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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대한 스토리적 접근- 연극영화입시2016 포스팅 2016. 4. 28. 19:41
가난에 대한 스토리적 접근
by intheatre. (4.28 new 포스팅)
학원을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하고 별관을 하나 더 확충하는등 육체적으로 너무 바빠서 그동안 포스팅을 별로 쓰지못했다.
이제 다소 안정이되서 그동안 밀린 주제들에 대해 포스팅을 하나씩 하고있는데 4월이 지나기전에 구상했던 포스팅은 끝내려고 열심히 정리중이다.
오늘은 내가 근래에 계속해서 고민하고있는
'가난'이라는 주제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가난 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스토리적인지. 그리고 마법같은 소재이자 주제인지를 스토리이론을 통해 살펴보는게 이번 포스팅의 목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평론가 신형철의 '피에타'에 대한 평론 중에 인상깊은 구절이 하나 있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만들어진 모든 영화들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메타포이다.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피에타> 씨네21)
오늘의 포스팅은 이 글귀에서부터 시작하는게 좋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만들어진 모든 영화들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하나의 은유이지 상징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명제에서 부터 시작해보자.
로버트 맥키에 의하면
좋은 사건이란
사건을 통해, 주인공의 평행상태가 깨지고
주인공을 딜레마에 놓이게 한다.
주인공은 그 딜레마 아래에서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한다.
즉. 주인공의 선택에 따른 극적진행을 강조하고 있다.
핵심은,
주어진 사건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사건이 주인공에게 어떤 딜레마와 어떤 선택을 불러올지에 있다.
예를들어
마틸다가 그의 가족이 부패경찰 스탠필드에 의해 몰살당하고
옆집아저씨 레옹의 문을 두드렸을때를 생각해보자.
극중 레옹은 능숙한 킬러로 설정되어있다.
실수가 없는.
그런 킬러가
마틸다가 문을 두드렸을때
마틸다를 집안에 들인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리가 없다.
마틸다를 보호해줌으로써
그가 필연적으로 맞서게 되는 상대가 누구이며,
그가 얼마나 강력한 적인지
그래서 그는 반드시 몰락할 수 밖에 없음을
레옹이 몰랐을리가 없다.
즉.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라는 말이다.
영화 레옹은 스토리텔링적으로 완벽한 사건을 갖추고 있다.
발생된 사건 ---> 주인공에게 주는 딜레마 ---> 주인공의 선택 ----> 그 선택으로 인한 (어쩌면) 몰락.
이렇게 사건 하나 하나가 충분한 필연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무언가 중요한게 하나 빠져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힌트를 주자면
양들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생각해보자.
신참여FBI 견습인턴인 조디 포스터가
막강한 포스의 안타고니스트
한니발 랩터 박사와 맞써는 내용을 생각해보자.
'무언가' 가 없이
그러한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맥키가 말한 행동의 비약에 해당되니까.
위 레옹이나
양들의 침묵에서
주인공의 딜레마 아래서의 선택이 가능하기위해서는
무언가 열쇠가 필요하다.
그것을 우리는 스토리텔링이론적으로
'결핍'이라고 부른다.
결핍.
오늘의 주제단어이다.
결핍.
레옹은 마틸다를 보호해주는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한다.
이 행동이 비약적 행동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감독은
레옹에게 어떤 결핍을 부여했는지를 영화속에서 살펴보자.
장인과의 갈등속에서 아내를 잃어버린 사건이 설정되어 있음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 상처속에서
레옹은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자고...화분을 키우고...우유를 마시는 등의 행동을 통해
불안정하고 결핍된 내면을 이미져리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게 결핍이다.
양들의 침묵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아버지를 잔혹한 범죄현장에서 구해주지못한 어리고 약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와 질책은.
거대한 악과 맞써서도 절대로 굽히지않는
가녀린 여성의 추진력을 스토리적으로 완벽하게 정당화시켜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결핍'이다.
결핍은 행동의 근거가 된다.
결핍이 없는 스토리는 그래서 비약적이다.
결핍이 없는 인물은 필연적으로 공감을 주지 못한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이유를 스토리텔링적으로 보자면
결핍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요약가능하다.
국민들은 결핍아래 시달리는데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생존을 위한 목숨 건 도박들을 감행하는데
정작 지도층들은 아무런 결핍없이
인생을 즐기고 상층부에 눌러붙어
극적인 승리를 꿈꾸니
이미 구도 자체가 모순된다.
정치도, 선거과정도 크게보면 하나의 스토리텔링이라고 볼때.
내년 대선에서 선출된 대통령은
스토리를 뚜렷하게 가진 자가 될 것이며
그의 스토리가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그는.
결핍과 그 결핍아래서의 소신있는 도박. 그리고 그 도박으로 인한 변화가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런 후보가
결국 대권을 차지할 것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결핍이 스토리의 진행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양들의 침묵이야 강력한 살인마와 맞써 싸우는 이야기니까
권선징악적 구조를 통해 쉽게 결핍과 사건진행을 만들 수 있고
그건 액션영화인 레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막상 스토리를 쓰려고 할때.
특히 입시 스토리를 쓸때
제한된 분량안에서 그러한 큰 사건이나 갈등을 만들기가
매우 힘들다는게 입시생들 공통의 고민일 것이다.
즉. 살인이나 방화. 강간. 폭력.
그러한 뚜렷한 권선징악적 소재로 결핍을 만들기엔
너무 이야기가 장황해져 버릴수 밖에 없는
입시생들의 딜레마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짧은 단편이나
입시스토리를 쓸때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
결국.
나는 좋은 해결책 중 하나로
'가난'에 대한 성찰 을 제안한다.
