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4. 02:10 about, intheatre

하되, 잘하라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을 잘 한다고 했을때 '예술적'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관용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수월성을 갖추어야 한다.

한마디로 할꺼면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입시학원을 하는 원장으로서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만나며

어느정도 첫만남에서부터 앞으로의 장래가 어느정도 가늠이 되는 경우가 많고

실제 결과도 거의 예상과 비슷하다.

 

여기서 좋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경우는 대부분

예술적인 수월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

다른말로 하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이다.

 

어떤 성취를 위해서

투자해야 할 노력이나 과정을

가볍고 허황되게 생각하지않고

진지하게 그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갈것을 충분히 고려한다는 말이다.

 

반대의 경우는 명확하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한다.

어떤 성취를 위한 노력이나 과정에 관심을 갖기보단 막연한 결과와 분위기에 집중한다. 

목표가 추상적이고 분위기에 심취해있지만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술적 분위기는 쫓지만 무엇을 채울것인지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은 빈곤하다.

 

단순하다.

과정에 집중하는 사람이 결과를 이루고

결과에 집중하는 사람은 결과를 이루지못한다.

 

예술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건 

일종의 변태적 행위라고 봐도 된다.

 

고통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무용수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발레리나들의 발가락을 보면 얼마나 오랜시간 훈련에 투자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발레리나들이 그 고통을 즐기면서 하지는 않겠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뿐.

분명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언급했듯 어떤 분야에 일만시간의 법칙을 투자한 사람이라면 그는 그 일을 즐기고 사랑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투덜대고 빌어먹을 이놈의 무용 빨리 때려치워야지 지긋지긋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무용수라 하더라도

그가 일만시간을 무용연습에 투자하고 있다면

 

그는 무용을 사랑하고 즐기고 있는 것임을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거다. 일종의 겸손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다.

 

고통에서 행복을 느끼는게

예술적 성취의 기본이다.

 

무언가를 창작한다는건

무지 고통스러운 일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겠지만

창작의 고통에 비할 어려운일이 많지는 않다.

 

영화 한편을 찍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쉽다.

 

영화를 잘 모르는 학생들

그저 영화적 분위기에만 심취해서 카톡플사나 인스타는 멋지고 아리쏭한 이미지로 채울줄 알지만

실제로 영화를 잘 모르는 학생들은

영화를 낭만적인 일종의 패션아이템같은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영화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영화란 기획단계에서부터 제작단계 후반작업단계를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공방같은 것이란 걸

아는 사람들이다.

 

영화를 알면 알수록

과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만듦새에 집중해서 보게된다.

 

 

예술은 수월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은

교회영화나 군대선전영화같은걸 생각해보면 된다.

만듦새가 형편없는 

수월성이 떨어지는 작품을 그들의 종교적 코드와 맞다고 해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그들끼리 박수쳐주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그들안에서만 통용될뿐

다른 이들에겐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지 않는가?

 

그래서 예술은 메세지보다 형식적 수월성이 일차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예술에서 메세지 역시 중요하지만 (랑그)

 

메시지와 형식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이다.

 

형식이 앞에 서야지

메세지가 빛나게 된다.

 

형식이 떨어지는

좋은 메세지를 가진 예술작품이란

없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저 교인들 사이에서 형제님 자매님 하면서 지들끼리 박수치는

자기위안에 불과하다.

 

형식은 탁월한데 메세지가 부족한 예술작품이 있을수 있을까?

나는 그래도

형식이 먼저고 메세지가 나중이라는 순서만 잘 갖추고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의외로

 

그 유명한 마셔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한 말이 있지않은가?

 

'미디어가 메세지이다'

 

이 말을 바꿔말하자면

형식이 곧 메세지가 된다는 말도 된다.

 

그러므로 형식이 뛰어나다면

의외로 그 뛰어난 형식자체가 메세지가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저 잘 만들기만 한 예술작품 앞에서

우리가 감탄을 하며 저마다 그속에서 메세지를 찾는걸 생각해보면 쉽다.

 

잘 만들면

의외로 메세지가 부차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은거다.

잘생긴 오빠가 숨만쉬어도 무언가 젠틀하고 착해보이고 자기철학이 있어보이는것처럼? ^^

 

그래서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 학생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말이

메세지가 형식보다 앞서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고

과정보다 결과가 앞서도 안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예술을 한다고 결심했으면

반드시

잘 하는 사람이 되도록

피땀을 흘려야 한다.

 

그게 예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입시에 적용해보자면

경쟁률이 높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행복해해야 한다.

각오를 단단히하고

진지하게

과정에 노력을 기울일줄 알아야 한다.

 

합격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날수록

오히려 합격에 가까워진다.

 

과정에 충실하다보면

합격은 저절로 따라온다.

 

영화분야나 연극분야는

일종의 놀이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결국

잘 놀줄 아는 학생을 뽑게 되어 있다.

 

잘 놀되, 

영화를 가지고 잘 노는것.

 

연극을 가지고 잘 노는게 

교수들이 찾는 인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에선 '놀자'라는 단어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거다.

 

한판 놀아볼까?

잘 논다.

좀 놀줄아네

같이 놀아볼까?

