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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서 벗어나라카테고리 없음 2020. 7. 6. 06:37
우린 교육과잉의 시대에 살고있다.
어찌보면 지나칠 정도로 '교육'에 의지하는 현상은 한국사회만의 두드러진 특징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를 가보면 확실히 교육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이 많이 떨어져있다.
대학진학이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않는 사람들이 많고
미네르바대학과 같은 혁신적인 사이버대학들이 기존 명문대학들보다 더 위에 올라가는 현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대학이 네 밥 벌어 먹여주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라.
교수는 네 밥 벌어먹여주지 않는다.
최근 일어난 (사실 최근이랄것도 없고 계속 반복되는 일이지만)
스포츠계 폭행자살 사건을 봐도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하관계, 인맥구조가 실제 스포츠현장에 까지 이어져있는 걸 알 수 있다.
연극영화과 성추행문제도 대학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이며
자살한 연기자출신 교수도 지방에서 '대학' 교수를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성추행문제로 7년형을 선고받은 유명연출자도 여러 대학에서 심지어 명문연극영화과라고 하는 동국대에서도 교수를 한적이 있다.
대학원 교수가 제자들의 연구비를 횡령하거나 갑질을 일삼는 일은 너무 흔해서 공장에서 찍어내는 뉴스로 여겨질 정도이다. 그냥 폭넓게 만연해있어서 갑질을 당하면서도 '원래 그렇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판국이다.
이쯤되면 우연의 일치이거나
한두번 특정 개인의 이탈 문제로 보기에는
표본집단이 너무 광범위하고
'대학'이라는 공통점이 너무 뚜렷하다.
그냥 단순하게 말해서
대학이 문제인거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대학중심이 문제인거고.
대학이 문제다.
대학중심은 더 큰 문제다.
나는 연극영화과 분야가 대학중심으로 돌아가는 걸 반대한다.
학생들을 보면
대학교수라고 하면
지나치게 굴종하려 하는데
기억하라.
교수가 니 밥 벌어먹여주지 않는다.
교수는 지 밥 먹고 싶어한다.
그러니 말이다.
네 밥은 네가 먹고살 힘을 키워야 한다.
이게 오늘 포스팅의 핵심이다.
배우려하는 태도 자체가 나쁜건 아니지만
한국사회의 희한한 시스템아래서
학생들은 모든걸 다 남에게 배우려고만 하는게 문제인거다.
왜 남에게 배우려고 하나?
공부는 네가 스스로 하는게 더 중요하다.
꼭 사람에게만 배워야하나?
정보의 시대에
정보가 온 세상에 널려있는데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찾아내고 만들어낸
그 능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학에서 배우면
이미 늦다.
그러니
네 살길은 네가 스스로 찾아야한다.
스스로 찾아보라고 하니까
그게 전혀 훈련되어 있지않고, 토론이나 사고나 개척이나 모힘이
훈련되어 있지 않으니까
너무 지나치게 두려워 한다.
예를들어
대학원까지와서도
무언가를 자꾸 가르쳐달라고 한다.
네가 연구하는 분야를 정하고
그 연구를 하면
내가 도와줄께
라고 말하면
대학원까지 온 학생들이
싫어한다.
가르쳐달라는거다.
그래서 대학들도 학생들의 수요가 있으니
자꾸 MFA과정등을 만들어
또다른 학부과정처럼 운영하고 있다.
좀 어린 학부생
좀 더 늙고, 전공을 뒤늦게 찾은 학부생
이렇게 되어있다.
이런 현실을 비판하는게 아니다.
배우고자 하는 태도나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지않은가?
나는 배우려고 하는 이런 태도가
한국사회의 저변을 만든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우려는 태도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배우는 방식이 너무
획일적이고
창의적이지않고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지나치게 의존적이라는데 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가 몇 차 산업혁명이라고 말하든 그게 4차건, 5차건, 6차건
몇 십차 산업혁명이 온다고 해도
바뀌지않는 미래의 경향이 있다면
그건
의존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는 사실이다.
의존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특히 예술분야는 더욱 그렇다.
스스로 헤쳐나갈 힘이 없으니까
대학이라는 울타리속으로 기어들어가려 하는건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이렇게 생각해보자.
좀 멋대로 살아보는건 어떨까?
좀 멋대로 공부해보는건 어때?
