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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과 닫힘 (한예종 레슨 포 케이아트, 한예종, 한예종 입시, 한국예술종합학교 레슨 포 케이아트, 한예종 연기학원 레슨 포 케이아트,레슨 포 케이아트, 한예종 연출과, 한예종 영상이론과, ..연극영화과에 대해 말하다 2014. 8. 31. 10:15
한예종입시를 레슨 포 케이아트란 이름으로 4년째 진행하다보니
입시에 대해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올해 학생들의 2차면접을 지도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사실은
그렇게 어렵게 1차를 붙고도 2차에서 가장 먼저 떨어지게 될 수 밖에 없는
유형이 있다는 것이고,
놀랍게도 그 사실을 학생들이 잘 모르고있거나 절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않는다는 것이다.
무언가 이 사회나 가정이나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건 틀림이 없다.
1차합격생의 3분의 1 정도에 이 유형에 해당하는 것 같은데
무조건 탈락하는 유형이다. 오늘은 이 유형에 대해 좀 말해보고자 한다.
열려있음
예술입시에서, 특히 한예종 영화과 를 포함해서 연출전공의 경우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뭘까?
1차를 통과했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기준이 뭘까?
스토리구성?
장면구성?
공간?
대사?
인물?
창의력?
말빨?
자기소개서?
외모나 분위기?
살아온 경험?
......
전부 다 중요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요소들은 전부 부차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학생의
'열려있음' 이다.
열려있는 학생이 있고
닫혀있는 학생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여기서 먼저
한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자.
입시생들은 예술에 대해 뭔가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예를들어
예술가란 마약에 찌들어있거나, 엑스저팬식으로 운명과 삶에 대해 절절히 외치며 웃통벗고 간지나게 담배피는 깡마른 형님을 생각하거나... (엑스저팬 좋아하니 오해는 말도록^^)
아니면 지하 담배연기 가득한 연습실에서 귀에 피어싱을 하고 빨간색으로 염색한 해골무늬 티셔츠를 입은 형님, 언니 등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명동 전통찻집 같은곳에서 문인이란 이름으로 모여 안경쓰고 철지난 양복입고 아님 계량한복입고
문학에 대해 토론하는 문인같은 이미지라든가...
이런식으로 예술에 대한 학생들의 고정관념들은 매우 상투적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예술가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의 공통점은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란 것이다.
예술이란
자기세계의 문제이고, 자기애가 강하고, 이기적이고, 자기세계가 분명하고 자기개성이 강하면
그걸 예술가적 이미지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안하지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망하는거다.
실제 예술가의 모습이 어떠한가는 내 관심이 아니고,
적어도 예술입시에서, 특히 한예종 그것도 영화과나 방영과 등 영상원을 기준으로 할 때
학교가 원하는 예술가의 모습과
학생들이 생각하는 예술가의 모습이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긴말 할 것 없이
입시의 전형요소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의 기준을 살펴보자.
1차는 언어와 영어와 논술이다.
올해는 특히 논술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논술이 아니라 글쓰기와 창의성위주로 완전히 경향이 돌아섰기 때문에 특히 1차에서부터 예술적 소양이 중요해졌다.
문제는 2차다.
2차는 주로
자기소개서와 스토리구성 필기시험
그리고 면접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면접이다.
당락을 최종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면접인 것이다.
위에 언급한 한예종 영화과의 전형요소 중에
어디에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술가적 고집이나, 개성이
특출나게 발휘될만한 전형기준은
없다.
오히려 생각보다 훨씬 더 모범생을 선발하기에 적합한
전형기준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맞다.
내가 잘 쓰는 표현으로
또라이가 아니라
또라이적 세계를 동경하는 모범생들이
들어가는 학교가 한예종이다. 물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그냥 우스개소리로 하는 말이다.
특히 면접부분을 고려해보자.
학생들은 면접에서 강한 개성을 어필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교수들이 원하는 것은
1차적으로 성품이다.
개성이전에
협력작업으로서의 영화를 올곶게 지탱할 수 있는
인격적인 면을
먼저본다는 거다.
충격적인 사실은,
전형요소를 아무리 뒤져봐도
예술가를 뽑는
그것도 최고의 명문대학이라고 할만한 한예종에서조차
예술가적 개성에 앞서
학생의 소통을 먼저
검토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개성에 대한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이점에 대해선 글의 말미에 설명하도록 하고.
자.
입시요소를 보면
개성보다 소통이 먼저란 것을 볼 수 있다.
