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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을 통해 본 인간연극영화과에 대해 말하다 2012. 11. 21. 06:14
아 근데
정말 이 글은
지혜를 담아서 쓰는 글이다.
뭐랄까
내가 세상에 된통 당하고
깨달은 일종의 비결을
공개하는 거라고 할까?
^^
한번 들어보고
말같지 않은 주장이면
무시해도 좋아.
그러나
진심으로 쓸게.
한번 들어봐.
.
내가 원장이되어서
학원 3개를 이끌잖아?
신사연극영화학원, 논현연기학원, 녹번연기학원 + 예술학교
근데
내 평생에 이렇게 리더? 의 위치에
별로 서본적이 없어서
사실 되게 어색해.
그리고
믾이 서툴러서 오해도 많이 받아.
내가 생각할때
좋은 리더는 아닌 것이 확실해.
근데
내가 30대가 되기전엔 어땠냐면
나는
가는곳마다
싸웠어.
동아리가면 선배랑 싸우고
알바하면 사장이랑 싸우고
또
어딜가도 항상 비판했지.
고등학생땐 선생을
대학에선 교수를
직장에선 상사를
군대에선 공무원을... ㅜㅜ (내가 공익이거든. 미안하다...^^)
그렇게
항상 비판만 했는데
친구들아.
나 전공이 비평이거든.
한예종에서 전공을 비평했어.
쉣.
비평이 직업이 될 수 있는
전공이 까는거인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래.
나는 까는거엔
정말 자신있는 사람이야 ^^
지금도
누굴 까라면
밥도 안먹고 밤새며 잘 깔 수 있을꺼야.
국가대표지.
까는걸 훈련받은 사람이라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어.
비판은
반드시
근거가 있다는거야.
그래.
정당성이 있어.
반드시 그래.
비판은 반드시 정당성이 있어.
정당성없는 비판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해.
오늘 이야기의 중요한 전제는
바로
비판은 반드시 근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는 정당성이 반드시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야.
근데
언젠가부터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어.
무언가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
내가 서른이 넘으면서
갑자기
내 위에 있는 사람들의 이면이랄까?
그런게 보이더라구.
항상 돈이 많이보이는
원장님이 (내가 연기학원에서 강사 오래했거든)
남모를 고초가 많았다거나...
교수님의 입장이라던가...
사장의 입장이라든가
아니면 상사의 입장이라든가
엄마의 입장
아빠의 입장이라든가...
좀 균형잡힌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할까?
안톤 체홉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인간에 대한 통찰이 너무 정확하기 때문이야.
체홉의 작품에는
절대적 악인도 없고
절대적 선인도 없어.
체홉에 나오는 인물들을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지으면 안돼.
예를들어 세자매의 나따샤를 악인으로 본다거나...
하면 안되는거지.
체홉은 인간에 대해
수만명의 환자를 치료하며
연구하고
통찰한
그 결과를
의사 특유의 예리한 칼날로
해부해놓았거든
4 편의 장막극에 말이야.
갈매기 바냐아저씨 벚꽃동산 세자매
모두
인간에 대한 통찰이 넘치는 작품들이지.
그래서 참 신뢰가 가는 작가야.
그런데
그가 생각하는 인간유형은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지 않아.
다만,
변화되는 현실에 잘 적응하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로 나눌뿐이지.
그건 참 정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체홉의 인간에 대한 경계 지음이 말이야.
변화에 잘 적응하는 인물과
이상에 사로잡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인물
그런 나눔은
정당하지.
생각해보니
내가 서른이 넘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기를 멈췄던 것 같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아군과 적.
이렇게 나누는 것도 멈췄던 것 같아.
오히려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냥 모두 다 악인이라고 본것 같아 ^^
즉
사람들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게 된거지.
기대를 하지 않고
언제든지 실망할 준비를하고
대신
언제나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나도 주고
나도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얻는
그런 관계를 추구하게 되었지.
상대방에게 기대하기 보다는
저 사람이 나를 인정하거나
고용하거나
내게 일을 맡겨준다면
나는
목숨을 걸고
저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뭐 그런 생각?
어찌보면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지.
성숙이기도 하고...
어쩌면 속물이기도 한거고.
근데 말이야.
체홉의 작품에서처럼
사람들은 고결한 이상을 꿈꾸기도 하면서
또
속물적이기도 해.
그런걸
다 가지고 있는게
사람이야.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야.
