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4 08:44 2016 포스팅

존재흔들기

 

오늘날 사회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한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지만, 대형서점은 좋아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책을 구하기위해 큰서점에 갈때빼곤 거의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대신 도서관은 매우 좋아한다.

 

도서관과 대형서점의 차이는. 도서관은 마케팅이 배재된채, 정말 지식의 창고로서 책이 배열되어 있고

대형서점은 마케팅과 트랜드의 관점에 따라 책이 노출되어 있다.

 

대형서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문구가

 

'변화'에 대한 문구이다.

 

이렇게해야한다. 저렇게해야 한다. 00하는 21가지 법칙. 등

 

한마디로 너는 그 자리에 머물러선 안되며, 그렇게 살아서는 언제나 그모양 그꼴로 살거라는 메세지이다.

 

 

 

존 버거는 그의 명저. the ways of seeing에서

현대상업광고가 작용하는 방식을

한마디로

'존재흔들기'로 정의한바 있다. (존 버거는 한예종 방송영상과를 지원하는 친구들은 필독서니까 꼭 읽어보길)

 

예를들어 덥고짜증나는 만원지하철 안에 시원한 해변과 시원한 콘도가 있는 광고판이 있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존 버거는 그 장면을 예로들며, 그 광고판의 작용방식은 우선적으로 광고하고자하는 대상(콘도광고)과 소비자 ( 그 광고를 보는 사람) 의

 

거리를 최대한으로 멀리 떨어지도록 강요하는데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소비자를 끊임없이 불안하도록 만드는 거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벌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존버거가 말하는 현대상업광고의 작동방식이다.

 

한마디로

 

끊임없이 불안에 떨게하며, 끊임없이 병적으로 두려워하게 만들며, 지금모습 그대로 살면 실패자의 삶을 살거라고 두려움을 유도하는 것.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이것을 소비해야만 너는 살아날 수 있다는 메세지.

 

존 버거의 상업광고에 대한 통찰력은 매우 통찰력있는 글이니 꼭 읽어보도록.

 

국내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존 버거의 주장과 놀랍도록 비슷한 작용방식을 가지고있는게

바로 '한국화'된 기독교 이다.

 

한국화된 기독교란 말은, 성장주의적 기독교를 말한다. 종교적으로 구원에 대해, 사유, 묵상, 연구, 탐구, 인간근원에 대한 고찰. 인문학의 전당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성장주의에 찌든 한국식 종교 말이다.

 

그 한국식 종교를 생각해보면 역시나 끊임없이 존재를 흔들어댄다.

너는 죄인이다.

라는 전제자체가 이미. 존재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주장이다.

죄인이기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교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불교에서는 이미 답을 말하고 있다.

 

불교적 주장을 따르자면.

 

원망怨望 이란 단어의 뜻은 원망할 원에 바랄 망 이다.

 

단어의 조합이 오묘하다.

 

한자 원의 뜻이야 (원망하다. 미워하다)등의 뜻인데

그 뒤에 붙은 망 자가 재미있다.

 

무엇인가를 간절이 원하고, 바라고, 기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상태를 지속적으로 갈망하고 마음에 품는 상태가 되어야. 원 + 망 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원'의 상태가 있을 수 있다.

영어문장 중에 'shit happens' 라는 말이 있다.

 

X같은 일이야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별 수 있냐는 말인데

 

자세히 따지고보면 매우 불교적인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살다보면 '원 怨'의 상황은 있을수 있겠으나

 

그것이 '망 望' 이 되도록 마음에 품지는 마라는 이야기이다.

 

원망이라는 단어의 뜻은 그런것이다.

 

원의 상황은 있을 수 있지만,

 

거기에 망 望이 결합될때. 즉. 원망하는 마음을 마음에 쌓고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흔드는 상황이 되도록 방치하는 심리상태를

 

원망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불만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인데

 

만족하는 마음. 즉 존재적 평행성이

 

깨져버린 마음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연극영화에 관심있으므로

 

스토리텔링의 위대한 구루. 로버트 맥키의 주장을 인용하자면.

 

역시 마찬가지다.

 

로버트 맥키는 결국

 

모든 사건은

 

평행상태가 깨지며 시작된다고 한다.

 

예를들어 7번방의 선물에서 예승이가 류승룡과 세일러문하면서 살면. 그건 아직 사건이 아니다.

 

아무리 지능이 떨어지는 아버지라고 해도. 그 아버지가 평행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아버지가 억울하게 구속되면서 시작된다.

 

한 중년 여성이, 아들의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날 수는 있다.

 

그러나 마음에 두고만 있는 이상 아직은 평행상태가 깨지지 않았다.

 

실제로 그 아들의 친구를 탐하는 관계를 시작할때 드디어 사건은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 졸업)

 

 

 

자. 결론을 내보자.

 

상업광고 - 한국식종교 - 원망의 뜻 - 스토리에서의 사건.

 

 

이 모두는 결국 한가지 진리를 말하고 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건

 

'사건'이 아니라, '존재' 란 사실이다.

 

 

사건이 일어날 수는 있다.

 

피해갈 수가 없다.

 

우리가 사는 삶 속에서, 우리가 원치 않는 일들이야 항상 일어나기 마련이다.

 

대학입시에 실패하는 것

 

이별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주는 것

 

사고를 당하는 것

 

우울한 것

 

무기력 한 것

 

꿈을 상실한 것

 

그 모든 것들은

 

충분히 일어날 수가 있다.

 

 

이것을 피할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런 사건들 속에서

 

'존재'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원 은 언제나 벌어질 수 있지만

 

그 '원'을 '망'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오늘날 모든 상업광고, 종교등은 끊임없이 너의 존재를 노린다.

 

너의 존재를 흔들어대고

 

너의 안정을 해치려한다.

 

성형이라는게 한마디로 그런거다.

 

'너 이렇게 안하면 사랑받지 못해. 너 이렇게 안고치면 선택받지 못해. 너 이렇게안되면 살아남지못해'

 

 

 

현대사회가 만든 수많은 '존재흔들기'의 그물에서 벗어나 보자.

 

 

삶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위대한 일본의 문학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가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수상식에서의 연설은

 

그런 신비로운 삶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내 삶의 기념으로서 /

 

무엇을 남길 건가 /

 

봄에 피는 꽃 /

 

산에 우는 뻐꾸기 /

 

가을은 단풍잎새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연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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