좀 놀아봤어?

 

 

이런 말들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경쟁이 치열하다면

오히려 그 경쟁을 뚫는다면 큰보람과 성취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진지하게 과정을 밟았다면

반드시 성장하게 될거다.

 

성장을 성취한다는 면에선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모두 무언가를 성취하게 된다.

 

뜻을 이루든

혹여

못 이루더라도

성장할 수 있다.

 

그러기위해선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

진지한 마음으로 엄격하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

고통속 변태적 기쁨을 누려야 한다.

 

 

다행인건

역설적으로

성취보다 중요한게

성장 이라는게 큰 위안을 준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있는가?

 

성취보다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말 말이다.

 

만약 성장보다 성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영원히 성취하기 힘들거다.

어찌보면 삶에서 진짜 성취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실존적으로 허무한 존재이기에

어떤 성취를해도 그것을 성취하는 순간 성취가 아닌 또다른 시작이 되어 버린다.

영원히 진정한 성취란 없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죽음앞에선 역설적으로 모든 성취는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숀튼 와일더는 <우리읍내>의 에밀리를 통해

죽음을 건너

다시 삶을 관조할때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세상이여....'

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해바라기, 작은 꽃병, 따뜻한 목욕탕, 엄마가 해준 소박한 밥상...

숀튼 와일더가 바라본 삶의 기쁨은

충실한 과정에 있었음을

그는 에밀리와 무대감독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영화든 연극이든

예술적인 작업을 시도해보려하는 학생이있다면

 

그저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하고

실제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도록

행복하게 몰입해보면 어떨까?

 

분명 예술을 바라보는 생각, 입시를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게 되리라 믿는다.

 

연습하는 배우가 아름답고

무대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아름답고

함께 대사를 주고받는 파트너가 소중하고

영화를 찍는 과정이 소중하고

무대위의 따스한 조명이

우리 삶을

빛나게한다.

 

 

이번에 아카데미 대상을 받는 <기생충> 은 제작과정에서부터 유심히 살펴본 작품이다.

이 <기생충> 제작을 발표할때 봉준호는

이번작품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사이즈의 영화를 찍으려고하고

제일 즐길수 있는 소재로 즐겁고 부담없이 찍으려 한다.

밝힌바 있다.

 

역시 영화 <기생충>의 제작 과정을 살펴봐도

그 어느때보다

과정에 충실하고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즐기며

행복하게

함께

한판 재밌게 놀아본걸 알 수 있다.

 

훌륭한 형식이 위대한 메세지를 만들고

충실한 과정이 전례없는 결과를 낳는다.

행복한 몰입이 우리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존재로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우리모두는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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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thea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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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어디선가 우연히 읽게되었는데

이 글이 몇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여기저기서 퍼나르고 있는걸 보아 상당히 많은 논란을 가져온 글인 것 같다.

이 글에 대한 반박에 겸해서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직업의 귀천이나 가치의 차이에 대해 짧은 글을 써보려한다

 

직업에 귀한 직업과 천한 직업이 있을까?

위 글을 쓴 사람은 교수와 청소직원에 대해 암묵적인, 귀천이 존재한다고 하며

특히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

그리고 일용직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

으로 대표되듯

귀한 직업과 천한 직업이 있을수 밖에 없다며,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 쓴 사람은 직업에 대해 지극히 한국 특유의 유교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걸로 보인다.

사농공상이라고 흔히 말하는, 문과 관련된건 귀한 일이고, 노동과 관련된 일은 천한 일이라는 유교적인 계급관념말이다.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와 

일용직 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을 나누는 기준은

문과 관련된 일과

노동과 관련된 일로 쉽게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글 속에는 그런 고정관념이 기저에 깔려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그냥 윤리적인 지향점이거나 그게 올바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시대가 인정하는 직업에 대한 가치는 계속해서 바뀌기 마련이고

한편으로

귀천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건'의 문제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평가하는 직업적인 가치는 그 시대에 따라 매우 급변하며 그러한 변화는 오늘날 특히 극심하다.

예전이라면 깍새라고 부르거나, 요리사라고 부르는 직업들이

수십개 이상의 프랜차이즈를 가지고있는 헤어디자이너로, 또 연예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스타 쉐프로 불리는 걸 바라본다.

위 글쓴이가 언급한 변호사, 의사가 부럽지않은 헤어디자이너와 쉐프들이 즐비한게 오늘날의 변화된 직업적 기준을 잘 드러내준다.

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에서 두각들 나타낸다면, 사회는 그 사람의 실력과 능력을 존중해주는 다양성과 전문성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는걸 알 수 있다.

 

변호사도 영업을 잘하거나, 전관출신이 아니면 예전같지않게 고전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무수하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글쓴이가 예로든 교수야말로 오늘날 가장 몰락한 직업군중 하나이다. 학생수가 급감해서 일부 인서울 대학의 교수들외 특히 상당수 많은 대학교수들이 학생유치를 위해 영업까지도 병행하고 있는걸 흔히 볼 수 있다. 

