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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의 공식 = 아임 유어 파더 (한예종 전문학원, 한예종 영화과, 한예종 영상원, 한예종 실기, 한예종 2차시험)all about story-telling 2013. 8. 16. 18:10
지난 한주간
절정의 법칙, 결말의 법칙이란 주제를 갖고 수업을 진행했다.
나는 스토리를 가르칠 때
개별적 적용을 가르치기 보다는
스토리의 원칙을 가르친다.
창작의 분야에서 -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고, 배우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획일화될 가능성이 크기에 매우 좋지않다.
그래서 나는 스토리텔링을 수업할때만큼은
원칙과 기초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시학과
할리우드 영화의 구조와
무엇보다도 로버트 맥키의 이론들을 내가 먼저 철저히 연구한 뒤
나의 의견이나, 나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랜 세월 입증되어 온
스토리의 클래식한 틀을 학생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
오늘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스토리를 가르치다보면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절정이다.
우선 절정이 무엇인지 조차 잘 모르고 있다.
절정이 잡히지 않으면
스토리의 중심이 잡히지 않은 것이기에
지극히 사변적이고
허무한 자기만족에 그치기가 쉽다.
즉. 관객에서 깊은 정서를 전달해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저 액션이나 스펙타클의 화려함으로 승부볼 수밖에 없는 스토리를 쓰게된단 말.
무엇이 절정인지 알기 위해선
무엇이 절정이 아닌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 외부적인 스펙타클의 확대는 절정의 핵심이 아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절정을
스토리 상의 외부적 확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칼로 찌른다면
절정에 이르러서는 드릴로 갈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거다.
치명적이고 중요한 장면이 절정인 것은 알겠는데
그 치명적이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므로
스토리 상에
과잉 감정, 과잉 폭력, 과잉 행동이 넘쳐나게 된다.
살인, 강간, 방화.....
이해하기 어렵고, 납득하기 어려운 잔인한 행동들
비상식적인 장면과 사건과 인물들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지나치게 과도한 행동들....
이 모두가
절정을 잘못 이해하기에 벌어지는 비극들이다.
-스토리 상의 극적반전도 절정의 핵심요소는 아니다.
학생들이 또 착각하는것이
반전이 꼭 절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식스센스의 영향이 커서 그런지는 몰라도
꼭 절정에서 무언가 반전이 있어야만 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반전은
스토리 전체를 통해서 입증해야 할 논리가 아니고
영화 자체가 곧 반전임을 기억하자.
영화의 모든 장면은 반전이어야 한다.
관객의 예측을 모든 장면, 모든 사건, 모든 디테일이
계속해서 벗어나며
관객과의 머리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절정을 반전으로 착각하기에
무리한 설정,
작위적인 반전,
인위적 결말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결말과 전개
등등의
수많은 오류들에 빠지게 된다.
절정은 반전과 동일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절정은 무엇인가?
절정은 = '아임 유어 파더' 이다.
이것은 반전과는 다르며,
극적 스펙타클의 확대와도 다르다.
물론 절정에 반전과 스펙타클이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반전과 스펙타클을 의도한 것이 절정이 아니라
좋은 절정이
반전과 스펙타클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하다.
로버트 맥키가 언급한
영화 역사상 최고의 절정은
바로
스타워즈의 절정.
루크 스카이워커가 천신만고 끝에
적의 두목. 다스베이더와 만나고
목숨을 건 사투 끝에
제압한다.
다스베이더를 죽일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다스베이더가 말한다.
"넌 나를 죽일 수 없다"
"?"
"아임 유어 파더"
난 너의 아버지이다....
이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갑자기 드라마는
순식간에 '확대'된다.
'확대'됨과 동시에
그동안의 수많은 미스테리들이
'집결'된다.
우주가 빅뱅을 통해 창조되었듯이
절정을 통해
이야기가 확대되는 것이다.
스승 요다가
그렇게 다스베이더를 만나지 못하게 했고
다스베이더와의 만남을 우려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수많은 스토리상의 비밀들이 하나로 꿰어진다.
절정은 '아임 유어 파더'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절정은 의미의 확대이다.
절정은 확대이다.
그런데 이 확대가 스펙타클의 확대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반전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정확한 뜻은
바로
의미의 확대 이다.
절정에서 확대되어야 할 단 한가지 필수요소는
바로 의미이다.
