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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23 너희들은 모두 자격이 된다 (1)
  2. 2017.10.06 사라져.가는.아름.다운.my...

<장률감독 연출 '경계' 스틸컷>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너희들이 자격을 말한다면, 그것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자격이 충분하다'이다.

많은 학생들이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내가 성적이 높지않아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자신이 부족하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입학할 자격
또는 성공할 자격


내 생각은 다르다.

입학할 자격에 대해 생각해보자.

예술을 전공할 자격이 되는 사람이 누구인가?

성적이 높으면 자격이 되나?

그럼 반대로 이야기하면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은 성적이 높아야하는가?
언어 영어 내신 성적이 높은 사람이
좋은 예술가가 된다는 근거가 있는가?
그게 올바른 인과관계인가?
옳을수도, 아닐수도 있다.
아마 별상관없을 확률이 높다.
아니,
오히려 관습화된 질서에 너무 쉽게 따르는게 천재적 발상과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커보인다.

예술이야말로 잡다한 세계에 대한 관심이고
쓸데없는 것에대한 호기심이고
그런 개성은 언어 영어 내신을 통해 관리되는게 아니다.

게다가 여러분은 학생이 되고자 하는거지
예술가로 완성되어져서 평가받는게 아니지않나?

배우기위한 학생이되고자 하는건데
그 자격에 대한 평가가 사실은 올바르게 이뤄진다고 보기 힘들다.

잘 모르니까 배우고싶은거고.

연극이나 영화야말로 성적이나 내신과는 큰 상관이 없는 예술분야이고
그렇다고해서 5분정도의 면접으로
어떤 학생이 뛰어난 잠재성을 갖고있는지 평가한다는건 여전히 어불성설이다.

작년에 한예종 연기과에 6000명가까이 지원했고
올해 단국대 영화과 수시 지원자도 1000명이 넘었다.

문제는 여기에있다.

이건 숫자의 오류이지,
네가 자격이 안되서 힘든게 아니다는걸
특히 강조하고싶다.

꼭 기억하라.

대한민국의 예술교육시스템이 잘못된거고,
너무 지나치게 높은 경쟁률. 즉 숫자의 문제이지

너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률이 높은건 그냥 경쟁률이 높은거다.

대학별 연극영화과 모집정원이 한정되어있는 반면,
지원자들이 터무니없이 많아져서 생긴 문제일뿐.

저 입시에서 원하지않은 결과를 얻었다고해서
네가 실력이 부족한것도.
네가 자격이 안되는것도.
특히나 네가 잠재력이 부족한것도 아님을 명심하라.

반대로 말하면
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고해서
그 학생이
예술가로서 대단한 잠재력을 갖추고있다거나
성공의 탄탄대로가 예정된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저 경쟁률을 뚫은 사람들을 나만큼 많이 알고있는사람도 없을꺼다
단언컨데,
저걸 뚫고 합격해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게된다.
예술가로 성장하는것과
대한민국 예술대학에서의 교육은
큰 차이가 발생되어있기 때문이다.

기준이 잘못된 경쟁에서의 결과는
너무 신뢰할게 못된다.

너의 잠재력을
저 방만한 5분입시로 평가한다는
그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옳지않다.

심사하는 교수들조차 신뢰하지않을거다.
그저 교육부로부터 허가받은 인원에비해
너무 많은학생이 지원해서
할수없이 본인들도 고역인
입시시스템을 억지로 진행하고있는것일뿐.


그렇다면 어떻게해야하나?

우선
너는 절대로 잘못된  기준에 너의 정체성을 함부로 내맡기지마라
특히 너의 소중한 꿈을
그런 기준아래서 평가하거나 속단하거나
포기해버리는 건 말도안된다.

다음으론
또다른 전략적 방안을 찾아봐라
서울예대의 경우엔 전문대졸이상 정원외특별전형이면 거의 다 합격할수있는데
이런 학점을받는 일은 너무쉽다

편입의경우도 있고 전과도있고
일반대학에서 잘 공부한후 대학원에서 준비하는것도 가능하다.

언어영어에 강점이있으면 한예종 다양한 과들로 범위를 넓혀봐도좋다.
연기에서 영화로
연기에서 연출로 연극학으로
영화에서 방송영상이나 영상이론으로 등등


유학의 길도 열려있다.
유학을통해 입학하는건 상대적으로 쉽다
해외에서의 특별한경험과 언어에대한 확실한 준비를해서 귀국한후, 예술가로 활동하는것도 좋다.

꼭 대학이 필요한가? 에 대해 스스로 물어보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도
당연히 멋지다
예술가가 배워서 된다는게 말이안되니까.


예술교육이 문제가많다.
특히 연극영화과의 경우는
지원자가 많은데비해
교육방식이 너무 획일적이다.
학생들이 그 학교에 왜 지원했냐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기 힘든게 현실이다.
특색없고 획일적이라
그냥 집가깝고 엄마가 원하는 대학이라 지원했다고
말하기가 힘든것이다.

