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려고 하는데

역시 창작의 호르몬? 이 넘치는 시간은 새벽 3시가 틀림없다.

오늘도 좋은 생활습관을 갖는데 실패하고

글 하나를 쓰고 있다^^

 

오늘 꽤 기억에 오래남는 기사를 하나 읽었다.

 

이탈리아 축구의 전설이자 AC밀란의 전설인 파울로 말디니가 최근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때문이다.

 

 

 

 

"나는 패배자입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3번 졌고, 유럽축구연맹(UEFA) 슈퍼컵에서 1번 졌습니다. 인터컨티넨털컵 결승에서 3번 패했고, 월드컵 결승과 유로 결승에서도 1번씩 졌습니다. 월드컵 4강에서도 패한적이 있구요. 계속할 수도 있는데 계속할까요?"

 

말디니는 유럽축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 우승만 5번. 우승 트로피만 26개를 가지고있는 역대 최고의 수비수이다. 챔피언스리그우승 5회가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는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다.

그런 그가 

패배자라고 말한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10대, 20대, 30대 동생들에게서 나는 루저야 나는 패배자야 라는 말이

거의 주문처럼 반복되고 있는걸 본다.

 

아니다.

너는 패배자 아니다.

너는 패배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패배자라는 말은 딱 한번 쓰일수가 있는데

그건 바로 위에 언급한 말디니처럼

수많은 승리의 이면에 있는 패배를 강조할때 '만' 쓸 수 있는 말임을 기억하라.

 

26번 우승한 말디니가 

나는 패배자라고 말할때만

패배자라는 표현을 사용가능하다.

 

너는 패배자가 아니다.

 

너는 젊고 뚜껑은 열어봐야알고 

인생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거기 때문이다.

 

조커가 루저라고 생각하나?

 

나는 영화 조커를 보면서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팔자 모른다는거다.

 

저 찐따가

저런 패배의 과정을 딛고 일어서서

 

그 무시무시한 역대 최고의 빌런. 최고의 매력넘치는 캐릭터 

악의 상징이자 고담시의 지배자

그 유명한 

'조커'가

되어버렸구나!

 

생각했다.

 

 

조커는

루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영화 조커가 루저가 대단히 매력적인 스타가 되는 과정을 다룬

성공신화로 읽힌다.

그 찌질했던 조커가

그 위대한 빌런이 되다니!

이것이야말로 인생팔자 모른다는걸 증명해주는 영화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인생 모른다.

또 촌스럽게 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중학교때 중퇴를 했다.

무기정학을 당해서.

어떤 사고를 쳤는지는 이야기안하련다.

 

대구에서 공익을할때

나는 대구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10평짜리 주공임대아파트에 살며

매일 새벽에 주공1단지 사람들의 차를 손세차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주공1단지는 임대가 아니고 

내가 살던 주공2단지는 임대아파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공1단지가 그렇게 비싸고 좋은 아파트도 절대 아닌데

나는 그때 주공1단지 살면 부자인줄 알았다.

 

한 15년전쯤엔

성수동 얼굴맛사지기 만드는 알바를 했으며,

 

10년전엔 연기학원에 취직해서 월~토 일하고 140받았는데

그때 그 140을가지고 이제 나는 성공했다. 결혼도하고 차도사고 다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어설펐고

그만큼 세상물정을 몰랐다.

 

근데 정말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나만큼 고생많이 해본 사람도 요즘엔 거의 없을텐데

나는 정말 옛날에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금 잘나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주공아파트 살때 나는 재미있었다.

아파트주변으로 밤이되면 닭똥집 꽂이? 노점과 떡뽁이 오뎅 노점이 늘어서는데

떡뽁이와 순대와 꽂이? 를 사서 집에들어와서 베란다문을 열어두고 먹으면서 스타크래프트중계방송을 보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 제일 행복한거지 않나? 도대체 뭐가 더 있어야 되는거냐? 따뜻하고 배부르고^^)

 

한예종다닐때 석관동근처에 자취할땐 옥탑방에 살았는데 그때도 좋았다. 월세 17만원인데

옥탑방 욕실에 5만원짜리 욕조사다가 물받고 반신욕하며 노트북으로 FM풋볼매니저하고 책읽으며

욕실창문사이로 시원한 바람과 노을이 지는 풍경이 얼마나 예쁜지!

 

가난한건 가난한거고

외모가 못난건 못난거지

그게 왜 패배자여야 하는가?

 

나는 정말 모르겠다.

 

가난하면 불행해야 하는가?

 

얼마만큼 가난해봤는가?

 

나는 중학교때 학교그만두고

빚쟁이 피해 절에 숨어들어간 아버지따라 절에 숨어살때

너구리 라면이 먹고싶어서

동전모아 눈길을 헤집고 1시간을 굴러내려가 너구리 라면 하나 사들고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쑥을 캐먹고 냉이를 캐먹고

분홍색 소세지가 아까워서 아주 잘게 썰어넣어 먹고 그랬다.