더 정확한 기준으로 자세히 말하자면
열림과 닫힘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분명히 말하지만
반드시
열려있어야 한다.
무엇에 열려 있어야 하는가?
삶에 대해
타인에 대해
사회에 대해
사람에 대해
인생에 대해
예술에 대해
작품에 대해
전공하려는 학과에 대해
열려있어야 한다는거다.
자신의 색깔을 고집하기에 앞서
열린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다.
솔직히 말해보자.
고3이라 치면
네가 예술을 해봐야 얼마나 한다고
네 예술세계를 들이밀어서 예술가로서 정점을 찍은 교수를
설득시키려 하는것인가?
네가 현재의 실력으로 교수를 설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네가 2차 때 쓴 스토리를 보고
심사하는 교수가
감동받아서 눈물을 철철흘리며
교수들끼리 하이파이브를 하고
서로 부둥켜안으면서
드디어 한예종에도 원했던 인재가 왔다 !!
라며
네가 입학할때 교수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박수쳐주고
한예종 정문에 너를 환영하는 플랭카드를 붙여주기를 원하는건가?
미안하지만
교수들은 개탄을 하면서
너의 글을 읽을 것이다.
이 시대의 청춘들의
가벼움과 교육과 사회와 가정의 문제들을 통감하면서
비통한 심정으로
너희들의 글을 읽을 것이다.
틀림없다.
그만큼
쉬움, 즉흥성, 쾌락, 쾌감, 말초신경
등에 길들여진 이 시대의 가벼움은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교수들이 흐뭇해하며 뽑는 학생들이란
결국
그나마
가능성을
보여주는 학생들일 것이다.
예술사는 가능성을 본다.
섣불리 너의 예술세계를 들이밀지 마라.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창작물로 교수를 설득시키려하지마라.
오히려
너의 가능성을 보여줘야한다.
뛰어난 스승의 지도하에서
몇십배 이상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본적 소양과
열린 눈과
열린 마음과 자세.
그리고
공동작업으로서의 예술.
사회 속의 언어로서의 예술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학생임을
입증해야 한다.
아까 말하다 말았는데
흔히 학생들이 생각하는 개성과 진짜 예술가의 개성은 다르다.
예술가적 개성
예술가의 개성을
지나치게 병적인 자기애나
세상에 대한 혐오
그리고 쾌락
또는 일탈
등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진짜 예술가적 개성은
그런
자기소모적인 개념이 아니다.
예술가에게 있어 진짜 개성은
자신만의 형식을 의미한다.
예술가에게 있어 개성이란
자기표현이나 패션이나 쾌락이나 자기애가 아니라
자신만의 예술적 형식이란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자기애가 있든 없든 상관없고
간지가 나든 말든 상관없고
코를 뚫었든 귀를 뜷었든 항문을 뚫었든 상관없다.
그런 것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예술가에게 있어 개성이 있고, 없음은
자신만의 예술적 형식을
갖추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예를들어보자.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생각해보라.
그의 영화적 형식이
한번에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김기덕은 개성이 있는 예술가이다.
그는 그의 형식을 완성해나가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개성있는 예술가라고 할만하다.
이사도라 던컨이란 전설적인 무용수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는 개성있는 예술가인가?
당연하다.
그녀야 말로 예술가적 개성을 말할 때 좋은 모델이 되는 예술가이다.
그녀는
여자가 허벅지를 드러내며 춤춘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19세기말에
이미 맨살이 드러난 얇은 옷을 펄럭이며 춤을 추었다.
그는 정통발레의 본고장인 러시아에서 보란듯이
정통발레의 문법을 해체하고, 그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목소리에 따르는
자유로운 현대무용을 창시했다.
그리스의 영혼에 감명받아 그리스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나치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파리에서 새빨간 튜닉을 입고 맨발로 춤을 춘 것도 유명하다.
첫번째 결혼에선 교통사고로 아이를 모두 잃고
두번째 결혼에선 남편이 자살을 하고
그녀 자신도 스카프에 목이 졸리는 사고로 죽게 되지만
순종적이고 굴종적인 삶을 여성에게 강요하는
기존의 춤에 맞써
자유로운 영혼의 세계를 마음껏 펼쳐보인 그녀야 말로
진정한 개성을 가진
예술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사극을 발전시킨 독일의 베르돌트 브레히트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의 연극이
네모난 4각형 프로시니엄 무대에 관객을 가둬두고
배우와 관객이 철저히 분리된 채로
관객에서 정서를 강요하는
기존의 연극에 대한 반대로
브레히트는
관객의 생각을 도발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적 몰입을 방해하도록 설계되어진 새로운 극적창작술을 개발하게 되는게
그것이 바로
브레히트의 서사극의 기초가 되는
생소화효과 이다.