이 블로그를 통해
위대한 예술에 대해
또 멋진 글? 을 나름 쓰고
자신감 가득한 무책임한 선언을 호기롭게 던져놓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상처받고
또 상처주고
또 눈앞의 작은 일에
치사하게 자존심도 내버리는 등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
인간이지.
글과 내가 달라.
글을 통해 만나는 나와
직접 소통하는 나는
또 다르지...
마치 바냐 아저씨에서
위대한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말하다가도
미인인
유부녀 옐레나를 욕망하고
또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실망하고 좌절하는
의사 야스뜨로프처럼 말이야.
위대한 이상과
속좁은 자아가
뒤섞여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지.
체홉의 인물들은 그걸 입증하고 있고.
돌아보니
내가
인간 그 자체의
다양성.
즉
상대방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내 인생이
형통해진 것 같아.
언제나
상대방이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대를 하기보단
내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특히
어디를 가든지
내게 권위자가 되는 사람에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힘이 되어주고자
노력했어.
20대땐
가는곳마다
문제점이 보이면
그 사람을 악인으로 단정짓고
그 모순과 싸웠지.
그게
정의라고 믿었고.
그런데
30대가 되면서
문제점이 보여도
다른 쪽 면을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어.
저 사람이 저런 문제가 있지만
이런 점은 참 좋네.
그럼 문제는 덮고
저 사람의 장점은 인정해주고
오히려 그 장점이 더 잘되게 해줘야지.
아니면
단점은 인정하고
장점은 내가 취해야지...
이런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
그리고
절대 뒤에서 비판하지 않기로 다짐했어.
내가 그 조직에 속해있는한
그 조직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고
그 조직에
반드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열심히 일했어.
예를들면
연기학원에서 일할때
누가 보든 상관하지 않고
그 연기학원이 나를 고용해줬으므로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어.
누가 봐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냥 그런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거든.
어딜 가든
최선을 다하고
이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말이야.
그래서
연기학원에서
2시출근인데 11시까지가서
먼저 셔터열고
불 타 켜고
학생들봐주다가
9시퇴근인데
밤 11시40분 막차시간까지
학생들 가르치고 그랬어.
그리고
이왕 내가 하는 일이면
정말 열심히하자
결심했고
최선을 다해서
해버리면
나는 적어도
행복하더라구...
남이 아닌
나 스스로의 약속 때문에
열심히 했던거지.
근데
그 학원 원장님이 나를 좋게 봐주셔서
강남점 오픈할때
책임을 맡게 하셨어.
그때 배운
학원운영의 많은 경험들이
지금의 레슨 포 케이아트를 만든거야.
확실히 해두고 싶은 점은,
그때도
학원 내부엔
나랑 같이 일하면서도
항상 비판적인
선생님들도 계셨다는거야.
원장에 대해서...주변 선생님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그들의 말에는 정당함이 있어.
비판에는 항상
근거가 따른다고.
반드시.
정당성이 있기에
비판이 있는거야,
그러나 나는
그때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비판하면 한쪽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렸어.
그리고
비판에 동조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했어.
나는 적어도
그 학원에 소속된 선생이었고
나는 그 학원의 성장을 위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학원을 비판하면
제 얼굴에 침뱉기라고 생각했거든.
결국
학원이 남의 학원이고
그냥 시간만 때우는게 아니라
내 학원이고
학원의 성공이 곧 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던것 같아...
나는 서른이 되고나서
이런 결심을 했어.
어딜 가든
귄위를 잘 따르자.
무슨 말이냐하면
택시를 타면
택시기사가 권위자야.
말을 잘 들어야지.
그의 경험과 그의 판단을 신뢰하고 존중해야지...
지하실에 가면 수위 아저씨가 권위자고
개집에선
개가 권위자지.
개 말을 듣고
개 입장이 되서 생각해 줄 필요가 있는거야... ^^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권위자들과 친해져.
교수님에게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고 아부하는 것과
교수님의 권위를 존중해주고
교수님의 권위를 세워주는 것은 틀려.
알랑거리는건 대충 때울수 있지만
권위를 세워주는 건
성실하게 채워야 하거든.
즉
댓가가 따르는 일이란 것이지....
그런데
교수님의 권위를 존중하고
내가 만나는 교수님들마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최선을 다해 따라줬더니
선생님들이
생각치도 못한 길들을 열어주시더라구...
평론가협회에 소개시켜준다거나...
