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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경영의 아이콘은 결합되어 있다 (한예종 연기,극작,연출,영화,서울예대 연극강남 연극영화학원, 한예종 연극영화학원, 한예종 자기소개서, 한예종 면접, 한예종 극작과, 한예종 서창과..연극영화과에 대해 말하다 2014. 7. 30. 19:17
요즘 이런 책들을 읽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서강대 김용수 교수가 쓴 '연극이론의 탐구'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까지의 다양한 연극이론들을 '대립과 대화'의 관점에서 통찰한 책)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슬라보예 지젝의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로버트 루드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
데이비드 위시의 '지식경제학 미스터리'
그리고 이번 주간 나를 완벽하게 흠뻑 사로잡은 완벽한 책!! 존 버거의 '이미지 (ways of seeing)'
그냥 내 책상위에서 지금 현재 내가 읽고있는 책들을 보이는대로 쓴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 학원에 남아서
내가 뭘하는지 알면 아마 실망할 것이다.
나도 내가 가끔은 우습다.
재미없게도...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그 고요한 순간이
내겐 최고의 축복받은 시간이고
수혜의 시간이고
만남의 시간이며
지적, 정신적, 영적 샤워의 시간이다.
혼자서 조용히 이런저런 책 읽는 기쁨.
안 해보면 모를 것이다.
책은 여행과도 연결되어 있다.
내 기억에 남는
완벽한 여행에서
나는
책이 기억에 남았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다르에르 살렘에서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도
캄보디아의 씨엔립과 프놈펜에서도
책을 읽었다.
그래서 내겐 여행의 기억은 독서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독서와 여행의 만남은 매우 잘 어울린다.
내가 어렸을때 아버지께서
공부하면 500원씩 주셨다.
가끔 돌아보면
인생을 바꾼 결정적 순간이 떠오르는데
그때가 그랬다.
내가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공부안하고 책 읽어도 500원 주나요?
그때 어린 내 생각엔
공부란 교과서나 문제지를 푸는 것이고
책 읽는건 공부 축에도 못드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아버지께선 물론 책을 읽어도 500원을 주신다고 했고 -
난 고백컨데
그냥 책 읽는것도 좋은데 500원까지 주시니
정말 탄력받아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때 기억에 두산동아백과사전 12권짜리 중에
생물 편은 너덜너덜 진짜 종이조각이 걸레가 되도록 수백번은 넘게 읽었던 것 같다.
오리너구리의 발가락이 몇개인지 따위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땐.
인생을 바꾼 순간이라고 확신한다.
또 한번의 터닝 포인트는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빚에 쫓기던 아버지께서
당시 학교에 부적응해 무기정학을 받고 있었던 나를 자퇴시키고
인적드문 암자로 단둘이 도망쳤던 일이다.
몇백년 된 암자에서
암자 뒤엔 대나무 밭이 있었고, 바람이 대나무 밭을 지나며 내는 소리를 듣고
아침엔 새소리에 잠이 깨고
쑥과 냉이와 돈나물을 직접 캐서 먹었고
운동했고
종이배를 접어 물에 띄우고 놀았다.
땅속에 묻은 직접 재배한 김치를 먹었고
너구리 라면 하나를 사기위해
눈길을 구르듯이 두시간을 굴러내려가
400원 주고
너구리 라면 하나주세요.
하고 한봉지 사와서
만나게 먹었던 기억도 난다.
정규교육과정에서 일탈해서
자연과 함께
또 라디오와 독학으로 여러 인문고전들을 읽으며
혼자 고등학교 입시를 공부한
그 시간이 내 인생의
두번째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다.
이외에도 할 말은 많고 많지만
다음에 또 소개하도록 하고.
내 인생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그래서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즉흥이나
우연이나
망가지는 것이나
조지는 것이나
좀 잘 안되는 것이나
예측가능한 대로 안 풀리는 것이나
다
괜찮다고 말이다.
바닥을 쳐봐야
바닥이 별거아니고
바닥에서도
행복이 깃들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이 생기고
그래서
겁없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내가 너무 어린 나이에 실존의 바닥을 쳐봤으니까...
이런 경험있는가?
해야될 일이 뭔지 분명히 알고
반드시 성공할 것도 알고
그런게 꽉 차 있는데
시간과
체력과
기회가 부족해서
아직 못하는 일이 너무 많아 답답한 경험...
주변에 40대에 크게 성공한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니까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30대를 그렇게 보내야 한다더라.
30대엔 숨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달려왔다고...
우리는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책 읽는 것과 공부를 따로 생각한다.
학교교육이란 반드시 학교안에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진학하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과 경영은 전혀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바로 쌍팔년도 예술론이다.