교수직이 급락중이라는 증거는 과거 신의직장이라 불렸던 대학교교직원의 인기가 급락한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학들이 수입이 줄어드는 바람에 교직원들을 많이 뽑지않고, 또 교직원들의 처우나 근무환경이 안좋아지게되서, 교직원좋은 날 다 갔다는 푸념을 실제 교직원들에게 많이 듣는다.

이렇게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 시대가 선호하는 직업의 가치는 변하기 마련이고

어쩌면 가장 극심하게 변하는게 직업의 가치가 아닌가 한다.

지난 50년간의 변화보다 

앞으로의 10년의 변화가 더 극심할 것이다.

이제는 변호사든 의사든 노동자든 배달원이든, 직업이 무엇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잘읽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사람들. 또 변화를 통해 새로운 직업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로 더더욱 급속하게 진입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일용직근로자나 청소직원이 가치를 덜 인정받는건

그 직업이 원래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직업에 대해 사회가 정당한 '조건'을 주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폄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호주와 유럽등을 다니며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건

그 사람들이 모두가 다 의사, 변호사, 화이트칼라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어떤면에선 화이트칼라직업을 좀 덜 남성적이고 덜 엑티브한 직업으로 오히려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것도 봤다.

운동잘하고 섹시한 몸을 가진 배관공같은 기술노동자가

실제로 여성들에게 더 인기가 있고 마초적인 매력을 풍기는걸 많이봤다.

 

기술직노동자가 섹시하고 인기가 많을 수 있는건

그 기술직노동자도 충분한 보상을 받는 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호주의 기술직노동자에게 화이트칼라 직업을 줄테니 하라고 해도

싫다고 할 것이다.

 

의사가 연봉은 높지만

공부를 많이해야하고 자신에게 긴시간 투자를 많이해야 한다면

 

기술노동자를 선택하면 몸쓰는 일이 자신은 좋고, 긴시간 투자안하고 어린나이에 빨리 직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고, 야외에서 재밌게 일할 수 있고

그러면서 본인 기준으론 충분한 돈을 받을 수 있기에

기술노동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의사와 노동자 중에 선택하라고해도 노동자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의사가 3억연봉을 받아도

기술노동으로도 한 1억만 받아도 

기꺼이 기술노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게 적성에 맞고

체질에 맞다면 말이다.

 

길게투자하지않고 빨리 직업전선에 뛰어들고 절대적인 소득자체는 비교적 적지만 충분히 가족을 부양하고 자기 삶을 여유있게 가꿀 수 있는 적절한 소득이 주어진다면 몸쓰는 일을 기피할 이유가없다. 

교수나 의사가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많은 소득을 받는것이야 당연하지만

 

좀 더 공부에 투자하고 오랜 경쟁에 노출시켜 교수나 의사같은 직업군을 선택하는가는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이지 한줄로 세운 한줄짜리 기준아래 더 잘난 사람과 상대적으로 못난 사람의 줄세우기가 아닌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절대로 개인의 노력을 무시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의사가 3억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공부도 많이했고 투자도 많이했고, 경쟁도 치열하게 통과했으니

의사가 3억버는게 맞다.

 

그게 옳은 사회다.

 

그러나

 

한편으로

 

좀 공부 길게 안하고

야외에서 활동적으로 일하고

 

좀 더 남자답게 몸을 쓰고

기술을 배워서 여러 사람들에게 실용적인 도움을 주기로 선택한 사람도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산다면

 

그 사람들이 한 1억 정도는 벌 수 있다면 ( 1억을 주라는게 아니라, 의사가 3억이라고 했을떄 한 3분의 1정도를 벌 수 있다면 이란 의미로)

 

그 사회는 정말 좋은 사회라 생각한다. 

 

직업은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

 

공부를 잘했고 오랜기간 자신에게 투자해서 많은 연봉을 받고 높은 직위를 갖는 것도 존중되어야 하고

그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해야 하며

오히려 사회가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성취를 이뤄나갈 수 있도록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격려하고 보상해줘야 한다.

 

한편으로

공부엔 소질이 없지만 또다른 자신의 길을 찾아

사회 구석구석에서

고귀한 소금같은 일을 해주는 사람이 되는걸 선택한 이들 또한

단순히 '직업적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글쓴이가 말한 가치가 덜한 것으로 나열한 일용직 근로자, 대리운전기사, 청소직원 또한

너무나 사회에 필요한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택배서비스를 생각해보면 쉽다.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있는 한국택배서비스의 이면엔

하루 배달 300건, 집하 약 300건을 맞춰야 겨우 몇백남기고 거기서 기름값이나 온갖 운영비를 다 제하고서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택배관련노동자들의 심각한 처우문제가 있다.

이렇게 일을 시키고 이렇게 일을 해내야만 유지되도록 만들어진 환경에서

이 정도의 소득밖에 주지않기에

택배노동이 귀한 일로 취급받지못하고 있는거다.

택배노동 자체가 귀하지않은 일이 아니라

심각한 노동불균형이 택배노동을 천한 일로 폄하시키고 내모는것이다.

 

반면 대학교수의 경우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한국 대학교수들이야말로 세계 최저의 투자대비 효율성을 자랑하는 직업군이 아닌가 한다.