한양대에 있을땐 강사선생님께서 한예종에 대해 소개해주시고 한번 써보라고 권유해주신다거나...
아무튼
생각치도 못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들은
다
나의 권위자들이
활짝 열어주신 것 같아.
나는 전혀 의도치않고
그저
최선을 다해
권위를 존중해 준 것 뿐이었는데
그들은
그게 참
목말랐나봐.
중요한건 아부와 다르다는거야.
절대 아부하지마라.
아부에 귀 기울이는 리더라면
따를 가치도 없고
왠만한 실력자라면
아부와 존중따위는 구분할 줄 알지...
그리고 나는
좀 엉뚱하게 착각했던 것 같아.
가는 곳 마다
어른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스스로 착각했거든.
어른들은 나를 좋아한다.
교수님들은 나를 좋아한다.
사장님은 나를 좋아한다.
친구들은 나를 좋아한다....
그렇게...
착각했어.
그런데
이런 착각은 좋은 착각인것 같아.
우리는 항상
윗사람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뜯어먹어려고 한다고 생각하거나
리더는 나를 괴롭히는 존재라고 생각하거나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근데 나는 오히려 깐깐하다고 소문난 리더일수록
더 좋아해.
왜냐하면
그분의 그 원칙을 존중해주면
의외로
마음을 열어주면
화끈하게 열어주시더라구...
친구들아.
근거없는 비판은 없어.
비판은
반드시
근거가 있어.
진짜야.
네가 까는건
정당하니까 까는거야.
그 놈이 욕 먹을 짓을 했으니까 까는거라고...
그러나
내가 하는 말은
비판이 근거가 없어서 문제란게 아니야.
비판의 문제는
비판의 가장 큰 문제는
균형감각을 상실하게 한다는 것이야.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이면이 있어.
어떤 문제상황이 있으면
반대적인 입장이 항상 있다고.
선함이 있으면 악함이 있을 수 있고...
그렇게 컴플렉스한게
우리 인간아닌가?
하물며
어떤 일을 처리해나가는 과정에 있어
긍정이 있으면
부정도 공존하는 법이야.
이런걸 균형있게 보는게
그게 진짜 중요해.
인생의 비결이라고.
꺼야 꺼야 그럴꺼야...
라는 말이 있어.
상대방에게 화가 날때
꺼야 꺼야 그럴꺼야...란 주문을 외우는거지.
그러면
갑자기 이해가 돼.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런 일이 있었을꺼야...
이해하게 되는거지.
근거없는 비판은 없어.
반드시 모든 비판은
근거가 있어.
어떤면에서는 정당해.
정의로와 보이기도 해. 비판하는 것이 말이야.
그게 아니라면
왜 비판할때
통쾌하겠어?
그러나
너는 비판하기에 앞서서
조금만 더 균형잡힌 생각
상대방의 입장.
특히 리더의 입장을 고려해보길 바래.
그리고
그 리더의 입장이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려고 해봐...
의외로
예상하지 못한
성공의 기회들이
주어지는 걸 경험할꺼야.
물론
처음엔
너 혼자 억울하게
일 다 하고...
사람들이
너의 그런 선하고 충성된 마음을
이용해 먹는다고 생각될수도 있어.
그러나
리어 왕의 충직한 신하 켄트가
처음엔 리어 왕에게 욕을 먹지만
리어 왕에게 치명적 위기가 닥쳤을 때
결국
인정받고 존중받는 것이
바로 그
켄트 인 것 처럼.
네가 진실되다면
그 진실은
반드시 인정받게 될꺼야.
위기가 닥쳤을때
빛나는 것이
바로 진실이거든.
특히
네가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반드시 비판을 조심해야 돼.
특히 리더에 대한 비판 말이야.
조직에 있어
가장 해가되는 사람은
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판하는 사람이야.
제대로 된 리더라면
반드시
그 내부의 적을
제일먼저 제거하려고 들꺼야.
그래서
비판적인 사람은
성공할 수가 없어.
근데
너희들이 거부감이 들지않아?
그래
좋아.
근데...
잘못된 걸 어떻하라고?
그럼
모순 투성이인 조직에서
잘못된 걸 따르고 있으라고?
복지부동한채로??
아니.
속 시원하게 말해줄께.
진짜
네가
변화를 추구하는
힘이 있고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조직 안에서 치사하게 그 조직을 뒤에서 무너뜨리려고 하지말고
최선을 다해 충성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정당한 승부.