가난이야말로
현대의 모든 스토리텔링에 어울리는 근본적인 결핍이다.
사실 결핍을 너무 극단적인 상황으로 생각하는건 좋지않다.
예를들어, 앞서 예로든 영화들에서처럼
가족의 죽음이나, 범죄, 혹은 살인 등과 같은 설정들말이다.
모든 상실은 결핍이 될 수 있다.
예를들어 편집증에 빠진 한 남자 (잭 니콜슨) 가 웨이트리스와 사랑에 빠지는 상황을 그린
(디카프리오를 아카데미남우주연상에 실패하게 만든 바로 그 영화)
<이보다 더 좋을순없다> 를 생각해보자.
살인,폭력등과 같이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공감가능한 결핍을 가진 두 등장인물들에 대해 주목해보자.
잭 니콜슨은 강박증증세가 있고, 그의 괴팍한 성격은 그를 더욱 더 외롭게 만든다.
그가 사랑에 빠지는 웨이트레스 코널리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아들이 있지만, 아이 아빠없이 변변한 치료도 못하는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있다.
스토리적으로 참고할만한 멋진 결핍을 안고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
사건의 진행또한 매력있다.
가장 못마땅해하는 자의 못마땅해하는 개 ! 를 그 지독한 성격의 잭 니콜슨이 돌봐주어야 하는 상황이주는 진한 갈등^^ 과 아이러니. 그리고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전개에 주목해보자.
주인공 잭 니콜슨의 성격화와 결핍이 훌륭했기에,
이웃집 개를 맡아준다는 지극히 평범한 설정이
맛깔하는 갈등으로 충분한 극적 추진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 구도를 둘러싸고 점점 마음을 열고 변화해가는 주인공들의 상황.
그리고 결핍이 채워져가는 과정들이
이 지독한 사회구조아래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한국영화 <김씨표류기> 또한 마찬가지다.
이 자본주의 사회 아래서
극단적인 형태로 진화해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스토리적으로 분석해보길 바란다.
캐릭터설정과 이야기전개가
아주 일상적인 상황속에서 충분히 설득력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거다.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짱깨를 배달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갈등과 사건전개가 된다는 것!
이것이 결핍이 주는 마술같은 매력이라 하겠다!!
다시 신형철의 글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이라면
그 시스템 아래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모두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를 전제할 수 밖에 없다.
이 점에 주목해본다면.
가난한자들.
모자란자들.
무언가 이 거대하고 강력하고 압도적인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 아래서
부대끼고
외로워하며
견뎌가며
낑낑대며
고민해가며
소통이 안되는 객체들이
벌이는
모든형태의
좌절과
시도들은
모두 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의
훌륭한 결핍이 되는 것이다 !!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들, 배우들을 생각해보자.
그 영화의 모든 행동들이
비약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 아래에서
숨죽여 무언가를 시도해가는
수많은
'흙수저'들의
생존본능이
필연적으로
결핍에 대한 타당한 스토리적 근거를 제공해주기 때문이 아니던가?
예로들려니 너무 많아서.
단언컨데. 모든 좋은 영화 전부라서.
예로들수조차 없다.
결론으로 가보자 !
가난에 주목해라.
가난속에 모든 형태의 스토리적 결핍이 내재되어 있다.
모든 찌질한 자들.
모든 흙수저들.
모든 비굴한자들.
모든 생존기
모든 가난한 청춘들
모든 생존형 예술가들
모든 보급형 미인들, 혹은 보급형 미남들.
모든 예비군들
모든 군인들
모든 입대를 앞둔 청춘들
모든 공무원 준비를 위해 노량진에 모여있는 자들
모든 찐따들
모든 공부못하는 고등학생들
모든 운동못하는 비엘리트 운동선수들
모든 .......
이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형태의 행동은
모두
정당성있는 결핍을 안고 있는
흥미로운 주인공들이며
흥미로운 사건이 내재되어있는 인물들 아니던가 !
더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자면.
주변을 바라볼 것 없다.
나. 자신이
바로
그런 결핍을 가지고 있지 않나?
이 글을 쓰는 나도 마찬가지다.
결핍을 잔뜩 안고있는 캐릭터이다.
학원원장이고
한예종학원 원장이라고해서
이 글을 쭈그리고 앉아서
방구석에서 북북
이 글을 쓰고있는
나를 떠올려보라.
나는 나자신 속에서
결핍을 발견하고
그 결핍의 반작용으로 벌어지는
선택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미 많은 영화의 스토리들이 보인다.
멀리갈 것 없다.
우리 모두는
이 거대한 사회구조안에서
어떤형식으로든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거대한 걸 보는 자가 아니며
사회의 정중앙을 바라보는 자도 아니다.
작가는
모두가 외면하고
미디어와 언론과 학자들이 외면하는
경계선 상에서
꿈틀대고
생존하기 위해 모든 짓들을 다 감행하는
사회구조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봐야 한다.
경계에 대한 시선 -
그것이 곧
가난에 대한 성찰이다.
화려하고, 명성있고, 잘나가고, 엄청난 스펙타클, 스케일있는 소재...
이런 것들에 현혹되지 말아라.
그런 큰 사건을 다루기 이전에
너 자신이 얼마나
결핍을 안고 있는 존재이며
그 결핍이 너를 어떤 욕망을 갖게하는지
주목해보는게 먼저 아닐까?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모두가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나의 형제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인간군상들의
생존기.
영화는 관찰에서 온다.
영화를 잘 찍는다는건
잘 관찰하고 잘 훔쳐본다는 것과 다른말이 아니다.
봉준호가 자기자신을 일컬어
'변태적 관찰자'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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