예술하면 밥 굶어야 한다.
예술하면 가난해야 하고
예술하면 폐병환자처럼 술과 담배에 쩔어서 무절제해야 한다......
이 친구야.
예전의 예술가들이 폐병에 술에 찌들었던 건
그들의 시대가 그들의 실존을 넘어설만큼 철저히 황폐화되었기 때문이다.
며칠전에 체코 국립미술관전에 다녀왓는데
체코의 화가들을 보니까
전쟁 중에 나치를 피해 자살하거나
이후에 공산당에 의해 처형된 화가가 그렇게 많더라.
그 치열한 시대를 지나오며
철저히 인간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뿌리부터 경험한
형님들의 예술세계를
우리들이 흉내만 내서 되겠는가?
예술은 그 시대에 맞는 틀이 있다.
오늘날의 시대는
나는 컨버전스의 시대, 노마드의 시대, 그리고 Hi-Tech, Hi-Touch의 시대라고 본다.
1. 컨버전스의 시대
오늘날 예술은
경영과 떨어져있지 않고
테크놀로지와 떨어져있지 않고
그리고 무엇보다
인문학과 떨어져있지 않다.
오늘의 예술적 아이콘은
한예종 교수가 아니라
스티븐 잡스다.
경영인이 곧 예술인이다.
폐병환자같은 느낌으로... 예술을 선택했으니 굶어죽어야 한다며
현실의 경제논리를 회피하는 건
비겁하다.
오늘날 세계는 자본주의시대이다.
자본주의란 한마디로
돈이 가장 먼저 진가를 알아보는 세상이다.
네 예술세계가 독창적이고, 혁신적이고, 메세지가 강렬하다면
제일 먼저 돈이 알아본다.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하면서 경영을 하고
가장 앞선 예술을 하면서 가장 돈도 많이 버는거다.
내가 감히 예측하건데
지금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서울대 나오고 로스쿨나오고...
물론 그들이 10년뒤, 20년뒤에도 그때도 충분히 사회지도층으로써
상당한 부와 명예를 축적하겠지만
그들의 예상보다는 훨씬 못할 것이다.
최고의 엘리트들이
상위권 정도의 부와 명예를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상위권에서 부와 명예를 얻는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혁신가들이다.
스티븐 잡스같은 사람이다. 손정의 같은 사람이다.
미래에는 이런 사람들이 더더욱 많이 쏟아져나올 것이다.
안톤 체홉의 작품에는 두가지 유형의 인물들이 나온다.
변해가는 현실에 적응한 유형과
그렇지 못한 유형.
앞으로의 세상은 두가지 유형으로 나뉠 것이다.
혁신적 창조성을 가진 유형과
그렇지 못한 유형.
네가 예술을 선택해서
배고프다는 생각. 관념은
쌍팔년도 예술론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순수예술, 상업예술이란 말이다.
진짜 88라이트, 솔 담배같은 구닥다리 용어다.
컨버젼스의 시대에
순수예술이 어디있고, 상업예술이 어디있는가.
그런식의 폭력적인 이분법이 어디있는가.
가장 순수한 예술이
가장 상업적인 예술이 되고
가장 상업적인 예술이
가장 순수한 예술이 될수가 있는게
오늘날의 예술현실이다.
디자인에 있어 가장 단순함을 강조했던 브라운 전기회사의 디터 람스는 내가 보이게 가장 순수한 예술가로 보인다.
상업적 전자제품의 디자인을 해온 사람이 가장 순수한 예술가도 보여진단 말이다.
어떻게보면
애플은
가장 직선적이고
단순하고
예술적이고
순수예술적이기에
지금의 혁신적인 제품들을 내놓을 수 있었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 따위는 없다.
2012년도 예술분야 최고대상 (중앙일보 선정)에 이자람이 선정되었다.
이자람은 국악인이다.
말하자면 순수예술로 국악을 전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판소리와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
즉. 동서양의 컨버전스와
동양의 인문학적 고전과
서양의 인문학적 고전의 만남.
그리고
국악과
공연예술의 컨버전스
등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융합장르를 선보였고
그 공연이 작년 문화예술분야 최고의 성공을 거둔 단 한명의 사람으로까지 선정되게 한 것이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은 더이상 없다.
혁신적인 예술과
쌍팔년도 구닥다리 예술의
구분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안톤 체홉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 유형이 절실히 와 닿는다.
체홉은
선인과 악인,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 등의 이분법적 기준으로 인물을 분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컨버전스 즉 융합적 인간형.
즉
묘하게 뒤섞여 있는 인간형을 창조해냈다.