 

하루빨리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야 되는데

별다른 노력없이도 일단 자리만 차지하게되면

수십년동안 편하게 먹고살 수 있게되니

그 직업이 귀한 직업이 되는것이지

원래부터 교수가 귀한 직업인건 아닌것이다.

 

앞서 택배서비스의 처우문제를 이야기했을때,

아 그럼 택배배달부도 돈 팍팍주고, 교수도 팍팍주면 당연히 모두가 좋지, 그러나 그게 현실적이냐?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교수이야기를 한거다.

경쟁력이 없는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비효율성을 없애고

그 비효율성이 실제로 경쟁력을 갖춘 직업군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직업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 어디서든 택배배달부보다 대학교수가 더 좋은 직업으로 평가받는건 당연하다.

길게 공부를 해야하고, 좋은 대학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춰야 대학교수를 할 수 있으니까.

(한국은 전혀 그렇지않지만)

세계적인 석학이 단순노동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건 오히려 불평등일테니까

그러나 그건, 투자대비 적성의 문제일뿐  

본질적으로 직업적 귀천의 문제는 아닌것이다.

 

 

 

특히 더 안타까운 건

이런 사회적 구조속에서 

너무 쉽게 사농공상적인 태도를 학습하고 받아들여버리는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더더욱 안타깝다.

 

왜 사회가 강제로 부여한 말도안되는 기준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버리는가?

 

 

왜 모두가 대학을 억지로 가야 하는가?

전세계에서 대학진학률 1위라는건 자랑이 아니라 비정상이고 기형이다.

그만큼 이 사회가 아직도 사농공상의 계급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이지 않은가?

 

대학 안가도 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이 사회는 너무도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비교하고 줄세우고 있다.

남자는 어째야되고 여자는 어째야되고, 결혼하려면 뭐는 해야되고, 직업은 어때야되고, 외모는 어째야되고........

숨막히는 비교와 획일적 기준과 그것을 강요하는 문화야 말로

이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이다.

 

 

별로 이상적이고 복잡하고 어려운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가치를 인정해주라는건 복잡한 이념적인 어떤 지향점이 아니다.

 

그냥

 

'정당한 대우'만 해주면 된다.

 

일용직노동자도 충분히 만족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고 노후를 생각할 수 있는 대우,

대리운전기사도

청소직원도.

 

글쓴이가 언급한 청소직원의 경우가 그 증거다.

 

구청에서 공무원으로 청소직원을 인정해주고, 노동의 안정성을 주고 공무원의 대우를 해주니

청소부가 인기직업이되어 실제로 대학졸업자뿐만아니라 석사이상 명문대출신들도 청소부를 지원했다는 기사를 우리는 본적이 있다.

 

청소부라서 가치가 없는게 아닌 것이다.

사회가 그만큼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에

그 직업이 천함을 억울하게 '덮어쓴' 것일 뿐이다.

 

청소부하는데 월 700주고 정년까지 일하고 연금도 준다고하면

하겠냐 안하겠냐?

개인적으로 

나는

한다.

 

지금하는 일 때려치고

지금 바로!

 

글쓴이 처럼 귀한 사람으로 귀한 가치를 억지로 인정해주고 '에헴'하면서 존중을 억지로 쥐어짜낼 필요없다.

 

돈을 많이주면 된다. 

 

가치를 인정해주는게

존중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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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thea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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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g 2020.02.23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네요 너무..

  2. 권재 2020.04.26 1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입니다. 언제쯤 그런 세상이 올까요.
    그런데 진입장벽도 고려되야 할 것 같아요.
    한국도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블루칼라는 대우가 좋지요..
    택배, 청소는 사실 맘만 먹으면 아무나 할 수 있기에
    인구가 지나치게 많아진 현대사회에선 쉽게 대체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저임금을 받으면서라도 해야하는 것 같아요. 먹고 살려면.
    심지어 드론, 청소로봇까지 나오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들의 교섭력을 키우기 위해 직업이 없어도 굶어죽지는 않게 해줘야 할텐데 아쉽네요..

    • intheatre 2020.04.27 2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의 차이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믿습니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인공위성은 처음부터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도달하는게 아니라

어느 정도 목표지점을 타켓으로 잡고 일단 날아간뒤

정밀한 목표지점을 수정해나가며 결국 정확하게 우주의 한구석 목표지점에 닿는다고 한다.

이 인공위성이 날아가는 과정을 생각하며 글을 써본다.

 

1. 내 삶의 방향성과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항상 염두에 두라

 

 

인공위성이 우주 한 공간 목표지점을 향해 날아갈때. 가장 두려운 일은 '궤도이탈'이다.

 

피더 드러커는 '10년후와 10분뒤를 동시에 생각하라'

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바쁜 일상속에서 또는 인생의 큰 변화속에서 (예를들면 취직이나 육아등)

그 변화속에 함몰되어서 목표와 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냥 되는대로 살기가 너무 쉽다는 말이다.

입학하고난뒤

취직하고난뒤

결혼하고난뒤

아이가 생기고 난뒤

이렇게 무언가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고난 다음이

오히려 위기라고 본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일상 속에서 무언가 큰 목표를 상실하고 훨씬 더 거대한 잠재력을 가졌는데 그걸 다 못채우는 경우가 많다.