한예종의 경우 교육철학과 시스템은 확실하나,
너무 지나친 엘리트주의로 가는게문제다.
너무 소수를뽑고
너무 순혈주의로  간다.

개성넘치는 예술대학들이 수십개 존재해야한다.

어떤 예술대학은 스타니슬랍스키식연기 어떤곳은 한국적바탕을 둔 연기론
어떤학교는 조명이나 의상 분장등에 특화
어떤학교는 영화편집에 집중하고
어떤학교는 커리큘럼이 오직 인문학  고전공부가 전부다. 예술학교인데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의 현실아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게 너무 확실하기에
절망스럽다.

한마디로 요약할수 있겠다.

네 잘못아니다.
네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네가 자격이 없는것도 아니다.

기준이 잘못됐다.

규칙이 잘못된 시합의 결과에 쉽게 순응할 필요없다.

아예 기준을 바꿔버릴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도 좋을것이다.

네가 입증하면. 증명하면.
그게
정답이 된다.





Posted by intheatre

사라,
져,
가는,
아름 다운
my   dream
my   song...

헤드윅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Midnight Radio이다.

헤드윅하면 에너지넘치는 무대, 락콘서트를 연상시키는 폭팔력, 호모섹슈얼이라는 다소 금기시되는 소재.
보통 이런 이미지들을 떠올리게된다.

.

그러나 헤드윅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이 작품은
무언가
다른점이 있다.

이 느낌이 뭘까 거슬러올라가다 보니 17년전 어느 여름날이 떠오른다.

나는 대학 1학년때
이름없는 락동아리. 락밴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런 작은 스쿨밴드에 가입한적이있다.

민망하게도 어깨까지 머리를기르고
블루블랙으로 염색을했다.
찰랑찰랑 머릿결이 찰지다며
근데 얼굴은 기타자와라며 놀림받았다.

나는 히데를 생각하고있는데 기타자와라니
어린 마음에 상처받기도했지.

헤드윅의 무대는 옳다.
작품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무대다.

운동장 구령대? 단상같은거 아래 창고가 바로 우리 밴드의 연습실이었다   
그 연습실의 문앞엔 담배꽁초와 가래침말라비틀어진것과 조잡한 그래피티와 담배꽁초가 수북한 캔과 짬뽕그릇따위가 쌓여있었고

그 문 너머로 들려오는
악기들의 진동... 

음은 고음보다 저음이 훨씬 멀리나간다고 하는데,
시끄러운것보다
더한
울림 진동
물결처럼
태양처럼
광선처럼 (Radio)

내 마음을 진동시키곤했다.

그 문에는 검은색스티로폼계란판모양 부직포가 붙어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뿌옇게 밀려오는
드라이아이스같은 담배연기
조그만 창문사이 햇살
그리고 부유하는 먼지들

거칠고 불친절한 선배들
날카롭고 섹시한 여자멤버들

드럼,앰프,기타,베이스,키보드,굵은전선들, 얇은전선들,악보,악기케이스들...

그 속엔 무엇이 있었나?
그 운동장 아래 연습실엔 무엇이

거기 있었던건
어쩌면 악기가 아니었다

거기 있었던건 악기도 아니고
열정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고
성취도 아니고

거기 있었던건 사라

가는
꿈...
아름다운, 꿈과 노래
그리고 방황하는
청춘들이 있었다.

그렇다.
그 연습실에 있던건
방황이었고
젊음이었고
반항이었고
흔들리는
속으로 파고드는
좌절과
사랑이었다. 

밴드에서의
사랑은 의례히 은밀한, 또는 공개적인 SEX로 표현되는데
공허하고
비어있고
흔들려서
매혹적으로 ㅡ
마치 난파선끼리 서로 묶여있듯
그렇게 인생의 파도에따라, 이리저리 부딪히고
상처나고
깨지며
흔들리는
그런 사랑.

작은 밴드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껴온것들을 통해
뮤지컬 헤드윅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헤드윅을 열정, 꿈과같은 단어로 표현하는걸 이해하기 힘들다
헤드윅은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자아에 대한 위대한 플롯이다.

그것은 성취된 꿈에대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좌절된 꿈에대한 작품이며
강한 내면을가진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단
스스로의 모순속에서 붕괴되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자아찾기에대한 이야기다.

마치 연습실 창문. 연기와 진동사이 부유하는 먼지들사이로 찾아드는
한줄기 빛 Midnight Radio 처럼 말이다. 

 



 

 

헤드윅은 단어 SEX에서 성교적 의미를 빼고 남은 단어의 뜻과 같은작품이다.
젠더. 그리고 사랑, 매혹,
아담과 이브
정체성...

내가 본 버전의 헤드윅공연의 무대는 폐차장같은 무대. 그리고 그 밑에 밑바닥에서 기생하는듯 조잡한 느낌의 밴드공연장이었는데
그 느낌이 훨씬 좋았다.

그 폐차장에서
난파선, 고장난 차들위에서라면
드디어
결합을 말하기에 충분한 장소가되니까!
그 무대라면
쓰러졌다 일어서서 마시는 공기는
어제와 다름을 말하기에
적절한 무대가되니까.