무대에서의 생소화효과를 위해서 브레히트는, 극의 결말을 미리 적어서 플랭카드로 공개하거나, 극중 사건과는 아무상관없이 진짜 관리인을 무대위로 보내서 청소나 정리를 시키거나, 연주자들을 무대 정중앙에 둔다거나, 아니면 무대의 조명을 모두 켠다거나 하는 식의 무대연출적 생소화효과나
극적 구성을 에피소드식으로 병렬식으로 전개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극적 구조를 조롱한다거나
또는 배우의 연기술에서 게스투스라 불리는, 역할에서 배우가 분리된 새로운 연기술을 제시했다.
브레히트가 이렇게 새로운 극작술을 만든 이유는
멋있게 보이거나
간지나거나
예술가적으로 간지나게 행세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브레히트에 대해 공부하다보면, 그는 실제로 매우 멋있고 간지넘치는 사람이긴 하지만)
배우와 관객이 고립되게 만드는 기존의 연극행태.
그리고 관객으로 하여금 사고하지않고, 비판하지 못하게 하며, 작품속에 몰입함으로서 관객을 바보로 만드는
기존의 연극에 대한
저항으로서
관객으로부터 오는 연극을
관객에게 돌려주기 위한
그리고 사회에 대해 생각하고, 사회현실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참여하는
말하자면 '사회변혁의 수단'으로서
연극을 생각한 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것이 예술가의 개성이다.
윤동주의 개성은
시대상황과 개인에 대한 충실한 고뇌에서 나온 것이고
기형도의 개성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의 절실한 고민에서 배출된 흔적이다.
모든 예술가적 개성은
형식을 갖추고 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예술가에게 있어 개성 = 형식이란 것이다.
열림과 닫힘
지금까지 다소 장황하게
예술가의 개성이란 무엇인지
또 예술입시에서 전형기준을 볼 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충 살펴보면
하나의 뚜렷한 기준이 나온다.
그것은
'열려있다'는 것이다.
너는 개성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그 개성이란
옷을 특이하게 입거나
혀에 피어싱을 하거나
깊은 지하실에서 라면그릇에 담뱃재를 털면서 세상에 대해 비판하는 그런 류의 개성을 말하는게 아니다.
예술가적 개성이란
너만의 형식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형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것은 분명
개성이다.
개성이란 말 속에 가장 먼저 깔려있는 개념은
남과 다름이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남과 다름이란 것을
너무 1차적, 외모적, 혹은 말초적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말초적인 감각만을 생산-재생산하는 현대의 상업문화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서
남과 다르다는 것은
외모의 차이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를 의미한다.
더 정확하게는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의미한다.
패러다임 쉬프트라는 말이다.
관점의 변화.
이것이 네가 갖춰야 할. 남과 다름이다.
19세기 말. 청교도적 사상이 아직도 지배적인 미국사회에서
여자가 맨몸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영혼이 이끄는대로 춤출 수 있다는
그런 관점의 변화.
그것이
바로
진정한
남과 다름.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모든 구단, 모든 선수에게 영구결별된 번호가 몇번인줄 아는가?
42번.
바로 LA 다저스 잭키 로빈슨의 등번호이다.
그는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로서
수많은 위협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그라운드위에 섬으로서
남과 다른 관점을
온몸으로 입증한
운동선수이다.
그의 위대한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자
지금도 모든 구단과 선수들은 등번호 42번을 영구결번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쯤되면 결론을 내려도 되겠다.
너는 반드시 열려있어야 한다.
사회에 대해 열려있어야 한다.
예술은 자위행위가 아니다.
자위행위는 타인과 소통될 수가 없다.
예술이 소통되지 않으면, 그것은 영향력이 없다.
혼자만의 예술이 나쁘다는게 아니다.
좋고나쁨의 기준이 아니라
네가 한예종을 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영향력을 갖고자 시도하는 것 아닌가?
다른 대학이 아니고 굳이 한예종이라면
너는 그만한 영향력을
너의 예술을 통해 만들어보겠다고
시도한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라.
너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데
제도권 교육. 그것도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물어보고 싶다.