나는 축구게임 FM(Football manager)을 즐겨하는데 요즘엔 중독될까봐...또 제대로 즐기기엔 시간도 많이 빼앗기고, 가상구단을 경영할 노력으로 현실의 경영에도 시간이 없이 허덕이느라 잘 못하지만

학교다닐때 방과후에 치킨시켜놓고 FM한판 때리면 세상에서 그것보다 행복한 시간은 별로 없었던거 같다.

FM게임에선 재밌는 개념이 있는데, 어빌리티와 포탠셜로 선수의 능력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어빌리티는 현재 드러난 능력이다.

포탠셜은 그 선수가 가지고있는 최대 능력치이다.

예를들어 메시같은 선수는 포탠셜이 199 (199만점) 어빌리티가 199다.

그냥 현존 최고의 선수란거다.

 

FM을 많이 하다보면, 팔카우falcao 콤파니kompany 반더바르트van der vaart 이런 애들이 세계적인 선수가 된걸 보면 꼭 내가 키운거 같다. 

잠재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임에도 훈련을 제대로 해주지않거나 히든스탯 (성실함, 적응력, 부상빈도 등)이 좋지않으면

자신의 잠재력을 다 채우지못하고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버린다.

 

반대로 포탠셜이 아주 높지는 않은 선수라 하더라도

적절한 훈련과 히든스탯이 높으면 유명팀의 주전선수로 충분히 활약할 수 있게된다.

 

내 인생에도 포탠셜과 어빌리티가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나는 과연 내 포탠셜을 다 채우고 죽는 사람이 될까?

이런 생각이 든다.

내 포탠셜이 반드시 높아야할 이유는 없으나

최소한 내 포탠셜만큼은 어빌리티로 다 채우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매일 그렇게 다짐을 한다.

 

이런 개념을 갖고 생각을 해보니 중요한 고비들을 넘기게 되는 힘이 생기더라.

 

책을 내는게 힘들지만 내 삶의 포탠셜을 채워보자 란 생각으로 버티다보니 책을 출판하게되고

(작년 한해 꽤 팔렸더라? 너무 놀랍고 큰 힘이 되는 일이다)

대학원을 다니는게 힘들지만 역시 포탠셜을 채워보자는 생각으로 버티게 된다.

 

FM게임 안에서 히든스탯을 정확하게 확인하거나, 포탠셜을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에디터를 쓰지않는이상 정확한 수치를 알수는 없다. 스카우터를 통해 간접확인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우리 삶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삶의 포탠셜은 어디까지일까?

 

절대 현실에 만족해선 안되고

더 큰 목표 더 거대한 욕구 더 거대한 잠재력을 향해

항상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aiming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내 삶의 포탠셜은 다 채우고 생을 마감해야 그 삶이 후회없는 삶이 되지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조금만 더 버티고 조금만 더 참기만해도

 

나는 글을쓸때 했던 말을 또하고 했던 말을 또하는걸 매우 좋아한다.

그게 좋은 말이면 몇번이고 계속해서 써도 계속해서 새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말 조금만 더 버텨야 한다.

조금만 더 참아야한다.

 

무언가 성취되는 지점. 그것이 합격이든 취직이든

그 지점은 보통 100이 아니다.

51이다.

51은 100을 얻고

49는 하나도 얻지못하는게 법칙이다.

 

어떤 기준을 통과하면 합격이고, 합격은 모든 것을 얻은거고

어떤 기준을 통과하지못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거다.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사법고시 합격은 합격이고

불합격은 0과 동일한 것과 마찬가지다.

불합격은 불합격일뿐 더 높은 불합격이 없다는게 인생의 아이러니다.

 

50이란 기준을 넘어서면 무언가 성취한다고 했을때

보통 가장 크게 좌절하는 구간은

40~49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그 아래는 아예 현실성있게 성취를 생각하지도 않기때문에 좌절도 크지않다.

 

그러나 그 목표가 눈앞에 있을수록

그런데 그 목표가 이뤄지지 않을수록

우리의 좌절은 크다.

 

48을 해놓았는데

이제 3만 채우면 되는데

 

포기해버리고마는 48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조금만 더 버텨서 3을 채워 50을 넘어서게 되면

51을 얻는게 아니라

100을 얻는다는걸 기억하라.

48에게 3이 더해지면

51이 아니라, 100을 얻게된다.

 

그러나 48이 포기를 하면

그냥 0가 되는거다.

 

조금 더 버티고

조금 더 참고

 

그건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조금 용납못할 일들이 있어도

그 관계의 끈을 놓치않고 참고 계속해서 소통하다보면

세상에 이해못하고 용납못할 일이나 사람이

그렇게 많지않다는걸 깨닫게된다.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의 끈을 놓지않다보면

어느순간 그 사람이 생각치도 못한 기회를 가져다주는 경우를 너무 많이 경험해왔다.

 

 

 

3.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이면 충분하다

 

나는 일이든 개념이든 단순화시키는 걸 좋아하는데

실천가능한 일도 매우 단순하게 만들어서 실천한다.