나는 바이바이베스파 라는 만화를
좋아하는데.
무엇이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꼭 무엇이 되어야만 되는것일까?

그렇지않다.
우리는 무엇이 된다고해서 무엇이 되는게 아니다.
어른이 되었다고해서 어른이 되는게 아니고
아버지가 되었다고해서 아버지가 되는게 아닌것처럼

우리가 성장한다는건, 그래서
무엇이 되는게 아니고
무엇을 만나느냐의 문제이다.


이츠학의 존재가 그래서 중요하다. 원래 헤드윅공연초기엔 이츠학과 헤드윅이 하나였다고한다. 그러다가 여성코러스 (주연배우의 노래실력을보완할수있는) 가 필요해서
헤드윅에서 분리된 캐릭터가 이츠학인데,
이게 절묘하다.

 



 

 

남성인데 여성인 헤드윅과

여성인데 남성의 이츠학의 결합.

자기파괴적이며 과시적이고 감정적인 헤드윅에 비해
과묵하고 헌신적이며 이타적인 이츠학의 캐릭터는
여성코러스의 추가로인한 음악적즐거움뿐만아니라
서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 모두에겐 '토미 노시스'가있다.

그토록 갈망하지만, 우리에게 날카로운 상처를 주는 현실의 높은 벽...우리를 좌절하게하는 그 어떤 꿈이라도 모두 '토미 노시스'이다.

이루어지지못한 꿈. 이뤄지지못한 사랑...

 

토미는 헤드윅이 그토록인정받기를원하는 갈망의대상이지만,
그는 비단 한 인물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토록 인정받고싶었던
가족
사회
성공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인정


다양한 의미로 확대가능한 인물이다.

한마디로, 희미해져 가는
꿈과 노래....
우리가 갈망하는 그 무엇이라도
'토미 노시스'로 표현될수 있다.
그래서 토미는
서사속에는 등장하지만,
극중 내내 실체를 드러내지는 않고
심지어
헤드윅 그 자신이 곧 토미 노미스를 연기하기도 하는것이다.

헤드윅이 좋은 작품이라는 증거는
심오하기 때문이고
분열적 Schizoid Character 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저마다의 헤드윅이 존재할수 있기 때문이다.

헤드윅이 자동차본네트속에 머리를넣고 평안을 얻은것처럼
저마다의 꿈의사람, 첫사랑, 그리고 멀어져가는 꿈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고 내밀한것이 아닐까?





드디어!
극의 절정에 이르러
이 아름다운 곡. Midnight Radio가 흘러나오며

헤드윅은 꿈을.
상실한다.
사라져가는 꿈은,
절망의 상징이 아니다.

아름다운성장과
더 아름다운만남에 대한 서사로 이어지기에
더이상 절망에 머무르지 않는다.

헤드윅은 이츠학을 만나서,
드디어 하나가 된다.

그토록 원했던 '토미'를 놓을때
(그것이 사람이든.상처든.인정이든.내면이든)
헤드윅은 이츠학을 볼수있다.
남장여자의 분장을 지우고
무대위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장의
이츠학!

 

 



나는 인생이 성취가 이끄는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인생은 성취가 이끄는게 아니라
만남이 이끄는거더라.

헤드윅이 이츠학을 만나고, 자아를 찾고 마침내 한걸음 성장하는것처럼
우리 모두에겐 그 누군가와의 만남이 절실하다.

그래서 헤드윅의 백그라운드영상 한 사람에서 분열된 반쪽들이,
서로를 찾아 헤메는 영상이 의미심장하다.

인생은 혼자서 살아가는게 아니며
우리의 삶을 이끄는건 만남이다.
나의 부모님
나의 환경
나의 정체성
나의 자아

나의 믿음
나의 사랑 과의 만남.

 

아이와의 만남이 부모라는 세계로 이끌어주고
배우자와의 만남이 부부라는 세계로 이끌어주는것처럼

우리는 그 우연한 만남속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찾을수있다.

그 만남을 인정할 수 있는 것.

원하든 원치않았든 우리가 만나온 모든 삶의 언저리. 그 모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품에안을 용기.

그 용기가 헤드윅이 말하는 성장이며

헤드윅이 무대너머 밝은 태양속으로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나를 가장 사랑할만한 가치. 그것은 멀리있는게 아니고 나 자신에게 있으며.

나를 가장사랑하는 이 또한 저멀리 있는게 아닌 묵묵히 곁에있는 그(그녀)였으며 = 이츠학

내가 힘써지켜가야할 모든 것들이 이 작고 초라한 공간속에 존재하며
만나지는 모든것들속에
우연한, 때로는 원치않았던 슬픈기억조차도
내가 성장시켜가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깨달음.

마지막으로 헤드윅 그 자체라고 할만한
John Cameron Mitchell 의 Midnight Radio와

귀여운 조정석의 초창기버전도 함께 올린다.

모두에겐 저마다의 헤드윅이 있다.



 

John Cameron Mitchell 의 Midnight Radio (브로드웨이 2015)

 



 

풋풋한 조정석의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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