사회 속에 너의 예술이 영향을 주기위해선
형식이 필요하고
이 형식은 곧
너만의 예술적 개성을 의미한다.
그 개성은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수 있는
새로운 각도에서의 관점. 즉. 패러다임 쉬프트라고 할 수 있다.
통섭 역시
이러한 기준에서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티븐 잡스를 흔히 통섭적 인간으로 보는데
상투적이지만
맞는 말이다.
스티븐 잡스는
경영이라는 패러다임에
예술과 통찰이라는 관점변화를 통섭한 인물이다.
진짜 통섭은
역시 고정관념을 탈피할 수 있는
패러다임 쉬프트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한예종은 이러한 예술가를 원한다.
기억하라.
너의 섣부른 창작물로
함부로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지마라.
창작하기 이전에
창작을 잘 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 가능성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점이 바로
열려있는 것이다.
교육과 사회와 가정이
이기적인 기준만을 강요하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은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예술을 공부하겠다고
하면서도
사회에 대해
타인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도
관심갖지도
않고
면접을 준비하면서도
전혀 주변을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자기자신에 대해 소개하라는
그 한마디에도
입을 닫아버리는 학생들도 많다.
존중과 이해와 관심을 찾아볼 수가 없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다.
좀 잔인한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게 닫힌 눈을 가진 학생들이
실제로 2차시험에서 3분의 1정도는 되는 것 같다.
면접에서
글이 이러저러한 면에서 문제가 있는것 같다는 교수의 지적을 받고
그건 교수님 생각이구요...교수님 생각이야 그렇겠죠...
라고 말하는 학생이
실제로 면접에
있다.
올해부터
나도 입시를 진행하는 방향을 바꾸려고 한다.
상담단계에서부터
입시를 진행하는 모든 단계에서
학생의 열림과 닫힘을 매우 강조할 것이고
닫혀있을 경우엔 냉정하게 지적할 것이고
학생이 그것을 수용하지않고 변화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않을 경우
곧바로 돌려보낼 계획이다.
이것은 내 철학이나 숭고한 이념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
실제로 위와 같이 닫혀있고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경우
좋은 결과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닫혀있는 학생들의 생각에는 어떤 패턴이 있다.
그들은 때때로, 기회주의적이다. 합격하기 위한 도구로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이러한 유형의 특징은, 자신이 판단하기에 합격에 별 도움이 안되는 것은 안하려고 한다. 그러나 참 어리석은 유형이다. 무엇이 도움이 되고 무엇이 도움이 안되는지를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유형인데, 매우 위험하다.
또 아까 말했듯이, 닫혀있는 학생들은
자신에게 고립된다.
자신의 창작에 많은 관심을 쏟는다.
자기가 쓴 글이나 시나리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
열려있지 않고서
좋은 창작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독특한 세계관이나 비약이 가득찬 공상적 이야기를 만든다고 해서
그게 영향을 주는게 아니다.
먼저
사회에 대해
사람에 대해
역사에 대해
문학에 대해
예술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열려있고
그 다음에
창작할 수 있다.
열려있는게 중요하다.
지금이라도
네가 예술가를 꿈꾼다면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해야 한다.
글을 쓰고
영화를 찍는 것
잠시 멈추자.
그리고
눈을 들어
삶의 현실을 보자.
사람들의 행동과
사회와
삶과
절실함과
좌절과
아픔과
낭만과
꿈과
그리고
작은 희망에 대해
관찰하자.
올해 한예종 영화과 1차와 2차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는 요소 또한
바로 이 관찰적 요소란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너만의
형식을
만들어 나가자.
그게 어려우면
그 가능성 만이라도
보여줄 수 있도록
너만의 개성을 만들어보자.
남의 것을 빨아들여보자.
수많은 지성과
역사와
문학과
영감과
통찰을
너의 것으로 흡수하자.
어쩌면
교수들은
너의 현재가 아니라
너의 방향이 옳다면
그 방향만 보고도
합격이라는 선물을 줄지도 모른다.
물꼬가 중요한 법이거든.
물꼬가 올바르면
성장하는건
순식간이다.
호스에 물이 나올때
현재 흥건한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다.
물길이 향하는 곳이라면
순식간에 물로 바다가 될 것이다.
그러한 올바른 물꼬를 갖추고 있는가?
그것을
교수는
평가하는 것이다.
눈을 떠라.
열린 눈이 아니고선
잘못된 길을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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