내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나는 항상 '어제보다 오늘 단 1개라도 발전하자'

는걸 목표로 삼아

무엇이든 하나라도 어제에 비해 발전한게 있으면 1점을 준다.

그리고 그걸로 만족하고, 오늘하루 충분히 수고했다라며 보상을 듬뿍준다 (맛있는음식이나 휴식, 수면, 맘껏놀기 이런거로)

어제까지는 못했던 미뤄왔던 일을 오늘 한게 있으면 그것도 발전이므로 1점.

꼭 연락해야 할 고마운 분에게 연락을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 연락했다면 1점.

밤에 야식안먹기로 했는데 오늘하루는 식사를 건강식으로 잘 챙겨먹었고 9시이후엔 음식에 일절 손 안댄것도 발전이므로 1점

독서한 건 전부 1점

부모님께 선물드리고 안부전화드린 것도 좀 더 나은 인간이 된거니까 1점.

 

이렇게 종목, 중요도 따지지않고 무엇이든 어제보다 발전한 무언가가 있으면 1점을 준다.

그리고 두둑한 보상을 준다.

 

요즘 독서에 재미들려서 일주일에 거의 10권이 넘는 책을 읽고 있는데

최근에는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조던 피터슨 역시 4번째 법칙에서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

라는 말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일의 유익함을 말하고 있다.

 

조던 피터슨의 책과, 최근에 읽은 '그릿' '리더의 용기' (브레네 브라운) 와 같은 좋은 책들은

곧 정리해서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려 한다.

 

내가 독서에 취미를 들이게된 좋은 계기가 있었는데,

어렸을때 아버지께서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내게 스스로 공부를 했으면 얼마를 했건 500원을 주시기로 하셨다. 

나는,

'책 읽은 것도 공부로 치나요?'

라고 물어봤을때

'당연하지!' 

라고 아버지께서 대답하셔서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없었다. 좋아하는 놀이인 책읽기를 마음껏해도 용돈을 받을 수 있다니 말이다!

그래서 정말 원없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유년시절부터 길러온 책읽는 습관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내 삶에 거대한 유익과 돈으로 바꿀수없는, 심지어 어떤건 돈으로도 바꿔지는!! (인세를 받아보니 작은 돈이지만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다. 정말 기쁜 일이다) 그런 유익함을 한가득 안겨줬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삶에 질서가 생겼다는 뜻이고, 여유가 넘친다는 증거이다.

 

보상은 후해야 한다.

그리고 성취한 일이라면, 크고 작음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주는 선물이

작은 선물이건

큰 선물이건

모두 나를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

 

사소한 일에서라도 어제보다 오늘 발전할 수 있다면

그런 발전이 쌓일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성장해있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너무 큰 목표를 세우고 너무 다양한 목표를 여러개 세우면

성취되지 않은 목표들이 자꾸 미래에 성취해야 할 더 중요한 목표들의 발목을 잡는다.

 

저것도 못했는데 뭘 성취했다는건가... 이렇게 채념하고 포기하기가 쉽다.

 

그래서 무엇이든 크건 작건 성취하고 변화되었다면

후하게 보상을 주는 습관은

실제로 내 삶을 크게 바꾼 좋은 습관이라 생각한다.

 

 

 

 

 

 

서두에 말한 인공위성을 다시 생각해보자.

저 우주의 망망대해 한 구석 어딘가에

기계덩어리를 정확히 날려보내야하는 일.

그 일을 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일단 방향이 맞아야하고

궤도이탈하지않도록 계속 가고있는 방향을 생각해야 하겠지.

 

그러면서도

조금씩 정교하게 궤도를 잡아 마침내 목표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디테일 역시 잡아나가야겠지.

 

목표와 현실.

두가지를 동시에 생각할때.

우주 한구석에 정확한 내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음을 믿는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살아보자.

 

 

 

 

Posted by inthea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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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독자1 2020.02.16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텐셜은높을거라고 믿기로한 1인입니다
    치킨시켜놓고 fm때리는행복을 말할 때 저도 콧물닦으며 웃던때 생각하면서 행복했네요
    1점씩 꾸준히 쌓아서 51점도 넘고 포텐셜에도 닿고 하지만 작은 오늘에도 행복을 놓치지않기를 다짐하게되네요 오늘따라 동네형이 등두드려주신거처럼 더 찡합니다요

    • intheatre 2020.02.20 0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저는 저 자신의 포탠션은 낮아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높으면 좋겠지만 낮다 하더라도 저는 행복할 거 같아요.
      하지만 제가 가진 포탠션을 채우지못하는 삶은 반드시 피하고싶어요.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도전하기를 쉬지않고자 합니다. 같이 서로의 포탠션을 풀포탠션으로 채워봅시다 :)

2020. 2. 2. 04:31 about, intheatre

진짜자유

 

진짜 자유는 구속에서 온다.

자유에 대한 착각이 때론 우리 삶을 그르친다.

자유에 대한 올바른 생각만 정리해도 변화된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떠한 면에서 그런지 몇가지 유형을 나눠서 이야기해보려한다.

