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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강about, intheatre 2013. 7. 11. 15:45
오늘 우연히 인터넷 자료를 검색하다가 진시황릉의 비밀에 대한 자료를 봤다.
우리가 알고있는 그 유명한 병마상 들은 진시황릉의 비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부대시설에 불과하다고 한다.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진시황릉 진짜 건물안에는 얼마나 대단한 것이 있을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한 과학적 자료에 의하면 수은이 흐르는 인공강과 호수, 그리고 온세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작은 소우주가 진시황릉의 본진 아래엔 빼곡히 들어차 있으리라는 것이다. 병마상이 그 정도 위용이면 실제 진시황의 무덤 자체는 얼마나 화려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진시황의 위용보다는
그 시대 사람들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컷을까를 생각했다.
진시황릉과 만리장성 등에 동원되여 평생을 노동에 징집된 사람들... 그러나 실상을 알면 오히려 그런 부역이 그 당시 사람들에겐 하나의 일자리 였을 수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헛되다는 거다.
인생은 고통이다. 고통의 연속이다. 기쁨보다는 압도적인 슬픔이 넘친다.
내 삶을 돌아봐도 정말 그렇다.
고통이 월등히 많다.
인내하고 때론 분노하고 때론 견디지만
진시황릉의 무덤 아래에 흐르는 수은 강처럼 우리 인생도 고통의 강에 비유할 수 있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작가 중에 헨리 나우웬이 있다.
내 기독교적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세계 최고의 신학자이다.
예일대학의 유명한 심리학교수 자리를 갑자기 박차고 나와, 캐나다 데이브레이크라는 장애인공동체에서 아담이란 이름의 중증장애인 단 한사람을 돌보며 남은 평생을 보냈다.
주변의 학문적 동료들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당신처럼 이렇게 훌륭한 학식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나눠주는 교수의 자리에 있는 것이 더욱 가치있는 일이 아닌가...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다.
그러나 나우웬은
기독교 서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예수의 생이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단 한 사람으로
단 한 곳을 향해
끊임없이 축소되는 삶이었다고
작은 곳에 심기운 씨앗의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가 돌보던 중증장애인 아담이 죽자
얼마지나지 않아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나우웬도 서거하게 된다.
(헨리 나우웬의 저서 <아담>의 내용)
나우웬의 삶을 보며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본다.
학원을 경영하면서 언젠가부터
내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끊임없는 확장의 욕구에 나를 내맡겨버린 것이 아닌지
돌아본다.
계기가 필요하다.
들풀 한송이, 바람냄새 한번에 마음이 씻기우는
진짜 영혼의 치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도 학생들에게
무언가 살아있는 울림을 전해주지 않겠는가...
글의 시작에서
삶은 고통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했다.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매료되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은 인생에 대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인생의 은유이다.
그래서 그런지
스토리는
어떤 플롯이라도
고통이 이끌어간다.
문제적 상황이 이끌어간다.
예를들어 7번방의 선물을 보자.
지능이 낮은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고 (역 아이디어)
거기서 꽤 괜찮은 동료들을 만나지만
혼자 남겨진 아이가 걱정된다 (역 아이디어)
기적적으로 아이를 감옥에 데려오게 되지만
결국 아이와는 이별해야 한다. (역 아이디어)
열기구 장면을 통해 멋지고 환상적인 이별을 한다.
그리고 위기와 절정.
영화는 급속도로 진행되는데
아버지가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당하게 되는 것 (가장 큰 역 아이디어)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즉 절정에서
검사로 성장한 아이가
눈물로 아버지의 명예를
모의법정을 통해 회복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장면은 세일러문 장면 (결말)
7번방의 선물 스토리를 볼때
내가 (역 아이디어)라고 써 놓은 장면들이
바로 고통이다.
즉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주도적 아이디어 (지능이 낮은 아버지지만 아버지의 진실되고 숭고한 사랑이,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사형-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성장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입증되게 된다)
에 반대되는 사건. 주도적 아이디어를 방해하는 사건인 것이다.
이야기의 궁극적인 목적달성을 방해하는 사건을 우리는 역아이디어라고 한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것은
오로지
역 아이디어 뿐이다.
진짜다.
오직 역 아이디어만이
스토리를 이끌어가고, 발전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만') 이라는 단어이다.
스토리는 인생이라는 비유에 대입해보면
오직 고통'만' 이 인생을 이끌어가고 발전시키고 성장시킨다는 비약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풍요롭고, 모든 일이 순탄한 인생에는 고통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풍요로움, 순탄함, 여유로움 자체가
고통이 된다.
그러한 종류의 고통을 우리는
'권태'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러니 인생은 고통이 맞다.
인생을 이끌어가고
풍요롭게 하고
살찌우는 것도
고통이 맞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헨리 나우웬은
고통이 있을땐
춤추하자고 제안한다.
그 고통의 깊은 곳에서
만나는 실존적 자아 그리고 기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리스도를 만나는
진짜 믿음의 정수는
고통의 밑바닥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헨리 나우웬 <춤추시는 하나님>의 내용)
7번방의 선물에서 역아이디어를 삭제해보자.
아빠는 지능이 낮지만 착하다.
아이는 그런 아빠를 좋아한다.
아이는 잘자라 민족사관학교를 간다.
아빠도 열심히 일해 구청 최우수 주차요원 상을 수상한다.
아이는 더 잘자라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다.
아빠도 더 열심히 일해 전국모범아빠상을 받는다.
아이는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최연소 검사가 된다.
그리고
7번방의 선물의 마지막 장면.
아이와 아빠는 서로를 축하한다.
생각해보라.
당신이라면 위의 영화를 보겠는가?
위의 이야기가 아무런 감동이 없는 이유는
역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인생에 대한 은유라고 한다면
인생을 이끄는 힘도
고통이다.
물론 고통이 당시에는 힘들다.
피하고 싶다.
그러나 기억하라.
아무런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도 인간은 고통을 경험한다는 것을.
오히려 더 심각한 실존적 고통
권태를
경험한다는 것을.
그러니
고통이 없는 삶을 꿈꾸지 말고
나우웬처럼
고통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자.
고통 속에서
예술의 감각과
삶의 통찰과
인생의 서사를
빛나게 하자.
그게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힘들어서
이런 글도
쓸 수 있으니
어찌보면
참으로 고맙다.
삶이여.
고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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