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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소나타 최고은감독의 죽음 (한예종, 한예종 연극과, 연극영화과, 연극영화과 입시)연극영화과에 대해 말하다 2015. 1. 7. 14:34
고인이 된 격정소나타의 최고은감독에 대해
그 어떤 말을 하기에 앞서,
그저 가슴이 아프다.
고인에게 그나마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으려면
그가 감독한 <격정소타나> 정도는 봤어야했다.
그러나 아직 채 10분도 안되는 그의 영화를 그동안 본적도 없고, 최고은이라는 예술가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이토록 나와 그의 죽음은 거리가 멀었다.
그는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를 나왔다.
나는 한양대 연극영화과 석사과정 이후 줄곧 연극을 전공했다. 그래도 한예종이라는 같은 학교의 동문이기는 하다.
내가 대표로 있는 레슨의 영화담당 선생님이 그와 깊은 인연이 있다. 영상원 3기인 이장욱 감독과 그는 함께 작업을 같이한 사이였다고 한다.
어제 이장욱 감독을 만났다. 당연히 최고은 감독이야기가 나왔다. 한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
우선, 언론에서 최고은작가를 다루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인터넷미디어가 말초적 자극위주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는 선정적인 기사, 기본적 맞춤법도 되지않는 저질 초딩수준기사로 연명 한다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고인이 남긴 쪽지, '먹다 남긴 밥이나 반찬있으면 달라는' 쪽지 내용을 연이어 내보내며, 고인의 죽음을 한마디로 가지고 놀았다. 기사를 읽어보면 예술인의 죽음을 최대한 희화화하여, 자신들의 기사 조회수나 높이려는 저질스런 의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2
그러나 찌라시들이야 원래 그러했다치고, 찌라시보다 더 역겨운 부류들이 있다.
바로 그동안 배불러터지게 해쳐먹은 잘나가는 영화인들의 연이은 양심선언이다.
'그녀가 죽은건 우리 책임이예요'......
그래. 당신들이 도대체 어떤 책임을 진다는 것인가?
정말? 정말 책임질 자세가 되어있나?
물어보고 싶다.
정말? 진짜? 진짜 책임질꺼야? 책임이란 자기 기득권포기와 희생이 따르는 건데, 쉽게 말해 네 밥그릇 뺏기는건데 그래도 가능해? 진짜로?
3
영화판의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영화판을 둘러싸고 있는 산업체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물론 자본의 탐욕이 있다. 100억을 벌어도 똑같이 100만원을 수당으로 지급하는 자본의 탐욕말이다.
그러나 이 자본의 탐욕에 대한 포스팅은 흔해 빠졌으므로 내가 더 쓰는건 지면낭비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글을 쓸만큼 영화산업에 대해 훤히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건 알고 있다. 영화와 관련된 일자리가 이 지경까지 된데는 앞서 언급한 자본의 탐욕 외에도 영화인의 책임 또한 한몫 한다는 사실 말이다. 한탕 뜨고 난뒤, 함께 일했던 스태프들을 내버리고 자신만 쏙 빠져나가 새로운 계약을 하는 감독이야기, 학교에서 제자들을 거의 공짜에 가깝게 부려먹고 돈은 자신이 다 챙기고 회식자리에서 등 두들려주는 교수이야기...뭐, 흔한 이야기다. 더 심한 이야기도 많지만 그건 술자리 카더라 통신의 단골메뉴이고.
왜 영화인들이 이렇게 대우받지 못하는가?
"너 아니라도 할 사람많아. 그러니까 이 돈에 하려면 하고 아님 말아. 써주는 것만해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이 한 문장에 모든 문제가 다 담겨있다. 한마디로 영화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일 자체는 많지 않다. 즉,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라. 나는 영화산업의 자본문제를 비판하려고 이 글을 포스팅하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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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인들의 '사다리치우기'를 지적하고 싶다.
실제로 많은 영화인들이 좋아하는 영화일을 하면서 페라리를 몰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대기업임원만큼의 연봉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보이기에 영화하는 사람들은 지나치리만큼 순진하다. 그들은 그저 대한민국에서 영화일을 하면서도 그저 먹고살 수 있는 정도의 대가를 원한다. 가정을 꾸리고 생계를 유지하는데 최소한의 대가. 그 정도의 대가는 지금 영화판도 책임져 줄 수 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산업구조는 된다. 최소한의 책임만 진다면. 최소한의 합리적 이윤분배. 일한만틈의 최소한의 대가만 정직하게 지불되어도.
그래서 영화인들에게 똘똘 뭉치는 힘이 필요하다. 앞서 운좋게 성공한 이들이, 자기 후배들을 챙겨줘야 한다는거다. 그렇게 책임있고 의식있는 영화인들이 많다면 정당한 대가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산업구조는 된다. 영화산업이.