 

1. 훈련

 

가장 먼저 진짜 자유는 엄격한 통제에서 온다. 그것을 우리는 훈련이라고 부른다.

예술을 하는 우리에겐 특히 절실히 와닿는 단어일거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소개해서 유명해진 개념인 '일만시간의 법칙'이 바로 그러한 좋은 예이다.

진짜 탁월함은 오랜 통제와 훈련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런 면에서 엄격한 훈련 속에서

진정한 자유함을 맛볼수가 있다.

피아니스트가 엄격한 훈련을 통해 연주 속에서 자유함을 맛보고

축구선수가 오랜 훈련 속에서 공을 컨드롤할 자유를 맛보는 것과 같다.

자유에도 수준이 있다는 걸 아는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멋대로 행동하고 아무런 제약없이 살아가는 면에서의 자유는 방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장 수준이 낮은 형태의 자유이다.

왜냐하면, 낮은 자신의 수준이 전혀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업그레이드가 되지않았는데, 자유롭게 인생이란 맵을 헤집고 다녀봐야 그게 그거다.

더 깊은 던전을 들어가기위해선 몬스터를 잡고 경험치를 쌓는 훈련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기위해

역설적으로 자유를 제약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훈련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입시를 대하는 태도도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더 재미가 있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학교가 경쟁이 치열하면, 그래서 더 도전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경쟁이 치열하다는건 그만큼 내가 도전할 여지가 더 있다는 것이며, 나를 성장시켜줄 여지가 더 크다는 걸 증명한다.

이러한 경쟁이 싫어서 쉬운 길을 너무 쉽게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 쉬운 길. 빠른 길이라 포장하는 길은

항상 가장 멀리 둘러가는 길일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가장 힘들어보이는 산이

가장 빨리가는 지름길일 경우가 많음은 수많은 전쟁의 역사가 증명해왔다.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 초기에 강대국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대담하게 진격. 최단기간을 쉬지않고 달려가 점령해버려

전세계를 충격속에 빠뜨려버린 것이 이를 잘 입증한다.

아무도 거대한 강대국의 수도 한복판으로 곧바로 진격해버리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 충격은 거대했다.

 

힘겨운 목표를 만난다면

어찌보면 가슴이 뛴다.

그 목표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성장시켜주고

나를 더 놓은 단계로 이끌어줄

진정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2. 친밀감

 

그런데 이러한 자유의 역설은 관계에서도 온다.

관계역시 구속에서 진정한 자유가 온다는 걸 아는가?

 

진정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를 관계속에서 구속함으로

진짜 친밀감을 맛본다.

 

사람들 사이의 진짜 깊은 관계는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맛볼수가 없다.

 

어찌보면 사랑이란

너의 자유와

나의 자유를

서로에게만큼은 양보하고

서로에게 단단히 구속하는 것과 같다.

 

끼르띠에의 유명한 팔찌인 러브팔찌는

까르띠에 드라이버로만 풀 수 있다. 

손으로 열어서 풀수가 없다.

어쩌면 서로에게 관계적 족쇄를 채운다는 상징이 들어있다.

막 시작한 가슴뛰는 연인들은

이러한 구속을 슬픔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기에 비싼 돈을 주고 이 팔찌를 구입하는 것이 아닐까?

 

진짜 관계적 풍성함, 관계적 친밀감 역시

구속에서 온다.

 

수많은 사람을 의미없이 만나면

오히려 그 n분의 1만큼 내 삶의 풍성함이 축소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의미없이 상대하는게

힘든 일이라 우리는 감정노동이라고까지 부르지 않은가?

 

사랑의 관계도 이와같다.

황제가 수천명의 후궁을 뒀다면

그건 수천배의 친밀감을 나눈게 아니다.

어찌보면 수천분의 1의 친밀감속에서 

불행하게 허덕인 것은 아닐까?

 

나 개인적으로는 수천명의 연락처를 지우고,

페이스북 수천명 친구들을 끊고 난뒤로

주변 지인들은 아날로그적으로

약속잡고 얼굴보고 만나서 이야기하는걸 선호한다.

 

나는 일부러 관계를 축소했지만

축소되었기에 더욱 관계적 풍성함을 누리고 있는건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다.

 

 

 

3. 사명과 헌신

 

몰입속에서 훈련속에서 자유가 있다고 말했고

이러한 구속이 관계적으로도 적용될 수 있고 그 관계적 적용이 사랑의 관계에서 또는 주변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풍성한 관계로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구속의 자유적인 측면은

사명과 헌신의 영역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내가 가야할 길

내 목표

내 사명

너무 거창한 사명을 말하는게 아니다.

사명이란 단어는 거창한 단어가 아니다.

아주 작게

세탁소를 운영해도 그 속엔 사명이 있을수가 있다.

작은 라사를 운영하며

다림질 하나에도 사명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장인이라고 부른다.

그런 장인들이 많은 사회가

튼튼한 사회이고, 기초가 튼튼한 사회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가르칠때 사명을 가질 수 있고

약사는 약을 처방하며 사명을 가질 수 있다.

 

사명없는 배우는 너무 가벼워진다.

 

무대는 그런면에서 마법의 공간이다.

