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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한 장면
얼마전 언론에 오랜만에 나타난 잡스를 기억하는가? 췌장암 말기라는 추측에...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 그 잡스가 멀쩡하게 나타나 아이패드 2 발표를 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정색 터틀넥에 청바지도 옛모습 그대로였다.
그날 잡스는 작정한 듯 삼성전자를 비판하면서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은 우리식 표현으론 '짝퉁', 즉 잘된 모방에 불과하다는 독설을 내뱉았다. 그러면서 잡스는 그들 후발주자들과 애플이 다른 한가지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단어를 언급하며 말했다.
liberal art.
그렇다. 바로 우리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그 단어. 인문학이다.
잡스는 이날 아이패드 2를 발표하며, 자신들의 작품은 디자인과 기술, 인문학과 예술이 결합되어 있기에, 그 기술적인 면의 껍데기는 따라잡을 수 있을지라도 애플이 가진 인문학적 가치와 영감은 절대로 모방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 시대의 아이콘인 잡스가 스스로의 가장 큰 경쟁력은 거대한 자본도, 넘치는 카리스마도, 세계적인 이름값도 아닌. 인문학적인 가치라고 언급한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그의 언급에 주목해야 한다.
예술교육에서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그동안 꽤나 들어왔을 것이다.
오늘 이 짧은 지면에서, 다시 또 그 뻔한 사실을 재탕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문학이긴 인문학인데, 정확한 관점을 가진, 정확한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인문학이라는 거대한 바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거대한 바다에서 어떠한 진주조개를 수확할지.
그 통찰과 사고와 감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문학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어떤 인문학인가 하는 것이다.
예술의 저변에는 반드시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쉽게 들어왔지만
'어떤 인문학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은 너무나 소홀해 왔다.
그래서 중구난방 세상모든 잡다한 상식들이 모두 인문학이란 이름을 뒤집어 쓰고 모두가 다 애플같은 이 시대의 트렌드에 영감을 줄 만한 가치있는 지식이라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 시대에 인문학이 영향력이 없는 것은. 인문학 자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떤 인문학인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이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어떤 인문학인가에 대해, 내 나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재하려 한다.
-어떤 인문학인가?
'어떤 인문학인가?' 를 알기 위해서 먼저 '어떤 인문학이 아닌가?' 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면 쉬울 것이다.
내 생각엔 우선, 재해석된 인문학은 인문학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문학이라는 것은 그림으로 따지자면 배경그림 정도라고 생각한다. 기초라는 말이다. 응용이 된 상태가 아닌 가공되지 않은, 관점이 강제되지 않은, 원소스 그 자체여야 인문학으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인문학이 주는 유익은, 그 인문학을 토대로 해서 그 위에 참신한 응용을 해나가는데 제 맛이 있기 때문이다. 레고 블럭을 생각하면 쉽다. 인문학은 레고블럭이다. 갖고 놀아야 맛인 것이다. 그런데 재해석된 인문학은 만들어진 레고블럭과 같기에 별로라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이라고 분류되는 많은 것들은 대부분이 재해석된 인문학이다. 이문열의 <삼국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이윤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물론 청소년이 교양을 쌓기에 적당하고, 입문서로서는 나무랄데가 없지만, 적어도 예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그리고 한예종을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조금 은 더 근본을 파고들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너무나 학문적으로 심오한 인문학도 대중들이 응용하기엔 다소 문제가 있다.
나는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간사 출신이다. 평론가협회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문제점은, 독일이나 미국등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교수 출신이 대부분인 그들의 글이나 평론이 한마디로 그들의 지식자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교수님들의 글을 이렇게 무책임하게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글쓰기가 현저히 부족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연극을 비평하는데 그렇게 어려운 글이 필요한 건 아니다.
즉, 국내 인문학의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로 귀결된다.
대중적인 인문학은 너무 재해석이 강하고,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지은이의 정치적, 개인적 취향에 따라 사실관계를 왜곡한 작품이 많다. 즉, 너무 가벼운 것이다.
반면, 보다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면, 너무 현학적인 용어들, 대중과의 소통이 힘든 과도한 번역체의 전문용어들, 그리고 그들 지식자랑에 불과한 과도한 전문성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intheatre 가 추천하는 인문학은?
