히 실력있는 선생님을 예술적 모델로 삼아 배우려고 하는 자세는 좋지만,
너의 미래를 교수에게 걸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내 주변에서 -
명성이 떨어지는 대학에서 어떤 교수가, 자기가 미래를 책임져줄테니 자기 대학으로 진학하라는 경우
성공한 사례를 본적이 없다.
왜냐고?
교수가 학생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이며
그래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100% 장담한다. 그는 너의 미래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진짜 너를 이끌어줄 수 있는 교수라면, 너한테 그런 장담을 하면서 너를 설득시킬 아무런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진짜 너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그리고,
유명한 교수가 영입되었다고 해서
네가 덕볼것도 거의 없다.
유명한 사람이
갑자기 어떤 대학에 영입되었다고
학생들이 몰리는 경우가 생긴다.
뭘 기대하는걸까?
그 사람이 자기를 성공시켜 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가 자기 제자들은 챙겨줄꺼야...그 교수가 유명하니까 학교학생들 취직을 잘 시켜줄꺼야...뭐 이딴 기대들.
미안하다.
유명한 사람이 너를 어떻게 이끌어줄 수 없다.
네 스스로 기회를 찾지 않고서, 누군가가 만들어준 기회는 금방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가 챙겨줘야할 사람의 순위에서
새로 부임한 학교의 학생들은 한참 뒤순위이다.
이미
그 정도 위치에 올라있는 사람이면
(솔직히 지금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거다)
이미
무슨 협회나 기관의 장 등도 수없이 하고
이미 동문이나 활동을 통해 만난 수많은 인맥이 있다.
친인척을 교수로 꽂아주는 사례는 많아도
자기 제자를 교수로 꽂아주었다는 사례는 별로 보지 못했다.
그 제자가 스스로 실력을 키워서 스스로 개척했겠지...
그 제자가 열심히 실력을 키웠고 충분한 경력이 될때, 자기학교 사람을 선택할 수 있게 도움은 줄 수 있겠지.
결론.
유명한 교수를 찾아다니는 심리에는
매우 비겁한 의도가 숨어있다.
무언가
한국사회의 인맥이나 학력을 통해
무언가 이득을 보려고 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라.
세상 어떤 일이든
그런 의도를 가진 곳엔
사람들이 몰린다.
이 시대는
그런 냄새를 맡는데는 기가 막히게 특화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돈된다는 소문 돌아봐라.
어디서 인간들이 가득 몰려든다.
이 분야도 마찬가지다.
세상 어떤 일이건 결국 '동기'가 중요한 것이다.
네가 그런 생각하면
남도 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A교수가 너를 이끌어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교수 주변의 모든 학생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 운명은 네가 스스로 개척하라.
그리고 스스로 찾고, 스스로 도전하고, 스스로 발견하라.
세상 그 어떤 교수도
너를 책임져 줄 수 없으며,
책임져 준다고 접근하는 교수는 정말 실력없거나 비겁한 교수이며,
진짜 책임져줄 수 있는 교수라면 주변에 뭔가 이득보려고 꼬인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진짜 최정상의 위치에 서 계신 교수님들은
실력외에 다른 지저분한 것으로 자신의 판을 흐트러뜨리려 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물론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탐욕적일 수는 있겠지만
받을건 다 받고도,
결국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할땐, 실력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선택하는 사람만이
최정상의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가들은 타협을 쉽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교수중 한명인 모교수님이...(여자) 주변에 덕 좀 보려고 알랑대는 애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사실 뭐 받을 건 다 받는 편이시지만^^...결정적인 선택을 할때는 실력에 따라 공정하게...그 알랑대는 인간들은 다 제외하고, 미국에서 연출공부하고 막 돌아온 젊은 연출자를 과감히 발탁하는 것을 실제로 봤다. 그런거다. 진짜 실력자는 반드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니까. 자기 자신의 원칙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니까. 이 바보들아)
무언가 조잡한 동기,
의지박약적인 동기.
네가 할 일을 누군가 대신해 줄 것을 기대하며
비겁하게
교수를 찾아다니지 마라.
희곡, 갈매기에서
니나가 뜨리고린을 선택한 장면을 통해
안톤 체홉은 그런 인간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 니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희곡 갈매기를 읽어보면 안다.
그런게 인생이다.
인생은 동기가 중요하다.
결과보다
과정보다
중요한 것이
동기이다.
그리고
진짜 도움되는 걸 알려줄께.
그냥
기본이 제일 좋은거다.
무슨 말이냐면,
사회의 전통이라는게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거다.
신흥명문이니,
신흥강호니
잘 안생긴다.
네가 성공하고 싶냐?
그럼 그냥 좋은 학교가라.
고3때 뱃살이 삼겹이 되도록 공부해라.
그냥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이 사회의 기준에 맞춰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친구가 결국 성공하는거다.
무언가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획기적으로
성공할 기회란 것은
잘 찾아오지 않는다.
부자들이,
성공한 사람들이
자식을 빡세게 공부시키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차라리
공부하는게 싫으면
유학가라.
외국생활을 경험하는 것을
도피로 보지말고
틀과 기준을 바꿔버린다라고 생각해라.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안맞으면
자꾸 대한민국의 시스템과 싸우지 말고 (졸라 안 변한다)
네가 틀을 바꿔 버려라.
새로운 틀이 네게 잘 맞으면,
너는
좁은 한국 땅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거대한
승리를 쟁취할수도 있을거다.
그냥 명문대 가라.
아니면 유학 가라.
고대 나오면
그리고 경력 좀 쌓고
대충 석사, 박사쯤 나오면
옛날엔 대부분
시시한 대학에서라도 교수는 다 하는 것 같다.
그런데
통찰에 빛나는 교수를 만나기는 왜 이렇게 힘들까?
자신의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교수를 만나기란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내가 이창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그는 교수이면서
현재 가장 치열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작품이 항상 제일 좋은 감독이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이창동 수업 들어본 적 있나?
내가 이야기해 줄께.
개인적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떤 허풍이나 어떤 제안도 하지 않는다. 천성적으로.
그냥 수줍게 허허허 웃으실 뿐이다.
학교식당에서 밥은 같이 먹을 수 있을거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러나 네가 예술적 영감을 받고자,
네가 치열하게 예술적인 몰입을 하는 와중에
이창동 교수를 만나면
아마
최선을 다해 너의 작품을 이끌어 줄 것이다.
결국, 끼리끼리 논다.
네가 너의 예술을 탐구하다보면
그걸 알아본 거장이 너를 도와줄 것이다.
그러므로
교수보고 대학가지마라.
네가 예술을 잘 할 수 있는 학교인지.
그리고
함께 치열하게 예술을 고민할 수 있는 학교인지를 고민하고
대학을 선택해라.
의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의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냥 공부해서 명문대가라. 아니면 한예종이나 카이스트 가라. 아니면 유학가서 진짜 넓은 세계에서 너의 길을 개척해라.
아니면 국내에서 아예 네가 원하는 길에 바로 뛰어들어 범접할 수 없는 길을 개척하라.
답은 매우 심플하다.
다만 그 답을 인정하고
붙잡기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한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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