 

내 키가 174인데 아버지가 178이다.

어머니도 키가 크시므로 유전적으로라면 나는 180이 넘어야되는데

성장기때 못먹어서 못큰게 아닌가 싶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망바로 직전의 상해등급을 받으셨고

아버지는 사업이 부도가 나고

뭐 흔한 레파토리일수 있어서 더이상 이야기는 안하려 한다.

 

그런데

진실로

나는 그때도

행복했다.

 

 

왜 상황이 내 인생을 결정지어야 하는걸까?

 

가난한 상황이 내 인생의 행복을 결정짓는다면

그건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살다보면 가난할수도 있고 부자일수도 있는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현실때문에 내가 불행해야만 한다면

그건 너무 운명론적인 사고 아닌가?

 

그러나 참 다행인건

 

우리 인간은 운명론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란 사실이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행복을 빼앗아갈 수가 없다!

내가 그 행복을 단단히 붙잡기만 한다면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정말 스스로에게 진실되게.

 

행복은 결정되어있는가? 선택할 수 있는가?

 

나는 가난했던 과거가 부끄럽지 않다.

 

지금의 내가 그다지 자랑스럽지도 않다. 그냥 과거에도 좋기도했고 나쁘기도했고

지금도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정말 제대로 가난을 경험해보니

가난이 두렵지가 않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시절에도 행복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가서 느낀 점이 그것이다.

 

가서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봉사를 해야되겠다.

는 마음으로 탄자니아를 간건데

 

나는 거기서

너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 사실 구호단체들이 방송에서 묘사하는 아프리카의 대상화된 이미지 

(다 죽어가고 고통과 절망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로 묘사되는 아프리카)

에 반대한다.

 

탄자니아 사람들이 가난한건 맞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건 아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여서 노래부터 부른다.

그리고

소박한 식사를 하고

소박한 일을 하지만

그속에도 행복이 넘친다.

 

 

탄자니아 다르에르살렘 마을 어귀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콜라마시면서 조그만 TV로 축구중계를 보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행복해보이는지 모른다.

 

가난한건 실패가 아니다. 

외모도 실패가 아니고

심지어 실수하는 것도 실패는 아니다.

실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패배라는 단어는

바로

파울로 말디니처럼 쓰는 말이다.

 

나는 루저입니다.

 

26번의 우승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패배가 있었습니다.

많은 성공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더 많은 실패가 있었기에

나는 루저입니다.

 

이렇게 멋지게 쓸 수 있는 말이

루저라는 말이다.

 

 

루저란 말은 자조적인 말이 아니다.

 

멋진 말이다. 위 말디니의 예처럼.

 

네 스스로가 생각할때 너의 좋지못한 것들을 쭈욱 나열해보라.

 

상황과 환경들 실수들 후회들 모두 나열해보라.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보라.

 

네가 마침내 그 실패들을 딛고 일어서는데 성공한다면.

 

그 많은 아픔들이 전부 성공의 한 요소가되어

그동안의 아픔을 합친만큼의 큰 성공으로 돌아오지 않냔말이다.

 

페르시아의왕자란 고전게임을 아나?

 

그 게임을 하다보면 분신이란 놈이 자꾸 내 에너지를 갉아먹고

내 물약도 빼앗아먹고 그런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 12층의 제일 꼭대기에서

그 분신은 주인공 나와 결합해

그동안의 모든 에너지를 합친 강력한 내가 되도록 해준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승리하도록 나를 이끌어주는 소중한존재였던 것이다!

 

 

 

 

환경이 너를 함부로 결정짓도록 절대로 내어주지 마라.

상황과 환경이 너를 불행하게 만드는게 아니다.

불행을 선택한 네 자신이 너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고통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게 인간의 위대함이다.

그리고 참 놀라운건

그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바로 그 인간의 위대함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못난걸 너무 미워하지마라.

못날수도 잘날수도 있지만

그래도 행복은 넘치지않나? 우리주변에 말이다.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네가 이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행복은 눈덩이와같아서

행복은 또다른 행복을 불러온다.

 

내가 환경에 흔들리지 않을때

진짜로 환경이 좋아지는걸 경험한다.

 

지금 나는 예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은 걸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때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가진걸 잃어버려도 행복을 선택할 것이다.

 

행복은 선택이고

선택은 힘이고

영향력이고

변화이다.

 

 

패배자는 멋진 성취를 이루고 난 다음에 써야 할 단어이지

지금은 아니다.

 

넌 패배자가 아니다.

 

 

 

 

 

 

 

 

 

 

 

 

 

Posted by inthea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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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2 2020.05.13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택이아니었기에 할 원망대신 현재 가진 선택지를 기쁘게 받은 마음부자신게 느껴집니다. 맞아요 행복은 소유가 다가 아닌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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