나는 어렸을 때 세계문학전집이나 두산동아백과사전을 좋아했다. 특히 <생물>을 좋아해서, 두산동아백과사전의 <생물>편은 종이가 눌러붙어 다 헤어질 때까지 읽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엔 오리너구리의 넷째발가락은 있는가? 없는가? 따위를 섭렵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때 한참 '퀴즈탐험 신비의세계' 라는 프로가 유행해서 더욱 그러했다.
친구집에 가면 의례히 쌓여있는 40권짜리 동화전집이나, 세계문학전집, 위인전 따위를 나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손가락이 베일 정도로 날카롭게 날이선 페이지를 넘기며 (대부분 한번도 읽지 않은 새 책이므로) 나는 알프스 소녀도 만나고, 플란더스의 개도 만났으며, 장발장 아저씨도 만났다.
이런 과정이 한예종이나 예술쪽 전공을 생각하는 학생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내가 학부모라면, 어린 나이에 불필요한 과외를 시키는대신, 셰익스피어를 읽게 하고 싶다.
셰익스피어
가장 먼저 입시생이 접해야 할 인문학은 두말 할 것 없이 셰익스피어이다. 셰익스피어를 논하지 않고, 어떻게 서양문학을 말할 수 있으며, 서양예술을 말할 수 있는가? 특히 셰익스피어는 그 자체로도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며, 스토리텔링을 공부하기에도 완벽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은 무려 3개의 플롯이 서로 독립적으로 전개되어 나가다 갑자기 결합하며 '연극과 예술'을 향한 셰익스피어의 사랑을 집약적으로, 때론 교묘하게 풀어나가는 희극 (Comedy)문학 최고의 걸작이다.
제발 걸작을 좀 읽으라. 교양있어 보이려고, 겨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간>을, 그것도 거꾸로 집어든채로 졸고 있지 말고 말이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한 SWAN 극장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크게 세가지 분류로 나누면 된다.
1. 비극
2. 희극
3. 역사극이다.
비극은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가 대표적이며,
희극은 <한여름 밤의 꿈>, <실수연발>, <말괄량이 길들이기>, <십이야>, <겨울이야기>, <뜻대로 하세요> 등이 있다.
또 역사극은 구별하기가 아주 쉬운데, 왕의 이름이 나오는 작품은 모두 역사극이다. 헨리 몇세...뭐 이런 작품들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로미오와 줄리엣>과 <베니스의 상인>은 희극과 비극으로 분류하기가 힘든 교집합적인 작품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비극은
슬픈 내용의 작품이 비극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한 비극적 정의에 부합하는 작품이라야 비극이 된다.
'고귀한 신분의 주인공이 운명이나 신과 같은 초월적존재와 맞써 싸우다 몰락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것. 그리고 주인공의 연민을 불러일으킬만한 어떤 결함 때문에 그 몰락은 가속화되고 이 때 연민이 생기고, 이 연민을 통해 카타르시스가 생긴다'는 비극적 정의에 부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은 우선,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성격적으로 깊이있게 창조되어 있지 않은, 말하자면 유형적 인물이다. 개성이 있는 인물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선남선녀라는 말이다.
그리고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 몬테규가와 캐플릿가가 화해하게 되므로, 이 또한 극적구성이 비극이라 보기엔 무리가 많은 것이다.
체홉, 입센, 그리고 미국 극작가 3인방
그리고 또 추천해주고 싶은 것은 체홉과 입센, 미국 20세기 수정사실주의 극작가인 아서 밀러,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과 같은 희곡문학이다.
안톤 체홉
극작가에 대한 소개는 내 전공분야이므로 이어질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그밖에 한예종 입시에 도움이 되는 liberal arts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로마 신화
미학 오디세이와 지식e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 3대작가의 작품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특히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가장 완벽한 비극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 그리스비극 최고의 걸작이다. 필독. 오이디푸스 3부작의 세번째 작품인 <안티고네>도 필독.
이상으로 간단하게 연극영화과 입시에 필요한 인문학에 대한 개론적인 소개를 마쳤다. 앞으로 이어질 포스팅에서
특히 희곡문학에 대해 더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