 

참 이상하게도

그저 아무의미없이 무대위에 서는 배우는 티가 난다.

 

그래서 난 무대를 사랑한다.

 

무대는 사명이 없이는

단 1초도 버틸 수 없는 마법의 공간이요

검증의 공간이다.

 

사명을 찾으려 노력하는 예술가는

그 자체로 숭고하다.

 

우리는 숭고한 예술가를

만나고 싶어한다.

 

이렇게 내 삶을 어떤 뚜렷한 사명, 혹은 헌신된 삶의 영역으로

계속해서 집중시키고

구속시키고

몰입시키는 것.

 

삶이 그저 살기위해 허덕이는 상태로 방치되어있지 않고

더 숭고한지점을 향해 집중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사명 혹은 헌신이라고 부른다.

 

 

4. 구속을 통한 진정한 보상, 인정

 

결국 진짜자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구속에서 온다.

그것이 훈련이든, 관계적 구속이든, 사명과 헌신의 영역이든 말이다.

 

이러한 구속에서 우리는 진짜 보상을 맛본다.

 

인생의 깊은 맛이라고 할까?

 

정말 깊은 맛.

 

자극적이지 않고 인스탄트가 아닌

정말 깊은 맛 말이다.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는

아이에게 자신의 삶을 

때론 눈물날 정도로 힘겹게 구속시키고서야

엄마의 깊이에 도달 할 수 있다.

 

그 절대적 구속이

엄마와 아이라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엄마가 된다. 혹은 아빠가 된다라는 인생의 깊은 지점은,

절대적 헌신과 구속의 시간이 없다면 성립하지 않을 지점이다.

 

일에서 오는 보상도 그렇다.

내가 오래도록 헌신하고 매일의 나를 구속시켜 온 시간들이 쌓여서

그 일에서 보상이 나타나기 시작할때

우리는 깊은 보람과 기쁨을 얻는다.

 

영화를 찍는다는건 그런 과정을 겪는 것이다.

한 영화를 만들기위해 너무 많은 노력과 수고가 들었기에

그 영화가 주는 기쁨도 크다.

 

졸업도

책 한권을 내는 것도

논문도

다 그렇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결국 이런 인생의 단계들에서

매듭짓기를 잘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을 구속시켜

어떤 단계를 잘 마무리하는데서 기쁨을 얻고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갈 줄 아는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학위라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책을 내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논문을 쓰는 단계를 마무리하고

크건 작건

한겹 한겹씩

삶의 단계들을 매듭지어가며 전진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어찌보면 깊은 단계의 자유를 맛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사람이 못되었기에 ^^ 그렇게하지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새벽에 글을 쓰고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새로운 책을 내는 것은

내게는 작은 구속이고

매듭짓기이며

나는 글쓰는 이 순간들을통해

참 많이 성장해왔기에

나는 글을쓰고 책을 내는 매듭짓기를 통해

삶의 또다른 깊은수준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거다.

 

 

5. 겸손함

 

진짜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진짜 자유는 구속에서 온다.

 

이런 자유의 모순된 특성은

결국

겸손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지인중에

 

어떤 아저씨^^를 예로들어보면

이 겸손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모대학 경영학과교수님으로, 박근혜탄핵때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하셔서 유명해지신 분이시다.

사회적으론 대통령 앞에서 권력앞에서 불의함에 굽히지 않으신 분으로 언론에 많이 나오신 분인데

그분과 개인적으로 친해서 그분의 집에서 자주 식사를 하곤했다.

교수님이 국수를 직접 삶아주시곤 했는데

어느날은 중면을 안사와서 사모님에게 쿠사리?를 먹는걸 봤다.

'여보 소면이 아니라 중면이라고요 중면.  이번 국수는 꼭 중면으로 사오셔야돼요'

어이구야 하면서 아파트에서 나가

국수를 사러나가는 교수님의 뒷모습에서 

왠지모를 즐거움이 느껴졌다. 무언가 삶의 깊은 즐거운 지점이 느껴졋다.

 

불의앞에선 대통령앞에서도 굽히지않으시는 분이

스스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저렇게 성실하게 스스로를 구속하시고

그속에서 진짜 깊은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구나.

 

어제 대통령앞에서도 굽히지않고 법정에 섰던 사람이

오늘은 아내에게 한소리 들으며

중면을 사러 슈퍼를 가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그게 참 근사해보였다.

 

겸손함이란

힘이 없음이 아니다.

 

힘이 있음에도

스스로를 구속시키고

가치있는 더 작은 영역

더 작은 분야

더 작은 세계속에

나를 밀어넣을 수 있는게

바로 

겸손이다.

 

 

진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스스로 구속시킬줄 아는 것.

그 겸손함 또한

진짜 자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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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g 2020.02.05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되고 학생인 저에게 다시금 자극시켜주는 글이네요! 더 많이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2. 독자1 2020.02.05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로는 대비되는개념이 실제로는 연장선이라는 게 신기할때가있어요. 제 생각도, 오류로 보이는 어느 것들도 그러겠죠? 자유든 사랑이든 성취든, 중요한것을 선택하고 아까워하지않는 용기가있기를:) 좋은글 감사하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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