스타워즈는
루크 스카이워커와 제국군의 대결로 전개된다. = A
이것을 A라고 했을때
'아임 유어 파더' 의 절정 이후
드라마는 급속도로
아버지와 아들의 깊은 갈등관계로 확대된다. = B
A와 B를 비교해보면 좋은 절정의 핵심요소가 나온다.
좋은 절정은
의미의 변화, 혹은 확대인데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은 필수요소를 담고 있어야 한다.
- 더 근원적이고
- 더 중요하고
- 더 필연적인
사건.
바로 이것이 절정의 요소이다.
제국군과의 싸움보다
아버지와 아들의 모태적 갈등이
훨씬 더
근원적이고
중요하고
필연적 갈등이다.
즉, 스타워즈는
표면적으론 제국군과 주인공과의 싸움을 그린 듯하지만 = A
'아임 유어 파더' 절정 이후
급속도로
더 근원적이고, 중요하고, 필연적이고 어쩌면 치명적인 갈등인
아버지와 아들의 모태적인 강렬한 갈등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 B
관객은 A 가 영화의 전부인줄 알고 따라왔으나
훨씬 더 큰 B를 맛보게 되며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카타르시스의 일종으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하라.
의미의 확대만이
진정한
깊은
인생에 대한 성찰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스펙타클도 아니고, 인위적 반전도 아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쏘우 7~8편으로 가면...아무리 사람을 썰고 자르고 폭파시켜 죽여도
아무런 감흥이 더해지지 않는다.
한국영화 스릴러들이 아무리 인위적 반전을 유도해도
역시
의미의 확대가 없이, 진정한 반전의 깊은 의미가 없이는
어떠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좋은 절정은
결국
인간성의 깊은 밑바닥
가장 깊은 인간성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요즘 좋은 대본으로 인정받고 있는
더 테러 라이브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좌천된 아나운서 (하정우) 와
어떤 정체불명의 테러범과의 갈등을 통해 전개된다.
즉 위 스타워즈에서의 제국군과 루크 스카이워커의 대결이 스토리 상 같은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A라고 할때
더 테러 라이브는
A에서 B로 절정을 통해 밝혀지는가?
즉
테러범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절정의 순간 이후에
더 중요하고
더 근원적이고
더 필연적인
의미의 변화/점층/ 혹은 확대가 일어났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꽤 좋은 플롯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더 테러 라이브는 확실히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기억하라.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절정을 통해서
A < B
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처음 스토리를 구성한다면 너무 욕심내지말고
조그만 확대라도 의도해보면 좋을 것이다.
조금만 확대되어도 된다.
그러나, 반드시 확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으로부터 치명적 피드백을 듣게된다.
"그래서 뭐?"
"그래서 뭐가 남는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기억하라.
관객들은 두시간동안 갖혀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을
끔찍한 경험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인생에 대한
은유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인생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은유이다.
은유는 왜 하는가?
바로
인간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이 말이 좀 거창하게 들린다면
이런 깨달음을 의미라고 바꿔서 읽어보자.
인간에 대한 어떤 작은 의미라도
영화를 통해 맛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올드보이의 절정 이후
이야기는
복수와 복수의 이유에서
근친상간적 사랑의 딜레마로
이야기는 확대된다.
올드보이가 그저
복수에 대한 이야기로 그쳤다면
관객들이 그만큼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고
흔한 복수극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드보이의 절정은
더 근원적이고
더 중요하고
더 필연적인
깊은 의미의 확대와 변조를 이뤄냄으로서
그의 영화를 통해
깊은 심연을
드러냈다.
그래서 올드보이가 좋은 영화인 것이다.
피에타도 그렇다.
절정 이후
더 중요하고
더 근원적이고
더 필연적인
의미의 확대를 이뤄냈기에
우리는 그 영화의 마지막 결론을
충격적이면서도 숭고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영화도
좋은 영화는
좋은 절정을 갖고 있다.
좋은 절정은
의미가 확대된다.
어쩌면
확대라는 표현보다
깊어진다란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더 근원적이고
더 중요하고
더 필연적이야기로
이야기는
더욱
심연을 향해
뿌리내리는 것.
그것이 절정이다.
절정은 아임 유어 파더임을 기억하자.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것은 곧 스토리텔링의 역사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준 스토리가 무엇일까?
심청이 스토리?
타이타닉 스토리?
아니다.
성경 속 예수그리스도의 스토리?
맞다. 바로 그거다.
그거야말로
로마를 멸망케했으며
카톨릭과 개신교의 거대한 전쟁과
십자군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다툼과
그리고 수많은 인간들의 의식을
치명적으로 사로잡은
인류 최대의 텍스트이자, 스토리텔링 아니겠는가?