그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단 두가지 유형으로만 나눌 수 있다.
현실에 잘 적응하는 유형과
그렇지 못하는 유형.
그 두 유형이다.
앞으로의 예술도 그렇게 될 것이다.
혁신자와
비혁신자.
그 둘의 구분은 더욱 명확해 질 것이다.
물론 안톤 체홉처럼, 우리 예술가들의 이야기 소재는 결국 비혁신자들에게 애정을 쏟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 자체는 언제나 혁신자일 것이다.
비혁신자들에 대해 쓸 수 있는 작가라면 그는 역시 혁신자일 테니 말이다.
2. 노마드의 시대
노마드의 시대.
우리는 노마드의 시대를 살아간다.
유목민이다.
거쳐가는 것이다.
지나가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제러미 리프킨의 유명한 저서 '소유의 종말'을 통해
소유한다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빌려쓴다는 개념위주로 사회가 급격하게 재편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오늘날의 예술도 그렇다.
오늘날의 예술은
맥루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디어가 곧 메세지인 시대이다.
즉
예술적 형식 자체가 예술적 내용보다 우월한 시대이다.
우리는 너무 예술적 내용.
예술적 진실.
예술적 영원성에 주목한다.
그러나 정작 예술적 트렌드는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임을 인식하는데 있다.
너무 영원한 것을 붙들고
영원한 진리를 붙들려고 하면
정작 중요한 삶의 진리들을 잃어버리기 쉽다.
진짜 중요한 영성은
작고
사소한 것에
깃들어 있는 게 아닌가.
평생 영성을 추구한 레프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의
결론도 결국
그런 노마드적 인생에 대한 성찰과 고찰과 귀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 안주하려고 하지 말자.
안정적인 삶.
먹고사는 문제...
이런 말이 있다.
신혼부부가 가난한 살림에 월세방을 구했는데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그게 그렇게 서러웠단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집을 구했단다.
그런데 애들이 늘어나다보니
맨날 아침에 아빠가 신문보면서 대변보고 있고...애들은 냄새난다고 싫어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어서
화장실이 두개 있는 아파트로 이사가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결국 이사했단다.
그리고
죽었단다.
이 신혼부부의 인생은 한마디로 무엇인가?
화장실 늘리다 죽은 인생이다.
네가 예술을 선택하기로 했다는 것은
기꺼이 관찰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는 말이 된다.
나는 요즘 존 버거의 Ways of Seeing이라는 책에 매료되어 있는데
결국 예술이란
보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관찰한다는 것이다.
안주하고
머물고
무언가 확정지으려고 하지말고
영원한 무언가를 거대한 사상에서 찾으려 하지말고
현재의 작은 삶
현재 경험하는 작은 경험 속에서
영원한 진리를 찾으려고 하자.
관찰하며
생각하며
여행하며
깃들며...
3. Hi Tech, Hi Touch 의 시대
MIT 미디어랩의 존 내이스빗 교수가 쓴 하이테크, 하이터치란 책이 있는데
반드시 읽어보라.
예술의 미래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7번방의 선물이란 영화를
나는 개인적이 매우 불편한 심정으로 봤는데
한편으론 그 영화가 이해도 되었다.
요즘 영화들
너무 잘 만들지 않았는가...
오히려 삶의 리얼리티를 담기위해서
너무 잘 만들다보니
리얼리티에서 빗나게되었다.
왜냐면
우리 인생은
그렇게 좀 어설프고
좀 엉성하고
좀 모자한 게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관객들이 7번방의 선물이란 영화에 공감을 하는게 아닌가 한다.
존 내이스빗 식의 표현에 의하면
7번방의 선물은
하이테크의 영화는 아닐지라도, 하이터치의 영화로는 완벽한 것이다.
탁월한 기술과
탁월한 실력과
혁신적인 예술성과 함께
가야할 것이
바로
마음과
영혼과
상처와
모자란 부분들을 애써 감싸안을 수 있는
따뜻한 감성.
사람들은
그 따뜻함을
예술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실적으로 통하는 이 시대에
경쟁과
돈과
실력과
실적과
혁신에 대한 압박과
실적에 대한 압박속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의 삶에
예술이 제시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터치하는 것이다.
위로하고
공감하고
감싸주고
....
고도의 혁신성과
고도의 인간성.
뛰어난 예술성과
따뜻하게 공감해주는 인간성은
함께 추구해야 하는 것임을
7번방의 선물을
강력하게 웅변하고 있다.
존 내이스빗의 말이 맞았다.
하이테크와 하이터치는
함께 가는 것이다.
예술의 갈 길도 이 문장 속에 있다.
하이 테크와 하이 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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