약속된 정도의 돈, 먹고 살 정도의 돈, 정당한 노력의 대가.
그래서 영화인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 그게 노조건, 뭐건 간에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그런데 먼저 성공한 선배들이 자기 기득권만 챙기고 후배들이 올라올 사다리는 발로 차 버린다. 그리고 책임진다고 한다. 어떻게 책임일껀지? 그들의 모습이 또다른 기회주의적 모습은 아닌지. 그래서 곱절로 역겨운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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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말한다. 왜 비참하게 밥을 얻어 먹냐고, 나가서 알바라도 하면 되지 않았냐고.
삶에 대한 책임이 너무 부족한 거 아니었냐고? 혹은 예술한다고 삶의 책임을 도외시한 건 아니었냐고. 혹은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고 배부른 예술가가 아니었냐고.....누구는 낮에 얼음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영화편집한다고. 왜 그렇게 못하냐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 알바하면 된다. 한예종까지 나왔으니 연극영화학과 입시학원에라도 갔다면 아마 충분히 먹고는 살았을 거다. 그러나 그랬다면 영화인 최고은의 작품활동은 거기서 그쳤을 공산이 크다.
'알바라도 해서 먹고살지' 라는 말은 두가지 면에서 모순이다.
먼저는,
알바가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활동은 그저 영감이 떠올라 반짝.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특히 영화 일이 그렇다. 영화 일은, 시나리오작업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뚝.딱, 숙변에 뭐 나오듯이 주욱 써내려가는게 아니다.
쓴다는 것의 고통에 더해, 실제 작업이 시작되면. 영화찍는 일은 반노가다고 육체노동이다.
영화작업을 단순히 정신적인 고뇌, 혹은 정신적, 예술적 사치쯤으로 생각하는게 문제다.
영화작업은 돈과 시간과 물질과 땀과 근육활동과 칼로리소모가 필요한 물질적 노동인 것이다.
알바도 육체노동이다. 그리고 알바의 특징은 시간이 많이 든다는거다.
알바는 대게 그렇다. 자신의 시간을 무한정 쏟아부어, 아주 조금씩 연명해 나가는 것이다.
알바하면서 영화도 찍을 정도로 해서는 영화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야말로 영화에 전력투구해도
살아남기가 힘든게 영화판이다.
게다가 영화제작이란 것은 심각하게 육체적, 물질적 노동인데.
슈퍼우먼이 아닌 이상 이 모든걸 감당하기란 불가능하다. 당신이라면 하겠는가?
물론, 기약없는 미래, 잘못된 산업구조, 예술가로서의 실존적 고뇌 따위의 감상적인 부담 따위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또 배부른 고민이라면서 욕할께 틀림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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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가 있는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봐라. 결론은 그거다. 정의란 양면적인 거다. 한가지 요인만 있는게 아니다. 얻는 놈이 있으면 잃는 놈이 있고, 99명이 이득을 봐도 한 명은 피보는 놈이 있다. 현대사회처럼 복잡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란 항상 그렇게 얽히고 섥혀있기 마련인 것이다.
최고은 감독의 죽음도 그렇다. 그 죽음을 다뤄서 싸구려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언론의 문제도 있고, 그 옆에서 기회나 엿보는 영화인들의 추한 모습도 있다. 그리고, 개인의 책임 문제도 있고, 또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 연명해서는 절대 예술을 못하는 예술가들의 항변도 있다.
진실은 항상 양면적이다. 한가지 사실로 못박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이제는 최고은의 죽음을 자꾸 다른 무언가로 결부시키려고 하지말고.
일단은 아파하자.
그녀는 많이 아팠다고 한다.
영화찍는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현실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으면 젊은 나이에 그렇게 중병에 시달렸겠는가.
그러나 영화를 포기할 수 없는 그 열정. 영화를 사랑하는 그 마음.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예술을 향한 책임있는 모습.
(타협했다면, 벌써 입시학원에서 영화를 가르치거나, 알바나 뛰면서 영화인이라고 개똥철학이나 늘어놓고 살았겠지. 영화찍는건 포기하고. 아니, 말만하고)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나?
그 청춘, 열정, 몰입 앞에서 고인을 이제는 놓아주자.
그리고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자.
그리고 먼저 행동하자.
우리는 선배들처럼 그렇게 하지말자.
돈벌었다고 후배들 사다리 치우지말자. 교수 됐다고 학생들 등쳐먹지말자. 자본 투자 좀 했다고 예술인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지 말자.
남 탓 하지말자.
지금부터라도, 나부터 행동하고, 나부터 책임지고, 나부터 변하자.
그게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행동이 아닐까 한다.
결국, 또 몫은 우리에게 남겨진거다. 언제나처럼.<레슨 포 케이아트 연기학원>
<레슨 포 케이 아트 영화학원>
<터놓고 연극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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