영혼이 있는 승부로
너의 정당함을 입증하면 어떨까?
혁명가처럼 말이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는 연기학원에 있으면서
획일적이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짖밟는 연기교육에
반감이 있었어.
내가 모르는게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2년간 일했지.
정말 열심히 했다고.
그리고
때가 되어서
나는 레슨 포 케이아트를 창업했고
그때 배운 모든 노하우로
단기간에
내가 일했던 학원보다 큰 학원으로 성장시켰어.
돌아보니
그 조직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일했던게
오히려
내가 나중에
내 뜻을 펼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
내가 그냥
그 조직안에서
비판만하고 있었다면
나는 지금
레슨 포 케아아트를 만들어서
내가 원하는 교육을
실행해볼
기회조차
못 가졌을꺼야...
친구야.
비판은 정당하기에 비판이야.
그러나
비판이 무서운 것은
균형감각을 잃게 하기 때문이야.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히
네가 무슨 일을 맡았다면
네가 학생이라면 교수의 권위를 존중해줘봐.
진심으로
존경해봐.
좀 소문이 안좋고
좀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그 교수의 장점이 보인다면...
단점은 잊고
장정만을 빼먹으려고 해봐.
그리고
네가 충분한 힘이 키워졌을 때
정정당당하게
승부해서
네가 옳았음을
입증해 버리란 말이야.
네가 입증할 때
네 선택은 정답이 되는거니까.
그리고
선인이 있을꺼라고
기대하지마.
기대하는 순간.
사람을 기대하는 순간
너는 반드시
실망하게 돼.
장담한다.
세상에
상처많이 받은 사람들을 보면
반드시
사람을 의지하는 경향이 있어.
근데
너는
너 자신한테
물어봐.
너는 선인이야?
착한 사람이야?
그러므로
반드시
사람에게 의지하지말자.
사람을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지말고
선인과
악인이
묘하게
혼재되어 있는게 사람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마치 안톤 체홉의 작품 속 인물들처럼 말이야.
나도 추한데
남의 추함은
좀 덮어주면 안되나?
그리고
그의 장점만을
내가 취하면 되는거고...
마지막으로 안톤 체홉의 작품을 보면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길을 가.
모두 소통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소통하지 않아.
너는
이걸
인정해야 돼.
미안해.
인간들은
모두
자기 일이 급해.
너한테 관심을 가져줄 여유가 없다는거야.
그러니까
너는
남과 관계보다
너와의 관계 맺는게 더 중요해.
남과의 관계에 끌려다니느라
너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는거야.
그게 체홉작품이 주는 교훈이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섬에 살아.
모두 자기 문제에 열중하고 있지.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게 먼저가 되어야 돼.
무조건 나와는 화해해야 되는거야.
체홉이
갈매기를 두고
코메디라고 불렀거든.
근데
이때의 코메디는
개그 콘서트 식의 코메디가 아니야.
체홉의 코메디는.
갈매기의 시선과 연결이 돼.
즉.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지독한 비극이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희극이라는거야...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뭣 때문에 삐지고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모두가...
조금만 거리를 두고보면
인생은 코메디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체홉이
자신의 작품을 코메디라고 말한게 아닐까?
조금만
멀리서 바라보자.
인생을.
그리고
선인과 악인은 없으며
이상을 꿈꾸는 인간도
속물성을 간직하고 있으니
인간에 대한 기대를 하면 반드시 실망할 것.
그러므로
기대하기보단
각자의 고독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먼저
다가서야 하는 거야.
그리고
권위를 존중하고
충실하게 따르되,
때가되면 푹풍처럼 일어나서
네가 옳았음을 입증해버리는 것.
즉. 자잘하고 비겁한 비판보다는
결정적인 혁명으로
너의 정의를
입증하는 것...
등등을
말해주고 싶어.
나도 많이 배워간다.
정말 단점이 많은 사람이고
실수도 많은 사람이라
미안하다.
그러나
반드시 성장할꺼다.
적어도 우리,
어제보단 나은 사람이 되어서
오늘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지켜봐줘.
지금 나도, 내가 하는 일도...아직 많은 연약함과
실수들이 있었지만
하루하루 더 성장하고 나아지고 조금 더 투명해질 것을 약속해.
지금은 물론 쉣이야. 인정해.
그래도
많은 가능성이 있어. 정말루.
한걸음씩 성장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보자...
그럼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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