이 성경의 절정이 무엇인가?
바로 십자가 사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 사건이 바로
스토리텔링 상의 절정의 공식과 절묘하게 일치할까? 하지않을까?
놀랍게 일치한다.
그러므로 이 절정의 법칙은
단순한 영화의 공식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 사건은
십자가 사건 이전에 비해
더 중요하고
더 근원적이고
더 필연적인
의미의 확대와 심층, 그리고 심연으로 파고드는가?
당연히 그러하지 않은가?
예수의 죽음을 A
라고 한다면
온 인류의 구원과 그 이후의 역사를 B라고 할때
A에서 B로의
절정의 순간이 일어났다는 것을.
이것이 스토리텔링 이론과 절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서사는
매우 강렬한 스토리텔링며,
가장 위대한 스토리텔링인 것이다.
그 절정이 너무도 숭고하고, 중요하고, 필연적이기에
이 서사를 둘러싼 수많은
인간의 욕망과 야망과
인생을 던져 깨닫고자하는 의미들과
수많은 강렬하고 근원적인 영향을
지금도
인류의 기억 정중앙을 가로지르며
새겨가는 것이다.
아직도 예수의 절정은, 그 여파를 확대/ 재생산 시키고 있다.
정말 대단한 절정이다.
김기덕 스스로가 밝힌바와 같이
그의 영화 속에는 기독교적 매타포가 매우 강렬하게 차용되어 있다.
그래서 평론가 신형철은
피에타에 대한 평론에서
피에타의 절정과 결말을 두고
더 중요하고
더 근원적이고
더 숭고한
사건을 만드는데 성공한
십자가사건을 연상케하는 치명적인 스토리전개라고
평가한 바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로버트 맥키의 표현대로
절정에서
카메라는 멈춰야 한다.
카메라마저 멈추는 순간
카메라마저 숨직이는 순간이 바로
절정이다.
절정은 느린 세계이다.
절정은 멈춤의 세계이다.
숭고하고
중요하고
필연적 순간이기에
모든 스토리는 절정에서 멈추게 되는 것이다.
멈추지 않는 절정은
절정이 아니다.
네가 쓴 스토리에서
절정의 순간에
스토리가 숨죽이지 않는다면
실패임을 기억하라.
더 테러 라이브의 절정의 순간도 멈춘다.
피에타도 멈추고
올드보이도 멈추고
타이타닉도 멈춘다.
내가 사랑하는 텍스트.
박하사탕의 절정을 보자.
기준에 따라 어디가 절정인지를 보는 입장은 다르겠지만
나는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기차길의 상징이 이어지며
기차길 어둔 밤
선로에서
숨죽이며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오발사고로
여학생을 죽이게된
바로 그 장면을 절정으로 보고 싶다.
배우 설경구가 울며...
신발이 무겁다면서 벗겨냈을 때
빗물 반
핏물 반인
그 장면을 생각해보라.
그 장면에서
박하사탕은
단순한 한 개인의 몰락에서
더 중요하고
더 필연적이고
더 근원적인
갈등구조를 끌어내었는가?
그렇다.
바로 이 시대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비극인
광주
바로 그 날 밤.
기막힌
의미의 확대와 점층과 심연으로 파고드는
깊이
아니겠는가?
이런 절정을 맛보기위해
우리는
2시간을 자발적으로 감금되는 것이다.
임사체험이라는 것이 있다.
스스로 관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해보는 것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임사체험과 같다.
자발적 죽음의 순간에
관객으로 하여금
이 비루한 삶에 대한
하나의 깊이
성찰
혹은 울림을
전해주지 않는다면
관객의 죽음 또한 헛된 일이 된다.
관객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말라.
반드시 관뚜껑을 열고 일어났을 때
그가 새로 맛보는 공기와
시선과
인식이
전과 다를 수 있도록
더 중요하고
더 근원적이고
더 필연적
의미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라.
그것이 절정이다.
- 국내 유일의 한예종입시 전문학원
- 영화,연기분야 최고의 커리큘럼
- 한예종,서울예대 출신 중심으로 실무경력이 풍부한 최정예 강사진
- 소수정예화로 최적의 수업분위기
- 강남 신사역세권에 위치한 편리한 교통망
- 가장 수준 높은 학생들이 모려드는 레슨팀
- 한예종 석사 과정과 동일한 수준의 높은 입시컨설팅이 가능한 레슨팀(교육부 인가 영화,스토리텔링,연기,1차영어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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