꼭 대학진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서
여행도 공부고
독서도 공부고
때론 입을 닫고 깊은 침묵속에 빠져서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도 공부이다.
사실 공부란 단어가 싫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 = 학습을 통해 배우는게 아니라
내 생각에 앞으로의 시대를 이끌어갈 사람들은
창작을 통해 배우는 점이 크다.
창작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 이긴다.
무언가를 계속 생산해내는게 최고의 학습인거다.
그러니까 배우려고 하지말고
생산하는 법을 찾으면
그게 가장 경쟁력이되는 사회를 살고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채우는거 없이 빈곤한 철학위에서 생산하기만 하면
그 또한 낭비란 사실이다.
충분히 스스로를 채워가는게 창작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변 삶에 대한 관찰과 호기심, 그리고 사람들과의 소통,
특히 우리 인간의 삶을 빛내온 거대한 유산들과의 만남이 중요하다.
흔히들 고전이라고 부르는 책들
읽는게 필요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창작을 채워주는 연료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를 만나보고
클래식음악을 통해 베토벤도 만나보고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도 보고
유럽의 거대한 박물관도 가보고
호주의 거대한 자연과도 만나보고
하나의 작은 예를들자면,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을 이용하는것도 매우 좋다.
영상자료원에가서
영화를 보거나 세미나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런 식으로 대학을 벗어나서
스스로 나 자신의 연료를 채울 줄 아는게 중요하다.
그리고
연료만 채우면 뭐하겠나? 그냥 똑똑한 사람이 잘사는거 아니예요? 마음의 양식을 채워야죠
이렇게 추상적으로 생각하지말고
연료를 채웠으면 뭘해야하나?
달려야지!
창작을 해야지.
뭐든.
그래서 연료 + 창작의
과정이 잘 만들어진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라고 확신한다.
연료를 채우는데 인색하지않고
그 과정에서 기쁨을 찾으며 (독서는 기본이다)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자꾸 만들어내고
자꾸 스스로 생산해내는 능력까지 갖춰가는 사람들이
이기는 시대를 살고있다.
이런 자연스러운 능력은 대학이 키워주는게 아니다.
대학은 오히려
너를 움츠려들게하고
사실, 크게 배울 것도 없다.
대학강의 몇개 들었다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리라고 생각하나?
그런데 신기한 사실 하나를 알려주면
위의 구조 (스스로 연료충전 + 창작을 통한 표현과 생산)
이 잘 갖춰진 학생이
입시성과도 가장 좋다는거
연극영화분야에선
명문대학을 진학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다.
앞뒤가 중요하다.
대학을 가기위해서 연료주입 + 생산을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스스로 찾아내고 스스로 실력을 키워가다보니
그런 스스로의 것들을 가지고
그냥 지원해봤더니
오라던데?
그래서 가는게 대학이 되는게 올바른 순서란 거다.
대학을 가는건 굳이 배우려고 간다기 보단
친구들도 만나고
비슷한 관심사의 사람들도 만나고
내 실력도 객관적으로 검증받아보고
말그대로 UNIVERSITY니까
더 큰 세상에서 더 재밌게 놀려고
간다.
이게 올바른 순서하고 생각한다.
교육에서 벗어나라.
스스로 찾고 연구하고 스스로의 분야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라.
그러면 거대한 보너스가 있는데
먹고사는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어질 강한 능력을 갖추게된다.
위 시스템을 잘 갖춘 사람이
잘먹고 잘사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대학이 밥먹여주는게 아니라
스스로 밥먹고 살아야되는 시대인거다.
연료주입 + 생산 + 자본
이 3가지가 세트처럼 붙어다니게 해야 한다.
너 스스로를 채워나가고
채운거로 생산하고
생산해서 네 분야에서 독보적인 아이템과
독보적인 실력을 키우다보면
교수보다 네가 더 많이 벌고
네가 더 인정받고
네가 더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을테니까
너무 대학대학할 필요없다.
두려워하지마라.
생각보다 너의 아이디어는
쓸모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걸 지금 바로 해보는게 어떨까?
교육을 받고나서 만드는게 아니라
지금 바로 해보는거!
각자 밥벌이는 각자 하도록 하자^^
교육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교육을 가장 잘 받는 사람이되는
역설적인 현실인 거다.
과감하게 교육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배울 줄 아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세상을 우리는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